[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7. 요양원에서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7. 요양원에서
  • 전재민
  • 승인 2021.09.13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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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적힌 주방 주문서 하나
생을 마감준비중이라 영어로 쓰여 있다
 

남들처럼 먹는 것이
부러움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음식 만들며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이유식 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입에 넣어 주듯
나이 들어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잘게 썬 음식도 못 먹어 고운 죽처럼 갈고
그것조차도 못 먹으면 빨대로 빨 수 있게
멀건 미음처럼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먹는 것밖에 남지 않은 요양원에서
접시음식조차 먹는 거 배우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흘리니
테두리 있는 접시에 주고
국 대접 같은 볼에 주고
그것조차 떠먹인다
나이 들어 요양원 삶
꿈이 없는 아이처럼
휠체어에 온 몸을 맡기고
희망조차 잃어버린 빈껍데기처럼.
 

#작가의 변
별다를 것 없는 캐나다 직장생활.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은 백인한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일진이 왕따 시키고 빵 셔틀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아 싶지만, 사실 이민자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8년 가까이 일하던 곳에서 인도계 슈퍼바이저가 매니저가 되면서 내 자리였던 오후 슈퍼바이저가 없어졌었다. 나를 앞세워 문제를 만들어 백인 매니저를 해고 시키고 2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풀타임 슈퍼바이저도 인도계가 됐다. 그래서 화가 나서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갔는데 하필이면 반년도 못하고 미니 스트로크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어, 정말 떠나고 싶었던 그 직장에 케주얼은 그만 두지 않고 계속 일한 덕분에 다시 주2일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수입이 부족해서 다른 직장인 시니어 홈에 일을 잡았다.

케주얼 온 콜잡으로 시니어 홈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엔 한인 크라이언트가 있어서 한식도 준비하는데 슈퍼바이저가 나한테 9월말까지 매주 이틀 동안 한식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러마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매니저가 인도 여자한테 한식을 가르쳐 주라면서 그 여자에게 내가 일하던 화, 수요일 이틀을 일한다고 했다. 그 여자가 주방에 식자재 배달 온 걸 정리해야 하는데, 둘이 한식도 같이 하고 식자재 정리도 같이 하라고 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냥 옆에서 하는 것을 보라고 하지만 나는 식자재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집에 와서 옆지기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나한테 자기 바보야. 잘릴 줄 뻔히 알면서 한식을 가르쳐 주냐고 난리다. 주방 슈퍼바이저 사내구인 광고가 나와서 지원했더니 역시나 인도계 젊은 여자가 됐다.

오늘도 스케줄 부서에서 그제 연락이 와서 한식을 해달라고 해서 출근했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밥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고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정시가 되어서 다른 인도여자가 출근하더니 나보고 자기가 오늘 한국음식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난 스케줄부서에서 한식조리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왔다고 했다고 했더니 쉣! 하고 씩씩 거리더니 슈퍼바이저를 데리고 와서 나보고 양식 디너를 하라고 했다. 한식은 인도 여자가 할 테니 나보고 양식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양식 디너는 원래 30분 더 늦게 출근해야 한다. 디너도 난 하루 트레이닝 받고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오늘 메뉴 쉬우니까 그럼 오늘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르쳐줄테니 걱정 말고 양식을 하라고 했다. 쉬운 걸 저가 하면 되지 왜 한식을 한다고 하는지 난 도저히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국 조리사가 있는데 왜 인도여자가 한국음식을 하겠다는 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말도 안 돼는 상황을 정리해야 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다 인도출신으로 인도 직원들이 쫓아가서 뭐라고 하면 다 그들 편을 들어 준다.

안 그래도 재료가 늘 한국 재료 없는 것이 많아서 한국음식 만드는데 애로 사항이 있는데 만드는 사람까지 인도 직원들이 만든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레시피가 있다고 해도 인도 직원이 한국 고유의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기네도 인도 카레를 내가 만들면 뭐가 부족하네, 어쩌고 하면서, 재료도 없는 것을 대체해 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된장찌개나 미역국 같은 쉬운 음식이라도 늘 인도 향신료를 써서 인도 맛을 내게 만들어 놓고는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역국도 메뉴엔 미역국인데 마른 미역이 없어서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식을 대충 흉내만 내고는 한식 쉽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그러니 자꾸 나를 양식으로 밀어 내거나 식자재 정리하는 것을 시키고 한식은 자기들이 하려고 하지…. 사실 한식을 만들 땐 정성 들여 만들어서 노인 분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평생 해온 양식과는 달리 한식 만들 땐 마음도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이래저래 자꾸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의도 없고, 사리분별도 못하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얼마 전 관계된 지인에게 속사정을 털어 놓은 적이 있는데 그분도 바빠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 시니어 홈엔 중국어를 하고 중국음식을 하던 중국 조리사가 아니면 아예 채용을 하지 않는데 많은 시니어 홈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필리핀 아니면 인도계이고 타민족은 오히려 밀어 내는 편이다. 백인 매니저는 그래도 중국계나 한국계도 쓰는데 인도계는 특히 인도계만으로 직원을 채운다. 요즘 직장에서는 캐나다가 아니고 인도에서 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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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적힌 주방 주문서 하나
생을 마감준비중이라 영어로 쓰여 있다
 

남들처럼 먹는 것이
부러움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음식 만들며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이유식 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입에 넣어 주듯
나이 들어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잘게 썬 음식도 못 먹어 고운 죽처럼 갈고
그것조차도 못 먹으면 빨대로 빨 수 있게
멀건 미음처럼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먹는 것밖에 남지 않은 요양원에서
접시음식조차 먹는 거 배우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흘리니
테두리 있는 접시에 주고
국 대접 같은 볼에 주고
그것조차 떠먹인다
나이 들어 요양원 삶
꿈이 없는 아이처럼
휠체어에 온 몸을 맡기고
희망조차 잃어버린 빈껍데기처럼.
 

#작가의 변
별다를 것 없는 캐나다 직장생활.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은 백인한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일진이 왕따 시키고 빵 셔틀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아 싶지만, 사실 이민자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8년 가까이 일하던 곳에서 인도계 슈퍼바이저가 매니저가 되면서 내 자리였던 오후 슈퍼바이저가 없어졌었다. 나를 앞세워 문제를 만들어 백인 매니저를 해고 시키고 2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풀타임 슈퍼바이저도 인도계가 됐다. 그래서 화가 나서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갔는데 하필이면 반년도 못하고 미니 스트로크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어, 정말 떠나고 싶었던 그 직장에 케주얼은 그만 두지 않고 계속 일한 덕분에 다시 주2일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수입이 부족해서 다른 직장인 시니어 홈에 일을 잡았다.

케주얼 온 콜잡으로 시니어 홈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엔 한인 크라이언트가 있어서 한식도 준비하는데 슈퍼바이저가 나한테 9월말까지 매주 이틀 동안 한식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러마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매니저가 인도 여자한테 한식을 가르쳐 주라면서 그 여자에게 내가 일하던 화, 수요일 이틀을 일한다고 했다. 그 여자가 주방에 식자재 배달 온 걸 정리해야 하는데, 둘이 한식도 같이 하고 식자재 정리도 같이 하라고 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냥 옆에서 하는 것을 보라고 하지만 나는 식자재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집에 와서 옆지기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나한테 자기 바보야. 잘릴 줄 뻔히 알면서 한식을 가르쳐 주냐고 난리다. 주방 슈퍼바이저 사내구인 광고가 나와서 지원했더니 역시나 인도계 젊은 여자가 됐다.

오늘도 스케줄 부서에서 그제 연락이 와서 한식을 해달라고 해서 출근했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밥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고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정시가 되어서 다른 인도여자가 출근하더니 나보고 자기가 오늘 한국음식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난 스케줄부서에서 한식조리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왔다고 했다고 했더니 쉣! 하고 씩씩 거리더니 슈퍼바이저를 데리고 와서 나보고 양식 디너를 하라고 했다. 한식은 인도 여자가 할 테니 나보고 양식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양식 디너는 원래 30분 더 늦게 출근해야 한다. 디너도 난 하루 트레이닝 받고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오늘 메뉴 쉬우니까 그럼 오늘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르쳐줄테니 걱정 말고 양식을 하라고 했다. 쉬운 걸 저가 하면 되지 왜 한식을 한다고 하는지 난 도저히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국 조리사가 있는데 왜 인도여자가 한국음식을 하겠다는 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말도 안 돼는 상황을 정리해야 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다 인도출신으로 인도 직원들이 쫓아가서 뭐라고 하면 다 그들 편을 들어 준다.

안 그래도 재료가 늘 한국 재료 없는 것이 많아서 한국음식 만드는데 애로 사항이 있는데 만드는 사람까지 인도 직원들이 만든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레시피가 있다고 해도 인도 직원이 한국 고유의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기네도 인도 카레를 내가 만들면 뭐가 부족하네, 어쩌고 하면서, 재료도 없는 것을 대체해 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된장찌개나 미역국 같은 쉬운 음식이라도 늘 인도 향신료를 써서 인도 맛을 내게 만들어 놓고는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역국도 메뉴엔 미역국인데 마른 미역이 없어서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식을 대충 흉내만 내고는 한식 쉽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그러니 자꾸 나를 양식으로 밀어 내거나 식자재 정리하는 것을 시키고 한식은 자기들이 하려고 하지…. 사실 한식을 만들 땐 정성 들여 만들어서 노인 분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평생 해온 양식과는 달리 한식 만들 땐 마음도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이래저래 자꾸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의도 없고, 사리분별도 못하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얼마 전 관계된 지인에게 속사정을 털어 놓은 적이 있는데 그분도 바빠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 시니어 홈엔 중국어를 하고 중국음식을 하던 중국 조리사가 아니면 아예 채용을 하지 않는데 많은 시니어 홈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필리핀 아니면 인도계이고 타민족은 오히려 밀어 내는 편이다. 백인 매니저는 그래도 중국계나 한국계도 쓰는데 인도계는 특히 인도계만으로 직원을 채운다. 요즘 직장에서는 캐나다가 아니고 인도에서 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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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적힌 주방 주문서 하나
생을 마감준비중이라 영어로 쓰여 있다
 

남들처럼 먹는 것이
부러움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음식 만들며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이유식 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씹어서 입에 넣어 주듯
나이 들어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잘게 썬 음식도 못 먹어 고운 죽처럼 갈고
그것조차도 못 먹으면 빨대로 빨 수 있게
멀건 미음처럼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먹는 것밖에 남지 않은 요양원에서
접시음식조차 먹는 거 배우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흘리니
테두리 있는 접시에 주고
국 대접 같은 볼에 주고
그것조차 떠먹인다
나이 들어 요양원 삶
꿈이 없는 아이처럼
휠체어에 온 몸을 맡기고
희망조차 잃어버린 빈껍데기처럼.
 

#작가의 변
별다를 것 없는 캐나다 직장생활.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은 백인한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일진이 왕따 시키고 빵 셔틀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아 싶지만, 사실 이민자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8년 가까이 일하던 곳에서 인도계 슈퍼바이저가 매니저가 되면서 내 자리였던 오후 슈퍼바이저가 없어졌었다. 나를 앞세워 문제를 만들어 백인 매니저를 해고 시키고 2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풀타임 슈퍼바이저도 인도계가 됐다. 그래서 화가 나서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갔는데 하필이면 반년도 못하고 미니 스트로크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어, 정말 떠나고 싶었던 그 직장에 케주얼은 그만 두지 않고 계속 일한 덕분에 다시 주2일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수입이 부족해서 다른 직장인 시니어 홈에 일을 잡았다.

케주얼 온 콜잡으로 시니어 홈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엔 한인 크라이언트가 있어서 한식도 준비하는데 슈퍼바이저가 나한테 9월말까지 매주 이틀 동안 한식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러마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매니저가 인도 여자한테 한식을 가르쳐 주라면서 그 여자에게 내가 일하던 화, 수요일 이틀을 일한다고 했다. 그 여자가 주방에 식자재 배달 온 걸 정리해야 하는데, 둘이 한식도 같이 하고 식자재 정리도 같이 하라고 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냥 옆에서 하는 것을 보라고 하지만 나는 식자재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집에 와서 옆지기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나한테 자기 바보야. 잘릴 줄 뻔히 알면서 한식을 가르쳐 주냐고 난리다. 주방 슈퍼바이저 사내구인 광고가 나와서 지원했더니 역시나 인도계 젊은 여자가 됐다.

오늘도 스케줄 부서에서 그제 연락이 와서 한식을 해달라고 해서 출근했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밥쌀을 씻어서 밥솥에 넣고 일을 시작하고 있는데 정시가 되어서 다른 인도여자가 출근하더니 나보고 자기가 오늘 한국음식 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난 스케줄부서에서 한식조리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왔다고 했다고 했더니 쉣! 하고 씩씩 거리더니 슈퍼바이저를 데리고 와서 나보고 양식 디너를 하라고 했다. 한식은 인도 여자가 할 테니 나보고 양식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양식 디너는 원래 30분 더 늦게 출근해야 한다. 디너도 난 하루 트레이닝 받고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오늘 메뉴 쉬우니까 그럼 오늘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르쳐줄테니 걱정 말고 양식을 하라고 했다. 쉬운 걸 저가 하면 되지 왜 한식을 한다고 하는지 난 도저히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국 조리사가 있는데 왜 인도여자가 한국음식을 하겠다는 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말도 안 돼는 상황을 정리해야 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다 인도출신으로 인도 직원들이 쫓아가서 뭐라고 하면 다 그들 편을 들어 준다.

안 그래도 재료가 늘 한국 재료 없는 것이 많아서 한국음식 만드는데 애로 사항이 있는데 만드는 사람까지 인도 직원들이 만든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레시피가 있다고 해도 인도 직원이 한국 고유의 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기네도 인도 카레를 내가 만들면 뭐가 부족하네, 어쩌고 하면서, 재료도 없는 것을 대체해 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된장찌개나 미역국 같은 쉬운 음식이라도 늘 인도 향신료를 써서 인도 맛을 내게 만들어 놓고는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역국도 메뉴엔 미역국인데 마른 미역이 없어서 끓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식을 대충 흉내만 내고는 한식 쉽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그러니 자꾸 나를 양식으로 밀어 내거나 식자재 정리하는 것을 시키고 한식은 자기들이 하려고 하지…. 사실 한식을 만들 땐 정성 들여 만들어서 노인 분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평생 해온 양식과는 달리 한식 만들 땐 마음도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이래저래 자꾸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예의도 없고, 사리분별도 못하고 슈퍼바이저도, 매니저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얼마 전 관계된 지인에게 속사정을 털어 놓은 적이 있는데 그분도 바빠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 시니어 홈엔 중국어를 하고 중국음식을 하던 중국 조리사가 아니면 아예 채용을 하지 않는데 많은 시니어 홈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필리핀 아니면 인도계이고 타민족은 오히려 밀어 내는 편이다. 백인 매니저는 그래도 중국계나 한국계도 쓰는데 인도계는 특히 인도계만으로 직원을 채운다. 요즘 직장에서는 캐나다가 아니고 인도에서 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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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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