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5. 불교의 대안(1)
[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5. 불교의 대안(1)
  •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1.09.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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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변화: 소욕지족과 무소유의 삶

대안은 무엇인가. 개인의 차원에서는 이제 우리는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고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불교는 욕망의 확장과 물질적 소비를 통해서는 행복해 질 수 없다고 말한다. 불교는 개인의 깨달음과 공동체적 삶을 통하여 소외를 극복하라고, 무소유의 삶을 통해 화폐증식의 욕망을 없애라고, 무한한 소비와 향락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살라 가르친다. 부처님께서는 출가수행자들이 ‘삼의일발(三衣一鉢)’이나 ‘육물(六物)’만 소유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라 일렀으며, 이 계율을 어기면 모든 소유물을 4인 이상의 도반들 앞에 내놓고 참회해야 했다. 달마대사는 ‘구함이 있으면 모든 것이 고통이지만 구함이 없으면 이 자리가 곧 극락’이라고 말하며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실천을 제시했다. 나아가 육조 혜능 역시 욕망을 줄이고 소박한 삶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을 설파했다. 불교의 소비에 대한 입장은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라기보다는 욕망의 제어로 표현되는 검소와 절제와 생활을 통하여 적은 소비로 만족을 얻고 시여(施輿)의 종교적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재(財)의 최대효용을 달성하는 것이다.

연기와 중도에 입각한 자비의 경제학

불교적 경제행위에서 필요한 것은 연기와 중도에 대한 깨달음이다. 내 호흡만으로도 내 얼굴 앞 대기의 미생물이 살고 죽으며, 그리 달라진 대기가 나와 타인의 몸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듯,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이 서로 조건이 되고 작용한다. 인간은 충분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인 동시에 연기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 싸우던 두 사람이 실은 이복형제임을 알면 싸움을 멈출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처럼 나와 다른 타자가 이복형제처럼, 부모와 자식관계처럼 서로 연기되어 있음을 깨달으면 우리는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할 수 있다. 그를 잊고 자기만 살려 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금융위기를 맞았고, 급기야 99%의 저항이 일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나와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는 타자를 위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의 차원에서는 “기업은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 인권, 노동, 지역사회 등을 고려한 사회적 성과를 얻어야 존립근거를 갖는다.”에 입각한 ‘영리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이 요청된다.

시장주의자들은 규제와 간섭을 없애고 자유롭게 놔두어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자기조절을 하여 자원배분을 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을 실체로 본 데서 비롯된 망상이다. 시장은 다른 시장, 국가, 기업, 은행, 생산자와 소비자와 연기관계다. 무수한 연관관계 속에서 한 쪽의 야만과 탐욕은 타자의 희생과 고통을 야기한다. 견제와 감시의 시선이 사라지면 서로 야만과 탐욕을 부추기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야만과 탐욕을 견제하던 장치, 정의의 원칙을 모두 규제로 몰아 해체하였다. 이의 귀결은 99%의 빈곤과 죽음, 1%의 독점과 타락, 금융위기와 대공황의 유령이다. 반면에 연기론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서로가 서로의 역동적인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정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경제행위를 한다.

불자가 재물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중도다.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나쁘지만, 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멀리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럼, 불교를 자본주의와 연관하여 해석할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앙굿따라 니까야Aṇguttara Nikāya』에 “비구들이여, 눈먼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여기에 어떤 사람은 재산을 얻거나 늘리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 …… 비구들이여, 두 눈 가진 이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가? 그는 재산을 얻거나 늘리는 눈을 갖고 있다. 그는 또한 선한 방법과 악한 방법, 비난받고 칭찬받는 방법, 천하고 고상한 방법, 떳떳하고 어두운 방법을 잘 분별하는 눈도 갖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을 두 눈 가진 이라고 부른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니까야에서는 재산의 획득과 증식을 하지 못하는 이를 눈 먼 사람으로, 재산의 획득과 증식은 행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한 이를 한 눈만 있는 이로, 재산의 획득과 증식을 할 줄 알면서 이를 윤리적으로 정당하게 행하는 이를 두 눈이 있는 자로 분류하고 있다. 일정한 윤리규범에 따라 재산을 획득하고 증식하는 자야말로 세 부류의 인간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자다.

혹자는 업의 논리에 따라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시간이 업과 얽히면서 업은 시간에 따른 존재의 변이가 정의롭게 일어나도록 통제하는 원리가 된다. 짧고 직선적인 시간관만으로 보면, 착한 자가 고통을 받고 선한 일을 하면 손해 보는 부조리로 만연한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러나 길고 둥그런 시간관으로 보면,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생의 죄업을 씻는 과정이다. 곧 선한 자가 지금 가난한 것은 전생에서 죄업을 지었기 때문에 그 원인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며, 지금의 고통은 고통이라기보다 선업을 쌓는 과정이다. 지금 돈을 잘 벌더라도 그를 좋은 일에 쓰지 않으면 악업을 짓게 되어 후생이 편하지 않다. 그러니, 돈을 벌더라도 보시를 많이 해야 후생이 편안한 것이다. 보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이처럼 자비의 경제학은 연기론과 업설에 따라 자기실현과 깨달음의 과정으로서 노동을 하여 가치를 창조하고 타자와 나의 깊은 연관관계를 파악하여 소욕지족의 생활을 하며 적은 소비로 만족을 얻고 그를 편안하게 하여 나를 평안하게 하여 선업을 쌓고 악업은 풀면서 재(財)의 최대효용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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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을 썼고, 틱낫한의 <엄마>를 번역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한국기호학회 회장과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시가학회 회장을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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