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연 끌려 세상 왔지만, ‘한 생각 챙기고 가고 싶다”
“업연 끌려 세상 왔지만, ‘한 생각 챙기고 가고 싶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1.10.01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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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 대현 스님 입적…고별사 잔잔한 감동
연명치료 거부 단식정진하며 “울면서 온 길 웃으며 간다”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 대현 스님이 지난 9월 26일 입적했다. 사진=허정 스님 제공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하던 대현 스님이 지난달 26일 입적했다. 대현 스님은 최근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접목한 ‘위빠간화선’ 안내서 《선을 배우는 길》을 펴낸 장본인이다.

대현 스님의 영결은 여느 유명한 스님들처럼 성대하지 않았지만, 스님이 남긴 ‘고별사’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이 입적하는 경우 ‘임종게’만 남기지만, 대현 스님은 속세와의 인연을 회향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고별사’와 함께 임종게를 남겼다. 특히 스님의 고별사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문 투의 임종게의 의미를 넘어선, 태어나 불문에 입적하고 수행하며 살아가는 동안 문중을 비롯해 주변 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자신의 세속과의 인연을 회향하는 자세를 담담하게 정리해 세인의 가슴에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대현 스님은 입적을 예감하고 단식 정진했다. 병치레하는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강도 높은 치료를 받거나, 연명 치료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대현 스님은 자신의 약한 몸에 든 병이 세상과의 인연을 마감하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입적 순간까지 곡기를 끊고 단식정진으로 사바와 작별을 한 것이다.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이 남긴 고별사는 불문에 귀의하도록 받아 준 은사 스님과 문도의 후배 스님들에게 감사와 참회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님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중을 만들어 주시어 부처님의 법을 만나게 된 보람된 사람을 살게 해주신 분은 은사 스님”이라며 “은사 스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더 깊어, 그 은혜 세세생생에 갚아도 다 갚을 길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 “저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심이 부족해 문도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다.”면서 “그런데도 사제들은 저를 사형으로 대접해 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베푼 바가 없어, 이제야 내 자신이 인색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참회했다.

재가불자들에게도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대현 스님은 “신도님들은 훌륭한 수행력을 갖추지 못했고, 덕망도 없는 저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주시었습니다. 무거운 시은만 지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50안거를 성만한 대현 스님은 간화선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 분명하지만, 깎아지른 바위산을 단박에 오르는 것과도 같아 상근기에 적합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위빠사나를 만났다. 스님은 위빠사나를 간화선에 접목, 수행의 바르고 빠른 길로써 ‘위빠간화선’을 제시했었다.

대현 스님은 위빠간화선을 “고요히 비춤을 바탕으로 삼고(묵조선)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들뜸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위빠사나) 이 뭣고? 하고 화두를 챙김으로써(간화선) 산란한 마음을 강한 집중으로 삼매에 들게 하여 무명번뇌를 조복시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수행에 매진했던 스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 가는 과정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이 겪는 그 과정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스님은 고별사에 “나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잘 죽는 죽음일까”라며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이 두렵다.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의 과정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면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링거액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숨만 쉬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했다.



대현 스님의 다비식.



스님은 “예날 도인들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죽고, 죽기를 마음대로 하였다.”며 “난 늘 신도들에게, 이 몸은 공(空)하여 거짓 나이니 애착할 게 없다고, 하지만 막상 죽음이 내 코앞에 다가오니 어떻게 죽어야 잘 한 죽음일까 생각이 깊어진다.”고 했다.

스님은 “초학 시절 보름 동안 단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단식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하였더니 정신이 맑아져 화두를 성성적적 끊어짐 없이 밤낮 이어짐을 체득한 바 있다.”며 “그때 생각하기를, 이 세상 떠날 때 단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겠구나 했다.”고 밝혔다.

이어 스님은 “지금 내 나이 칠순이 훨씬 지났다. 백세까지 사는 세상이니 한참 못 미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래 약골로 태어난 나로서는 많이 산 것”이라며 “절집에 들어온 지도 반백년이 지났다. 시은(施恩)만 지고 있어 무거운 업만 쌓여 가는 것 같다.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져 일 년 내내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가래가 목구멍에 걸리어 괴롭고 기침이 심하다. 이런 증상들이 이제 세상을 하직하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고 했다.

스님은 “백년 이백 년 더 살다 간다고 해도 아쉽기는 매 한 가지이다. 지금 더 사려고 버둥댄다면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생에 대한 애착은 윤회의 씨앗이 된다. 나는 그 윤회의 씨앗인 애착을 버리고자 한다. 좀 힘이 남아 있고, 정신이 또렷할 때 단식을 하면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한다.”면서 “그러하니 주위에서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스님은 주변 이들에게 “이 세상 올 때는 업연에 끌리어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다.”면서 “올 때는 비롯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며 가고자 한다. 나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 영양제를 놓고 음식을 먹이지 마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중께 짐 지워 드려 죄송하다.”면서 작별을 예고했다.



대현 스님이 펴 낸 책들.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 대현 스님이 지난 9월 26일 입적했다. 사진=허정 스님 제공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하던 대현 스님이 지난달 26일 입적했다. 대현 스님은 최근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접목한 ‘위빠간화선’ 안내서 《선을 배우는 길》을 펴낸 장본인이다.

대현 스님의 영결은 여느 유명한 스님들처럼 성대하지 않았지만, 스님이 남긴 ‘고별사’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이 입적하는 경우 ‘임종게’만 남기지만, 대현 스님은 속세와의 인연을 회향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고별사’와 함께 임종게를 남겼다. 특히 스님의 고별사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문 투의 임종게의 의미를 넘어선, 태어나 불문에 입적하고 수행하며 살아가는 동안 문중을 비롯해 주변 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자신의 세속과의 인연을 회향하는 자세를 담담하게 정리해 세인의 가슴에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대현 스님은 입적을 예감하고 단식 정진했다. 병치레하는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강도 높은 치료를 받거나, 연명 치료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대현 스님은 자신의 약한 몸에 든 병이 세상과의 인연을 마감하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입적 순간까지 곡기를 끊고 단식정진으로 사바와 작별을 한 것이다.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의 고별사 일부.

대현 스님이 남긴 고별사는 불문에 귀의하도록 받아 준 은사 스님과 문도의 후배 스님들에게 감사와 참회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님은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중을 만들어 주시어 부처님의 법을 만나게 된 보람된 사람을 살게 해주신 분은 은사 스님”이라며 “은사 스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더 깊어, 그 은혜 세세생생에 갚아도 다 갚을 길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 “저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심이 부족해 문도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다.”면서 “그런데도 사제들은 저를 사형으로 대접해 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베푼 바가 없어, 이제야 내 자신이 인색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참회했다.

재가불자들에게도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대현 스님은 “신도님들은 훌륭한 수행력을 갖추지 못했고, 덕망도 없는 저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주시었습니다. 무거운 시은만 지고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50안거를 성만한 대현 스님은 간화선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 분명하지만, 깎아지른 바위산을 단박에 오르는 것과도 같아 상근기에 적합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위빠사나를 만났다. 스님은 위빠사나를 간화선에 접목, 수행의 바르고 빠른 길로써 ‘위빠간화선’을 제시했었다.

대현 스님은 위빠간화선을 “고요히 비춤을 바탕으로 삼고(묵조선)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들뜸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위빠사나) 이 뭣고? 하고 화두를 챙김으로써(간화선) 산란한 마음을 강한 집중으로 삼매에 들게 하여 무명번뇌를 조복시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수행에 매진했던 스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 가는 과정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이 겪는 그 과정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스님은 고별사에 “나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잘 죽는 죽음일까”라며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죽어가는 과정이 두렵다.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의 과정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면서 “병원 중환자실에서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링거액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숨만 쉬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했다.

대현 스님의 다비식.
대현 스님의 다비식.

스님은 “예날 도인들은 앉아 죽고, 서서 죽고,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죽고, 죽기를 마음대로 하였다.”며 “난 늘 신도들에게, 이 몸은 공(空)하여 거짓 나이니 애착할 게 없다고, 하지만 막상 죽음이 내 코앞에 다가오니 어떻게 죽어야 잘 한 죽음일까 생각이 깊어진다.”고 했다.

스님은 “초학 시절 보름 동안 단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단식을 하면서 열심히 정진하였더니 정신이 맑아져 화두를 성성적적 끊어짐 없이 밤낮 이어짐을 체득한 바 있다.”며 “그때 생각하기를, 이 세상 떠날 때 단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겠구나 했다.”고 밝혔다.

이어 스님은 “지금 내 나이 칠순이 훨씬 지났다. 백세까지 사는 세상이니 한참 못 미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래 약골로 태어난 나로서는 많이 산 것”이라며 “절집에 들어온 지도 반백년이 지났다. 시은(施恩)만 지고 있어 무거운 업만 쌓여 가는 것 같다.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져 일 년 내내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가래가 목구멍에 걸리어 괴롭고 기침이 심하다. 이런 증상들이 이제 세상을 하직하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고 했다.

스님은 “백년 이백 년 더 살다 간다고 해도 아쉽기는 매 한 가지이다. 지금 더 사려고 버둥댄다면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생에 대한 애착은 윤회의 씨앗이 된다. 나는 그 윤회의 씨앗인 애착을 버리고자 한다. 좀 힘이 남아 있고, 정신이 또렷할 때 단식을 하면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한다.”면서 “그러하니 주위에서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스님은 주변 이들에게 “이 세상 올 때는 업연에 끌리어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다.”면서 “올 때는 비롯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며 가고자 한다. 나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 영양제를 놓고 음식을 먹이지 마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중께 짐 지워 드려 죄송하다.”면서 작별을 예고했다.

대현 스님이 펴 낸 책들.
대현 스님이 펴 낸 책들.

전 서산 천장사 주지 허정 스님은 “대현 스님을 딱 한 번 뵈었는데 말씀을 조리 있게 잘하셨던 분으로 기억하며, 당신이 지으신 책도 2권 선물 받았다.”면서 “근대 불교역사에 대해서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 해주셨는데 다음에 찾아뵙기로 하고 다시 말씀 들을 기회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어떻게 죽어야 잘 죽을까를 궁리하시다가 올 때는 업연으로 이끌려 왔지만 죽을 때는 알아차리며 가고 싶다며 단식을 실행하셨다.”며 “단식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정진으로 임하신 것이다. 다비식도 조촐하게 치러졌다.”고 전했다.

허정 스님은 “거창한 임종게를 남기며 가는 선사들이 사실은 응급실에서 연명치료를 하다가 허겁지겁 가는 경우가 많은데, 대현 스님의 마지막 발자취는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본다.”면서 “대현 스님의 입적 과정은 살아있는 법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현 스님은 고별사 끝에 ‘임종게’를 이렇게 남겼다.

七十五年空幻身(칠십오년공환신) 칠십오 년을 살라온 허망한 이 몸
東西南北空自忙(동서남북공자망) 이곳저곳 공연히 바삐 돌아다녔네
世緣已盡空手去(세연이진공수거) 세상 인연이 다하여 빈손으로 가노니
白雲靑山空來去(백운청산공래거) 백운이 청산에 공연히 왔다가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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