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30. 변명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30. 변명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10.05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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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은 늘 마음 구석에 숨겨 놓고
퉁명스런 말대꾸를 하려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싸움닭처럼 이리저리 빈틈만 노리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모습이 늘 화나 있었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마음 눈길에 실어
잠든 그대를 바라보지만
거칠어진 숨결
거칠어진 손마디처럼
삶에 흔적은 잔주름으로 늘어
검었던 머리 염색 지워지면 흙 위로 나온 파뿌리처럼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숨겨두고
가시 박힌 말만 수도 없이 쏘아댔어 금방 후회할거면서
사랑만 가득하던 마음은
언젠가부터 지워지고 하나 둘 원망만 늘어


잊어주길 바라는 일들만 소 되새김질하듯 되새기고
잘하려고 했던 마음은 알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화살만 날리네.
 

#작가의 변

부부
남남으로 만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우리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결혼 전과 결혼 후 기간이 얼추 비슷해 졌다. 한 달 후에 생일이 다가 오는 쌍둥이들이 벌써 내가 결혼했던 나이가 됐다. 아직도 우리 아들은 베이비라는 아내와 덩치는 산만해서 아빠보다 머리 하나 더 키가 더 큰 아들.
결혼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객지 생활을 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 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도 비행기를 타 본적도 없는 나는 이역만리 머나먼 캐나다에 정착하고 이제 한국에서 살던 날과 캐나다에서 산 날이 얼추 비슷해 진 것이다. 그동안 나의 가족이었던 부모님과 형제들은 하늘나라로 또는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땅에 헤어져 기억 속 가족, 마음속 가족으로만 남았다.
나의 부모님처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을 했던, 좋아 죽을 정도로 좋아서 결혼했던 살다보면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으며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편이 아니더라도 남의 편은 되지 말아야 할 부부. 그놈의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살아간다는 노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제발 살아만 달라고 살려만 달라고 기도 하던 날도 있었다. 쌍둥이와 아내분중에 한쪽을 선택하라던 인천 길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말이 생생하기만 한데 때로 티격태격하다 보면 우리는 어데로 가고 남의 편인 배우자만 보인다.
정신과 치료 상담 중에 나의 우울증과 불안 등의 증세가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의사는 당장 오늘이라도 격리해야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사는 두려움이 더 컸다. 가정에서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힘들 때 내편이 되어 주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고 감싸줄 수 있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티격태격한다 해도 부부관계가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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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은 늘 마음 구석에 숨겨 놓고
퉁명스런 말대꾸를 하려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싸움닭처럼 이리저리 빈틈만 노리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모습이 늘 화나 있었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마음 눈길에 실어
잠든 그대를 바라보지만
거칠어진 숨결
거칠어진 손마디처럼
삶에 흔적은 잔주름으로 늘어
검었던 머리 염색 지워지면 흙 위로 나온 파뿌리처럼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숨겨두고
가시 박힌 말만 수도 없이 쏘아댔어 금방 후회할거면서
사랑만 가득하던 마음은
언젠가부터 지워지고 하나 둘 원망만 늘어

잊어주길 바라는 일들만 소 되새김질하듯 되새기고
잘하려고 했던 마음은 알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화살만 날리네.
 

#작가의 변

부부
남남으로 만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우리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결혼 전과 결혼 후 기간이 얼추 비슷해 졌다. 한 달 후에 생일이 다가 오는 쌍둥이들이 벌써 내가 결혼했던 나이가 됐다. 아직도 우리 아들은 베이비라는 아내와 덩치는 산만해서 아빠보다 머리 하나 더 키가 더 큰 아들.
결혼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객지 생활을 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 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도 비행기를 타 본적도 없는 나는 이역만리 머나먼 캐나다에 정착하고 이제 한국에서 살던 날과 캐나다에서 산 날이 얼추 비슷해 진 것이다. 그동안 나의 가족이었던 부모님과 형제들은 하늘나라로 또는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땅에 헤어져 기억 속 가족, 마음속 가족으로만 남았다.
나의 부모님처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을 했던, 좋아 죽을 정도로 좋아서 결혼했던 살다보면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으며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편이 아니더라도 남의 편은 되지 말아야 할 부부. 그놈의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살아간다는 노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제발 살아만 달라고 살려만 달라고 기도 하던 날도 있었다. 쌍둥이와 아내분중에 한쪽을 선택하라던 인천 길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말이 생생하기만 한데 때로 티격태격하다 보면 우리는 어데로 가고 남의 편인 배우자만 보인다.
정신과 치료 상담 중에 나의 우울증과 불안 등의 증세가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의사는 당장 오늘이라도 격리해야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사는 두려움이 더 컸다. 가정에서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힘들 때 내편이 되어 주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고 감싸줄 수 있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티격태격한다 해도 부부관계가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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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은 늘 마음 구석에 숨겨 놓고
퉁명스런 말대꾸를 하려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싸움닭처럼 이리저리 빈틈만 노리던 것이 내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모습이 늘 화나 있었던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마음 눈길에 실어
잠든 그대를 바라보지만
거칠어진 숨결
거칠어진 손마디처럼
삶에 흔적은 잔주름으로 늘어
검었던 머리 염색 지워지면 흙 위로 나온 파뿌리처럼 보이고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숨겨두고
가시 박힌 말만 수도 없이 쏘아댔어 금방 후회할거면서
사랑만 가득하던 마음은
언젠가부터 지워지고 하나 둘 원망만 늘어


잊어주길 바라는 일들만 소 되새김질하듯 되새기고
잘하려고 했던 마음은 알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화살만 날리네.
 

#작가의 변

부부
남남으로 만나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우리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결혼 전과 결혼 후 기간이 얼추 비슷해 졌다. 한 달 후에 생일이 다가 오는 쌍둥이들이 벌써 내가 결혼했던 나이가 됐다. 아직도 우리 아들은 베이비라는 아내와 덩치는 산만해서 아빠보다 머리 하나 더 키가 더 큰 아들.
결혼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객지 생활을 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 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도 비행기를 타 본적도 없는 나는 이역만리 머나먼 캐나다에 정착하고 이제 한국에서 살던 날과 캐나다에서 산 날이 얼추 비슷해 진 것이다. 그동안 나의 가족이었던 부모님과 형제들은 하늘나라로 또는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땅에 헤어져 기억 속 가족, 마음속 가족으로만 남았다.
나의 부모님처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을 했던, 좋아 죽을 정도로 좋아서 결혼했던 살다보면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으며 결혼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편이 아니더라도 남의 편은 되지 말아야 할 부부. 그놈의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살아간다는 노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제발 살아만 달라고 살려만 달라고 기도 하던 날도 있었다. 쌍둥이와 아내분중에 한쪽을 선택하라던 인천 길병원 산부인과 과장의 말이 생생하기만 한데 때로 티격태격하다 보면 우리는 어데로 가고 남의 편인 배우자만 보인다.
정신과 치료 상담 중에 나의 우울증과 불안 등의 증세가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의사는 당장 오늘이라도 격리해야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사는 두려움이 더 컸다. 가정에서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힘들 때 내편이 되어 주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고 감싸줄 수 있는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티격태격한다 해도 부부관계가 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너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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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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