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눈 밝은 시계공 Sharp-eyed watchmaker
[단상] 눈 밝은 시계공 Sharp-eyed watchmaker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10.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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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전지우 작가



유전자 식품에 펄쩍뛰던 인류, mRNA 백신은 수용

자산 중 최고는 뭐니 해도 자기 능력 향상이다. 단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되면 자산이 된다. 외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신체에 일부 장착될 수도 있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다리가 불편하면 지팡이를 심하면 휠체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학기술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신체 일부를 로봇 팔과 다리, 인공 척추 등으로 보완 또는 교체해서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공상과학 SF영화와 소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로봇인간 사이보그 출현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런데 신체가 향상되기 위해 추가 장착한 것인지 자신이 단련한 결과인지 모호한 게 있는데 유전자 관련 기술이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가질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 이미 증명되었고 실현가능해 졌다. 유전자 과학기술은 식량, 약품, 백신뿐만 아니라 인간 신체 장기 이식 분야에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진단을 통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미리 치료하기도 한다. 코로나를 통해 mRNA 백신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유전자 관련 식품에도 펄쩍 뛰었던 우린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신체에 직접 적용되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이오 유전자 과학자들은 RNA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인체에 주입되어도 백신 기능을 수행하고는 사라진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니 안정성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백신 반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와 맞은 경우의 코로나감염과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 위험 가능성을 비교하면서 팬데믹의 위중성을 이해해 달라는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과학자가 안전하다니 믿고 정부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하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코로나 백신, 유전자기술 일상 깊숙이 들어온 계기”

유전자 기반 과학기술 결과물이 신체에 그것도 주사를 통해 직접 주입되었다. 코로나 이전 다른 백신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 자세하게 알 기회가 없었다. 이전 백신에서도 mRNA 유전자기술이 정말 이용되었다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유전자기술 백신과 인류 사이에는 엄청난 진도가 나가 버렸다.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인체에 주입된 지금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하는 의문이다. 놀라운 건, 주위를 둘러봐도, 인터넷 통해 찾아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맞은 백신을 예방주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맞으라고 하시니 믿고 맞았다. 꽤 아픈 예방주사도 있었다. ‘불 주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백신을 믿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을 믿고 참고 견뎠다. 이후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냥 그런가 했다. 우리에겐 백신은 질병을 예방하는 좋은 의학기술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과 전문가를 믿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유전자기술이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계기가 되었는데, 백신에도 항원-항체형 그리고 유전자기술인 mRNA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병에 저항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백신은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주입된다. 병을 이겨내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단련시켜 주는 용병을 데리고 온 셈이다. 훈련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훈련조교 용병이다. 항원-항체반응 백신은 바이러스 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편이다. 실제 질병 균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우리 몸을 단련시켜 준다. 권투시합 전에 스파링 파트너와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전을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mRNA 백신은 병을 이겨낼 비법이 몸 안에 뿌려지는 거다. 몸 속 세포에서 균에 저항하는 단백질 물질은 특정정보를 받아 DNA 특정 부분에서 생산된다. 병에 저항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가진 DNA가 있어도 특수한 정보를 받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특정 정보를 mRNA가 DNA로 운반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특징은 외부 돌기인데 돌기에 저항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mRNA 백신이 지니고 있다. 돌기 저항 단백질을 만들어 돌기를 가진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거다. 백신 접종 후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로 들어오면 인간 세포 DNA는 정보를 알아차리고는 mRNA 백신이 알려준 정보대로 저항물질 단백질을 생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mRNA 백신을 통해 저항하는 방식은 우리 몸이 직접 한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출해 내는 상황을 들어 생각해 보자. 항원-항체 백신 경우는, 동굴에 갇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불빛이라도 비춰져서 출구를 찾도록 돕는다. 출구 쪽에 보이는 작은 불빛만 있을 뿐, 벽을 더듬고 동굴 바닥의 돌 뿌리와 웅덩이를 피해 온 몸의 감각을 활용해서 출구 쪽으로 한 걸음씩 직접 나와야 한다.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어쨌든 탈출한 거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과거 극복했었던 사실을 몸이 기억한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mRNA백신은 다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길을 더듬을 필요 없이 왼쪽으로 두발, 오른쪽으로 세발.. 이런 식으로 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 동굴을 탈출한 거다. 예전 토플시험 준비할 때 사용했었던, 특정 단어가 포함된 지문은 다 읽지 않고도 답을 찾는 방식처럼 보인다. 단련했다고는 하지만 병에 저항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기보다는 특정 정보에 단순히 반응했을 뿐이다. 이런 신비한 탈출은 과연 내가 한 것인가 싶다.

이번 코로나 백신에 대한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백신 안전성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기술이 아무리 안전하고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만 주고는 사라진 mRNA 유전자 자체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정보를 받고 단백질을 만들어낸 세포와 DNA는 제대로 병에 저항하지 않고도 이겨낸 기억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저항이란 노력 없이 대가를 얻은 세포 속 기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향후 다른 질병이 발생하면 그 땐 또 다른 mRNA백신을 접종하게 되고, 백신접종들이 반복될 것이다. 감각은 무뎌지고 세포 차원에서의 정보 소통이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세포 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맞나? “나는 여전히 나인가?”



삽화=전지우 작가



“RNA기반 유전자기술 광범위 적용될 가능성 높아”

세포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만 있으면 족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백신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 아닌가. 처한 상황을 감각하고 옳고 그름을 나름 판단한 후 반응하고 세포 속 유전자간 소통할 것이다. 이 과정이 느리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직접 명령을 기어이 내리는 유전자 백신은 통제사회를 쏙 빼 닮았다. 통제사회의 대중은 쉬 움직이지 않는데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명령을 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통제사회의 대중처럼 세포 유전자와 분자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정보를 만들어 소통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우리 몸이 그렇듯, 세포, 분자 차원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 걱정은,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도 RNA기반 유전자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으로 탄력을 받은 RNA기반 유전자기술은 여러 질병 치료와 예방은 물론이고 질병이 아닌 건강 분야에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DNA 유전자변형과 조작에는 부정적인 시민, 전문가집단 들도 RNA 기술이라고 하면 코로나 백신을 통해 검증되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중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RNA유전자 건강지킴이 키트, 기후변화 적응 인류 유전자기술 등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인류 전체를 위한 특수 임무 수행, 화성개발, 극한 직업인들에게 한정된다는 명목으로 유전자기술이 자유롭게 연구되고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되었다.

“국가가 백신 보증, 사망사고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해야”

도덕적, 법적 측면에서의 의구심과 불편함도 있다. 위급한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은 유전자기술 과학자들의 안정성 주장과 임상 실험을 근거로 긴급 승인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백신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전자 기술, 특히 의학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우리는 이번 mRNA백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쟁 없이 받아 들였다. RNA 연구 전문가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다른 방식의 백신보다 추천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지한다. 하지만 백신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국가는 백신-사망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발표한다. 법 테두리 내에서 안정성을 국가가 보증했기에 국민은 믿고 따랐다. 국가가 백신 개발 국가의 정책과 개발기업의 실험결과를 참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또한 정부도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코로나 백신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그걸 보증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을 해야 한다. 그게 법 너머 존재하는 도덕적 옳음 아닌가. 백신 접종을 위해 만든 정책과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 대처 논리가 다르면 곤란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면하려면, 백신-사망의 ‘관련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백신-사망의 인관성 없다는 근거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에 근거했다고 면할 수 있는 책무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위험danger이라도 위험한 것은 위험한 거다. 리스크risk를 감내한 거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과는 다른 개념이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클 때 선택한다는 개념이다. 리스크를 감안하고라도 국민 다수,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해 백신정책을 만들어 시행했다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 게 국가이고 국가의 책무라고 난 믿는다.

국가가 전문가 시스템을 활용하여 유전자기술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을 정책으로 정했다면 그건 국가를 맡은 정부의 선택이다. 팬데믹 상황 극복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충분히 이해된다. 전문 지식에 기반한 질병관리 시스템에 국민 대중을 관여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대중은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다. 소외되는 것 받아들여야 했다. 대중은 백신 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환경” 영역에 속했다. 대중이 환경을 택한 게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결정한 정책을 받아들인 거다. 시스템을 책임지고 작동한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가 책무는 곧 환경정의인 셈이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 누가 예측할 수 있나”

시계공의 눈을 밝게 해준 작업용 확대경은 유전자조작 과학기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는데 코로나백신이 대표적이다. 이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향후 질병치료, 예방뿐만 아니라 인간행복을 설계하는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금까진 눈먼 시계공 혼돈의 세상을 살아 왔다면 지금부턴 눈 밝은 시계공이 포장한 꽃길을 인류가 걸을 수 있다 할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은 거칠 것 없는 질주를 할 것이다. 대중인식이 바뀌면 국가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신 승인과 접종은 임상수준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인류 구원기술로 인정되어 향후 막아서는 어떤 논리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 눈먼 시계공의 저자도 유전자 백신이 갖는 “눈 밝음”에 경고를 하지 않는 듯하여 개인적으로 당혹스럽다. 설사 유전자 백신이 철저하게 안전하다고 전제하더라도 달라진 건 없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짚고 넘어가야할 과정이 생략되면 누군가는 소외되고 때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이 아무리 중대하다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해서 미래세대의 운명과 직결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게다. 이는 미래세대의 시간과 공간을 미리 당겨 써버린 기후변화 재앙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눈 밝은 시계공은 작업용 확대경을 끼고 일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확대경 낀 눈으로 보면 시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업용 확대경은 좁은 세상을 자세하게 보는 건 돕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눈가리개 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작업용 확대경을 가져와야 온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전문가를 동원해도 세상 전부를 볼 순 없다. 지금까지 겨우 지켜 왔던 눈 먼 시계공 과학,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버린 듯하다. 기후변화 재앙의 경우, 인류의 화석연료 원인 또는 기후 주기설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면, 인체 유전자기술 적용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충분한 과학적 논의와 증명 없이 팬데믹 극복을 위해 판단과 결정을 너무 앞당겨 해버린 듯하다.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것”

눈 밝은 시계공은 팬데믹 이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고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과학과 보건산업 전문가 시스템은 강대해 질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들 뒤에는 거대기업과 시스템이 있고 거대국가도 예외 아니다. 미래세대의 건강은 곧 ‘질병 없음’이란 개념이 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켜진다 약속될 것이다. 대중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어떤 결정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철저하게 주변 존재, 즉, 환경이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적용된 시스템이 극도로 좁은 범위에서 작동하고 그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코로나 팬데믹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대중은 시스템 주변 환경으로서만 존재했고, 관련 시스템, 소통에서 배제되었다. 규범과 법규를 잘 지키는 모범 국민, 모범 시민이란 명목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당혹스럽고 암담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 넋 놓고 있으면 사회는 어김없이 굳어진다. 프레임화된다. 프레임은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융통성 없는 잣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 논리 프레임과는 달리 환경으로서의 존재, 대중은 꿈틀한다. 꿈틀해야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돈과 법으로 감각이 무뎌진 사회지배 시스템 구성자들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대중 특유의 감각을 예리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거대기업, 기관들이 시스템 중심으로 밀어 붙이지 못한다. 이후 개발될 인체에 적용하는 유전자기술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mRNA 백신 안전성 검증 사례를 근거로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은 잊지 않아야 하고 또 잊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혼돈이지만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땐 고마웠지만 눈 밝은 시계공 기술은 이제 다시 시계 수리할 때만 써 주세요”.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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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전지우 작가

유전자 식품에 펄쩍뛰던 인류, mRNA 백신은 수용

자산 중 최고는 뭐니 해도 자기 능력 향상이다. 단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되면 자산이 된다. 외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신체에 일부 장착될 수도 있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다리가 불편하면 지팡이를 심하면 휠체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학기술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신체 일부를 로봇 팔과 다리, 인공 척추 등으로 보완 또는 교체해서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공상과학 SF영화와 소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로봇인간 사이보그 출현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런데 신체가 향상되기 위해 추가 장착한 것인지 자신이 단련한 결과인지 모호한 게 있는데 유전자 관련 기술이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가질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 이미 증명되었고 실현가능해 졌다. 유전자 과학기술은 식량, 약품, 백신뿐만 아니라 인간 신체 장기 이식 분야에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진단을 통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미리 치료하기도 한다. 코로나를 통해 mRNA 백신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유전자 관련 식품에도 펄쩍 뛰었던 우린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신체에 직접 적용되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이오 유전자 과학자들은 RNA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인체에 주입되어도 백신 기능을 수행하고는 사라진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니 안정성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백신 반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와 맞은 경우의 코로나감염과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 위험 가능성을 비교하면서 팬데믹의 위중성을 이해해 달라는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과학자가 안전하다니 믿고 정부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하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코로나 백신, 유전자기술 일상 깊숙이 들어온 계기”

유전자 기반 과학기술 결과물이 신체에 그것도 주사를 통해 직접 주입되었다. 코로나 이전 다른 백신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 자세하게 알 기회가 없었다. 이전 백신에서도 mRNA 유전자기술이 정말 이용되었다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유전자기술 백신과 인류 사이에는 엄청난 진도가 나가 버렸다.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인체에 주입된 지금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하는 의문이다. 놀라운 건, 주위를 둘러봐도, 인터넷 통해 찾아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맞은 백신을 예방주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맞으라고 하시니 믿고 맞았다. 꽤 아픈 예방주사도 있었다. ‘불 주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백신을 믿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을 믿고 참고 견뎠다. 이후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냥 그런가 했다. 우리에겐 백신은 질병을 예방하는 좋은 의학기술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과 전문가를 믿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유전자기술이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계기가 되었는데, 백신에도 항원-항체형 그리고 유전자기술인 mRNA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병에 저항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백신은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주입된다. 병을 이겨내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단련시켜 주는 용병을 데리고 온 셈이다. 훈련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훈련조교 용병이다. 항원-항체반응 백신은 바이러스 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편이다. 실제 질병 균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우리 몸을 단련시켜 준다. 권투시합 전에 스파링 파트너와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전을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mRNA 백신은 병을 이겨낼 비법이 몸 안에 뿌려지는 거다. 몸 속 세포에서 균에 저항하는 단백질 물질은 특정정보를 받아 DNA 특정 부분에서 생산된다. 병에 저항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가진 DNA가 있어도 특수한 정보를 받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특정 정보를 mRNA가 DNA로 운반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특징은 외부 돌기인데 돌기에 저항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mRNA 백신이 지니고 있다. 돌기 저항 단백질을 만들어 돌기를 가진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거다. 백신 접종 후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로 들어오면 인간 세포 DNA는 정보를 알아차리고는 mRNA 백신이 알려준 정보대로 저항물질 단백질을 생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mRNA 백신을 통해 저항하는 방식은 우리 몸이 직접 한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출해 내는 상황을 들어 생각해 보자. 항원-항체 백신 경우는, 동굴에 갇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불빛이라도 비춰져서 출구를 찾도록 돕는다. 출구 쪽에 보이는 작은 불빛만 있을 뿐, 벽을 더듬고 동굴 바닥의 돌 뿌리와 웅덩이를 피해 온 몸의 감각을 활용해서 출구 쪽으로 한 걸음씩 직접 나와야 한다.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어쨌든 탈출한 거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과거 극복했었던 사실을 몸이 기억한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mRNA백신은 다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길을 더듬을 필요 없이 왼쪽으로 두발, 오른쪽으로 세발.. 이런 식으로 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 동굴을 탈출한 거다. 예전 토플시험 준비할 때 사용했었던, 특정 단어가 포함된 지문은 다 읽지 않고도 답을 찾는 방식처럼 보인다. 단련했다고는 하지만 병에 저항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기보다는 특정 정보에 단순히 반응했을 뿐이다. 이런 신비한 탈출은 과연 내가 한 것인가 싶다.

이번 코로나 백신에 대한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백신 안전성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기술이 아무리 안전하고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만 주고는 사라진 mRNA 유전자 자체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정보를 받고 단백질을 만들어낸 세포와 DNA는 제대로 병에 저항하지 않고도 이겨낸 기억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저항이란 노력 없이 대가를 얻은 세포 속 기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향후 다른 질병이 발생하면 그 땐 또 다른 mRNA백신을 접종하게 되고, 백신접종들이 반복될 것이다. 감각은 무뎌지고 세포 차원에서의 정보 소통이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세포 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맞나? “나는 여전히 나인가?”

삽화=전지우 작가



유전자 식품에 펄쩍뛰던 인류, mRNA 백신은 수용

자산 중 최고는 뭐니 해도 자기 능력 향상이다. 단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되면 자산이 된다. 외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신체에 일부 장착될 수도 있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다리가 불편하면 지팡이를 심하면 휠체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학기술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신체 일부를 로봇 팔과 다리, 인공 척추 등으로 보완 또는 교체해서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공상과학 SF영화와 소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로봇인간 사이보그 출현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런데 신체가 향상되기 위해 추가 장착한 것인지 자신이 단련한 결과인지 모호한 게 있는데 유전자 관련 기술이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가질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 이미 증명되었고 실현가능해 졌다. 유전자 과학기술은 식량, 약품, 백신뿐만 아니라 인간 신체 장기 이식 분야에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진단을 통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미리 치료하기도 한다. 코로나를 통해 mRNA 백신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유전자 관련 식품에도 펄쩍 뛰었던 우린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신체에 직접 적용되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이오 유전자 과학자들은 RNA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인체에 주입되어도 백신 기능을 수행하고는 사라진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니 안정성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백신 반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와 맞은 경우의 코로나감염과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 위험 가능성을 비교하면서 팬데믹의 위중성을 이해해 달라는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과학자가 안전하다니 믿고 정부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하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코로나 백신, 유전자기술 일상 깊숙이 들어온 계기”

유전자 기반 과학기술 결과물이 신체에 그것도 주사를 통해 직접 주입되었다. 코로나 이전 다른 백신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 자세하게 알 기회가 없었다. 이전 백신에서도 mRNA 유전자기술이 정말 이용되었다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유전자기술 백신과 인류 사이에는 엄청난 진도가 나가 버렸다.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인체에 주입된 지금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하는 의문이다. 놀라운 건, 주위를 둘러봐도, 인터넷 통해 찾아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맞은 백신을 예방주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맞으라고 하시니 믿고 맞았다. 꽤 아픈 예방주사도 있었다. ‘불 주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백신을 믿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을 믿고 참고 견뎠다. 이후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냥 그런가 했다. 우리에겐 백신은 질병을 예방하는 좋은 의학기술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과 전문가를 믿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유전자기술이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계기가 되었는데, 백신에도 항원-항체형 그리고 유전자기술인 mRNA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병에 저항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백신은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주입된다. 병을 이겨내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단련시켜 주는 용병을 데리고 온 셈이다. 훈련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훈련조교 용병이다. 항원-항체반응 백신은 바이러스 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편이다. 실제 질병 균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우리 몸을 단련시켜 준다. 권투시합 전에 스파링 파트너와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전을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mRNA 백신은 병을 이겨낼 비법이 몸 안에 뿌려지는 거다. 몸 속 세포에서 균에 저항하는 단백질 물질은 특정정보를 받아 DNA 특정 부분에서 생산된다. 병에 저항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가진 DNA가 있어도 특수한 정보를 받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특정 정보를 mRNA가 DNA로 운반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특징은 외부 돌기인데 돌기에 저항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mRNA 백신이 지니고 있다. 돌기 저항 단백질을 만들어 돌기를 가진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거다. 백신 접종 후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로 들어오면 인간 세포 DNA는 정보를 알아차리고는 mRNA 백신이 알려준 정보대로 저항물질 단백질을 생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mRNA 백신을 통해 저항하는 방식은 우리 몸이 직접 한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출해 내는 상황을 들어 생각해 보자. 항원-항체 백신 경우는, 동굴에 갇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불빛이라도 비춰져서 출구를 찾도록 돕는다. 출구 쪽에 보이는 작은 불빛만 있을 뿐, 벽을 더듬고 동굴 바닥의 돌 뿌리와 웅덩이를 피해 온 몸의 감각을 활용해서 출구 쪽으로 한 걸음씩 직접 나와야 한다.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어쨌든 탈출한 거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과거 극복했었던 사실을 몸이 기억한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mRNA백신은 다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길을 더듬을 필요 없이 왼쪽으로 두발, 오른쪽으로 세발.. 이런 식으로 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 동굴을 탈출한 거다. 예전 토플시험 준비할 때 사용했었던, 특정 단어가 포함된 지문은 다 읽지 않고도 답을 찾는 방식처럼 보인다. 단련했다고는 하지만 병에 저항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기보다는 특정 정보에 단순히 반응했을 뿐이다. 이런 신비한 탈출은 과연 내가 한 것인가 싶다.

이번 코로나 백신에 대한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백신 안전성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기술이 아무리 안전하고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만 주고는 사라진 mRNA 유전자 자체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정보를 받고 단백질을 만들어낸 세포와 DNA는 제대로 병에 저항하지 않고도 이겨낸 기억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저항이란 노력 없이 대가를 얻은 세포 속 기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향후 다른 질병이 발생하면 그 땐 또 다른 mRNA백신을 접종하게 되고, 백신접종들이 반복될 것이다. 감각은 무뎌지고 세포 차원에서의 정보 소통이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세포 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맞나? “나는 여전히 나인가?”



삽화=전지우 작가



“RNA기반 유전자기술 광범위 적용될 가능성 높아”

세포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만 있으면 족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백신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 아닌가. 처한 상황을 감각하고 옳고 그름을 나름 판단한 후 반응하고 세포 속 유전자간 소통할 것이다. 이 과정이 느리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직접 명령을 기어이 내리는 유전자 백신은 통제사회를 쏙 빼 닮았다. 통제사회의 대중은 쉬 움직이지 않는데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명령을 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통제사회의 대중처럼 세포 유전자와 분자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정보를 만들어 소통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우리 몸이 그렇듯, 세포, 분자 차원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 걱정은,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도 RNA기반 유전자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으로 탄력을 받은 RNA기반 유전자기술은 여러 질병 치료와 예방은 물론이고 질병이 아닌 건강 분야에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DNA 유전자변형과 조작에는 부정적인 시민, 전문가집단 들도 RNA 기술이라고 하면 코로나 백신을 통해 검증되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중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RNA유전자 건강지킴이 키트, 기후변화 적응 인류 유전자기술 등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인류 전체를 위한 특수 임무 수행, 화성개발, 극한 직업인들에게 한정된다는 명목으로 유전자기술이 자유롭게 연구되고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되었다.

“국가가 백신 보증, 사망사고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해야”

도덕적, 법적 측면에서의 의구심과 불편함도 있다. 위급한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은 유전자기술 과학자들의 안정성 주장과 임상 실험을 근거로 긴급 승인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백신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전자 기술, 특히 의학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우리는 이번 mRNA백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쟁 없이 받아 들였다. RNA 연구 전문가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다른 방식의 백신보다 추천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지한다. 하지만 백신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국가는 백신-사망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발표한다. 법 테두리 내에서 안정성을 국가가 보증했기에 국민은 믿고 따랐다. 국가가 백신 개발 국가의 정책과 개발기업의 실험결과를 참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또한 정부도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코로나 백신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그걸 보증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을 해야 한다. 그게 법 너머 존재하는 도덕적 옳음 아닌가. 백신 접종을 위해 만든 정책과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 대처 논리가 다르면 곤란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면하려면, 백신-사망의 ‘관련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백신-사망의 인관성 없다는 근거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에 근거했다고 면할 수 있는 책무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위험danger이라도 위험한 것은 위험한 거다. 리스크risk를 감내한 거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과는 다른 개념이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클 때 선택한다는 개념이다. 리스크를 감안하고라도 국민 다수,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해 백신정책을 만들어 시행했다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 게 국가이고 국가의 책무라고 난 믿는다.

국가가 전문가 시스템을 활용하여 유전자기술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을 정책으로 정했다면 그건 국가를 맡은 정부의 선택이다. 팬데믹 상황 극복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충분히 이해된다. 전문 지식에 기반한 질병관리 시스템에 국민 대중을 관여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대중은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다. 소외되는 것 받아들여야 했다. 대중은 백신 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환경” 영역에 속했다. 대중이 환경을 택한 게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결정한 정책을 받아들인 거다. 시스템을 책임지고 작동한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가 책무는 곧 환경정의인 셈이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 누가 예측할 수 있나”

시계공의 눈을 밝게 해준 작업용 확대경은 유전자조작 과학기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는데 코로나백신이 대표적이다. 이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향후 질병치료, 예방뿐만 아니라 인간행복을 설계하는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금까진 눈먼 시계공 혼돈의 세상을 살아 왔다면 지금부턴 눈 밝은 시계공이 포장한 꽃길을 인류가 걸을 수 있다 할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은 거칠 것 없는 질주를 할 것이다. 대중인식이 바뀌면 국가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신 승인과 접종은 임상수준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인류 구원기술로 인정되어 향후 막아서는 어떤 논리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 눈먼 시계공의 저자도 유전자 백신이 갖는 “눈 밝음”에 경고를 하지 않는 듯하여 개인적으로 당혹스럽다. 설사 유전자 백신이 철저하게 안전하다고 전제하더라도 달라진 건 없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짚고 넘어가야할 과정이 생략되면 누군가는 소외되고 때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이 아무리 중대하다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해서 미래세대의 운명과 직결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게다. 이는 미래세대의 시간과 공간을 미리 당겨 써버린 기후변화 재앙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눈 밝은 시계공은 작업용 확대경을 끼고 일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확대경 낀 눈으로 보면 시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업용 확대경은 좁은 세상을 자세하게 보는 건 돕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눈가리개 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작업용 확대경을 가져와야 온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전문가를 동원해도 세상 전부를 볼 순 없다. 지금까지 겨우 지켜 왔던 눈 먼 시계공 과학,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버린 듯하다. 기후변화 재앙의 경우, 인류의 화석연료 원인 또는 기후 주기설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면, 인체 유전자기술 적용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충분한 과학적 논의와 증명 없이 팬데믹 극복을 위해 판단과 결정을 너무 앞당겨 해버린 듯하다.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것”

눈 밝은 시계공은 팬데믹 이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고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과학과 보건산업 전문가 시스템은 강대해 질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들 뒤에는 거대기업과 시스템이 있고 거대국가도 예외 아니다. 미래세대의 건강은 곧 ‘질병 없음’이란 개념이 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켜진다 약속될 것이다. 대중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어떤 결정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철저하게 주변 존재, 즉, 환경이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적용된 시스템이 극도로 좁은 범위에서 작동하고 그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코로나 팬데믹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대중은 시스템 주변 환경으로서만 존재했고, 관련 시스템, 소통에서 배제되었다. 규범과 법규를 잘 지키는 모범 국민, 모범 시민이란 명목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당혹스럽고 암담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 넋 놓고 있으면 사회는 어김없이 굳어진다. 프레임화된다. 프레임은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융통성 없는 잣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 논리 프레임과는 달리 환경으로서의 존재, 대중은 꿈틀한다. 꿈틀해야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돈과 법으로 감각이 무뎌진 사회지배 시스템 구성자들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대중 특유의 감각을 예리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거대기업, 기관들이 시스템 중심으로 밀어 붙이지 못한다. 이후 개발될 인체에 적용하는 유전자기술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mRNA 백신 안전성 검증 사례를 근거로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은 잊지 않아야 하고 또 잊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혼돈이지만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땐 고마웠지만 눈 밝은 시계공 기술은 이제 다시 시계 수리할 때만 써 주세요”.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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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전지우 작가

“RNA기반 유전자기술 광범위 적용될 가능성 높아”

세포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만 있으면 족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백신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 아닌가. 처한 상황을 감각하고 옳고 그름을 나름 판단한 후 반응하고 세포 속 유전자간 소통할 것이다. 이 과정이 느리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직접 명령을 기어이 내리는 유전자 백신은 통제사회를 쏙 빼 닮았다. 통제사회의 대중은 쉬 움직이지 않는데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명령을 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통제사회의 대중처럼 세포 유전자와 분자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정보를 만들어 소통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우리 몸이 그렇듯, 세포, 분자 차원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 걱정은,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도 RNA기반 유전자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으로 탄력을 받은 RNA기반 유전자기술은 여러 질병 치료와 예방은 물론이고 질병이 아닌 건강 분야에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DNA 유전자변형과 조작에는 부정적인 시민, 전문가집단 들도 RNA 기술이라고 하면 코로나 백신을 통해 검증되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중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RNA유전자 건강지킴이 키트, 기후변화 적응 인류 유전자기술 등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인류 전체를 위한 특수 임무 수행, 화성개발, 극한 직업인들에게 한정된다는 명목으로 유전자기술이 자유롭게 연구되고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되었다.

“국가가 백신 보증, 사망사고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해야”

도덕적, 법적 측면에서의 의구심과 불편함도 있다. 위급한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은 유전자기술 과학자들의 안정성 주장과 임상 실험을 근거로 긴급 승인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백신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전자 기술, 특히 의학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우리는 이번 mRNA백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쟁 없이 받아 들였다. RNA 연구 전문가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다른 방식의 백신보다 추천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지한다. 하지만 백신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국가는 백신-사망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발표한다. 법 테두리 내에서 안정성을 국가가 보증했기에 국민은 믿고 따랐다. 국가가 백신 개발 국가의 정책과 개발기업의 실험결과를 참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또한 정부도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코로나 백신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그걸 보증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을 해야 한다. 그게 법 너머 존재하는 도덕적 옳음 아닌가. 백신 접종을 위해 만든 정책과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 대처 논리가 다르면 곤란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면하려면, 백신-사망의 ‘관련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백신-사망의 인관성 없다는 근거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에 근거했다고 면할 수 있는 책무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위험danger이라도 위험한 것은 위험한 거다. 리스크risk를 감내한 거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과는 다른 개념이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클 때 선택한다는 개념이다. 리스크를 감안하고라도 국민 다수,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해 백신정책을 만들어 시행했다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 게 국가이고 국가의 책무라고 난 믿는다.

국가가 전문가 시스템을 활용하여 유전자기술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을 정책으로 정했다면 그건 국가를 맡은 정부의 선택이다. 팬데믹 상황 극복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충분히 이해된다. 전문 지식에 기반한 질병관리 시스템에 국민 대중을 관여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대중은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다. 소외되는 것 받아들여야 했다. 대중은 백신 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환경” 영역에 속했다. 대중이 환경을 택한 게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결정한 정책을 받아들인 거다. 시스템을 책임지고 작동한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가 책무는 곧 환경정의인 셈이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 누가 예측할 수 있나”

시계공의 눈을 밝게 해준 작업용 확대경은 유전자조작 과학기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는데 코로나백신이 대표적이다. 이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향후 질병치료, 예방뿐만 아니라 인간행복을 설계하는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금까진 눈먼 시계공 혼돈의 세상을 살아 왔다면 지금부턴 눈 밝은 시계공이 포장한 꽃길을 인류가 걸을 수 있다 할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은 거칠 것 없는 질주를 할 것이다. 대중인식이 바뀌면 국가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신 승인과 접종은 임상수준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인류 구원기술로 인정되어 향후 막아서는 어떤 논리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 눈먼 시계공의 저자도 유전자 백신이 갖는 “눈 밝음”에 경고를 하지 않는 듯하여 개인적으로 당혹스럽다. 설사 유전자 백신이 철저하게 안전하다고 전제하더라도 달라진 건 없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짚고 넘어가야할 과정이 생략되면 누군가는 소외되고 때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이 아무리 중대하다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해서 미래세대의 운명과 직결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게다. 이는 미래세대의 시간과 공간을 미리 당겨 써버린 기후변화 재앙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눈 밝은 시계공은 작업용 확대경을 끼고 일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확대경 낀 눈으로 보면 시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업용 확대경은 좁은 세상을 자세하게 보는 건 돕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눈가리개 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작업용 확대경을 가져와야 온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전문가를 동원해도 세상 전부를 볼 순 없다. 지금까지 겨우 지켜 왔던 눈 먼 시계공 과학,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버린 듯하다. 기후변화 재앙의 경우, 인류의 화석연료 원인 또는 기후 주기설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면, 인체 유전자기술 적용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충분한 과학적 논의와 증명 없이 팬데믹 극복을 위해 판단과 결정을 너무 앞당겨 해버린 듯하다.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것”

눈 밝은 시계공은 팬데믹 이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고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과학과 보건산업 전문가 시스템은 강대해 질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들 뒤에는 거대기업과 시스템이 있고 거대국가도 예외 아니다. 미래세대의 건강은 곧 ‘질병 없음’이란 개념이 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켜진다 약속될 것이다. 대중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어떤 결정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철저하게 주변 존재, 즉, 환경이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적용된 시스템이 극도로 좁은 범위에서 작동하고 그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코로나 팬데믹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대중은 시스템 주변 환경으로서만 존재했고, 관련 시스템, 소통에서 배제되었다. 규범과 법규를 잘 지키는 모범 국민, 모범 시민이란 명목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당혹스럽고 암담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 넋 놓고 있으면 사회는 어김없이 굳어진다. 프레임화된다. 프레임은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융통성 없는 잣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 논리 프레임과는 달리 환경으로서의 존재, 대중은 꿈틀한다. 꿈틀해야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돈과 법으로 감각이 무뎌진 사회지배 시스템 구성자들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대중 특유의 감각을 예리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거대기업, 기관들이 시스템 중심으로 밀어 붙이지 못한다. 이후 개발될 인체에 적용하는 유전자기술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mRNA 백신 안전성 검증 사례를 근거로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은 잊지 않아야 하고 또 잊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혼돈이지만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땐 고마웠지만 눈 밝은 시계공 기술은 이제 다시 시계 수리할 때만 써 주세요”.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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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전지우 작가



유전자 식품에 펄쩍뛰던 인류, mRNA 백신은 수용

자산 중 최고는 뭐니 해도 자기 능력 향상이다. 단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되면 자산이 된다. 외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신체에 일부 장착될 수도 있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경을 다리가 불편하면 지팡이를 심하면 휠체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의학기술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신체 일부를 로봇 팔과 다리, 인공 척추 등으로 보완 또는 교체해서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공상과학 SF영화와 소설에서만 볼 수 있었던 로봇인간 사이보그 출현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런데 신체가 향상되기 위해 추가 장착한 것인지 자신이 단련한 결과인지 모호한 게 있는데 유전자 관련 기술이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특수한 능력을 가질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많은 부분 이미 증명되었고 실현가능해 졌다. 유전자 과학기술은 식량, 약품, 백신뿐만 아니라 인간 신체 장기 이식 분야에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진단을 통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해 미리 치료하기도 한다. 코로나를 통해 mRNA 백신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유전자 관련 식품에도 펄쩍 뛰었던 우린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신체에 직접 적용되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바이오 유전자 과학자들은 RNA는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인체에 주입되어도 백신 기능을 수행하고는 사라진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니 안정성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백신 반대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와 맞은 경우의 코로나감염과 부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 위험 가능성을 비교하면서 팬데믹의 위중성을 이해해 달라는 정부를 의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과학자가 안전하다니 믿고 정부가 위중한 상황이라고 하니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코로나 백신, 유전자기술 일상 깊숙이 들어온 계기”

유전자 기반 과학기술 결과물이 신체에 그것도 주사를 통해 직접 주입되었다. 코로나 이전 다른 백신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 자세하게 알 기회가 없었다. 이전 백신에서도 mRNA 유전자기술이 정말 이용되었다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유전자기술 백신과 인류 사이에는 엄청난 진도가 나가 버렸다. 유전자기술로 개발된 백신이 인체에 주입된 지금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하는 의문이다. 놀라운 건, 주위를 둘러봐도, 인터넷 통해 찾아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맞은 백신을 예방주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맞으라고 하시니 믿고 맞았다. 꽤 아픈 예방주사도 있었다. ‘불 주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백신을 믿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을 믿고 참고 견뎠다. 이후 백신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그냥 그런가 했다. 우리에겐 백신은 질병을 예방하는 좋은 의학기술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과 전문가를 믿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유전자기술이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계기가 되었는데, 백신에도 항원-항체형 그리고 유전자기술인 mRNA방식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병에 저항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한 백신은 외부로부터 우리 몸에 주입된다. 병을 이겨내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단련시켜 주는 용병을 데리고 온 셈이다. 훈련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훈련조교 용병이다. 항원-항체반응 백신은 바이러스 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편이다. 실제 질병 균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우리 몸을 단련시켜 준다. 권투시합 전에 스파링 파트너와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전을 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mRNA 백신은 병을 이겨낼 비법이 몸 안에 뿌려지는 거다. 몸 속 세포에서 균에 저항하는 단백질 물질은 특정정보를 받아 DNA 특정 부분에서 생산된다. 병에 저항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가진 DNA가 있어도 특수한 정보를 받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특정 정보를 mRNA가 DNA로 운반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특징은 외부 돌기인데 돌기에 저항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mRNA 백신이 지니고 있다. 돌기 저항 단백질을 만들어 돌기를 가진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거다. 백신 접종 후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로 들어오면 인간 세포 DNA는 정보를 알아차리고는 mRNA 백신이 알려준 정보대로 저항물질 단백질을 생산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mRNA 백신을 통해 저항하는 방식은 우리 몸이 직접 한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불빛 하나 없는 동굴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출해 내는 상황을 들어 생각해 보자. 항원-항체 백신 경우는, 동굴에 갇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불빛이라도 비춰져서 출구를 찾도록 돕는다. 출구 쪽에 보이는 작은 불빛만 있을 뿐, 벽을 더듬고 동굴 바닥의 돌 뿌리와 웅덩이를 피해 온 몸의 감각을 활용해서 출구 쪽으로 한 걸음씩 직접 나와야 한다.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어쨌든 탈출한 거다. 이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과거 극복했었던 사실을 몸이 기억한다.

“나는 여전히 나인가?”

mRNA백신은 다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길을 더듬을 필요 없이 왼쪽으로 두발, 오른쪽으로 세발.. 이런 식으로 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 동굴을 탈출한 거다. 예전 토플시험 준비할 때 사용했었던, 특정 단어가 포함된 지문은 다 읽지 않고도 답을 찾는 방식처럼 보인다. 단련했다고는 하지만 병에 저항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기보다는 특정 정보에 단순히 반응했을 뿐이다. 이런 신비한 탈출은 과연 내가 한 것인가 싶다.

이번 코로나 백신에 대한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백신 안전성 문제가 아니다. 유전자기술이 아무리 안전하고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만 주고는 사라진 mRNA 유전자 자체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정보를 받고 단백질을 만들어낸 세포와 DNA는 제대로 병에 저항하지 않고도 이겨낸 기억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저항이란 노력 없이 대가를 얻은 세포 속 기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향후 다른 질병이 발생하면 그 땐 또 다른 mRNA백신을 접종하게 되고, 백신접종들이 반복될 것이다. 감각은 무뎌지고 세포 차원에서의 정보 소통이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세포 수준이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가 맞나? “나는 여전히 나인가?”



삽화=전지우 작가



“RNA기반 유전자기술 광범위 적용될 가능성 높아”

세포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만 있으면 족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여전히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백신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지만 걱정되는 게 있다.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 아닌가. 처한 상황을 감각하고 옳고 그름을 나름 판단한 후 반응하고 세포 속 유전자간 소통할 것이다. 이 과정이 느리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직접 명령을 기어이 내리는 유전자 백신은 통제사회를 쏙 빼 닮았다. 통제사회의 대중은 쉬 움직이지 않는데 명령에만 따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명령을 정보와 함께 지속적으로 받다보면, 통제사회의 대중처럼 세포 유전자와 분자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정보를 만들어 소통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우리 몸이 그렇듯, 세포, 분자 차원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두 번째 걱정은,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어도 RNA기반 유전자기술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으로 탄력을 받은 RNA기반 유전자기술은 여러 질병 치료와 예방은 물론이고 질병이 아닌 건강 분야에 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DNA 유전자변형과 조작에는 부정적인 시민, 전문가집단 들도 RNA 기술이라고 하면 코로나 백신을 통해 검증되었기에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중인식이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RNA유전자 건강지킴이 키트, 기후변화 적응 인류 유전자기술 등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인류 전체를 위한 특수 임무 수행, 화성개발, 극한 직업인들에게 한정된다는 명목으로 유전자기술이 자유롭게 연구되고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되었다.

“국가가 백신 보증, 사망사고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해야”

도덕적, 법적 측면에서의 의구심과 불편함도 있다. 위급한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은 유전자기술 과학자들의 안정성 주장과 임상 실험을 근거로 긴급 승인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백신정책을 시행하였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전자 기술, 특히 의학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던 우리는 이번 mRNA백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논쟁 없이 받아 들였다. RNA 연구 전문가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다른 방식의 백신보다 추천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지지한다. 하지만 백신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국가는 백신-사망 인과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발표한다. 법 테두리 내에서 안정성을 국가가 보증했기에 국민은 믿고 따랐다. 국가가 백신 개발 국가의 정책과 개발기업의 실험결과를 참고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또한 정부도 최선을 다해 국민을 위해 코로나 백신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그걸 보증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조건 없이 100% 완전 보상을 해야 한다. 그게 법 너머 존재하는 도덕적 옳음 아닌가. 백신 접종을 위해 만든 정책과 백신 접종 후 사망사고 대처 논리가 다르면 곤란하다.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면하려면, 백신-사망의 ‘관련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 백신-사망의 인관성 없다는 근거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전문가 집단의 주장에 근거했다고 면할 수 있는 책무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위험danger이라도 위험한 것은 위험한 거다. 리스크risk를 감내한 거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과는 다른 개념이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클 때 선택한다는 개념이다. 리스크를 감안하고라도 국민 다수,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해 백신정책을 만들어 시행했다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완전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 게 국가이고 국가의 책무라고 난 믿는다.

국가가 전문가 시스템을 활용하여 유전자기술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을 정책으로 정했다면 그건 국가를 맡은 정부의 선택이다. 팬데믹 상황 극복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충분히 이해된다. 전문 지식에 기반한 질병관리 시스템에 국민 대중을 관여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대중은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다. 소외되는 것 받아들여야 했다. 대중은 백신 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못하는 “환경” 영역에 속했다. 대중이 환경을 택한 게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결정한 정책을 받아들인 거다. 시스템을 책임지고 작동한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가 책무는 곧 환경정의인 셈이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 누가 예측할 수 있나”

시계공의 눈을 밝게 해준 작업용 확대경은 유전자조작 과학기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는데 코로나백신이 대표적이다. 이제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향후 질병치료, 예방뿐만 아니라 인간행복을 설계하는 차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금까진 눈먼 시계공 혼돈의 세상을 살아 왔다면 지금부턴 눈 밝은 시계공이 포장한 꽃길을 인류가 걸을 수 있다 할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스템은 거칠 것 없는 질주를 할 것이다. 대중인식이 바뀌면 국가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것이다. 긴급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신 승인과 접종은 임상수준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인류 구원기술로 인정되어 향후 막아서는 어떤 논리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 눈먼 시계공의 저자도 유전자 백신이 갖는 “눈 밝음”에 경고를 하지 않는 듯하여 개인적으로 당혹스럽다. 설사 유전자 백신이 철저하게 안전하다고 전제하더라도 달라진 건 없다. “눈 먼”에서 “눈 밝음”으로 건너뛴 결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짚고 넘어가야할 과정이 생략되면 누군가는 소외되고 때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았던가. 지금 상황이 아무리 중대하다고, 극복하기 힘들다고 해서 미래세대의 운명과 직결된 판단과 결정을 한 게다. 이는 미래세대의 시간과 공간을 미리 당겨 써버린 기후변화 재앙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 눈 밝은 시계공은 작업용 확대경을 끼고 일하는 전문가일 뿐이다. 확대경 낀 눈으로 보면 시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업용 확대경은 좁은 세상을 자세하게 보는 건 돕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눈가리개 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작업용 확대경을 가져와야 온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전문가를 동원해도 세상 전부를 볼 순 없다. 지금까지 겨우 지켜 왔던 눈 먼 시계공 과학, 최후의 보루가 무너져 버린 듯하다. 기후변화 재앙의 경우, 인류의 화석연료 원인 또는 기후 주기설 논쟁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면, 인체 유전자기술 적용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충분한 과학적 논의와 증명 없이 팬데믹 극복을 위해 판단과 결정을 너무 앞당겨 해버린 듯하다.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것”

눈 밝은 시계공은 팬데믹 이후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고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과학과 보건산업 전문가 시스템은 강대해 질 것이다. 눈 밝은 시계공들 뒤에는 거대기업과 시스템이 있고 거대국가도 예외 아니다. 미래세대의 건강은 곧 ‘질병 없음’이란 개념이 되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지켜진다 약속될 것이다. 대중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어떤 결정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철저하게 주변 존재, 즉, 환경이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적용된 시스템이 극도로 좁은 범위에서 작동하고 그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코로나 팬데믹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대중은 시스템 주변 환경으로서만 존재했고, 관련 시스템, 소통에서 배제되었다. 규범과 법규를 잘 지키는 모범 국민, 모범 시민이란 명목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당혹스럽고 암담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한다. 넋 놓고 있으면 사회는 어김없이 굳어진다. 프레임화된다. 프레임은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융통성 없는 잣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 논리 프레임과는 달리 환경으로서의 존재, 대중은 꿈틀한다. 꿈틀해야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돈과 법으로 감각이 무뎌진 사회지배 시스템 구성자들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대중 특유의 감각을 예리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거대기업, 기관들이 시스템 중심으로 밀어 붙이지 못한다. 이후 개발될 인체에 적용하는 유전자기술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의 mRNA 백신 안전성 검증 사례를 근거로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은 잊지 않아야 하고 또 잊지 않을 것이다. 대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혼돈이지만 눈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땐 고마웠지만 눈 밝은 시계공 기술은 이제 다시 시계 수리할 때만 써 주세요”. 우린 다시 눈먼 시계공으로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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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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