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봉은사 일주문 위치를 아십니까?
1970년 봉은사 일주문 위치를 아십니까?
  • 이혜조
  • 승인 2021.10.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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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소송 쟁점] ① 처분토지가 봉은사 경내지인가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르면 경내지 처분은 무효

1970년 상공부를 통해 한국전력공사에 넘겨진 봉은사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해달라는 소송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봉은사는 지난해 2월 한전을 상대로 서울 삼성동 167번지 79,431.8㎡  일부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권위주의 정부가 여러부처를 동원해 불교계 재산을 침탈한 과정을 밝혀 유사한 사례가 재발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와 책임 있는 피해 회복 방안을 제시해 개발이익을 시민사회에 환원하자는 게 소송의 목적이다.

봉은사 땅이 어떻게 한전 소유가 됐나?

1969년 중앙종회 결의와 종무회의를 거쳐 총무원장이던 월산 스님이 그 다음해 1월 서울시 도시계획과장 윤태진에게 평당 4,200원에 매매계약을 했다. 논란 끝에 그해 6월 26일 임야 전답 95,278평을 처분했다. 봉은사 주지였던 서운 스님을 배제하는 등 파문이 커졌다. 

후임 총무원장 청담 스님은 서운 스님을 봉은사 주지에서 해임하고 자신이 겸직했다. 9월 26일 윤태진에게 매매계약 해지를 통지하고, 하룻만에 청담 스님, 윤태진, 종합청사건설위원장 서영철 3명이 매매계약을 다시 체결했다.10만평을 평당 6,100원으로 팔되, 해지반환금 2억1천만원을 매매대금으로 갈음한다. 문공부는 12월 23일 봉은사 임야 전답 20,683평에 관해 처분 및 전환을 허가했다.

청담 스님은 다음날 "상공부에게 매도할 것"이라는 조건과 달리 서영철이 지정하는 한전 외 9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청담 스님은 다시 1971년 4월 6일 재산처분 신청을 했고, 문공부는 4월 14일 17,342평의 처분을 허가했다.

이후 이 토지들은 공유지분 이전, 환지, 합병 등을 거쳤고, 한전은 2015년 그 일부를 현대차에 팔아넘겼다. 3.3㎡당 4억3879만원이었다. 

1969년 12월 18일 봉은사 토지를 매도키로 한 종무회의 결의록.



금액, 절차, 매매조건 위반 등 많은 문제점을 지닌 계약이었다.

봉은사 쪽 대리인 법무법인 엘케이비파트너스는 "△ 환지 전 토지의  처분행위는, 사찰의 기본재산인 경내지의 처분행위에 해당해 관할청의 허가 여부와 무관하게 무효이고, △ 경내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봉은사 주지의 동의 없는 사찰재산의 처분행위로써 무효이며, △ 제2차 허가의 경우 문화공보부의 조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어, 관할청의 허가가 없는 재산처분 행위 역시 무효에 해당한다"는 것을 소송의 쟁점으로 봤다.

사찰기본재산 처분은 무조건 무효

대법원은 "사찰의 목적 수행 및 존립 자체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재산의 처분은 관할 관청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무효"라고 판시했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다11049)

문제의 토지가 사찰의 기본재산에 해당한다면 문공부 장관의 허가와 상관없이 처분행위는 무효가 된다.

불교재산관리법 제4조에서 정한 경내지가 '사찰의 목적 수행 및 존립 자체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재산'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불교재산관리법 경내지 조항



대법원은 경내지의 의미와 관련 "그 토지가 당해 전통사찰과 지리적·공간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고, 경내지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경작지는 전통사찰의 경계 안의 토지 또는 그 주변의 토지로서 사찰의 불교의식, 승려의 수행 및 생활과 신도의 교화를 위해 필요한 경작지"라고 했다.(대법원 2003. 9. 26. 선고 003다22028 )

또“대웅전으로부터 100여m 떨어져 있고 원래 피고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같은 동(중략) 분할돼 나온 토지"를 경내지로 판단했다.(대
법원 1998. 7. 28. 선고 96다50025 판결 참조)

환지 전 토지는 모두 봉은사와 지리적으로 근접해있고, 봉은사의 운영을 위해 사용돼온 것들로 공간적으로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봉은사 주변 토지는 경작지로 불교의식,스님들의 수행 및 생활 등 필요를 위해 사용돼왔을 뿐만 아니라, 불교재산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예부터 사찰의 존엄 또는 풍치의 보존을 위해 사용돼 온 봉은사 소유의 토지들이다. 

그러므로 전통사찰을 보존하고자 하는 법률과 대법원판례의 태도, 처분 당시 토지의 현황 등에 비추어 환지 전 토지는 모두 봉은사의 경내지이다. 처분행위는  사찰의 기본재산에 관한 처분에 해당해 무효라는 게 봉은사의 주장이다.

경내지를 구분하는 또 다른 가늠자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첫번째 문이다. 승속의 경계이자 경내지의 시작을 의미한다. 매매처분이 이뤄질 당시 봉은사의 일주문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주문 건립 시기는 1886년께로 추정된다. 양평 사나사에 이건될 당시인 불기 2530년(1986) 상량문에 "일백년전 건립한 일주문을 사나사에 세움"라고 적혀 있다. 19세기 조선 궁궐건축양식을 띈 것도 건립시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봉은사 일주문을 19876년 사나사로 이건할 당시 상량문.



이후 1970년대초 경내 범위 축소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뒤 1986년 사나사로 이건됐다. 다시 2011년 오봉산 석굴암 불이문 역할을 하다 작년 봉은사로 환지본처했다. 

사나사로 옮겨지기 전 일주문은 최소 한차례 이상 이동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몇가지 사진자료가 남아 있다.

1952년 고 임인식 사진작가의 '봉은사 일주문'과 1954년 이경모 사진작가의 '서울 봉은사'는 같은 장소에서 앵글이 반대방향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 '봉은사'라고 표기했다. 임인식 선생의 손자인 임준영

1973년, 1983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은 동일한 일주문인데 위치가 현재의 봉은사 입구쪽으로 이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작성된 전국사찰현황 살태조사서에 사천왕문 훨씬 앞쪽에 일주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고 임인식 선생의 '봉은사 일주문', 이경모 작가의 '서울 봉은사', 국가기록원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들





전국사찰현황실태조사서. 봉은사 일주문에 관한 기록물로는 유일하다.



이런 사진과 기록들은 '봉은사에는 일주문이 없었다'는 한전 측의 주장을 탄핵함과 동시에 당시 일주문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백운대가 보였던 일주문, 대명중 근처로 추정

엘케이비파트너스는 "북한산 백운대 쪽을 향해 찍은 임인식 작가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1952년 일주문은 북한산과 봉은사와 같은 축 선상에 있어야 하고, 수도산과 봉은사로부터 최소 800m 이상 떨어져야 북한산 원경을 볼 수 있다."며 "해발고도를 대입하면 일주문 위치는 삼성역 근처 현재의 대명중학교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969년 12월 18일 봉은사 토지를 매도키로 한 종무회의 결의록.

금액, 절차, 매매조건 위반 등 많은 문제점을 지닌 계약이었다.

봉은사 쪽 대리인 법무법인 엘케이비파트너스는 "△ 환지 전 토지의  처분행위는, 사찰의 기본재산인 경내지의 처분행위에 해당해 관할청의 허가 여부와 무관하게 무효이고, △ 경내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봉은사 주지의 동의 없는 사찰재산의 처분행위로써 무효이며, △ 제2차 허가의 경우 문화공보부의 조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어, 관할청의 허가가 없는 재산처분 행위 역시 무효에 해당한다"는 것을 소송의 쟁점으로 봤다.

사찰기본재산 처분은 무조건 무효

대법원은 "사찰의 목적 수행 및 존립 자체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재산의 처분은 관할 관청의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무효"라고 판시했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다11049)

문제의 토지가 사찰의 기본재산에 해당한다면 문공부 장관의 허가와 상관없이 처분행위는 무효가 된다.

불교재산관리법 제4조에서 정한 경내지가 '사찰의 목적 수행 및 존립 자체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재산'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불교재산관리법 경내지 조항
불교재산관리법 경내지 조항

대법원은 경내지의 의미와 관련 "그 토지가 당해 전통사찰과 지리적·공간적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고, 경내지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경작지는 전통사찰의 경계 안의 토지 또는 그 주변의 토지로서 사찰의 불교의식, 승려의 수행 및 생활과 신도의 교화를 위해 필요한 경작지"라고 했다.(대법원 2003. 9. 26. 선고 003다22028 )

또“대웅전으로부터 100여m 떨어져 있고 원래 피고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같은 동(중략) 분할돼 나온 토지"를 경내지로 판단했다.(대
법원 1998. 7. 28. 선고 96다50025 판결 참조)

환지 전 토지는 모두 봉은사와 지리적으로 근접해있고, 봉은사의 운영을 위해 사용돼온 것들로 공간적으로도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봉은사 주변 토지는 경작지로 불교의식,스님들의 수행 및 생활 등 필요를 위해 사용돼왔을 뿐만 아니라, 불교재산관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예부터 사찰의 존엄 또는 풍치의 보존을 위해 사용돼 온 봉은사 소유의 토지들이다. 

그러므로 전통사찰을 보존하고자 하는 법률과 대법원판례의 태도, 처분 당시 토지의 현황 등에 비추어 환지 전 토지는 모두 봉은사의 경내지이다. 처분행위는  사찰의 기본재산에 관한 처분에 해당해 무효라는 게 봉은사의 주장이다.

경내지를 구분하는 또 다른 가늠자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첫번째 문이다. 승속의 경계이자 경내지의 시작을 의미한다. 매매처분이 이뤄질 당시 봉은사의 일주문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주문 건립 시기는 1886년께로 추정된다. 양평 사나사에 이건될 당시인 불기 2530년(1986) 상량문에 "일백년전 건립한 일주문을 사나사에 세움"라고 적혀 있다. 19세기 조선 궁궐건축양식을 띈 것도 건립시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봉은사 일주문을 19876년 사나사로 이건할 당시 상량문.
봉은사 일주문을 19876년 사나사로 이건할 당시 상량문.

이후 1970년대초 경내 범위 축소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뒤 1986년 사나사로 이건됐다. 다시 2011년 오봉산 석굴암 불이문 역할을 하다 작년 봉은사로 환지본처했다. 

사나사로 옮겨지기 전 일주문은 최소 한차례 이상 이동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몇가지 사진자료가 남아 있다.

1952년 고 임인식 사진작가의 '봉은사 일주문'과 1954년 이경모 사진작가의 '서울 봉은사'는 같은 장소에서 앵글이 반대방향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 '봉은사'라고 표기했다. 임인식 선생의 손자인 임준영

1973년, 1983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은 동일한 일주문인데 위치가 현재의 봉은사 입구쪽으로 이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3년 작성된 전국사찰현황 살태조사서에 사천왕문 훨씬 앞쪽에 일주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고 임인식 선생의 '봉은사 일주문', 이경모 작가의 '서울 봉은사', 국가기록원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들
시계방향으로 고 임인식 선생의 '봉은사 일주문', 이경모 작가의 '서울 봉은사', 국가기록원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들
전국사찰현황실태조사서. 봉은사 일주문에 관한 기록물로는 유일하다.
전국사찰현황실태조사서. 봉은사 일주문에 관한 기록물로는 유일하다.

이런 사진과 기록들은 '봉은사에는 일주문이 없었다'는 한전 측의 주장을 탄핵함과 동시에 당시 일주문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백운대가 보였던 일주문, 대명중 근처로 추정

엘케이비파트너스는 "북한산 백운대 쪽을 향해 찍은 임인식 작가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1952년 일주문은 북한산과 봉은사와 같은 축 선상에 있어야 하고, 수도산과 봉은사로부터 최소 800m 이상 떨어져야 북한산 원경을 볼 수 있다."며 "해발고도를 대입하면 일주문 위치는 삼성역 근처 현재의 대명중학교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결심공판 증인으로 나선 흥교 스님은 "1965년부터 광덕 스님을 모시고 봉은사 소임을 맡았다"며 "일주문은 대웅전 근처에는 없었다. 소작료를 받기 위해 봉은사에서 말죽거리쪽으로 1km쯤 가다보면 이 문(임인식의 '봉은사 일주문' 사진)이 있었는데, 나중에 오봉산 석굴암에서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스님은 "당시 말죽거리에도 봉은사 땅이 있었는데, 전체 30만평에 달했다"고도 했다.

따라서 1970년 처분된 환지 전 토지는 봉은사 일주문 안에 있는 경내지에 해당하므로 당시의 처분은 무효이고, 한전으로 등기이전된 것을 말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체적으로 불교계는 기록문화가 빈약하다. 없거나 오류투성이다. 봉은사를 비롯한 불교계 내부 기록에는 봉은사 일주문을 찾지 못했다. 봉은사 홈페이지도 마치 일주문을 대체해 진여문을 둔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소송취지처럼 권위주의 정권의 훼불에 대한 진상규명, 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해 승소하려면 1970년 봉은사 일주문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불자들의 제보가 절실한 대목이다. 선고공판은 12월 24일이다.

* '② 불교재산관리법상 절차적 하자가 명백하다'가 이어집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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