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불기 2565년 신축년 동안거 결제 돌입
내일 불기 2565년 신축년 동안거 결제 돌입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1.11.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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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제 스님 “육근육식 경계 잊고 일념삼매 들어 부동일념하라”

불기2565년 신축년 동안거 결제가 19일(음 10월 15일) 돌입한다. 내년 2월 15일(음 1월 15일) 해제까지 석달 넘게 깨달음을 향한 정진이 전국 선원에서 펼쳐진다.

안거(安居)는 불가의 전통이다.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차년도 정월 보름까지)과 하절기 3개월 (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스님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삼가고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다. 매년 대한불교조계종의 전국 100여 곳의 선원에는 2천여 명의 스님들이 한 겨울 동안 정진한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신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로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진제 스님은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운데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화두의심이 뼈골에 사무치게 의심을 밀고 또 밀고 할 것 같으면 석 달 이내에 모두 다 견성(見性)할 수 있음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라고 설했다.
 

다음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 불기2565년 신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 전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법원 대종사.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向上向下自在用<향상향하자재용>하야사
天上人間無等匹<천상인간무등필>이로다.
향상구와 향하구의 진리를 자재하게 써야사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가 없음이로다.

금일(今日)은 신축년(辛丑年) 동안거(冬安居) 결제일(結制日)입니다.

인생(人生)이 긴 것 같지만 흐르는 시냇물처럼 밤낮으로 쉼 없이 흘러감에 돌이켜 볼 때 그 빠르기가 쏜 화살처럼 신속(迅速)함이라.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오늘 있다가 내일 가는 것이기에 사람의 몸을 받은 금생(今生)에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

금일 결제에 임하는 대중(大衆)들은 산문(山門)을 폐쇄(閉鎖)하고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각오로 화두(話頭)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하고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기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운데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히, 화두의심이 뼈골에 사무치게 의심을 밀고 또 밀고 할 것 같으면 석 달 이내에 모두 다 견성(見性)할 수 있음이라.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철저한 의심이 뼈골에 사무치지 않은 때문에 혼침(昏沈), 번뇌(煩惱), 망상(妄想)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허송세월(虛送歲月)만 하게 됨이라.

이 견성은 부처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선지식(善知識)이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아서 바르게만 지어가면 일념(一念)이 지속(持續)되어 참의심이 시동이 걸리게 된다.

참의심이 한 달이고 일 년이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됨이라. 그러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하를 종횡(縱橫)하게 됨이라.

중국(中國)의 당나라 시대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인 임제(臨濟)선사가 계셨다.

임제 스님은 출가(出家)하여 경율(經律)을 익힌 후에 황벽(黃檗)선사 회상(會上)을 찾아가서, 3년 동안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에 전력(全力)을 다 쏟았다.

그 회상에 수백 명 대중(大衆)이 모여 수행생활을 했지만, 임제 스님과 같이 신심(信心)과 용맹(勇猛)으로 일거일동(一擧一動)에 화두와 씨름하는, 그러한 좋은 기틀을 가진 사람이 둘도 없었을 만큼 빈틈없이 정진(精進)하였다.

당시에 입승(立繩)을 보던 목주(睦州) 스님이 임제 스님을 쭉 지켜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겼다.

하루는 조실(祖室)인 황벽 선사를 찾아가서 말씀드리기를,

"우리 회중(會中)에 장차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될 만한 인물이 있으니 조실 스님께서 자비로 제접(提接)하여 주십시오."

"내가 벌써 알고 있네."

황벽 선사께서는 이미 큰 법기(法器)가 하나 와서 진실하게 공부 해나가고 있는 것을 간파(看破)하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 그 수좌(首座)를 보낼 터이니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

목주 스님은 황벽 선사께 이렇게 청을 드려놓고, 임제 스님을 찾아가서

"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구(參究)하여 왔으니 이제는 조실 스님께 가서 한번 여쭈어 보게" 하니, 임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여쭈어야 합니까?"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緊要)한 뜻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게."

임제 스님은 목주 스님이 시키는 대로 조실(祖室)방에 찾아가 예 삼배(禮三拜)를 올리고서 여쭈었다.

"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 선사께서는 주장자(拄杖子)로 이십방(棒)을 후려 갈기셨다.

임제 스님이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실에서 쉬고 있으니, 목주 스님이 찾아왔다.

"조실스님을 친견(親見)했던가?"

"예,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여쭈었다가 방망이만 흠씬 맞아 전신이 다 부서진 것 같습니다."

"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 번 큰 신심(信心)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 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

이 경책에 힘입어 다음날, 임제 스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조실방에 들어갔다.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이렇게 여쭈니,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이십방(棒)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목주 스님은 간병실에 누워 있는 임제 스님을 찾아와 사정얘기를 듣고 나서 거듭 힘주어 말했다.

"이 법은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아는 선지식을 만나기도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니, 밤새 조리를 잘 하고 다시 용기와 신심을 가다듬어 내일 조실 스님을 찾아가게."

그 다음날도 임제 스님은 조실방에 들어갔다가 역시 종전과 같이 혹독한 방망이만 이십방(棒) 맞고 물러나오게 되었다.

임제 스님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주 스님에게 말했다.

"저는 아마도 이 곳에 인연(因緣)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른 처소(處所)로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는 것은 좋으나 조실 스님께 하직인사나 올리고 가게. 갈 곳을 일러주실 것이네."

임제 스님이 떠날 채비를 다 해놓고서 황벽 선사께 가서,

"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法)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業)이 지중하여 미혹(迷惑)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하고는 하직인사를 올렸다.

"어디로 가려는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그리하여 임제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고안 대우 선사 처소(處所)를 향해 수백 리 길을 걸어가는 동안 걸음걸음이 의심이었다.

무슨 의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났는가 하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번 다 이십방(棒)씩 육십방을 내리셨을까?"

그대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다. 팔만 사천 모공에 온통 그 의심뿐이었던 것이다.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一念)을 지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구하는 한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다.

참학인(參學人)들이 10년, 20년 동안을 참구해도 진리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까닭은,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간절한 한 생각이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육근육식(六根六識)의 경계를 다 잊어버리고 몰록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들어 부동일념(不動一念)이 되면, 일기일경상(一機一境上)에 홀연히 견성대오(見性大悟)하게 된다.

임제 스님이 여러 달을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고안에 당도하여 대우(大愚) 선사를 참예하였다.

"그대가 어디서 오는고?"

"황벽 선사 회상(會上)에서 지내다가 옵니다."

"황벽 선사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던가?"

"제가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세 번이나 여쭈었다가, 세 번 다 몽둥이만 흠씬 맞았습니다. 대체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대우 선사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황벽 선사께서 그대를 위해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가르치셨는데, 그대는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가?"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순간, 웃는 그 소리에 임제 스님은 홀연히 진리의 눈을 떴다. 그토록 의심하던 '황벽 육십 방(棒)'의 낙처(落處)를 알았던 것이다.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구나!"

임제 스님이 불쑥 이렇게 말하자, 대우 선사께서 임제 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다그치셨다.

"이 철없는 오줌싸개야! 네가 무슨 도리를 알았기에, 조금 전에는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니 이제 와서는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 것 아니라고 하느냐?"

그러자 임제 스님이 대우 선사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으니, 대우 선사께서 잡았던 멱살을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니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네."

임제 스님이 다시 황벽 선사께 돌아와, 여러 해 동안 모시면서 탁마(琢磨)하여 대종사(大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선(禪) 문중에서는 납자(衲子)가 종사(宗師)의 기틀을 갖추게 되면, 스승으로부터 법(法)을 부촉(付囑)받고 분가(分家)하여서 다른 곳에 회상을 연다.

이 때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부촉하는 표시로 주장자(拄杖子)나 불자(拂子)를 부치는데, 이 주장자와 불자는 모든 부처님의 살림의 정안(正眼)인 것이다.

하루는 임제 스님이 하직인사를 올리니, 황벽 선사께서 시자(侍者)를 불러 이르셨다.

"주장자와 불자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임제 스님이 즉시 응수(應酬)하기를,

"시자야, 불〔火〕 가져오너라."하였다.

이렇듯 기틀을 쓰는 데 있어서 돌불 보다도 빠르고 번개보다도 빨랐다.

그 후 화북(華北)에 머물면서 후학(後學)을 지도하셨는데, 누구든지 법을 물으려고 문에 들어서면 벽력(霹靂) 같은 "할(喝)"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황벽, 대우, 임제, 세 분 도인을 알겠는가?

[대중이 말이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同坑無異土 (동갱무이토)
千里同風 (천리동풍)
萬里知音 (만리지음)

같은 구덩이에 다른 흙이 없음이나
천 리 밖에서 바람을 같이 하고
만 리 밖에서 소리를 앎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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