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해져 있다. 0과 1이라는 두 숫자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수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즉각적이고 단절적인 신호를 보내오는 디지털시계가 어쩌면 디지털 시대가 구체화된 모습으로 우리 일상에 다가온 첫 사례였는지 모른다. 아마도 1990년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는데, 처음 디지털시계를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고 신기할 뿐만 아니라 그 정확성에서도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2021년 11월 현재는 이제 그런 류의 시계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다. 휴대전화 안에 노트북 기능과 인터넷 검색 기능뿐만 아니라, 정확성에서 비교가 될 수 없는 시계를 함께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그것에 더해 손목에 드물게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smartwatch)는 운전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문자나 카톡 등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새로운 시계로 확인하고 나면 휴대전화에서는 확인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고, 그 기능을 이용하여 광고성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디지털 시대가 이제는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여 더 진화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만나면서 무언가 새로운 삶과 미래가 펼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섞인 담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영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발음대로 써서 내놓은 수많은 신조어들이 여전히 낯설고 거북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에이아이(AI) 정도를 알아듣지 못하면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라는 눈길을 받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나 인터넷 보급망 같은 응용기술 부분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이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가상공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고, 코로나19 상황은 아예 ‘원격대면(遠隔對面)’이라는 새로운 대면의 양상을 일상화시키는 외부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상황에 익숙해지는 속도와 폭이 넓어서 아마도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극복되어도 직접대면만을 고집하던 이전의 일상으로 온전히 복귀하기는 힘들 듯하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일상을 의미하는 ‘위드코로나(with-Corona19)’가 시작된 시점임에도, 내년 1학기 수업과 강의를 전면 대면으로 하자는 의견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온전한 극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면도 있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익숙해짐’인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이제야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맞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일상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기반에 내놓아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관한 답은 그 범위와 심도가 넓고 깊어 누구도 온전한 답을 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디지털 기반 가상 상황과 유사한 관계망 등에 대해 숙고해온 불교의 지혜는 몇 가지 혜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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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자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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