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나는 올해 12월
[기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나는 올해 12월
  • 법응 스님
  • 승인 2021.12.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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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부기관이 특정종교 선교? 대선 앞두고 어수선”
문화체육관광부 캐롤 활성화 캠페인 포스터.
문화체육관광부 캐롤 활성화 캠페인 포스터.

2년 넘게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가 국내에 상륙해서 충격과 더불어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가 코로나19의 변이종인 오미크론에 감염된 목사 부부가 초기 역학조사에서 허위 사실을 진술하고 이로 인해 초기 감염 차단에 실패를 했다고 한다.

11월 29일자 <불교닷컴>의 ‘천진암 역사왜곡한 가톨릭, 이번엔 캐럴 활성화 캠페인?’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나 상기 차원에서 기사를 인용해 본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총연합와 KBS, MBC, SBS 등 지상파 라디오방송사, 그리고 음악 서비스 사업자인 멜론, 바이브, 벅스뮤직, 지니뮤직, 플로와 함께 12월 1일(수)부터 25일(일)까지 캐럴 활성화 캠페인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를 추진한다.”

국가 주요 기관이 특정 종교계와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캠페인은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이 캐럴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연말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고 제안함에 따라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로 나왔다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 생각일지는 모르나 국민적 존경을 받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께서 계셨다면 이러한 의견을 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록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웃과 등지지 마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는 큰 거울과 같다.” “텔레비전과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마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텔레비전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등 언뜻 사소한 것 같으나 우리 사회의 안녕과 삶의 풍요를 위한 지혜롭고 의미 깊은 말씀들이 많다.

이러한 고귀한 성품을 가지셨던 김수한 추기경께서 만약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과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각 종교계 지도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감염병 사태로 야기된 사회⋅경제적인 불안과 지친 국민들을 위해 종교계가 합심하여 공동명의로 무언가를 해보려 하지 않으셨을까 한다.

생계 활동에 곤란을 겪고 있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있고, 몇 번 나가보지도 못한 학교를 졸업하게 생긴 청소년들이 있으며, 학교들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맞벌이 소시민들이 있다. 물가는 뛰어오르고, 소상공인들은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간호, 돌봄, 택배 등 비대면 사회의 하층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은 점점 감당하기 버거운 과로로 내몰리고 있다. 이 와중에 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의 수는 연일 폭증세다. 방역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여야 국민들이 겪는 고통의 일부분이라도 줄일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집단적 감염의 적지 않은 경우가 종교시설이나 종교 활동 중에 일어났다.

각 종교계가 합심한다면 효과적인 방역은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시국에 만약 김 추기경이시라면 정부 당국의 방역정책에 협력하는 방안이든, 국민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든, 하다못해 십시일반 자선을 호소하는 캠페인이든 함께 힘을 모아보자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기분보다는 엄중한 시기임을 고려하여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자고 하셨을 것 같다. 특히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에 기독교계가 끼친 악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음에 대해 성찰부터 요청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해본다.

“캐럴 활성화 캠페인”이라고? 기독교 신앙에 열심이지 않고서야 국민들 중 태반이 무종교인이거나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이 과연 얼마나 일반 대중의 마음에 가 닿을 것인가! 굳이 캠페인이 아니더라도 해마다 12월 25일이 가까워오면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캐럴송을 들을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사회 미디어들 또한 다른 종교의 송가는 들려준 적이 없지만, 현대 한국의 사회적 배경상 서구문화의 근간인 기독교의 캐럴은 온 미디어가 자발적으로 들려준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개신교이건 천주교이건, 기독교계 자체적으로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충분히 의미 있는 캠페인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누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국가의 정부기관을 통해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계 쪽에서야 자신들의 신앙에 기반하여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지만, 그것이 공공기관과 공중파, 음악방송 및 여타 매체들을 끌어들이는 구조의 사회 캠페인으로 확대된다는 것은 결국 이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사회체제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말이 좋고 핑계가 좋아 ‘위로’지, 이참에 팬데믹과 연말을 엮어서 사실상 선교효과를 보겠다는 의중이 읽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행위들이 사회통합에 무슨 도움이 되나?

가뜩이나 대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의 정서와 문화를 주관하는 부서로서 사업을 시행하기 전 국가기관으로서 적극적으로 관여해도 되는 일인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긍정적, 부정적인 면 등을 다양하게 착안하고 국민의 의견도 들은 후 정밀한 분석과 판단을 거쳐서 시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지함이다. 왜들 이러나!

法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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