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17.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
[남북불교교류 비망록:이제, 다시 본다] 17.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1.12.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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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북녘에서 왔수다”

해방정국에서 1948년 4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은 38선을 넘어 북으로 갔다. 그해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개최된 ‘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약칭 남북연석회의)에서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 후 남녘으로 넘어온 북녘 종교계의 거두 3인방들이 있다.

반세기가 지난 54년에 이른 때다. 해방과 분단 이후, 남북이 다르게 형성되어 온 북측 종교와 사회단체의 대표단 116명이 서울을 처음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1945년 8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몽양 여운형의 삼녀 려원구(2009.7.30. 사망)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의 방문은 이례적이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영부인 이희호와 나란히 앉았던 려원구 의장은 민중불교운동연합 초대 의장을 지낸 멱정 여익구와 10촌간으로, 1946년 월북 후 첫 서울 나들이였다.

그 부친인 여운형은 국내의 민족반역자처단협회 홈페이지에 《몽양 여운형 어록》으로 게재된 것과 같이 “조선 독립운동은 조선인의 일시적 감정 폭발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오로지 조선의 항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라는 명언이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일명 독립운동테마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게시될 만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명사로 꼽힌다.

2002년 8.15 남북공동 행사를 위해 분단 이후, 대규모 인원이 넘어온 첫 사례이다. 그해 8월 14일 오전 10시 46분 고려항공 TU154편을 이용,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고 5분 여만에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으나, 남측 당국자와 환영 행사에 대해 협의하면서 오전 11시 15분경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때 북측 대표단의 단장을 맡은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위원장을 비롯한 려원구 통일전선 의장,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세 명이 선도하여 트랩에서 내려 마중 나온 남측 민화협 관계자들과 접견했다.

‘한반도기(旗)’와 자주통일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하나씩 든 북측 대표단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 대표 19명은 공항 귀빈실로 직행했으며, 나머지 97명은 법무부 A심사대를 통해 약식 세관검사를 거치고 귀빈주차장에 대기 중인 대형버스에 올랐다. 김영대 단장과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 등 19명의 북측 대표단은 의전실로 자리를 옮겨서 남측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의 김종수 신부, 통일연대 한상열 목사 등과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나누면서 서울 방문일정을 시작했다.

그 당시 남측 정부의 방침에 따라 8.15 민족통일대회는 대회 장소가 서울 워커힐호텔로 제한되면서 사전에 남북이 협의한 각계 부문별 행사가 취소 또는 무산되었다. 조계사에서의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등 환영과 공동 행사가 취소되었지만, ‘서울 답방’이라는 교류의 계기를 열었던 그 날의 만남과 그해 동안의 교류를 살펴본다.

좌측, 앞줄 두 번째부터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 조선카톨릭협회 장재언 위원장, 조불련 박태화 위원장 등(2002.8.14.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8.15남북공동행사 취재단
좌측, 앞줄 두 번째부터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 조선카톨릭협회 장재언 위원장, 조불련 박태화 위원장 등(2002.8.14.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8.15남북공동행사 취재단

北종교계, 3대 거장 남하하다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를 대표하는 북측 3대 종교계의 수장이 서울에 왔다. 분단 이후, 북측의 3대 종교계 대표가 남하(南下)하여 서울에 온 것은 최초의 종교적 사건이다. 1989년 5월 30일에 결성된 조선종교인협회(현 회장 강지영)를 중심으로 조선그리스도교련맹(1946.11.28. 결성, 이하 조그련)과 조선불교도련맹(1945.12.26. 창립), 조선카톨릭교협회(1988.6.30. 결성)를 비롯하여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1947.2.14. 설립), 조선정교위원회(2002.9.25. 설립)가 북측 종교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북측의 종교계 대표는 2002년 8월 14일~17일까지 서울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에 116명의 대표단과 함께 참가했다. 북측 국가부주석을 역임한 강량욱의 아들인 강영섭 조그련 위원장(2012.1.21. 소천)과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2005.11.11. 입적) 그리고 사무엘 장재언 조카협 위원장 등 3대 종교계 대표가 서울에 왔다. 2001년 북측에서 열린 6.15와 8.15 남북공동 행사에 대한 답방 형식을 빌려 서울에 온 것이다.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은 2002년 8월 14일 저녁 워커힐호텔에서 가진 답방인사 자리에서 “나래, 북에서 내려 왔수다.”라는 멘트로 좌중을 이끌었다. 조카협 위원장과 조선종교인협회 중앙위원회 장재언 위원장은 14일 환영만찬과 16일 환송만찬에서 북측을 대표해 인사말을 했다. 또 북측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던 장재언 위원장은 2000년 12월 북측 이산가족 상봉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에 나온 적이 있지만, 기독교 강영섭 위원장과 불교 박태화 위원장은 서울에 대한 첫 방문이어서 특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남북 대표단 530여 명은 2002년 8월 15일 9시 예정 시간보다 늦게 오전 10시 50분쯤 서울 워커힐호텔 제이드가든에서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과 민족단합대회를 잇달아 열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민족화해협의회, 조선직업총동맹,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종교인협회 등 단체 대표들과 예술인들과 남측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 행사가 열렸다, 김영대 북측 단장은 개막 인사에서 “평양과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 이어 겨레의 마음과 뜻을 합친 통일행사가 오늘 이처럼 서울에서 막을 올리게 된 것은 역사적인 북남 수뇌상봉(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낳은 또 하나의 소중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또 개막식에서 채택한 남북공동 호소문에는 “6.15 공동선언이야말로 민족이 화해하고 단합하여 통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치”라고 강조했다. 오후 일정으로 잡혀있던 사진·미술전 개막식도 북측이 김정일화(花)가 새겨진 자수 작품 등을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후 5시를 넘겨 합의한 내용으로 사진 전시회가 개최됐다.

북측 려원구 통일전선 의장은 전날 부친의 묘소 참배에 이어 남측 친척들과 만나는 한편, 16일 이틀째 대회는 종단, 민화협, 여성 등 부문별 상봉모임과 독도 주제의 공동학술토론회, 북측 대표단의 창덕궁 등 고궁 관광과 북측 예술단의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단독 공연 등으로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 채택한 특별호소문에는 “일본의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군사 대국화를 반대하는 전(全)민족적인 운동을 강력히 벌이자며, 우리 민족에 끼친 일본의 잘못을 심판하고 사죄와 보상을 반드시 받아내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남북 대표단 530여 명과 국내 초청인사 60여 명 등 600여 명은 폐막식과 오후 7시 환송만찬으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이를 끝으로 북측 대표단은 서울의 밤을 보내고, 17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에서 고려민항을 타고 평양으로 귀환했다. 김영대 북측 단장은 귀환 성명에서 “우리를 따뜻이 환대해 준 각계 단체들과 서울시민들, 남녘 동포 여러분에게 사의를 표한다. 우리는 이번 통일대회를 통해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역사도 하나, 이 땅도 하나임을 다시 확인했다. 반목과 질시가 아니라 화해와 신뢰를, 분열이 아니라 단합과 통일을 위해 굳게 손잡고 나가자. 6.15 공동선언을 확고히 고수하고 철저히 이행해 나가자.”고 촉구했다.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 좌측 두 번째부터 박태화 위원장 장재언 위원장, 려원구 의장, 연설대 김영대 위원장(2002.8.15.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8.15남북공동행사 취재단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 좌측 두 번째부터 박태화 위원장 장재언 위원장, 려원구 의장, 연설대 김영대 위원장(2002.8.15.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8.15남북공동행사 취재단
8.15 민족통일대회 종단별 부문 상봉모임(2002.8.16.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자료
8.15 민족통일대회 종단별 부문 상봉모임(2002.8.16. 서울 워커힐호텔)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자료

조계사, 남북합동법회 무산과 그 후

사상 처음 서울에서 열린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 기간인 8월 16일 오후 3시 서울시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될 예정이던 ‘남북불교도 조국통일기원 합동법회’는 무산됐다.

북측인사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라는 당시 언론 기사와 다르게 민화협 등을 앞세운 남측 정부가 ‘(조계사) 합동법회를 열 수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8.15 민족통일대회를 진행한 남측 민화협 등 단체 관계자들이 “애당초 그런 계획은 없었다.”라고 밝힌 당시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총련, 범민련 등 공식행사에서 제외된 통일단체와 극우 보수단체 양측의 불법시위, 집회가 우려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남측 정부에서 미리 정했던 방침이 적용되었을 뿐이다.

종단협과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북측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대표 부의장 등 직함을 가진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관계자들이 이날 합동법회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사전 홍보했었다. 이때 김석오·조용준 종단협 직원들과 전형근 조계종 총무원 과장,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실장 등은 조계사에서 열린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준비 실무를 맡아 동분서주했던 경험도 남아 있다.

결국 조계사에서 개최하기로 한 남북 합동법회는 이 법회를 보고자 신도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남쪽만의 반쪽행사로, 워커힐호텔에서 진행된 8.15 민족통일대회와는 별개로 치러졌다.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이날 조계사 법회는 통일기원 타종과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의 이름으로 ‘북녘 불자에게 드리는 통일 메시지’에 이어 통일기원 발원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서해 직항로를 통한 북측 대표단의 남측 첫 방문 행사로 기대를 모은 8.15 민족통일대회는 8월 16일 부문별 상봉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남북 대표단 530여 명은 이날 오전 9시께부터 1시간 30분 동안 서울 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종단·민화협·통일연대·노동·농민·문예·여성·청년·언론 등 모두 9개 부문별로 상봉 모임을 했다. 불교 단위의 상봉에서는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을 중심으로 정련 민추본 초대본부장, 홍파 종단협 사무총장, 법타 평불협 회장과 명진, 법현, 장용철, 선무외 등이 기념 촬영과 선물을 전달하고, 조계사에서 열리는 법회에 대한 소개와 향후 금강산과 묘향산에서의 합동법회를 박태화 위원장에게 제안하였다.

이날 북측이 상봉 직전 배포한 각 상봉단체 명단에는 대회 시작 전, 북측이 대표단 명단을 보내온 것과 같이 ‘민족화해협의회’ 등으로 바꿔 표기했던 범민련 북측본부와 범청학련 북측본부 등의 직함을 그대로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또 남측 참가자들이 부문별 상봉 모임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북측에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검토해 보겠다.”는 북측의 원론적 답변만이 반복되어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 답방’의 첫 전례(典例)가 된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는 서울에서 남북 양측이 처음으로 가진 8.15 공동행사였다. 또 대규모 민간급 방남단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해의 교류는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민족공동 행사(2002.2.28.~3.1.)를 시작으로, 남측 종답협과 북측 조불련은 묘향산 보현사에서 ‘우리민족끼리 단합과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북남/남북불교도 공동법회’(2002.4.29.)를 열었다. 2002년 6.15 민족통일대축전은 금강산의 외금강호텔 광장에서 열리고, 그다음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 민족공동행사(2002.10.3.), 금강산에서 남북청년학생 통일대회(2002.10.15.), 남북여성 통일대회(2002.10.16.~17.) 등 교류 행사가 성사되었다.

특히 2002년 한 해 동안에는 2002년 5월 함경북도 금호지구 케도(KEDO) 법당 건립지원, 6월 14일 대한불교조계종 민추본의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악기지원과 방북행사(2002.6.28.~7.6.), 민추본의 북녘동포 생활용품지원(2002.9.30.), 개천절 방북단의 묘향산 보현사 합동법회(2002.10.4.)에 이어 중국 베이징 해당화식당에서 황병준 조불련 부위원장 및 한성기 국제부장과 양산 조계종 사회부장 및 지일 사회국장이 배석한 가운데, ‘북한사찰 단청불사 협력사업에 관한 합의서’ 체결(2002.12.22.)은 불교적 교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이로써 남북불교간 교류·협력사업은 첫 시동을 걸었다. 불교가 먼저 남북 종교교류의 시대적 과제를 새롭게 입증해 놓은 것이다. 이 시기의 남북 민간교류는 통일의 당위성을 일깨우고, 그간 금기시했던 종교교류로부터 다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한 해였다.

# 다음 편은 ‘2003년 3·1절 민족대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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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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