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
[기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
  • 법응 스님
  • 승인 2022.01.0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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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응 스님

성리학이 통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 승려는 천대의 대상이었다. 다만 천년 넘게 이어온 저변의 역사로 인해 확 쓸어버리지 못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 중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가 없다고는 단정하지 못한다. 권력자들 중에서 불교에 대한 홀대와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충격적인 발언들이 그 증거다.

조선시대 승려의 도성 출입은 불가했고 연산군은 스님들을 사냥 시 몰이꾼으로, 비구니는 노비로 환속시켰다. 유생들이 스님을 죽여도 처벌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10%정도였던 노비 인구가 조선이 개국한 이후로 15-17세기에 이르러 30-40%에 달했다고 하니 그 처지를 짐작할 만하다.

중국에 사대하고 ‘왜’를 우습게 알았던 조선은 후대로 갈수록 더욱 문호를 닫아걸고 폐쇄적이 되어갔다. 이와 달리 조선이 ‘왜’라고 무시했던 일본은 이미 1500년대에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소위 조총을 구입하고 이를 재설계해서 생산했다. 마침내 1592년 명나라로 가는 길을 열라고 압박하며 조선을 침공했는데, 가톨릭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십자가 군기와 조총을 앞세워서 진군하며 조선을 도륙했다.

임진왜란 발생 이전에 대마도 군주가 조선에 조총을 받쳤다고 한다. 왜를 왕래한 통신사도 침공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보고하였으나 국왕 선조와 파벌에 몰두해 있던 대신들의 판단은 안이했다.

왜란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637년 2월 24일(인조 15년)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행했으며 무고한 백성과 수많은 아녀자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위정자들은 압록강을 건너서 환국하는 백성은 처단하라고까지 했다. 병자년의 전란으로 인한 결과는 경술국치(1910년) 이전 조선왕조 최대의 굴욕적 사건으로 언급된다.

1873년 대원군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고종은 쇄국과 개방, 열강들의 압박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고 외척과 권신들은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기에 바빴다. 한편, 미국 함대에 의해 강제로 개항해야 했던 일본은 언제든지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 속에서 발 빠르게 대처해 나갔다. 일찍이 네덜란드 등 유럽의 문물을 수입하는 등 교류를 했으며 세계의 정보를 입수해서 정책에 반영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던 조선은 개혁을 외치는 선각자들을 외세를 끌어들여서 죽이거나 진압했으며 언로를 막음으로써 근대화를 지체시키고 실기하는 우를 범했다. ‘대한제국’의 주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고종의 처신은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는다.

고종은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금액(현시대로 환산하여 250억원)을 수수하고 일본군에게 병영을 내주었다. 고종을 비롯한 대신들에 대한 뇌물로서 이 사실은 「임시 기밀비 지불잔액 반납의 건」(문서번호 : 기밀 제253호 / 1905년 12월 11일 / 발신자 : 임공사林 公使 / 수신자 : 계외무대신桂 外務大臣)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에 들어 있다. 고종은 을사늑약 일주일 전 일본으로부터 또다시 25억원을 수수했으며 경부선 철도지분 등을 보장 받았다 (#고종, 일제뇌물, 기밀비 250억, 25억, 이완용) 매국의 행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시에도 눈 밝은 신하가 있었으니 중추원 의관 안종덕(安鍾悳)이나 특진관 조병세(趙秉世)가 보고한 내용들은 하나같이 법질서가 무너지고 뇌물이 성행하던 당시의 세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 주고 있다.

복잡하고 불필요한 기구가 난립하며 중복해서 돈을 거두어들인다거나 주체성 없이 이 나라 저 나라에 기대는 상황을 지적하는가 하면, 왕이 언로를 차단해서 옳은 말을 듣지 않고 간사한 무리에 싸여 있다며 비판한다. 또한 왕이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성사되는 것이 없다며 하나같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처사라며 한탄한다. 특히 “법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고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가 결국 망할 것인데,”라는 대목은 몇 번 읽게 된다. 결국 대한제국은 망했다.

국가 또는 뿌리 깊은 조직이라도 몰락할 때는 그 책임과 원인은 결국 지도자에게 있었음이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한 목적은 그 잘못된 점을 잘 배워서 다시는 그와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불교적 의미로는 참회다.

2022년 3월 9일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5월 10일에는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6월 1일에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나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볼 때 하나같이 불안하다. 누군가가 직언을 해서 문제가 있다면 제거하고 모자라는 점은 보충해야 할 것인데 수용을 거부하면 무용지물이다.

조계종은 3월에 신임 종정예하가 취임하며, 총무원장은 오는 9월27일로 임기를 마감한다. 세상을 구하는 대비자는 기대를 안 한다 해도 종단과 승가의 위의만이라도 바로세울 행보와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어느 집단이든 지도자는 그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 권력이 독점되고 편법이 성행하며, 언로가 차단되고, 인사권과 공금이 사유화 내지는 유용되며 특히 지도자의 무지와 무능에 탐욕마저 더해지면 그 조직은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조선의 역사가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법응法應
 

#<조선왕조실록>의 안종덕과 조병세의 기록

〇 실록 44권, 고종 41년 7월 15일 양력 2번째 기사, 1904년 대한 광무(光武) 8년 중추원 의관 안종덕(安鍾悳)이 상소를 올렸다. 원문 중 몇 대목만을 그대로 보기로 하자.

“지금 폐하는 청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탐오 행위를 한 오점을 가지고 있고 지방의 백성들은 생계가 거덜났다는 탄식이 많습니다. 뇌물이 성행하여 관청의 법도가 문란해졌으며, 탐학한 자들이 도처에 넘치고 도적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이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바로 폐하께서 청렴에 착실하게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체로 청렴이라는 것은 청백하고 검소한 것이니, 깨끗하여 외람되거나 흐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릇 탁지부(度支部)의 정공(正供)은 모두 폐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별도로 내장원(內藏院)을 설치하고 거두어들이기 잘하는 신하로 하여금 주관하도록 해서 탁지부에 들어가야 할 일체 공전(公田), 사전(私田), 개인 토지, 산과 못, 어장과 염전, 인삼포(人蔘圃), 광산 등속을 떼어내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탁지부의 경비가 바닥나 녹봉과 급료, 공사비로 줄 비용이 없으면 대뜸 내탕전(內帑錢)이라 하여 바꾸어서 충당하게 하고는 뒤따라 나라 빚을 독촉하듯 보상하라고 요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직 제도가 너무나 복잡합니다. 탁지부가 있는 이상 내장원은 둘 필요가 없는 것이며, 군부(軍部)가 있는 이상 원수부(元帥府)는 승격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외부(外部)가 있는 상황에서 예식원(禮式院)은 또 무엇 때문에 설치하며, 경무청(警務廳)이 있는 상황에서 경위원(警衛院)은 또 무엇 때문에 더 둡니까? 법부가 존재하는 만큼 온 나라의 형벌에 관한 정사를 전일적으로 보아야 하겠는데 군법원(軍法院)에 권한을 나눠준 것은 무엇 때문이며, 궁내부(宮內府)가 있어 대궐 안의 정원을 몽땅 관할하는데 비원(祕苑)을 별도로 세운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성부 재판소(漢城府裁判所)가 권한을 독차지한 상황에서는 경윤(京尹)은 필요 없는 관리이고,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이 겸직(兼職)인 이상 법관은 전임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틀어 보건대 한 번은 나누었다가 한 번은 합하고 한 번은 없앴다가 한 번은 두는 것이 모두 법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법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고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가 결국 망할 것인데, 이것은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건대, 삼천 리 강토와 500년 왕업을 가지고 가만히 앉아 독립 자주권을 잃고 있으며, 세력을 믿고 달래며 위협하는 자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습니다. 북쪽 나라에서 오면 북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이권을 경중도 헤아려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동쪽 나라에서 오면 동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주권을 존망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날마다 치욕을 당하지만 감히 막지 못하고 강요가 끊임없건만 감히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는 장차 국내 정사와 대외 실무가 모두 남에게 넘어가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〇 고종실록 45권, 고종 42년 3월 7일 양력 2번째 기사로 1905년 대한 광무(光武) 9년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가 고종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으니 그 일부 내용이다.

“칙임관(勅任官) 이하는 감히 상소를 올릴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대저 잘 다스리기 위한 방도로 말하면 바른말이 올라오는 길을 활짝 열어놓은 후라야 사람의 진면모와 정사의 잘잘못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른말이 올라오는 길을 막아놓고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거울을 뒤집어놓고 모습을 찾는 것에 가깝습니다.”

“지금 강한 이웃 나라가 저렇듯 씹어 삼키려하고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이렇듯 위태로워져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위험이 목전에 닥쳤는데 더없이 훌륭한 덕을 지닌 폐하께서 어찌하여 선뜻 결단을 내려 스스로 개진할 생각을 하지 않으시고 측근자들에게 에워싸여 나라의 계책을 날로 그르치면서 팔짱을 끼고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중략)대저 백성은 나라에 의탁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는 법입니다. 만약 백성은 백성대로, 나라는 나라대로 위와 아래가 서로 갈라진다면 나라가 어떻게 나라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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