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中眞談] 어른의 밝은 지혜가 그립다
[取中眞談] 어른의 밝은 지혜가 그립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1.13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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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못하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발을 돌린 정청래 국회의원.
사과를 못하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발을 돌린 정청래 국회의원.

 

“닭을 자르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割鷄焉用牛刀)”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의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 자유子遊 사이에 오고 간 말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가 무성이란 작은 마을을 다스릴 때 일이다. 자유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마을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그 무렵 공자가 무성을 찾는데, 마을 곳곳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이 말을 들은 자유가 대답했다.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익히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다시 말했다.
“자유의 말이 옳다. 내가 한 말은 농담일 뿐이다.”

공자가 제자의 말에 한 수 접은 것이다.

칼의 크기에 별 관념이 없었다. 연필 깎는 데 부엌칼을 잡지 않는다. 서슬 퍼런 사시미 칼로 사과나 밤을 깎지 않는다. 커터칼로 생선을 자를 수 없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전국승려대회(이하 승려대회)는 검 중의 가장 큰 검이겠다. 한국불교사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승려대회의 큰 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할 때, 하나는 종권 분쟁 과정에서, 승려대회가 열렸다. 대내적으로 승려대회는 종단의 혼란 상황을 수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고 종권 다툼 과정에서 대중의 힘이 드러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승려대회가 대사회적일 때 메시지는 강렬하다. 일제강점기 왜색불교에 저항하던 우리 선조 스님들의 결기, 그 결기가 이어져 왜색불교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 힘겨움에 열린 승려대회는 정화불사의 기폭제였다. 정화불사의 정당성이 부정된 법원 판결에 승려대회로 파도를 넘었고, 대한불교조계종 정통성을 계승하는 데 승려대회가 있었다. 6비구 할복으로 불리는 비구종단의 정통성 확립의 명분이 승려대회로 확립됐다.

1970년대 서울 강남 봉은사 등 사찰재산 매매를 둘러싼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열렸고, 신흥사 사태 수습을 위한 대회(1984년), 1991년 종권 다툼에서 범어문중과 덕숭문중이 각각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승려대회를 열어 대치하기도 했다.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은 승려대회는 1986년 9·7해인사 전국승려대회다. 9·7해인사전국승려대회는 대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했다. 9·7승려대회는 1980년대 ‘사원화운동’ 등 민중불교운동과 전국청년승려육화대회, 민중불교연합, 정토구현전국승가회 활동이 초석이 돼 정치권에 예속된 불교계가 자주화를 선언한 사건이었다. 이 전국승려대회에서는 △불교관계 악법 즉각 철폐 △정부는 실질적인 경승 내규 즉각 제정 △사원의 관광 유원지화 즉각 중지 △(5·3인천 사태로 구속 중인)성연 스님 즉각 석방 △부천경찰서 성고문의 진상 규명 △총무원 및 각 사찰의 기관원 출입 즉각 중지 △현 정부는 교과서 왜곡과 편파성 즉각 중지 △언론의 편파·왜곡보도 즉각 시정 △민족경제 침탈하는 수입 개방 즉각 중지 △10·27법난을 책임지고 해명하라 등을 요구했다.

당시 총무원장 의현 스님(현 동화사 회주)은 불교재산관리법 등 불교 관련 악법 철폐와 10·27법난 해명 등 불교계 자주화를 선언하면서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되지 않거나 구속된(승려대회 후 귀교하던 중앙승가대 학인들이 안암동 로터리에서 교통경찰과 실랑이 벌이다 시위로 격화되고 전경 1개 중대가 파견돼 최루탄을 난사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해 18명의 스님을 구속했다) 스님들이 석방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중앙청 앞에서 분신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호국불교는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는 불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한 불교”라고 선언했다. 1980년대 군부정권 시절, 조계종의 이 같은 선언은 불자들의 자부심이었고, 모든 것이 부족한 현실에도 늘 불교를 위해 많은 불자가 힘과 마음을 모은 동력이었다.

우리 불교의 근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은 또 다른 승려대회는 1994년 4·10전국승려대회이다. 4·10전국승려대회가 이전의 승려대회와 다른 것은 승려와 재가불자들이 견고한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국승려대회가 사부대중 공동체를 지향하는 불교에서 대중공사의 전통을 통해 민주적인 종헌질서를 보호하는 최후의 초종헌적 종헌보장 수단으로 행해졌다. 때문에 조계종은 <종헌> ‘전문’에 ‘전국승려대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

개혁회의가 출범해 종단개혁을 위한 각종 조치의 근거를 전국승려대회에서 찾는다. 조계종 <종헌> 전문은 “교단에 닥친 몇 차례의 법난을 극복하고 종단개혁에 대한 종도의 여망에 부응해 개혁회의가 출범했다. 이에 개혁회의는 종단개혁에 필요한 각종 조치를 취하고 불법이 중생교화의 만대지침이 되며 교단이 수행과 전법의 영겁기단이 되도록 종헌을 개정하였으니…(후략)”라고 정한다. 이를 조계종 중앙종회가 펴낸 《종헌의 이해》는 “국가에서는 전국승려대회와 유사한 초헌법적 헌법조장수단으로서의 저항권의 개념이 있다. 헌법에도 저항권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으나 전국승려대회와 유사한 예를 헌법전문에 담고 있다. 헌법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문구를 삽입해 최고규범성과 재판규범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이를 저항권에 대한 근거 규정으로 해석한다.”(<종헌의 이해> 33쪽)

전국승려대회는 불가 전통의 고유한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승려대회 대중이 직접 의결권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정청래 국회의원의 불교폄하 발언에 조계종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전국 지차제장 격인 교구본사주지 스님들, 그리고 종단 최후의 보루라는 전국선원수좌회까지, 온 종력(宗力)이 한 몸처럼 나선다. 2022년 1·21전국승려대회를 위해서다. 공식 명칭은 ‘종교편향, 불교왜곡 근절과 한국불교 자주권 수호 전국승려대회’지만, 정청래만 보인다. 전국 사찰에 걸린 현수막도 “정청래(국회의원)는 즉각 사퇴하라.”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국민은 이 문구에서 불교 왜곡이나 종교 편향, 불교 폄훼나 불교폄하를 읽어 내지 못한다. 종력을 동원했는데 국민은 전통문화 보전과 수호 등 명분보다 예산과 대선 개입 의도만 읽는다. 신종 오미크론 변이에 수십만 명의 세계인들이 아파하는 데 승려대회를 하느냐며, 국민이 더 우려한다.

정부·여당에선 문제 해결 창구도, 출구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 한 인사의 전언은 “도대체 누구랑 이야기해야 문제를 풀 수 있나”이다. 정부·여당 인사들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정부·여당의 공식대화 창구는 조계종 총무원일 수밖에 없고, 총무원장이 파트너여야 하는데, 실제 영향력은 공식창구 밖에서 발현된다고 느낀다. 문제의 씨앗을 뿌린 정청래 의원은 조계종 총무원 방문이 막히자, 페북으로 사과하고, 강남으로, 해인사로, 은해사로 발 딛는다. 단일 창구가 안 보이니,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대화 창구는 일원화되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으니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한다.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는 11일 신년하례법회에서 팬데믹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인간과 자연이 동일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어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비원(悲願)을 실천함으로써 이웃이 한 가족이 되고 세계가 다정한 지구촌이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주장자를 횡으로 메고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천봉과 만봉 속으로 들어감이라.(橫按拄杖不顧人 卽入千峰萬峰去)”라고 덧붙였다. 차기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는 신년 하례법회에 참석지 않았다.

종정 스님 말씀은 ‘동체대비’와 ‘구도 여정’ 아닐까. 해법을 찾는 데 어른의 지혜 만한 것이 없다. 더욱이 현 종정 스님과 차기 종정 스님이 공존하는 이때, 어른들의 눈 밝은 지혜를 빌어 격의 없는 대화 마당으로 문제 해결의 해법을 찾는다면, 이 어찌 불교적 해법이 아니겠는가. 전·현직 총무원장 등 종도가 종정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으면 결국 세간의 신성 모독 발언이 모독이 아닌 팩트가 될 뿐이니,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 스님의 가르침을 전·현직 총무원장이 봉대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조계종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우월함을 내세우는 약자의 모습이 아닌 자비와 비원을 말하고, 세계일화(世界一花)의 가르침을 전한다. 이 같은 가르침은 약자의 우월함과는 다르다. 약자의 우월함은 열등감으로 받아들여지며,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모습은 열등감의 발로로 치부될 수 있다. 신년하례법회에 참석하지 않은 차기 종정 스님의 모습은, 현직 종정을 배려한 어른다움이다.

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때를 놓치면 불교계가 이익집단으로 오해될까 걱정이다.

혼탁한 시기, 어른 스님들의 밝은 지혜가 그립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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