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27.2006년 민족대축전 교류
[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27.2006년 민족대축전 교류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2.05.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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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파트너십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6돌을 맞은 2006년에는 남북불교계의 수장이 바뀌었다. 남측의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2012.1.2. 열반)은 2005년 10월 31일 제32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북측에는 성보 유영선 제4대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2006년 5월 8일에 선출됐다. 이로써 김법장 조계종 총무원장(2005.9.11.)의 열반과 학림당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2005.11.11.)의 타계로 공석이 된 그 자리가 매워졌다.

새로운 파트너가 형성된 불교 교류에서는 서쪽 루트인 개성 영통사(2005.10.)에 이어서 동쪽 루트인 금강산 신계사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 두 인사가 양측을 대표했다. 유영선 조불련 위원장은 2008년 상반기에 사임하기 전까지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 등 남북교류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2009년 10월 말 퇴임까지 내금강 성지순례단(2007.6.) 대표와 외금강산 신계사 공동복원 낙성(2007.10.)을 비롯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10.) 수행단으로 방북하는 등 남북교류의 가교를 맡았다.

특히 유영선 조불련 위원장은 1991년 10월 말, 미국 LA에서 처음 열린 남북불교도 합동법회에 참가하는 등 박태화 제3대 위원장과 함께 불교 교류를 주도해 온 인사였다. 또 단절됐던 교류의 물꼬를 1995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연 장본인으로 경제 및 교류사업의 베테랑이었다. 반면에,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남측 보수계열의 대표 인사로 분류됐다. 그 당시에 사회주의 경제일꾼의 리더와 가장 보수적인 종교계 대표와의 만남으로 평가될 정도였다. 첫 만남은 2006년 11월 18일~20일 외금강산 신계사 남북공동 낙성식에서 이루어졌다.

성보 유영선 제4대 조불련 위원장과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과의 첫 만남(2006.11.18. 금강산 신계사).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2006년 한 해 동안 남북불교 교류는 그해 2월 6일~11일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북한지역 봄철 못자리용 비닐방막 지원사업과 함께 2005년 상반기부터 북측 조불련이 평양에 건립하던 복지시설 지원을 비롯한 일반 교류사업에 대해 남측 종단과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 등 여러 단체가 회의를 가졌다. 이때 조불련은 ‘조선왕조실록’ 환수에 관한 지지 성명을 처음 발표(2006.2.)하고, 발표문을 남측 조계종 중앙신도회에 직접 전달했다. 또 중앙신도회는 그해 9월 1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불련 불련(佛聯)무역회사가 운영하는 신계사 매점용 소형트럭 1대를 기증했다.

평불협 대표단은 같은 해 2월 25일~28일 평양에 건립한 정성제약 알약공장 준공식에 참관했다. 남북 양측은 그해 3월 1일 개성 성균관 마당에서 ‘북관대첩비’에 대한 인도・인수식을 가졌다. 한편 같은 해 같은 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발족했으며, 그해 9월 14일 경복궁 광화문 마당에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가 연이어 발족했다. 남측대표단은 같은 해 3월 14일~18일까지 동국대학교 건학 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방북하여 묘향산 보현사에서 남북합동 기념법회를 개최했다. 또 남측 윤이상평화재단은 4월 26일 외금강산 온정리 정주영문화체육관에서 남북공동 평화음악회를 열었다. 이후 조불련과 남측 평불협, 민추본은 그해 6월 8일~9일까지 개성에서 실무회의를 가졌다.

이처럼 2006년 상반기에 남북불교 교류는 조불련 지원사업을 비롯한 신계사 복원에 따른 지속사업 등이 추진됐다. 이때 교류의 하이라이트는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2006년 6.15 민족통일대축전이었다. 민관 합동의 최대 규모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을 비롯한 남북교류 사업 등에 대해 살펴본다.



6.15민족통일대축전 남북대표단 축하연회 입장(2006.6.14.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우측 앞줄부터 이종석 통일부 장관,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상임대표 등. 사진=6.15민족통일대축전 공동취재단





6.15공동선언실천 민족통일대회 기념식(2006.6.15. 광주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좌측 두 번째 줄 최지선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등 남북대표단. 사진=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홈페이지



빛고을 6.15 통일대축전

2006년 6월 14일~17일까지 광주광역시・전남지역에서 열린 남북공동 행사는 ‘6.15공동선언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약칭 통일대축전)이다.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고, 6.15민족통일대축전 행사위원회가 주관했다.

나흘 동안 열린 광주 통일대축전에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당국 대표단 13명과 300여 명의 민간대표단, 북측에서는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 등 당국 대표단 20명과 민간대표단 128명이 참석했다. 국외에서도 146명이 참석해 명실상부한 남과 북・재외교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행사를 열었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린 2006년 6.15 통일대축전은 5.18광주 민중항쟁을 기념하고, 북측 대표단이 망월동 묘역에 기념식수를 하겠다는 뜻을 담은 북측 요청에 따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다. 그해 6월 14일 오전 11시쯤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대표단 148명이 광주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무등파크 호텔에 여장을 푼 북측 대표단은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이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민간대표 단장을 맡았다. 민간대표단에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리현숙 전국신도회 부회장이 참가하고, 또 후일 조불련 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수린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이 처음 참가했다. 이때 참가한 종교계 인사들은 조불련을 비롯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오정렬 서기장・김희수 책임부원, 조선천도교 중앙위원회 강철원 위원장・박문철 서기장, 조선카톨릭련맹 중앙위원회 강지영 부위원장・장남철 서기장・리성복 여성위원회 위원장이다.

광주 도착 첫 일정으로, 북측 대표단은 오후 4시 해외대표단과 함께 국립5.18 민주묘역을 처음 참배했다. 장맛비로 분향하지 못한 김영대 단장 등 대표단은 평양에서 직접 준비한 카네이션과 안개꽃 다발을 묘역 상석에 헌화한 뒤 우산을 접은 채 묵념했다. ‘민주의 문’에 마련된 방명록에 김영대 단장은 “5.18용사들의 정신은 6.15시대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것이다.” 안경호 민간대표단 단장은 “5월의 렬사들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서명했다. 또 대표단은 5.18구묘역도 참배하고, 5.18민주묘지에 기념식수를 예정했으나, 굵은 빗줄기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다.

그해 6월 14일 저녁 8시쯤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6.15 통일대축전 개막식은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북과 해외대표단 600여 명과 광주시민 등 3만여 명이 참가해 축전의 열기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북・해외 공동 사회자의 개막선언과 함께 폭죽이 터지고, 손에 손에 한반도기를 든 어린이들과 대형 한반도기를 든 기수단을 선두로 남북 해외대표단이 입장했다. 광주전남 어린이환영단 615명이 ‘환영’이라는 글자를 만든 카드 색션으로 시작해 남측 백낙청 상임대회장의 개막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연설, 북・해외・남측 대표의 개막연설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연설은 통일대축전 개막 전부터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의 무력 통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평화공존하고 교류 협력하다가 서로 이만하면 됐다고 합의될 때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남북한 공동승리의 통일을 이룩해 번영된 통일국가를 이룩해야겠습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 강대국의 2차 대전 종전과 더불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알리지도 않았고,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이 땅을 둘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타의에 의한 분단 60년을 어찌 우리의 영원한 운명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다가 때가 되면 평화적으로 통일합시다.”라며 흡수통일에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북측 김영대 당국대표 단장은 개막연설에서 “민족통일대축전의 뜻깊은 연단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북녘 인민들의 따뜻한 동포애적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자주・민주・통일을 절규하며,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운 광주의 영령들에게 심심한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 대결과 분열 시대에 자주와 통일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던 역사의 땅 광주에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 마당이 펼쳐지고. 우리 민족끼리의 우렁찬 함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게 된 것은 전진하는 6.15 시대의 기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변이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이어 북과 남, 해외, 각계각층이 모인 이 자리에서 민족의 운명 개척에 있어 6.15공동선언의 생활력을 다시 확인하고 발전적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입니다.”라고 화답했다.

6.15통일대축전 개막식은 북측 통일음악단-금강산가극단의 개막 축하공연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통일축전가’와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야’ 등을 부른 북측공연에 이어 해외 측과 남측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이후 남북 해외대표단은 밤 11시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통일대축전 환영연회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연회에서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민간대표단의 명예대표로 위촉돼 “원효대사의 화쟁사상과 화합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이루자.”라는 내용의 명연설을 했다. 이것은 2005년 6월 6.15통일대축전 명예대표로 참석한 고(故) 김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이 평양에서 연설한 이후, 두 번째이다.

이튿날 일정으로, 6월 15일 오전 10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민족통일대회는 남북과 해외대표단 1,000여 명이 함께 했다. 대표연설, 각 계층연설에 이어 공동호소문이 낭독됐다. 오전 11시부터는 광주시립미술관 2층 상설전시장에 조선화의 거장 북측의 인민예술가 ‘정창모 미술전’이 개막했다. 또 이날 오후 3시부터는 무등산 파크호텔 컨벤션홀에서 공동위원장 회의 및 부문상봉 행사가 개최됐고, 오후 7시부터는 축하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이어 밤 10시에는 축하연회를 열었다. 통일대축전 3일과 마지막 일정은 그해 6월 16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체육오락경기 및 폐막식을, 목포 유달산 참관행사와 전남도청과 목포에서 기념 축하공연을 열었다. 환송연회는 그날 오후 9시 30분 신안비치호텔에 열렸다. 그리고 6월 17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소쇄원 참관 행사를 가지고, 오후 4시 광주공항을 통해 북측 대표단이 출국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6.15통일대축전 북측대표단의 국립5.18민주묘역 헌화(2006.6.14. 강수린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사진=오마이뉴스(2006.6.14.)



강수린 위원장의 데뷔 무대

2006년 6월 광주・전남지역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은 그로부터 6년 후, 2012년 11월 18일에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지성당 강수린 위원장의 첫 나들이(Début)였다. 강수린 위원장은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 대표해 그해 6월 14일 오후 북측・해외대표단과 함께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꽃다발을 헌화했다.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의 수행원으로 참가했던 강 위원장은 2004년부터 민족공동행사 등 민간교류 협력분야를 담당했다. 2006년 광주 공동행사에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2007년 11월 29일 김양건 조선로동당 대남담당 비서(통일전선부장)의 서울방문 때에도 수행원으로 방문했다. 그 후 2012년 12월 26일 평양 모란봉 조불련 청사에서 제6대 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한 다음, 2019년 2월 12일~13일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도 참가하는 등 2021년 1월 말 사임하기까지 최고위급 인사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강수린 조불련 위원장이 광주 통일대축전을 통해 종교교류 부문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북측 민간대표단의 일원이던 강 위원장은 종교계 인사로 참가한 것이 아니었기에, 당시 ‘남북종교인 상봉 모임’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 그 후 강수린 위원장은 2013년 5월 8일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홈페이지에 등록된 바와 같이 2015년 9월 말까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국가 기관장을 맡은 최고위직 인사가 불교계 진출로까지 확대된 첫 사례였다.

그 당시 조불련에는 성보 유영선 위원장이 맡았으나, 광주 통일대축전에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리현숙 전국신도회 부회장이 참가했다. 종단과 조계종 중앙신도회에서도 6월 14일 개막 행사에 조불련 대표단과 함께 참여하고, 이튿날 오후 3시부터 무등파크 호텔에서 부문상봉 행사를 가졌다.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종교인 상봉모임’은 남측의 사회로 축하공연, 북측 대표단 입장(그리스도교-불교-천도교-카톨릭 순으로), 기원문 낭독, 대표인사(북측 강지영 KCR 부위원장,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축사에 이어 부문별 상봉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이때 명진・지원・법타 등 조계종 인사들과 무원(천태종)・회성(진각종)・원불교 교무 등이 자리해 교류했다.

2006년 광주에서 열린 6.15통일대축전은 평양・금강산 그리고 서울・인천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처음 열린 남북공동 행사였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통일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 닿아야 하는 것이며, 달려가면 가깝고, 걸어가면 멀며, 주저앉으면 도달할 수 없는 민족대행진의 종착역입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특별연설을 다시 기억해 두자.

# 다음 편은 ‘2006년 개천절 남북공동행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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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 유영선 제4대 조불련 위원장과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과의 첫 만남(2006.11.18. 금강산 신계사). 사진=민추본 홈페이지

2006년 한 해 동안 남북불교 교류는 그해 2월 6일~11일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북한지역 봄철 못자리용 비닐방막 지원사업과 함께 2005년 상반기부터 북측 조불련이 평양에 건립하던 복지시설 지원을 비롯한 일반 교류사업에 대해 남측 종단과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 등 여러 단체가 회의를 가졌다. 이때 조불련은 ‘조선왕조실록’ 환수에 관한 지지 성명을 처음 발표(2006.2.)하고, 발표문을 남측 조계종 중앙신도회에 직접 전달했다. 또 중앙신도회는 그해 9월 1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불련 불련(佛聯)무역회사가 운영하는 신계사 매점용 소형트럭 1대를 기증했다.

평불협 대표단은 같은 해 2월 25일~28일 평양에 건립한 정성제약 알약공장 준공식에 참관했다. 남북 양측은 그해 3월 1일 개성 성균관 마당에서 ‘북관대첩비’에 대한 인도・인수식을 가졌다. 한편 같은 해 같은 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발족했으며, 그해 9월 14일 경복궁 광화문 마당에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가 연이어 발족했다. 남측대표단은 같은 해 3월 14일~18일까지 동국대학교 건학 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방북하여 묘향산 보현사에서 남북합동 기념법회를 개최했다. 또 남측 윤이상평화재단은 4월 26일 외금강산 온정리 정주영문화체육관에서 남북공동 평화음악회를 열었다. 이후 조불련과 남측 평불협, 민추본은 그해 6월 8일~9일까지 개성에서 실무회의를 가졌다.

이처럼 2006년 상반기에 남북불교 교류는 조불련 지원사업을 비롯한 신계사 복원에 따른 지속사업 등이 추진됐다. 이때 교류의 하이라이트는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2006년 6.15 민족통일대축전이었다. 민관 합동의 최대 규모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을 비롯한 남북교류 사업 등에 대해 살펴본다.

6.15민족통일대축전 남북대표단 축하연회 입장(2006.6.14.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우측 앞줄부터 이종석 통일부 장관,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상임대표 등. 사진=6.15민족통일대축전 공동취재단
6.15민족통일대축전 남북대표단 축하연회 입장(2006.6.14.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우측 앞줄부터 이종석 통일부 장관,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상임대표 등. 사진=6.15민족통일대축전 공동취재단
6.15공동선언실천 민족통일대회 기념식(2006.6.15. 광주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좌측 두 번째 줄 최지선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등 남북대표단. 사진=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홈페이지
6.15공동선언실천 민족통일대회 기념식(2006.6.15. 광주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좌측 두 번째 줄 최지선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등 남북대표단. 사진=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홈페이지

빛고을 6.15 통일대축전

2006년 6월 14일~17일까지 광주광역시・전남지역에서 열린 남북공동 행사는 ‘6.15공동선언 6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약칭 통일대축전)이다.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주최하고, 6.15민족통일대축전 행사위원회가 주관했다.

나흘 동안 열린 광주 통일대축전에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당국 대표단 13명과 300여 명의 민간대표단, 북측에서는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 등 당국 대표단 20명과 민간대표단 128명이 참석했다. 국외에서도 146명이 참석해 명실상부한 남과 북・재외교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행사를 열었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린 2006년 6.15 통일대축전은 5.18광주 민중항쟁을 기념하고, 북측 대표단이 망월동 묘역에 기념식수를 하겠다는 뜻을 담은 북측 요청에 따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렸다. 그해 6월 14일 오전 11시쯤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대표단 148명이 광주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무등파크 호텔에 여장을 푼 북측 대표단은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이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민간대표 단장을 맡았다. 민간대표단에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리현숙 전국신도회 부회장이 참가하고, 또 후일 조불련 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강수린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이 처음 참가했다. 이때 참가한 종교계 인사들은 조불련을 비롯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오정렬 서기장・김희수 책임부원, 조선천도교 중앙위원회 강철원 위원장・박문철 서기장, 조선카톨릭련맹 중앙위원회 강지영 부위원장・장남철 서기장・리성복 여성위원회 위원장이다.

광주 도착 첫 일정으로, 북측 대표단은 오후 4시 해외대표단과 함께 국립5.18 민주묘역을 처음 참배했다. 장맛비로 분향하지 못한 김영대 단장 등 대표단은 평양에서 직접 준비한 카네이션과 안개꽃 다발을 묘역 상석에 헌화한 뒤 우산을 접은 채 묵념했다. ‘민주의 문’에 마련된 방명록에 김영대 단장은 “5.18용사들의 정신은 6.15시대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것이다.” 안경호 민간대표단 단장은 “5월의 렬사들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서명했다. 또 대표단은 5.18구묘역도 참배하고, 5.18민주묘지에 기념식수를 예정했으나, 굵은 빗줄기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다.

그해 6월 14일 저녁 8시쯤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6.15 통일대축전 개막식은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북과 해외대표단 600여 명과 광주시민 등 3만여 명이 참가해 축전의 열기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남북・해외 공동 사회자의 개막선언과 함께 폭죽이 터지고, 손에 손에 한반도기를 든 어린이들과 대형 한반도기를 든 기수단을 선두로 남북 해외대표단이 입장했다. 광주전남 어린이환영단 615명이 ‘환영’이라는 글자를 만든 카드 색션으로 시작해 남측 백낙청 상임대회장의 개막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연설, 북・해외・남측 대표의 개막연설로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연설은 통일대축전 개막 전부터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의 무력 통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평화공존하고 교류 협력하다가 서로 이만하면 됐다고 합의될 때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남북한 공동승리의 통일을 이룩해 번영된 통일국가를 이룩해야겠습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 강대국의 2차 대전 종전과 더불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알리지도 않았고,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이 땅을 둘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타의에 의한 분단 60년을 어찌 우리의 영원한 운명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다가 때가 되면 평화적으로 통일합시다.”라며 흡수통일에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북측 김영대 당국대표 단장은 개막연설에서 “민족통일대축전의 뜻깊은 연단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북녘 인민들의 따뜻한 동포애적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자주・민주・통일을 절규하며,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운 광주의 영령들에게 심심한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 대결과 분열 시대에 자주와 통일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던 역사의 땅 광주에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 마당이 펼쳐지고. 우리 민족끼리의 우렁찬 함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게 된 것은 전진하는 6.15 시대의 기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변이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이어 북과 남, 해외, 각계각층이 모인 이 자리에서 민족의 운명 개척에 있어 6.15공동선언의 생활력을 다시 확인하고 발전적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입니다.”라고 화답했다.

6.15통일대축전 개막식은 북측 통일음악단-금강산가극단의 개막 축하공연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통일축전가’와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야’ 등을 부른 북측공연에 이어 해외 측과 남측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이후 남북 해외대표단은 밤 11시쯤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통일대축전 환영연회를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연회에서 이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민간대표단의 명예대표로 위촉돼 “원효대사의 화쟁사상과 화합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이루자.”라는 내용의 명연설을 했다. 이것은 2005년 6월 6.15통일대축전 명예대표로 참석한 고(故) 김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이 평양에서 연설한 이후, 두 번째이다.

이튿날 일정으로, 6월 15일 오전 10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민족통일대회는 남북과 해외대표단 1,000여 명이 함께 했다. 대표연설, 각 계층연설에 이어 공동호소문이 낭독됐다. 오전 11시부터는 광주시립미술관 2층 상설전시장에 조선화의 거장 북측의 인민예술가 ‘정창모 미술전’이 개막했다. 또 이날 오후 3시부터는 무등산 파크호텔 컨벤션홀에서 공동위원장 회의 및 부문상봉 행사가 개최됐고, 오후 7시부터는 축하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이어 밤 10시에는 축하연회를 열었다. 통일대축전 3일과 마지막 일정은 그해 6월 16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체육오락경기 및 폐막식을, 목포 유달산 참관행사와 전남도청과 목포에서 기념 축하공연을 열었다. 환송연회는 그날 오후 9시 30분 신안비치호텔에 열렸다. 그리고 6월 17일에는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소쇄원 참관 행사를 가지고, 오후 4시 광주공항을 통해 북측 대표단이 출국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6.15통일대축전 북측대표단의 국립5.18민주묘역 헌화(2006.6.14. 강수린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사진=오마이뉴스(2006.6.14.)
6.15통일대축전 북측대표단의 국립5.18민주묘역 헌화(2006.6.14. 강수린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사진=오마이뉴스(2006.6.14.)

강수린 위원장의 데뷔 무대

2006년 6월 광주・전남지역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은 그로부터 6년 후, 2012년 11월 18일에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6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지성당 강수린 위원장의 첫 나들이(Début)였다. 강수린 위원장은 북측 해외동포원호위원회를 대표해 그해 6월 14일 오후 북측・해외대표단과 함께 국립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꽃다발을 헌화했다.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의 수행원으로 참가했던 강 위원장은 2004년부터 민족공동행사 등 민간교류 협력분야를 담당했다. 2006년 광주 공동행사에는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2007년 11월 29일 김양건 조선로동당 대남담당 비서(통일전선부장)의 서울방문 때에도 수행원으로 방문했다. 그 후 2012년 12월 26일 평양 모란봉 조불련 청사에서 제6대 위원장으로 공식 취임한 다음, 2019년 2월 12일~13일 금강산에서 열린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도 참가하는 등 2021년 1월 말 사임하기까지 최고위급 인사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강수린 조불련 위원장이 광주 통일대축전을 통해 종교교류 부문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북측 민간대표단의 일원이던 강 위원장은 종교계 인사로 참가한 것이 아니었기에, 당시 ‘남북종교인 상봉 모임’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 그 후 강수린 위원장은 2013년 5월 8일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홈페이지에 등록된 바와 같이 2015년 9월 말까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국가 기관장을 맡은 최고위직 인사가 불교계 진출로까지 확대된 첫 사례였다.

그 당시 조불련에는 성보 유영선 위원장이 맡았으나, 광주 통일대축전에는 정서정 조불련 서기장과 리현숙 전국신도회 부회장이 참가했다. 종단과 조계종 중앙신도회에서도 6월 14일 개막 행사에 조불련 대표단과 함께 참여하고, 이튿날 오후 3시부터 무등파크 호텔에서 부문상봉 행사를 가졌다.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남북종교인 상봉모임’은 남측의 사회로 축하공연, 북측 대표단 입장(그리스도교-불교-천도교-카톨릭 순으로), 기원문 낭독, 대표인사(북측 강지영 KCR 부위원장,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축사에 이어 부문별 상봉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이때 명진・지원・법타 등 조계종 인사들과 무원(천태종)・회성(진각종)・원불교 교무 등이 자리해 교류했다.

2006년 광주에서 열린 6.15통일대축전은 평양・금강산 그리고 서울・인천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처음 열린 남북공동 행사였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통일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 닿아야 하는 것이며, 달려가면 가깝고, 걸어가면 멀며, 주저앉으면 도달할 수 없는 민족대행진의 종착역입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특별연설을 다시 기억해 두자.

# 다음 편은 ‘2006년 개천절 남북공동행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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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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