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 “마음은 마치 화가 같아서 능히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그려낸다.”는 구절이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 재무이사 정덕 스님의 그림을 보면 《화엄경》 사구게의 한 구절이 문뜩 떠오른다. 스님의 그림은 마치 마음으로 그려낸 듯하다.
구순에 접어든 노스님의 작품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하고, 도통한 수행자가 무심히 풀어낸 선화 같기도 하다. 달마 대사는 짚신을 달아맨 지팡이를 어깨에 매고 무심한 듯 걷고 있고, 한 쌍의 청둥오리는 붓꽃 너머 물가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웃통을 벗어재낀 아이들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내달린다. 스님의 작품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버려지는 홍합 껍데기를 모아 예쁜 꽃으로 되살려 내기도 했다.
스님은 젊은 시절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았다. 하지만 불교계와 사회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터라 스님은 그림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 스님이 붓을 잡게 된 것은 팔순을 훌쩍 넘긴 뒤의 일이다.
스님이 다섯 살 때부터 키운 아이가 성인이 돼 생일 선물로 종합 검진을 받게 해드렸는데, 심각한 이상이 발견됐던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다시피 했는데, 부처님 덕인지 마음공부 덕인지 살았다.”는 스님은 방국현 화백이 사다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병마를 이겨냈다.
틈나는대로 그린 그림이 수백 장이 되자 스님은 그중 70여 점을 골라 3년 전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 ‘마음 그림전’을 열었다. 이 때 작품 판매 수입금은 모두 선학원 도제장학금으로 쓰였다.
올해 구순을 맞이하는 정덕 스님이 첫 번째 개인전 이후 틈틈이 그린 수 백장의 그림 중 100여 점을 골라 다시 기념전을 연다. 전시회는 6월 8일부터 14일까지 아리수갤러리에서 열린다. 개막 행사는 8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첫 번째 전시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덕 스님은 이번 전시회 작품 판매 수익금도 선학원 구성원을 위해 노후복지기금으로 모두 내놓을 예정이다.
정덕 스님은 2월 25일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열린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회에 앞서 ‘선학원 노후복지기금’ 1억 원 출연을 약정한 바 있다.
정덕 스님이 약정한 기금은 사회복지법인 선학원복지재단을 통해 창건주, 분원장 등 재단 구성원 스님들이 편안히 수행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요양원을 설립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정덕 스님은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나 전남 강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순반란 사건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병으로 저승을 갔다 오는 등 신기한 일을 겪었다.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한 정덕 스님은 1982년 인과선원을 창건했다. 이후 자비의 전화, 불교 114, 성라실버타운 등을 운영하며 불교사회복지의 기틀을 다졌고, 전국비구니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의 임원과 공동대표로 활동해 왔다.
선학원 구성원을 향한 구순 노스님의 원력행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