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놀라 눈물 흘리며 대지는 탄식하네”
“하늘이 놀라 눈물 흘리며 대지는 탄식하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8.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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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 원로회의장 엄수
“속리 떠난 구름 황정산 머물러 용화세계 가르치다가 천화遷化”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위법망구의 단도 할복으로 불조의 기강을 세우고, 속리(俗離) 나선 구름이 활정산에 머물러 미륵의 대흥을 꿈꾸며,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으로 중생을 이끌다가 천화(遷化)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미룡당 월탄 대종사(彌龍當 月誕 大宗師)가 8일 충북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천화했다. 조계종은 ‘원로회의장(葬)’으로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하고 ‘미룡당’과의 사바 인연을 별리(別離)했다.

월탄 스님은 마지막 주석처인 단양 황정산 미륵대흥사에서 지난 4일 오전 입적했다. 수좌들과 화두참구하는 것으로 일상을 여여(如如)하게 보내던 중 “풀어라 풀어라 너와 나를 풀어라 본래 자리 향기나니 미륵광명 귀를 막네”라는 말을 되뇌고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법랍 68년 세수 87년이다.







8일 황정산 미륵대흥사에는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하늘도 놀라 눈물을 흘릴 듯 먹구름 잔뜩 낀 황정산은 일체 말없이 미룡당의 마지막 길을 내려 봤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월탄 스님의 천화 소식에 하늘이 놀라 눈물을 흘리며 대지는 탄식을 하네. 화상의 평생 수행은 천고(千古)에 뛰어나고 지혜광명 앞에는 일월도 빛을 잃음이라”라고 슬퍼했다.

미륵대흥사는 서기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 율사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한때 건물이 200칸을 넘었고, 금강산 유점사로 옮겨간 오백나한을 모신 사찰로 유명했다. 수행승만 1천여명이 있던 대가람이었다 전하나, 안타깝게도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탄 스님은 2001년부터 이곳의 중창 원력을 세우고 터를 닦고 당우를 세워 과거 수행도량의 면모를 회복했다. 월탄 스님은 사바와 별리하기 전까지 경내 금강선원에서 납자들을 제접했고, 용화세계를 꿈꾸며 재가 대중에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했다.







미륵대흥사 일주문 두 기둥에 걸린 주련이 별리하는 사부대중을 맞았다. ‘하늘과 땅이 나와 한 뿌리요. 만물 또한 나와 한 몸뚱이라(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문하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손꼽혔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자, ‘조론(肇論)’의 저자인 승조(僧肇 384~414)가 남긴 말씀을 새기고 “동체대비를 실천하면 사바세계는 용화세계로 변하리라”는 원력으로 정진했다. 미륵도량 법주사를 떠나 “내가 있는 곳이 용화세계”라던 스님은 이곳, 미륵대원사에서 사부대중과 헤어졌다.



미룡당 월탄대종사 원로회의장에서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는 “화상이 불교정화 시 위태로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단도로 할복한 것은 삿된 마구니를 항복하고 능히 불조의 기강을 세워 후세에 청정승단을 전해주신 것이니 스님의 정화공덕은 만세에 영원토록 멸하지 않음이요 높이 삼계가 뛰어나 사부대중이 우러러 봄이로다”라고 칭송했다.

일제강점기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변기를 보내며 신학문을 익힌 월탄 스님은 출세의 원을 세워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고등고시 공부에 매진하다가 세간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찾아 불나방처럼 사는 것이 무상한 것을 절감하고 번민했다.

스무 살 때 월국 스님의 권유로 금오 대선사의 회상으로 출가했다. 세속에서 출가해 뜻을 펴겠다는 청년이 출세산에서 불법을 공부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수행자로 일대사 인연을 맺었다. 해인총림 해인사 강원에 입학해 수학하던 스님은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청정수행 가풍 회복을 위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사법부의 오판으로 풍전등화에 처한 때 월탄 스님은 성각, 진정, 도명, 도헌, 성우스님 등과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해 불교정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월탄 스님 등 여섯 스님을 ‘정화6비구’라 불렀다. 당시 언론은 할복 사건을 ‘비구승 대법원 청사에 난입’으로 보도했지만, 청정한 승려들이 사찰에서 쫓겨나고 대처 육식하는 일제 잔재인 대처승이 사찰을 장악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청정교단을 수호하기 위해 청담 스님과 숭산 스님이 청년승려들을 모집했고, 월탄 스님은 "당시 대법원장 방에서 ‘우리는 비구승인데 불법에는 대처승이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할복을 단행했다."면서 "“불교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희망자를 모집하여 참여했다”고 회고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서원으로 불교정화의 선봉에 섰던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로 선발돼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산 대사 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어른 스님들과 종단 지도부의 청으로 크고 작은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힘을 보탰다.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를 대독하는 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만약 말세에 난행법(難行法)을 만나면 저 또한 성사를 따라 신명을 아끼지 않겠나이다라는 대각국사 의천 스님의 싯구를 외우시며 위법망구의 마음으로 구법의 모습을 보이셨다”면서 “귓속에 분명한 데 듣는 이는 누구인고, 소리도 냄새도 없으니 끝내 알기 어렵네, 거두어 놓고 펴고 감음에 하는 대로 맡기고 범부나 성인에 늘 있으니 따르소서”라고 설했다.(원로의원 성우 대종사 대독)



추도사를 하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월탄 스님을 ‘시대의 정신과 늘 함께 한’ 분으로 기억하고, 스님의 삶을 “은사이신 금오 태전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발심출가했던 원력 그대로 생의 끝에도 한결같았던 일대종사의 행장”이라며 “삼계화택의 열기 속에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추모한다”고 했다.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은 “소리 없는 마른번개가 치성했던 것은 오늘 이 벽력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냐”면서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대흥사 중창을 서원하고 황량한 폐사지를 대가람으로 일구던 모습이 선한 데, 이제 큰스님을 잃은 황정산의 여러 암벽과 봉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적막에 싸여 있다”고 추념했다.



조사를 하는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정문 스님은 “일주문 뒤편에 새겨진 주련의 말씀은 큰스님의 마지막 서원이자 후학과 불제자들에게 전하는 사자후”라며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용화회상에서 속히 다시 뵙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법주사 조실 월서 대종사.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은 “대종사를 잃은 속리산은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고, 종문(宗門)의 스승을 잃은 후학들은 종천지통(終天之痛)의 슬픔을 이기기 힘들며, 산천초목까지 숨을 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정화불사 선봉에서 호법신장을 마다하지 않고, 종단을 반석(盤石)에 올려 한국불교와 우리 민족의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촌각(寸刻)을 아끼지 않으셨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은 “흐르는 물처럼, 떠도는 흰 구름처럼 일평생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자유를 누리셨으니, 어찌 홍복(弘福)이라 하지 않겠느냐”며 “대종사시여, 호법신장의 무거운 짐 벗고 서방정토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잠시 누리고, 다시 사바예토(娑婆穢土)로 돌아와 중생제도하소서”라고 슬퍼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조사를 대독하는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덕문 스님은 “속리를 나선 구름이 황장산에 걸렸다. 대종사의 적멸 소식에 사방이 칠흑같고 하늘이 구슬퍼 운다”며 “대종사는 조계종단의 기상을 상징하는 참대장부이셨고, 종단 수호를 위해 결연히 단행한 대법원장실 할복사건은 우리 후학들에게 영원한 지남(指南)이 되었고, 순천 선암사 사례와 같이 반복되는 속세의 농단에 결연히 맞서 종단의 기치를 드높인 자랑스런 역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미혹 중생들을 자비광명의 빛으로 인도한 공적은 길이길이 산문에 새겨질 것이며, 스님이 주창한 미륵십선법은 후학들이 정토세상을 현세에 구현하는 수행지침이 될 것”이라며 “미륵대흥사를 복원해 종단으로 회향한 공로 역시 영원히 종무의 역사로 기록되고, 당신의 삶과 가르침은 영원히 멸하지 않고 조계종단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대독)



조사를 하는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일오 스님도 “이제 미진사(未盡事)는 후학들에게 부촉하시고, 고단한 환화공신(幻化空身)을 떨치시고 비로법신(毘盧法身)의 적광신(寂光身)으로 휴헐(休歇)하시고 휴헐하소서”라며 “큰스심의 심원(心願)을 받들어 수행과 교화에 일로만진(一路澫進)하겠다”고 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은 “왜색불교가 범람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을 때 육신을 던져 정화정신과 청정승가를 지켜주셨다"며 "대종사의 미륵 불국토는 저희들에게 던져주신 화두이며 저희들이 지켜갈 가르침이다. 6천 비구니는 마음을 모아 청정승가 출가사문의 가풍을 지켜갈 것을 영전에 삼가 말씀 올린다”고 했다.



조사를 하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대통령 윤석열은 “대종사님은 ‘미륵부처님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오욕에 끄달리지 않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아 무명에 현혹되지 않으면 미륵세계’라고 강조하셨다”며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용화세계’라는 가르침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될 것이며, 대종사님의 뜻을 기리고 대자대비의 정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기를 기원한다”는 조사를 보냈다.(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대독)



대통령 조사를 대독하는 전병극 문화체육부 제1차관.



단양군수 김문근은 “저희에게는 큰스님을 잃은 상실감으로 아픔은 크겠지만, ‘미룡의 큰 가품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위안을 가져 본다”며 “단양의 중생과 동고동락해 주심에 경배드리면서,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라고 애도했다.



조사를 하는 김문근 단양군수.



상좌인 중앙종회 부의장 각림 스님은 영결법요에서 영전에 차를 올렸고, 재가제자인 주호영 국회정각회 명예회장은 향을 올려 애도했다. 원로의원 지명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고,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이 조사로 애도했다. 청주 용화사 합창단이 조가 ‘고운님 잘가소서’로 대종사와 별리했고, 대원·일면·보선·법타·원행·자광·도후·도영·원각·지명 스님 등 원로의원, 밀운(호상)·현해·암도·월서·설정 스님 등 명예원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 중앙종회의장 정문 스님, 호계원장 보광 스님, 교육원장 진우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법주사 주지 정도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군종교구장 선일 스님 등 교구본사주지, 총무부장 삼혜 스님·기획실장 법원 스님·사회부장 원경 스님·문화부장 성공 스님, 사서실장 송하 스님, 불교신문사 주간 오심 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교역직종무원, 혜일(원로회의 사무처장)·원경(불교문화사업단장) 스님 등 중앙종회 의원, 법주사 말사 주지, 선원수좌회 대표, 주호영 국회의원, 엄태영 국회의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성일홍 충북도 경제부지사, 김문근 단양군수, 김영석 포교사단장 등 신도가 꽃을 영단에 올려 대종사를 추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김진태 국회의장이 조화로 애도했다.



영전에 차를 올리는 상좌 각림 스님(중앙종회 부의장)





향을 올리는 재가상좌 주호영 전 국회정각회 회장.



문도대표 성운 스님은 “우리 스님께서는 ‘이뭐꼬’ 화두를 가풍으로 삼아 초지일관 수행정진하시며, 초지일관 촌음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5일간 장례에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남은 상좌와 손상좌들은 스님의 ‘이뭣고’ 가풍을 올곧이 이어받아 애종(愛宗)하고 애법(愛法)할 것을 약속드리며, 수행정진하겠다.”고 했다.



인사하는 문도대표 성운 스님.



영결식 후 대종사의 법구는 원통암 입구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 마련된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인로왕번이 앞장서고 명정, 각종 번, 만장, 위패, 영정, 법구, 문도,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신도가 뒤를 따랐다.







대종사의 법구는 흔한 연꽃잎 하나 없이 나무로 단출히 마련된 다비대에 안치됐다. 문도와 장의위원들이 착화(着火)하자, 참석 대중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라고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먹먹한 하늘 구름이 금방 눈물을 쏟아낼 듯한 다비장에 연기가 흩어지더니 불길이 다비대를 휘감아 하늘로 치솟자 대중들은 다비대를 돌며 “나무아미타불” 염했다.

미룡당 월탄 대종사의 추모일정은 다음과 같다.

초재 8월 10일 오전 10시 단양 미륵대흥사
2재 8월 17일 오전 10시 청주 용화사
3재 8월 24일 오전 10시 청주 혜은사
4재 8월 31일 오전 10시 동국대 정각원
5재 9월 7일 오전 10시 서울 삼천사
6재 9월 14일 오전 10시 청주 용화사
7재 9월 21일 오전 10시 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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