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보우 처벌’은 역사 왜곡…특정종교 설치물 철회하라”
“광화문 ‘보우 처벌’은 역사 왜곡…특정종교 설치물 철회하라”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2.09.14 1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봉은사 “조선 불교사 폄훼·조선 역사 왜곡 유감…오세훈 엄중 책임”
봉은사의 허응당보우대사봉은탑.

“서울시가 최근 재개장한 광화문광장 연표석에는 ‘보우 처벌’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역사물길 연표석에 기재된 잘못된 역사왜곡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특정 종교 설치물을 조속히 철회하라.”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가 14일 입장문을 내 서울시(시장 오세훈)의 조선 불교사 폄훼와 조선의 역사 왜곡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역사물길의 특정종교 설치물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봉은사는 “명종 5년(1550) 문정왕후께서 선교 양종을 부활해 봉은사를 본산으로 지정토록 하고, 보우대사가 문정왕후의 권유를 받아들여 선종 수사찰인 봉은사 주지 및 선종판사를 맡으셨다”며 “이후 보우대사는 온갖 음해와 난관을 겪으면서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켜 합법적인 승려 배출에 힘쓰셨다. 서산 휴정대사와 사명당 유정대사도 이러한 승과를 통해 배출됐고, 훗날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승병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보우대사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봉은사는 보우대사의 삶을 기억하고자 전각 ‘보우당’을 세우고 동상과 탑비를 봉안했다. 매년 창건주 연회국사를 비롯해 중창주 보우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기율사, 영암대종사, 석주대종사 등 스님을 기리는 개산대재를 열고 있다.

봉은사는 “보우대사가 조선불교 중흥조로 일컬어진다”며 “하지만 숭유억불이라는 불교의 암흑기에서 보우대사의 활동이 유생들에게는 눈엣가시였고, 모함과 질시가 끊이질 않았음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했다.

이어 “보우대사는 문정왕후의 서거 이후 온갖 모함을 받게 되고 아무런 죄 없이 제주도로 귀양을 간 뒤 그곳에서 제주 목사 변협에게 타살되는 순교의 길을 걸으셨어야만 했다”며 “사명당 유정대사가 ‘우리 (보우)대사께서는 동방의 외지고 좁은 땅에 태어나 백세 동안 전해지지 못했던 도의 실마리를 열었으며 천고에 홀로 오셨다가 홀로 가신 분’이라고 찬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은사는 “광화문광장 역사물길에 새겨진 ‘문정왕후 사망, 보우 처벌, 윤원형 추방’만 보면 보우대사는 나라를 크게 어지럽힌 요승으로 문정왕후가 ‘사망’한 뒤 윤원형 추방과 함께 합당하게 ‘처벌’당한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며 “가톨릭 김대건 신부는 ‘순교’라고 명기한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 사상과 문화를 주도하며 한국의 역사 발전에 기여했던 불교전통을 되살리려던 보우대사와 문정왕후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봉은사는 “광화문광장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오류를 돌에 깊이 새겼으며, 대한민국 불자들 마음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봉은사는 서울시는 연표석 기록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물길 연표석에 △이광정, 마테오리치 ‘곤여만국전도’ 가져옴(1603) △이승훈, 천주교 선교(1784) △신유박해(1801)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귀츨라프, 한국에 들어옴(1832) △기해박해(1839) 등 조선의 기독교 역사는 일일이 기록하면서 한양 천도를 주창하고 개국에 크게 공헌한 무학대사를 비롯해 임진왜란 당시 남한산성을 축조한 의승군 역할,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서산휴정·사명유정·벽암각성 스님 등 인물들은 역사물길 연표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서상륜, 황해도 장연에 기독교 교회 건립(1884) △명동성당 준공(1898) △YMCA 창설(1903)은 기록했지만 정작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학부인 성균관 한양 이전(1398)을 뺀 것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봉은사는 특히, 을축년(1925년) 대홍수를 연표석에 기록하면서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나청호 스님이 배를 띄워 708명의 인명을 구하고 이들에게 사중의 재물을 모두 풀어 이재민을 구호했던 사실은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봉은사는 “지금도 봉은사에는 그때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진 여러 마을 사람들이 직접 세운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공덕비’와 당시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 등 저명인사들이 이를 기리는 시화를 모아 만든 ‘불괴비첩(不壞碑帖)’이 전해지고 있다”며 “봉은사로서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서울시의 역사 인식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봉은사는 “조선의 국교는 유교였지만 역사 연표석만 보면 조선이 가톨릭 국가인 듯한 착각이 든다”며 “학자들은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의 연표석이 후대의 역사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울시는 역사 연표석에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기록을 다시 새겨야 하며, 조선왕조 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새겨 넣기 전 반드시 국민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봉은사는 역사물길 연표석 문제의 책임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물었다.

봉은사는 “역사물길 연표석은 현 서울시장인 오세훈 시장 때 조성됐고 당시 연표석과 현재 연표석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오세훈 시장 역시 역사물길 연표석 서술에 책임이 있음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이제라도 종교 갈등을 조장하는 가톨릭 편향 시정을 멈춰야 한다”며 “특정 종교를 선양하기 위한 편향된 시정은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종교 및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임을 직시하고 역사왜곡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광화문 광장의 특정 종교 설치물을 조속히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광화문광장 한복판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 방한을 기념하고자 시복터 안내 간판을 세우고 광화문 현판이 보이는 곳에 교황 방한 기념 바닥돌을 새겨 넣었다. 서소문, 광희문을 비롯해 조선의 주요 행정기관인 의금부, 포도청, 형조 등 서울의 대표적인 유적지와 관광지 24곳을 제대로 된 고증이나 발굴 없이 가톨릭 성지로 만들어 안내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