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0. 사랑 고문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0. 사랑 고문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09.2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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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사랑해 줄 수 없는 이는 아파한다

가까이 있어도 만날 수 없고
멀리 있어 부를 수 없는 사랑

잠꾸러기에게 잠을 못 자게 하듯
여행가에게 집에서 쉬라고 하듯
바람이 스치듯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듯

유효 기간이 지난 음식처럼
싸늘하게 식은 사랑은
무덤덤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작가의 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 것도 아픈 것이다. 멀리 있어 볼 수도 만질 수조차 없는 것도 아픈 것이다.

잠꾸러기에게, 여행가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들면 그것이 고문이다. 잠을 못 자도록 불을 켜 놓고 알을 계속 낳게 하는 닭은 얼마나 괴로움 속에서 계속 알을 낳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에 스치는 바람처럼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시간은 빠르게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아니 사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굴레가 아닐까? 애초에 시계가 없다면 우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지 않았을까? 어제 인지 오늘인지도 몰랐을 일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일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그것에 하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 달, 아니 일 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구가 해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일 년이라고 하지만 그 사실도 몰랐을 땐 사실 하루든 한 달이든 고된 나날은 늘 고된 나날이고 힘든 나날은 늘 힘든 나날이었다. 행복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었다.

유효 기간이 다한 음식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흑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씨 간장처럼 오래될수록 진한 진국의 맛을 내는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고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육체적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고문이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할까? 좋아한다고 말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내가 만든 기준으로 집을 준비하고 좋은 직장을 준비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결혼하자고 말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그 사랑은 이미 철새처럼 날아가고 빈자리만 남았듯이 삶은 늘 망설이는 자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성취한다고 했던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아니 말을 해도 그 깊은 속을 모르는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삶은 늘 등산길과도 같아서 갈림길의 연속이다. 처음엔 아주 작은 각도로 벌어지는 갈림길이 나중엔 아주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것은 가정일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늘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새로운 시간을 늘 대면하고 살아간다.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가 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시계가 없어 시간 개념이 없는 사회라면 시간에 쪼들려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 순간도 없을 것이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지고 달도 밤마다 찾아오는데 우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계, 즉 시간 개념에 갇혀서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몇천 년의 역사든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없어도 나의 2세인 나의 자녀들이 잘되어야지 하면서 자신의 피와 살을 바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2세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는 세상의 어머니들은 행복한 고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고문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괴롭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한 일도 있다. 우린 늘 사랑하고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처음 사는 농부의 아들, 누구의 아이, 시골에서 자란 시골 아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시골 청년.

그리고 처음으로 본 바다, 처음으로 타 본 비행기, 처음으로 가 본 외국, 그 외국에서 처음으로 하는 이민 생활을 벌써 28년을 살아오고 있다. 때로는 삶이 고통스럽고 고문 같은 날들이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의무는 늘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수행자로 살아가는 일보다 많은 어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괴로움의 고가 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사실 행복함도 고문일 수 있다. 무아의 경지에 들고 싶은 사람에겐 행복은 유혹이다. 먹는 즐거움, 촉감의 행복, 사랑의 행복 등 세상의 즐거움들은 사실 널렸지만 그만큼 불행도 널렸다. 싸늘하게 식은 사랑처럼 싸늘하게 식은 주검으로 남는 그 날까지 우린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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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사랑해 줄 수 없는 이는 아파한다

가까이 있어도 만날 수 없고
멀리 있어 부를 수 없는 사랑

잠꾸러기에게 잠을 못 자게 하듯
여행가에게 집에서 쉬라고 하듯
바람이 스치듯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듯

유효 기간이 지난 음식처럼
싸늘하게 식은 사랑은
무덤덤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작가의 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 것도 아픈 것이다. 멀리 있어 볼 수도 만질 수조차 없는 것도 아픈 것이다.

잠꾸러기에게, 여행가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들면 그것이 고문이다. 잠을 못 자도록 불을 켜 놓고 알을 계속 낳게 하는 닭은 얼마나 괴로움 속에서 계속 알을 낳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에 스치는 바람처럼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시간은 빠르게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아니 사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굴레가 아닐까? 애초에 시계가 없다면 우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지 않았을까? 어제 인지 오늘인지도 몰랐을 일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일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그것에 하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 달, 아니 일 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구가 해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일 년이라고 하지만 그 사실도 몰랐을 땐 사실 하루든 한 달이든 고된 나날은 늘 고된 나날이고 힘든 나날은 늘 힘든 나날이었다. 행복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었다.

유효 기간이 다한 음식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흑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씨 간장처럼 오래될수록 진한 진국의 맛을 내는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고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육체적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고문이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할까? 좋아한다고 말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내가 만든 기준으로 집을 준비하고 좋은 직장을 준비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결혼하자고 말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그 사랑은 이미 철새처럼 날아가고 빈자리만 남았듯이 삶은 늘 망설이는 자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성취한다고 했던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아니 말을 해도 그 깊은 속을 모르는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삶은 늘 등산길과도 같아서 갈림길의 연속이다. 처음엔 아주 작은 각도로 벌어지는 갈림길이 나중엔 아주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것은 가정일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늘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새로운 시간을 늘 대면하고 살아간다.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가 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시계가 없어 시간 개념이 없는 사회라면 시간에 쪼들려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 순간도 없을 것이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지고 달도 밤마다 찾아오는데 우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계, 즉 시간 개념에 갇혀서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몇천 년의 역사든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없어도 나의 2세인 나의 자녀들이 잘되어야지 하면서 자신의 피와 살을 바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2세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는 세상의 어머니들은 행복한 고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고문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괴롭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한 일도 있다. 우린 늘 사랑하고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처음 사는 농부의 아들, 누구의 아이, 시골에서 자란 시골 아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시골 청년.

그리고 처음으로 본 바다, 처음으로 타 본 비행기, 처음으로 가 본 외국, 그 외국에서 처음으로 하는 이민 생활을 벌써 28년을 살아오고 있다. 때로는 삶이 고통스럽고 고문 같은 날들이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의무는 늘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수행자로 살아가는 일보다 많은 어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괴로움의 고가 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사실 행복함도 고문일 수 있다. 무아의 경지에 들고 싶은 사람에겐 행복은 유혹이다. 먹는 즐거움, 촉감의 행복, 사랑의 행복 등 세상의 즐거움들은 사실 널렸지만 그만큼 불행도 널렸다. 싸늘하게 식은 사랑처럼 싸늘하게 식은 주검으로 남는 그 날까지 우린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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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사랑해 줄 수 없는 이는 아파한다

가까이 있어도 만날 수 없고
멀리 있어 부를 수 없는 사랑

잠꾸러기에게 잠을 못 자게 하듯
여행가에게 집에서 쉬라고 하듯
바람이 스치듯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듯

유효 기간이 지난 음식처럼
싸늘하게 식은 사랑은
무덤덤하게 바라만 볼 뿐이다.


#작가의 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하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 것도 아픈 것이다. 멀리 있어 볼 수도 만질 수조차 없는 것도 아픈 것이다.

잠꾸러기에게, 여행가에게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만들면 그것이 고문이다. 잠을 못 자도록 불을 켜 놓고 알을 계속 낳게 하는 닭은 얼마나 괴로움 속에서 계속 알을 낳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에 스치는 바람처럼 물결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시간은 빠르게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아니 사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굴레가 아닐까? 애초에 시계가 없다면 우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지 않았을까? 어제 인지 오늘인지도 몰랐을 일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일은 늘 반복되는 일이다. 그것에 하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한 달, 아니 일 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지구가 해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일 년이라고 하지만 그 사실도 몰랐을 땐 사실 하루든 한 달이든 고된 나날은 늘 고된 나날이고 힘든 나날은 늘 힘든 나날이었다. 행복하고 함박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었다.

유효 기간이 다한 음식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 흑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씨 간장처럼 오래될수록 진한 진국의 맛을 내는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고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육체적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고문이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할까? 좋아한다고 말할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내가 만든 기준으로 집을 준비하고 좋은 직장을 준비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결혼하자고 말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그 사랑은 이미 철새처럼 날아가고 빈자리만 남았듯이 삶은 늘 망설이는 자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성취한다고 했던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아니 말을 해도 그 깊은 속을 모르는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삶은 늘 등산길과도 같아서 갈림길의 연속이다. 처음엔 아주 작은 각도로 벌어지는 갈림길이 나중엔 아주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것은 가정일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말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늘 두려움과 기대가 함께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새로운 시간을 늘 대면하고 살아간다.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가 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시계가 없어 시간 개념이 없는 사회라면 시간에 쪼들려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 순간도 없을 것이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지고 달도 밤마다 찾아오는데 우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계, 즉 시간 개념에 갇혀서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없는 몇천 년의 역사든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없어도 나의 2세인 나의 자녀들이 잘되어야지 하면서 자신의 피와 살을 바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2세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는 세상의 어머니들은 행복한 고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고문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괴롭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한 일도 있다. 우린 늘 사랑하고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처음 사는 농부의 아들, 누구의 아이, 시골에서 자란 시골 아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시골 청년.

그리고 처음으로 본 바다, 처음으로 타 본 비행기, 처음으로 가 본 외국, 그 외국에서 처음으로 하는 이민 생활을 벌써 28년을 살아오고 있다. 때로는 삶이 고통스럽고 고문 같은 날들이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의무는 늘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수행자로 살아가는 일보다 많은 어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다. 괴로움의 고가 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사실 행복함도 고문일 수 있다. 무아의 경지에 들고 싶은 사람에겐 행복은 유혹이다. 먹는 즐거움, 촉감의 행복, 사랑의 행복 등 세상의 즐거움들은 사실 널렸지만 그만큼 불행도 널렸다. 싸늘하게 식은 사랑처럼 싸늘하게 식은 주검으로 남는 그 날까지 우린 행복과 불행을 반복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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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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