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탈핵실크로드[9] 일본 야마구치의 탈핵동지들 2
생명탈핵실크로드[9] 일본 야마구치의 탈핵동지들 2
  • 이원영 수원대 교수·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 승인 2022.10.11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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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 탄광 그리고 시모노세키에 이르는 길

야마구치(山口)라는 이름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인사들을 배출한 본 고장이다. 얼마 전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생명로드에서 알게 된 동지들은 더욱 인상 깊다.

힘차게 걷는 야마구치의 주민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엇보다 4주에 걸친 일본 순례 중에서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 필자와 함께 걸었다. 그 열기를 받은 필자는 로마까지 순례도 이렇게 멋지게 펼쳐질까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식당마다 있는 日替わり定食(히가와리 테에쇼쿠)가 가성비 좋은 식단이다. 이 식단 이름처럼  매일 바뀌는 경치를 자세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도보여행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두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기만 하면.









"山口(야마구치)에 원전은 안돼" 라는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주민도 있다.



안도기미토(가운데)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우측)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나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야마구치의 탈핵 동지 중에 인상 깊었던 안도기미토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난다. 이런 퍼포먼스를 30년씩 해내는 저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일본에는 동네마다 신사가 있다. 녹색 공간이다. 순례단이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지 우베역에서 환영해주는 이 지역 탈핵동지들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宇部(우베)역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가 환영해주신다.



우베역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받은 금일봉.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현장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 그전에도 몇 차례인가 금일봉과 선물을 받았다. 야마구치 사람들의 탈원전 응원은 뜨겁다. 며칠 전 후지모토스님은 3만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해주셨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발제하신 야마구치대학 코케츠아츠시 명예교수가 권유하여, 안도기미토상의 안내로 우베해변에 있는 슬픈 역사의 현장인 조세이 탄광매몰현장(1942)을 찾았다.



조세이 탄광 현지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선조들이 해저탄광에서 일하다가 수몰된 현장이다. 충격을 받은 역사의 현장이다. 



한글로 적혀있는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동안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다가 2016년에야 추도비가 세워졌다. 한글로 된 안내판에는,

"[長生(조세이)탄광 추도광장] 183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낸 長生(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오랫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힌 채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長生(조세이) 해안가에 남아있는 피아(배기구)가 상징하듯 아직 그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저 탄광 피아(배기구)가 보이는 수몰현장 바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우베시 앞바다에는 해저탄광이 있었다는 기둥만 보인다. 이 슬픈 역사를 아직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필자는 이 슬픈 이야기를 2017년 9월 경향신문에 <야마구치 그 지구촌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그 안에 조세이 탄광이야기를 적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09082053025#c2b

이를 소개하면,

 "조세이(長生) 탄광 사고다. 최근 상영된 영화 <군함도>보다 ‘막장’스러운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1942년 2월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이 탄광에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 일시에 수몰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조선인 강제 연행조사 기록>(朝鮮人 强制連行 調査の記錄)을 인용한 글(박인식)에는 “조세이 탄광은 해저탄층이 해안선에 따른 얕은 지층에서 채굴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갱도로 내려가면, 바로 머리 위가 바다이므로 노동자들은 무너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고, 작업을 멈추고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어선이 지나가는 엔진 소리가 나고, 스크루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므로 언제 천장이 무너질 것인가에 늘 공포에 떨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좁은 바다에서 석탄을 캐다가 이미 1911년, 1915년, 1921년 세 차례에 걸쳐 수십 명을 수몰하는 사고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석탄을 캐도록 했다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알고 죽인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죄질이 너무나 나쁘다. 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이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걸린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도 당시 아베 정권 그리고 지금의 기시다 정권이 핵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겪고도 인류가 또다시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것. 야마구치와 지구촌은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당시 일본정부의 잘잘못을 밝히는 작업이 이제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쿠라상이 다음날 하루 북을 울리면서 함께 해주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 아침 우베역에서 순례의 기운을 돋우는 행사가 있었다.  '로마까지 2년간 핵폐절을 위해 걸어가기'라는 휘장을 세우고 북을 치는 분이 있었다. 본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은 '오쿠라'상이다.



오쿠라상이 자신의 차에다가 '2년간 로마까지'라는 페인팅 퍼포먼스까지 그렸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5천 엔을 기부하던 현장@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 후 사진을 찍는 도중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구경하면서 '진짜로 로마까지 가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더니 그 자리에서 5천 엔을 기부한다. 마음 씀씀이가 좋다. 그에게 로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꼭 전하고 싶다.



현해탄이 내려다 보이는 시모노세키 숙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힘차게 걷는 야마구치의 주민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엇보다 4주에 걸친 일본 순례 중에서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 필자와 함께 걸었다. 그 열기를 받은 필자는 로마까지 순례도 이렇게 멋지게 펼쳐질까 기대를 하게 되었다.

힘차게 걷는 야마구치의 주민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무엇보다 4주에 걸친 일본 순례 중에서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 필자와 함께 걸었다. 그 열기를 받은 필자는 로마까지 순례도 이렇게 멋지게 펼쳐질까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식당마다 있는 日替わり定食(히가와리 테에쇼쿠)가 가성비 좋은 식단이다. 이 식단 이름처럼  매일 바뀌는 경치를 자세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도보여행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두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기만 하면.









"山口(야마구치)에 원전은 안돼" 라는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주민도 있다.



안도기미토(가운데)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우측)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나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야마구치의 탈핵 동지 중에 인상 깊었던 안도기미토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난다. 이런 퍼포먼스를 30년씩 해내는 저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일본에는 동네마다 신사가 있다. 녹색 공간이다. 순례단이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지 우베역에서 환영해주는 이 지역 탈핵동지들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宇部(우베)역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가 환영해주신다.



우베역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받은 금일봉.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현장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 그전에도 몇 차례인가 금일봉과 선물을 받았다. 야마구치 사람들의 탈원전 응원은 뜨겁다. 며칠 전 후지모토스님은 3만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해주셨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발제하신 야마구치대학 코케츠아츠시 명예교수가 권유하여, 안도기미토상의 안내로 우베해변에 있는 슬픈 역사의 현장인 조세이 탄광매몰현장(1942)을 찾았다.



조세이 탄광 현지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선조들이 해저탄광에서 일하다가 수몰된 현장이다. 충격을 받은 역사의 현장이다. 



한글로 적혀있는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동안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다가 2016년에야 추도비가 세워졌다. 한글로 된 안내판에는,

"[長生(조세이)탄광 추도광장] 183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낸 長生(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오랫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힌 채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長生(조세이) 해안가에 남아있는 피아(배기구)가 상징하듯 아직 그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저 탄광 피아(배기구)가 보이는 수몰현장 바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우베시 앞바다에는 해저탄광이 있었다는 기둥만 보인다. 이 슬픈 역사를 아직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필자는 이 슬픈 이야기를 2017년 9월 경향신문에 <야마구치 그 지구촌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그 안에 조세이 탄광이야기를 적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09082053025#c2b

이를 소개하면,

 "조세이(長生) 탄광 사고다. 최근 상영된 영화 <군함도>보다 ‘막장’스러운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1942년 2월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이 탄광에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 일시에 수몰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조선인 강제 연행조사 기록>(朝鮮人 强制連行 調査の記錄)을 인용한 글(박인식)에는 “조세이 탄광은 해저탄층이 해안선에 따른 얕은 지층에서 채굴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갱도로 내려가면, 바로 머리 위가 바다이므로 노동자들은 무너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고, 작업을 멈추고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어선이 지나가는 엔진 소리가 나고, 스크루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므로 언제 천장이 무너질 것인가에 늘 공포에 떨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좁은 바다에서 석탄을 캐다가 이미 1911년, 1915년, 1921년 세 차례에 걸쳐 수십 명을 수몰하는 사고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석탄을 캐도록 했다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알고 죽인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죄질이 너무나 나쁘다. 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이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걸린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도 당시 아베 정권 그리고 지금의 기시다 정권이 핵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겪고도 인류가 또다시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것. 야마구치와 지구촌은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당시 일본정부의 잘잘못을 밝히는 작업이 이제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쿠라상이 다음날 하루 북을 울리면서 함께 해주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 아침 우베역에서 순례의 기운을 돋우는 행사가 있었다.  '로마까지 2년간 핵폐절을 위해 걸어가기'라는 휘장을 세우고 북을 치는 분이 있었다. 본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은 '오쿠라'상이다.



오쿠라상이 자신의 차에다가 '2년간 로마까지'라는 페인팅 퍼포먼스까지 그렸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5천 엔을 기부하던 현장@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 후 사진을 찍는 도중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구경하면서 '진짜로 로마까지 가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더니 그 자리에서 5천 엔을 기부한다. 마음 씀씀이가 좋다. 그에게 로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꼭 전하고 싶다.



현해탄이 내려다 보이는 시모노세키 숙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일본에서는 식당마다 있는 日替わり定食(히가와리 테에쇼쿠)가 가성비 좋은 식단이다. 이 식단 이름처럼  매일 바뀌는 경치를 자세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도보여행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두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기만 하면.

"山口(야마구치)에 원전은 안돼" 라는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주민도 있다.

안도기미토(가운데)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우측)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나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야마구치의 탈핵 동지 중에 인상 깊었던 안도기미토상과 오카모토마사아키상이 펼치는 노상 반대 현장과 만난다. 이런 퍼포먼스를 30년씩 해내는 저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일본에는 동네마다 신사가 있다. 녹색 공간이다. 순례단이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지 우베역에서 환영해주는 이 지역 탈핵동지들과 함께@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宇部(우베)역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가 환영해주신다.

우베역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받은 금일봉.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현장에서 두 그룹으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 그전에도 몇 차례인가 금일봉과 선물을 받았다. 야마구치 사람들의 탈원전 응원은 뜨겁다. 며칠 전 후지모토스님은 3만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해주셨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발제하신 야마구치대학 코케츠아츠시 명예교수가 권유하여, 안도기미토상의 안내로 우베해변에 있는 슬픈 역사의 현장인 조세이 탄광매몰현장(1942)을 찾았다.

조세이 탄광 현지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선조들이 해저탄광에서 일하다가 수몰된 현장이다. 충격을 받은 역사의 현장이다. 

한글로 적혀있는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그동안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다가 2016년에야 추도비가 세워졌다. 한글로 된 안내판에는,

"[長生(조세이)탄광 추도광장] 183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낸 長生(조세이)탄광 수몰사고는 오랫동안 역사의 어둠속에 묻힌 채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長生(조세이) 해안가에 남아있는 피아(배기구)가 상징하듯 아직 그 사실은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저 탄광 피아(배기구)가 보이는 수몰현장 바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우베시 앞바다에는 해저탄광이 있었다는 기둥만 보인다. 이 슬픈 역사를 아직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조세이 탄광 현지의 안내판@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필자는 이 슬픈 이야기를 2017년 9월 경향신문에 <야마구치 그 지구촌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그 안에 조세이 탄광이야기를 적었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09082053025#c2b

이를 소개하면,

 "조세이(長生) 탄광 사고다. 최근 상영된 영화 <군함도>보다 ‘막장’스러운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1942년 2월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이 탄광에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 일시에 수몰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조선인 강제 연행조사 기록>(朝鮮人 强制連行 調査の記錄)을 인용한 글(박인식)에는 “조세이 탄광은 해저탄층이 해안선에 따른 얕은 지층에서 채굴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갱도로 내려가면, 바로 머리 위가 바다이므로 노동자들은 무너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고, 작업을 멈추고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어선이 지나가는 엔진 소리가 나고, 스크루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므로 언제 천장이 무너질 것인가에 늘 공포에 떨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 좁은 바다에서 석탄을 캐다가 이미 1911년, 1915년, 1921년 세 차례에 걸쳐 수십 명을 수몰하는 사고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석탄을 캐도록 했다는 것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이건 알고 죽인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죄질이 너무나 나쁘다. 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이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걸린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도 당시 아베 정권 그리고 지금의 기시다 정권이 핵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겪고도 인류가 또다시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것. 야마구치와 지구촌은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당시 일본정부의 잘잘못을 밝히는 작업이 이제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쿠라상이 다음날 하루 북을 울리면서 함께 해주었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다음날 아침 우베역에서 순례의 기운을 돋우는 행사가 있었다.  '로마까지 2년간 핵폐절을 위해 걸어가기'라는 휘장을 세우고 북을 치는 분이 있었다. 본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은 '오쿠라'상이다.

오쿠라상이 자신의 차에다가 '2년간 로마까지'라는 페인팅 퍼포먼스까지 그렸다.@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5천 엔을 기부하던 현장@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도착 후 사진을 찍는 도중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구경하면서 '진짜로 로마까지 가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더니 그 자리에서 5천 엔을 기부한다. 마음 씀씀이가 좋다. 그에게 로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꼭 전하고 싶다.

현해탄이 내려다 보이는 시모노세키 숙소.@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현해탄이 보이는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지난번 배가 도착했을 때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이곳은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결정들이 이 도시에서 이루어진 바가 있다. 일제강점기 거점 등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담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이젠 탈핵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모토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고 있다. 구와노야스오상을 중심으로 한 이 곳 주민들의 탈핵 열기는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뜨겁게 느껴진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도시다. 경향신문 말미에 쓴 그 글 부분을 인용한다.

"야마구치는 한반도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곧바로 피해를 입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번 생명로드의 도상에서 생명존엄과 탈원전의 뜻에 가장 뜨겁게 호응해준 동네이기도 하다. 야마구치현을 걸어가는 일주일 동안 하루 20㎞ 순례를 마치고 난 저녁시간이면, 모이는 이들은 기존 평화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과 생명존엄을 중시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조세이 탄광을 안내해준 모 교수를 필두로, 신부님과 스님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필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특히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모노세키에서 ‘일본과 코리아를 맺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어느 주민은 생명로드를 널리 알리고 도와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야마구치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지구촌의 일부다. 그 사연들은 생명로드 상에서 날줄로 엮여서 새로운 에너지로 모일 것이다.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야마구치에서 이기면 지구촌도 바뀐다고."

/ 이원영 수원대 교수·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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