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하다’하면 잘못...‘空이다’ 해야”
“‘空하다’하면 잘못...‘空이다’ 해야”
  • 조현성
  • 승인 2014.08.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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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정확한 ‘돈황 법보단경’ 펴낸 원순 스님

“<반야심경>에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합니다. 이것을 ‘오온이 공하다’고 해석해 왔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불교의 본질과 맞지 않습니다. ‘오온이 공이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쉽고 명쾌한 경전 풀이로 널리 알려진 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이 <돈황 법보단경>을 펴냈다. 스님은 13일 서울 수송동 열린선원에서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공하다’면 새로 시작”

스님이 ‘오온이 공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부처와 중생의 세계가 둘이 아닌 까닭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정각 후 세상을 보니 모두가 부처였다. 모든 중생이 이미 성불해 있지만 중생의 망상분별 때문에 이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다.

스님은 “부처가 보는 세상과 달리 중생은 바로 볼 능력이 없다. 보고 못 보고 차이만 있지 부처의 세상과 중생계는 같다”고 했다. 중생계가 변해서 부처의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본래 부처의 세계였다는 설명이다.

“‘공이다’해야 본래 깨달음”

스님은 “중생의 몸과 마음이 변해서 공이 된 것이 아니다. 중생의 몸과 마음이 본래 실체가 없다. 때문에 ‘오온이 공하다’가 아니라 ‘오온이 공이다’가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하다’면 시작을 부정하고 긍정적인 것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바꿔서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이다’는 집착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깨닫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공하다’가 마음속에 심어지면 (공으로) 바꿔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긴다. 그러면 어록을 보는데 힘들다. 부처님 진신을 보는데 장애가 생긴다”는 말도 했다.

“오온개공이 아뇩다라샴먁삼보리”

스님은 “6근 6경 6식이 모두 공하다. 생노병사도 없기 때문에 고‧집‧멸‧도 사제도 없다. 이를 알아야할 지혜도 필요 없고, 깨달을 것도 없다. ‘이 세상 무엇도 얻을 것이 없다(以無所得故)’는 말은 곧 ‘오온개공’이고, 이것이 아뇩다라샴먁삼보리이다”라고 했다.

스님은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본보기로 들었다. 법정 스님이 말한 ‘텅 빈 충만’은 진공묘유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스님은 “공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중생의 시비분별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텅 비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 이것이 부처의 지혜”라고 했다.

“공한 줄 알면 자비심 절로”

스님은 “일체가 공한 것을 알면 자비심이 절로 생긴다”고 했다.

시비분별이 없는 것은 자기생각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 마음은 모든 것에 조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와 남이라는 구별이 없으니 다른 존재에 자비심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 차별 없이 바라봄이 동체대비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육조스님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구절을 듣고 깨달았다”고 했다.

“그 어디에도 집착 말아야”

스님은 육조스님이 깨달은 구절이 잘못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응무소주이생기심은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한다’가 아니라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스님은 “이를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성철 스님이었다. 큰스님은 여러 전거까지 들어 설명했다”며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한다‘면 그 마음을 내는 사람이 아직 남아있게 된다. 집착이 없는 마음은 아상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을 내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스님은 <원각경>을 본보기로 들었다. “원각에서 부처님 공덕이 흘러나온다”는 구절이다.

스님은 “집착이 없으면 ‘너’ ‘나’라는 시비 대상이 사라진 마음자리만 남는다. 그 마음자리에서 저절로 부처님 공덕‧지혜가 흘러나온다”고 했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라는 설명이다.

“반야심경-금강경-법보단경”

스님은 “육조스님이 <금강경> 구절에 깨달음을 얻었다. <금강경>을 축약한 것이 <반야심경>이다. 때문에 <금강경>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 있으면 <법보단경>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법보단경>은 삶의 실체를 직시해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집착을 여읜 빈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고 했다.

스님은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내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라는 모습에 집착을 않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은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고, ‘인상’은 남이라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다. ‘중생상’은 우리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수자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집착 여의려면 쉼 없이 수행을”


스님은 “시비분별 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참선하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을 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육조스님의 게송인 ‘보리본무수 명경역무대 불성상청정 하처유진애(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를 ‘깨달음은 잡혀지는 존재 아니고 밝은 마음 그 이름뿐 실체가 없네. 불성이란 늘 언제나 맑고 깨끗해 어느 곳에 티끌 번뇌 있을 수 있나’라고 번역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승속을 막론하고 부처님 법을 제대로 모른다. 법을 말하면서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사기꾼 밖에 더 되겠느냐”며 “자신의 목소리가 부처의 목소리로 나올 수 있도록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원순 스님의 돈황 법보단경은...

<육조단경>은 돈황본 덕이본 종보본 혜흔본 대승사본 홍성사본 등 여러 판본이 있다. 이 가운데 육조스님 일대기를 서사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한 것이 덕이본이다.
‘돈황본’은 돈황 석굴에서 필사본 <육조단경>이 발굴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판본과 달리 핵심만을 담고 있다. 원순 스님은 ‘돈황본’을 저본으로 했지만 ‘덕이본’에서 ‘법보단경’ 이름을 빌려 <돈황 법보단경>이라고 책 이름을 지었다. 스님은 여러 판본과 대조해 오탈자들을 주석처리했고, 한문에 독음을 달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돈황 법보단경┃원순 스님 지음┃법공양┃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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