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한국 차문화의 날로 영원히 기억"
"진정한 한국 차문화의 날로 영원히 기억"
  • 이혜조
  • 승인 2007.08.1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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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도회 등 대흥사 동다송비 제막…김회장 자당 생각에 눈물



한국 다도의 원형질을 살려낸 <동다송>을 기념하기 위해 해남 대흥사에 동다송비가 건립됐다.

명원문화재단(이사장 김의정),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한국다도총연합회는 11일 오후2시 해남 대흥사에서 동다송비 신건 제막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대흥사 주지 몽산스님, 중앙종회의원 운달 스님을 비롯한 스님, 중앙신도회 김의정 이사장 등 불자, 다도인, 지역 국회의원, 부군수 등 사부대중 500여명이 참석했다.

주지 몽산스님은 봉행사를 통해 "동다송은 다성 초의선사께서 길지 않은 문장 속에 한국 차의 우수함을 중국 차에 비교해 서술한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다서로 차에 관한 여러 가지 의미과 깊은 생각을 말하고 있는 다도의 성전"이라며 "초의선가의 사상과 마음이 집약되어 있는 동다송을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차인들에게 전파하고 후손들에게 영구히 알리고자 동다송을 돌에 새기어 비석으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중앙신도회장)은 "오늘은 진정한 한국 차 문화의 날로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제 아무리 첨단과학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해도, 대대로 이어온 전통과 체계적인 계보를 갖고 있지 않은 다도는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지난 1979년 명원당 김미희선생께서 다도의 성지 일지암을 복원한 이래 차문화의 모든 것을 막라한 동다송비를 우리들의 발원으로 건립하게 된게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라며 "오직 한국 차문화 5천년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당신의의 열정으로 무소의 뿔처럼, 불제자로서의 사명과 다인으로서의 임무를 다 하신 것"이라고 자당을 회고했다.

김 이사장은 "오늘과 같은 축제의 날에, 지금 살아계신다면 가장 기뻐하고 청정한 몸으로 가장 먼저 헌다를 하실 분은 바로 명원선생이라고 생각한다"며 "명원 선생의 혼백이 여기에 사분히 내려와 우리 다인들과 뜻을 같이하고 계시리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동다송>은 초의선사(1786~1866)가 대흥사 일지암에서 40여년 동안 머물며 정리한 한국 다도의 고전이다. 전체 31송 안에 중국 차와 한국 차의 특징과 품질을 정리하고 △차 만들기 △물 고르기 △차 끓이기 △차 마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풀어썼다. 특히 ‘차 안에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다론은 후세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날 제막한 대흥사 동다송비는 길이 8m 높이 3m 너비 1.3m로 웅장한 규모다. 바탕돌과 지붕돌을 화강석으로 올리고, 검은 몸돌에는 〈동다송〉 31송의 원문과 비석 건립의 의의를 새겼다.

명원 김미희 선생

한국 다례의 선구자. 명원 김미희 선생은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다. 명원 선생은 한국 전통 다례법을 궁중 상궁으로부터 이어받았으며, 한국 전통 다례와 차 문화 발전을 위해 1950년대 전통 차 문화 연구발표, 1960년대 명원다회를 설립했다. 1970년대 한국 최초로 한국 차 문화 학술회 개최, 1980년 한국 최초로 한국 전통다례- 궁중 다례, 사원다례, 생활다례, 접빈 다례법을 발표했다. 1970년대 명원선생은 칠불선원과 해남 대흥사 일지암 등의 복원불사에 적극 참여했아며 국민대학교에 일지암과 같은 초당과 다실을 지어 후손의 다례 교육과 전통예절교육을 추구하신 한국 다례의 선구자다. 1981년 돌아가셨으며 명원선생의 업적을 기려 정부에서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초의 선사

한국의 다성(茶聖).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는 1786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삼례리에서 출생하여 15세에 남평의 운흥사에서 벽봉화상에 의해 축발했다. 19세 때 해남 태흥사 완호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계하고 법맥을 이었다. 21세 때 대둔사(지금의 대흥사)에서 완호화상으로 대교 수학했으며, 24세 때 다산 정약용을 강진에서, 완당 김정희를 서울에서 만나게 된다. 41세에 대흥사 경내에 한국 차의 중흥처라 할 수 있는 일지암을 결암하여 81세에 입적할 때 까지 40년동안 일지암에서 주석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명사들과 교우하며 동다송, 다신전, 초의문집, 초의선과 등을 저술, 한국 차의 우수성과 독창적인 우리 차 문화를 널리 알렸다. 초의선사는 선(禪)과 교(敎)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조계가 깊었고 범서에도 능통했다. 초의선가의 동다송은 한국 차 문화의 성전이며 우라나라 차 문화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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