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운문시궐(雲門屎橛)
신무문관: 운문시궐(雲門屎橛)
  • 박영재 명예교수
  • 승인 2023.03.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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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1.

성찰배경: <무문관(無門關)>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선사들 가운데 한 분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가 등장하는 ‘건봉일로(乾峰一路)’와 ‘운문화타(雲門話墮)’ 공안을 최근 칼럼 글에서 기술하였습니다.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아직 다루지 않은 운문 선사의 동산삼돈(洞山三頓)과 종성칠조(鐘聲七條) 및 운문시궐(雲門屎橛) 공안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 신무문관: 동산삼돈(洞山三頓)

본칙(本則): 운문 선사께서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가 처음 참문(參問)하러 오자 다음과 같이 세 번 물으셨고 동산이 세 번 아뢰었다. “어디에서 왔는고?[近離甚處]” “사도(查渡)에서 왔습니다.” “여름철(하안거)은 어디에서 지냈는고?”, “호남의 보자사(報慈寺)에서 지냈습니다.” “언제 그곳을 떠나왔는고?” “8월 25일입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께서, “자네는 때릴 가치도 없어 그대에게 삼돈방(三頓棒, 매 60대)을 면해주노라.”라고 꾸짖었다.
다음날 동산이 운문 선사께 매 60대를 면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저의 허물이 어디에 있었습니까?”하고 여쭈었다. 이에 운문 선사께서 “이 밥통[飯袋子]아! 강서니 호남이니 하며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느냐?[江西湖南 便恁麼去.]”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러자 동산이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달았다.[山於此大悟.]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만약 운문 선사께서 동산에게 당시 그 자리에서 본분의 가르침을 주셔서 동산에게 따로 살아날 길을 일러주셨다면 운문종의 법맥(法脈)이 끊기지는 않았을 것이었으리라! 왜냐하면 동산으로 하여금 하룻밤 내내 분별의 바다에서 헤매다 이튿날 다시 찾게 하여 호통 한 마디로 비록 깨치게 하셨으나 아직은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네.
자! 이제 여러분에게 묻노니 동산이 매 60대나 맞을 짓을 했는가 안했는가? 만약 맞을 짓을 했다면 초목은 물론 누구든지 맞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운문 선사께서 속인 것이 되리라. 따라서 이를 꿰뚫어 보고 분명히 알아차렸다면 바야흐로 동산과 똑같이 깨닫고 당당한 삶을 이어가리라!”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사자가 새끼를 가르치는 비결처럼/ 앞으로 다가오려는 새끼를 낭떠러지로 차 굴리고 재빨리 몸을 숨긴 다음/ 기어 올라오는 놈만을 거두어 기르듯이 간절히 지켜보다 다시 베풀어 계합하셨기에/ 첫 번째 쏜 화살은 비록 가볍게 박혔으나 두 번째 화살은 깊게 박혔네. [獅子教兒迷子訣 擬前跳躑早翻身 無端再敘當頭著 前箭猶輕後箭深.]

* 군더더기: 사실 첫 번째 화살은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잘 대답했는데 왜 삼돈방을 면해준다고 하셨는가?’이고, 두 번째 화살은 동산이 다음날 다시 입실해[쳐들어가] 이를 운문 선사께 따지자 운문 선사께서 ‘(은행원이 남이 돈 세는 것처럼, 그대의 체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스승들의 온갖 일화들이나 수집하며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느냐?) 이 밥통아!’라는 일전어(一轉語)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당시 여러분이 동산 대신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매 60대를 면해주노라.”라고 하셨을 때 어떻게 즉시 응대하셨겠습니까?

◇ 신무문관: 종성칠조(鐘聲七條)

본칙(本則): 운문 선사께서 “세계가 이렇게 광활하여 해야할 시급한 일도 많은데, 어찌하여 종소리를 듣자 칠조가사(七條袈裟, 출가승이 거처를 나설 때 입는 평상시 승복)로 갈아입고 거처를 나서는가?”하고 제시하셨다.[雲門曰 世界恁麽廣闊 因甚向鐘聲裏披七條.]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무릇 선(禪)을 참구하고 도(道)를 배우는 사람은 소리를 따르고 색깔을 쫓는 것을 철저히 삼가야 한다. 설사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치거나[聞聲悟道]’,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는 것[見色明心]’은 보통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참선학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선자(禪者)들이 소리와 빛깔에 걸림 없이, 가는 곳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명료하고 오묘한 이치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 일러보아라. 이때 소리가 귀 곁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아니면 귀가 소리 곁으로 다가가는 것인가?[聲來耳畔 耳往聲邊.]
설령 소리의 울림과 고요함을 모두 잊었다 하더라도, 이 경지에 이르러서 그대들은 어떻게 한마디[一轉語]를 이를 수 있겠는가? 만약 귀로만 듣는다면 이 경지를 체득하기 어려울 것이고, 소리를 눈으로도 들을 수 있어야 비로소 분명해질 것이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깨달으면[會悟] 모든 것이 한 집안 일이요/ 깨닫지 못하면 모든 것이 제각각 천차만별이네./ 그러나 비록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본바탕[體]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한 집안 일이요/ 또한 깨달았다고 해도 (쓰임[用]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제각기 천차만별이라네.[會則事同一家 不會萬別千差 不會事同一家 會則萬別千差.]

군더더기: 이미 앞의 칼럼 글들에서 인용했듯이 여기서 ‘문성오도’는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의 법을 이은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선사가 마당을 비질하다가 돌자갈이 대나무에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에 깨쳤다는 데에서, ‘견색명심’은 역시 위산 선사의 제자인 영운지근(靈雲志勤, ?-?) 선사가 행각 중에 화사하게 핀 복사꽃을 보는 순간 문득 깨쳤다는 데에서 유래한 선어(禪語)들입니다.
특히 마음을 밝힌다는 뜻의 ‘명심(明心)’은 후대에 (오늘날의 전문직에 해당하는) 사대부들의 언행을 담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는 책의 제목으로도 쓰였는데, 비록 몇몇 대목을 빼고는 선어록의 내용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슬기로운 어린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눈높이의 글들도 적지 않게 담겨 있어 오늘날까지도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선어록’으로도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 신무문관: 운문시궐(雲門屎橛)

본칙本則: 운문 선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운문 선사께서 “마른 똥막대기이니라.”라고 응답하셨다. [雲門 因僧問 如何是佛. 門云 乾屎橛.]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운문 선사께서는 집안이 가난하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고 일이 정신없이 바빠서 초서(草書)로 휘갈기며 글을 쓸 틈조차 없네. 걸핏하면 마른 똥막대기를 가져와 가문[門戶]을 무리하게 지탱하려 하니 불법(佛法)의 흥망성쇠가 불을 보듯 자명하구나.”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운문 선사의 ‘간시궐’이란 외침!) 번쩍이는 번갯불과 같고/ 돌이 맞부딪쳐 튀는 불꽃과 같아서/ 우물쭈물하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나) 허송세월하다 일생을 그르치고 말 것이네.[閃電光 擊石火 眨得眼 已蹉過.]

* 군더더기: 이처럼 성스러운 부처[佛]와 더러움의 상징인 똥[糞]이 둘이 아닌 ‘불분불이(佛糞不二)를 제창하신’ 운문 선사께서는 똥의 가치를 일찍이 통찰하신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즈음 똥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코프롤로지’라는 분야도 있으며, 똥의 다양한 자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전시회를 여는 사진작가도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날 건강검진을 할 때 장 건강 점검시 분변(糞便) 검사는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똥의 고상한 표현인 대변(大便)’이란 용어는 만성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의 경우 힘들게 배출했을 경우, ‘크게 편하다’라는 뜻으로도 새길 수 있습니다. 

끝으로 운문 선사의 어록인 <운문광록(雲門廣錄)>에 보면 다음과 같이 똥의 또 다른 멋진 쓰임도 있습니다. “운문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내가 법어(法語) 하나를 들어 그대들에게 교시(敎示)하여 비록 그대들이 곧바로 수긍한다고 해도 그것은 곧 그대들 머리 위로 똥물을 끼얹는 격이니라.[擧一則語 敎汝直下承當 早是撒屎著爾頭上也.]’라고 제창하셨다.”
사실 이 대목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넘쳐나는 동서양의 영적 스승들의 주옥같은 가르침들의 홍수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갈팡질팡하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일깨우기 위한, 즉 쓸모없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온몸으로 체득하라는 통렬한 일갈(一喝)이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이 점을 뼛속 깊이 새기며 무리 지어 세력화하며 맹목적으로 스승들을 따르는 추종자가 아니라, 그 어디에도 걸림 없이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향상(向上) 여정을 이어가는 진정한 선자(禪者)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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