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경계인, 정조문
경계 없는 경계인, 정조문
  • 김규순 소장
  • 승인 2014.10.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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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순의 사람과사람 1

정조문(1918-1989) 그는 재일교포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적 재일교포이다. 조선적이란 조선을 국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금은 역사상에서 사라진 나라명이다. 우리가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해도 그런 나라는 지금 없다. 국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라진 나라를 국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민족이 일본에는 약 4만 명이 된다고 한다. 조선이 지구상에 없으니 그들은 무국적자인 셈이다. 조선 사람이니 일본국적도 거부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조선의 반만 이어 받았으니 온전한 조선이 아니란다. 온전한 조국이 만들어질 때까지 조선적으로 남아있기를 주장하는 사람들, 조선적 재일교포. 정조문은 그들 중 한사람이 아니라, 조선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우리의 큰 형이었다.


정조문의 일대기를 다룬 <정조문의 항아리>라는 다큐영화가 제작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수개월 전부터 수소문 하다가 인연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페북 문자가 들어 왔다. “저녁공양 한 번 하시지오” 프로듀서 최선일씨의 연락이었다. 반갑게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정조문씨에 대한 질문에 “경계인”이라고 답했다.

경계인_! 정조문은 분명 경계인이다. 근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외된 인간으로서의 경계인이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회색분자로서의 경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진정한 조선인이었다. 1909년10월26일 이또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 의사가 그린 대한국인大韓國人. 하나의 조국이 품어주는 대한국인이고 싶어 했다.

그는 오히려 둘로 쪼개어진 남과 북을 거부했다. 그가 우리를 지적했고 그가 우리를 질책했다. 그는 그 길을 흔쾌히 선택했다.

그가 선택한 경계인은 옳은 것에 대한 원대한 그림이었다. 바른 길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는 조선의 선비였고, 단군의 정신을 이어받은 선인仙人이었다. 적어도 그런 성향이었다.

경계란, 유가儒家에서는 음과 양이 작용하는 알지 못하는 미묘한 공간이다. 음양의 지극함에 대해서는 성인도 행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고 한 그런 영역이다. 도가道家에서는 무와 유의 긴장된 대립면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원자 속에도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이런 미묘한 이치를 그는 깨달았다. 그런 공간이 우리 세계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경계인은 범인凡人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의 사고체계를 가진다. 우리가 신선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경계가 대립하는 면의 긴장감을 가진 분이 경계인이다.

“내가 만약 조국으로 돌아간다면 남북으로 통일되는 그 때 돌아갈 것이다.”

그의 말은 단호했다. 남북은 통일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이기도 했다. 그는 반쪽을 포기하는 선택을 거부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이쪽도 저쪽도 다 가진 자유인이었다. 그런 선택은 독립적 자발성과 독립적 생명력에 기인한다.

북한의 회유와 대한민국의 압력과 일본의 유혹이 난무하는 난세를 견뎌,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해 온 분이다. 그 고유성이야 말로 한민족의 정체성이 아닌가.

천하를 얻는 법을 터득한 위인 정조문. 그는 이념을 거부했다. 이념은 상대를 무시하고 이웃을 적으로 만든다. 이데올로기의 세상에서 과감하게 이념을 거부한 대장부였다.

정조문은 조선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그 속에 조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념이 없었다. 조선의 문화재가 있는 그곳이 그의 안식처였다. 그는 그렇게 교토의 자기 집터에 “고려미술관‘을 세운 후 4달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영웅이고자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 안내자로 만족했다. 정조문은 고려미술관에 조용히 한민족의 향기를 품어서 간직했다. 반쪽이 아닌 하나의 조선을 품었다. 반쪽에 안주한 우리는 행복한가. 정조문, 그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고민을 풀어가야 할 방안을 찾아내는 일이다.

영화 <정조문의 항아리>에 대해 혹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소재라고 무시했다.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싶은 작자이다. 돈에 울고 돈에 속는 속인의 지껄임에 불과하다. 민족의 문제는 시대를 초월한다. 조선이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조선이 남긴 숙제는 바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일본의 조선적, 중국의 조선족, 북한의 탈북자,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러시아의 사할린 동포, 중남미에 팔려간 조선인들. 이들을 두고 우리만 행복할 것인가.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큰 집이 되어, 우리가 고향이 되어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가족에게 민족에게 이념은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주변국들의 음모이다. 노자는 말했다 눈보다 배가 중요하다고. 먹는 것에는 이념이 필요 없다. 부모의 마음처럼 자식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애절함으로 접근할 수 없는가.

28일 오사카에서 영화<정조문의 항아리>의 시사회가 있다. 다음은 우리의 차례이다. 그를 만나러 가자. 넓은 가슴으로.

   
저널리스트 김규순은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이다.  풍수지리학이 대한민국 전통콘텐츠로써 자리매김하는 방법을 찾아 노력하는 풍수학인이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득. 풍수는 이준기, 김종철, 김대중 선생께 사사 받았다. 기업과 개인에게 풍수컨설팅을 하고 있다. 네이버매거진캐스트에서 <김규순의 풍수이야기>로도 만날 수 있다. www.location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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