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의 중도설
화엄종의 중도설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0.3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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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간추린 백일법문 23

자기는 버리고 남을 이룬다는 뜻은 공을 내버리고 색을 쫓아간다는 뜻으로 공이 즉 색이기 때문에 공을 버리고 색이 되는 것이다. 즉 진공(眞空)의 첫째 조건은 색이 드러나고 공이 숨어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공 이대로가 전체적으로 색이기 때문에 그렇다. ‘남을 숨기고 자기를 드러낸다는 뜻’은 색을 버리고 공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색 이대로가 공이기 때문에 색이 다하면 공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진공의 둘째 조건으로 그 이유는 색 이대로가 전체적으로 공이기 때문이다.

‘자기와 남이 함께 존재한다는 뜻’은 색과 공을 쌍조한데서 하는 말이다. 쌍조면에서 보면 공과 색은 서로 막히지 아니하고 통해 있으므로 공과 색이 둘이 다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와 남이 같이 사라진다는 뜻’은 색과 공을 쌍차한데서 하는 말이다. 그 까닭은 색이 즉 공이므로 색이라 할 수 없고 공이 즉 색이므로 공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색과 공이 사라진 면에서 쌍민(雙泯)이라 하는 것이다. ‘있고 없는 것이 거리낌이 없다’에서 있음[存]은 유(有)이고 없음[亡]은 무(無)로서 유․무가 거리낌이 없으므로 진공이 은현자재하고 합하여 한 맛이 되면서 원융하게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진공묘유의 참 묘법인 것이다.

‘이 방편을 얻어 법에 들어간 자’, 곧 법을 바로 안 자는 둥근 구슬을 손바닥에 두고 보듯이 모든 차별된 견해와 치우친 편견이 다 사라져버린다. 둥근 구슬이란 자성이나 법성을 뜻하는 중도를 비유한 것이다. ‘자성 바다를 마음 끝에서 증득하여 사물 밖에 한가하여’에서 자성 바다는 즉 중중(重重)의 무진법계를 말하는데, 이 자성 바다를 마음 속에 증득하면 세상의 온갖 사물에 걸림이 없이 한가하여 참으로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알게 된다.

내외(內外)가 상통하기 때문에 삼제(三諦)가 원융하고 십현(十玄)이 무애한 천태나 화엄종은 동(東)을 때리면 서(西)가 응하고 공(空)이라 하면 유(有)가 있고 유라 하면 으레 공이 있어 통했다 하면 막히고 막혔다 하면 통하는 것이다. ‘언어와 관념이 모두 끊어진다’에서 언어[語]는 말과 글로 밖으로 표현한 것이고, 관(觀)이란 마음 속에서 분별하는 관념을 말하는 것이다. 공이니 유니 쌍민이니 쌍존이니 하는 도리들은 언어문자와 관념으로 알기는 알아도 실제로 쌍민쌍존하는 무애법계는 자성을 깨치기 전에는 그 참맛을 모르는 것이다. 막힘없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므로 광(廣)이라 하고, 흰 것은 희고 붉은 것은 붉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사상(事相)이 무너지지 않으므로 협(狹)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광과 협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광이 즉 협이고 협이 즉 광으로서 원융무애하게 되어 사사무애가 성립된다.

인다라망이란 보배구슬을 달아 그물을 짜서 제석궁을 둘러쳐 놓은 망을 말한다. 이 인다라망에는 수 많은 구슬이 달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가 서로 비추고 비치어서 일체가 상즉상입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일체만법이 상즉상입함을 인다라망에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석궁에 그런 구슬이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 비유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집을 비유로 들어보면 집을 전체[總]로 볼 때 기둥과 문․방 등은 별개[別]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집을 제외하고 기둥과 문․방 등이 따로 있을 수가 없으며, 또한 반대로 기둥과 문․방 등을 따로 제외하고 집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총(總)이 즉 별(別)이고 별이 즉 총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집 전체를 볼 때는 집 하나로서 같지만 집을 이룸에 있어 기둥․방․문 등이 전부 다르므로 별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집이라고 부를 때에는 모두 다 한 재료로서 집을 제외하고 따로 기둥 다르고 서까래 다르다고 하지 않다. 그래서 동(同)이 즉 이(異)고 이가 즉 동인 것이다. 또 기둥과 문․방 등이 서로 연(緣)이 되어 집을 이루고 있다[成]. 그러나 기둥과 문․방 등은 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壞]. 그래서 성(成)이 즉 괴(壞)이고 괴가 즉 성이 된다.

지금까지 모든 법에 대하여 말로 했지마는, 실제로는 말[言語]도 여의고 앎음알이[知解]도 끊어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말과 지해[言解]가 분명히 서야 한다. 말을 떠났다[離言]고 하여 말 못하고 벙어리모양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 이것도 죽은 송장이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여 말로 표현될 줄 알면 그것은 외도(外道)이다. 결국 말을 떠난 언설(言說)이고 언설이 말을 떠난 것임을 확실히 자각해야 된다. 차정이라는 것은 쌍차 편에서 말하는 것이요, 표덕은 쌍조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본래 연기가 원융자재하고, 이를 논의하는 차(遮)와 표(表)가 또한 원융무애한 것이다. 이것은 말의 표현이 다를 뿐이지 사실은 쌍차․쌍조를 가지고 논의한 것과 다름이 없다. ‘망상을 반함’은 부정을 가리키고 ‘이치가 나타남’은 긍정을 말한다. 즉 여기서는 부정을 하니 긍정이 되고, 긍정을 하니 부정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비유하자면 구름이 다 걷히면 해가 드러나고 해가 드러나면 구름이 다 걷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시 말하면 차가 즉 표이고, 표가 즉 차로서 차정 이대로가 표덕이고 표덕 이대로가 차정인 것이다. 역유역무도 맞고, 비유비무도 맞고, 유라 해도 맞고 무라 해도 맞고 모두 다 들어맞는다는 말이 된다. 앞에서는 다 아니라고 부정을 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긍정이 되므로 여기에서 모두 그렇다고 긍정한 것과 그 내용의 본질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마음마음이 부처를 이룸에 한 마음이라도 부처의 마음이 아닌 것이 없어서라’ 함은 중생의 마음이고 마군(魔軍)의 마음이고 부처의 마음이고 할 것 없어 전체가 다 불심이다. 또, ‘곳곳에서 도를 이룸에 한 티끌도 불국토가 아닌 곳이 없으니’라 함은 만약 인도의 보리수 아래에서만 성도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다. ‘한 티끌도 불국토 아닌 곳이 없다’ 하는 말은 일즉일체 일체즉일로 사사무애한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됨[眞]이니 허망[妄]이니 사물[物]이니 자아[我]니 하는 것은 하나를 들면 전체가 다 따라와 버린다. 마음[心]과 부처[佛]와 중생(衆生)이 혼연이 일치하여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로 모두가 원융무애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중도를 깨친 자리에서 하는 소리이다. 사람이 미혹하면 사람이 법을 따라가 천차만별이 생겨나 처처에 다 막히고 걸리어서 곳곳에서 싸움하지만, 깨달으면 법이 사람을 따라가 전체가 다 한덩이가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원융무애하여 어디에도 거리낄 것이 없다. 이렇게 되면 말이 다하고 생각이 끊어지고 제8아뢰야의 근본무명이 다 빠져버리면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적료(寂寥)하여 인과를 찾아볼 수 없고 같다 다르다고 하는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법계의 중도상(中道床)에 턱 앉는다는 것은 중도를 정등각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도를 정등각한 자리에 가서 보면 그 근본 자리는 예로부터 아무리 요동해도 요동한 일이 없다. 방편으로서 편의상 억지로 이름붙인 것이 부처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움직임이 없는 부처인 것이다. 화엄경의 근본 골자를 총망라해 가지고 만든 것이 이 법성게(法性偈)인데, 법성게의 총 결론은 중도를 성취한 사람이 부처라는 것이다.

* 이 글은 미래에 만들어질 새로운 대장경에 들어갈 “백일법문 (성철스님법어집)”(장경각, 1992)의 뜻을 간추리면서 몇가지 수정하기도 하였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hadogyeom.kr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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