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이 신발
짝짝이 신발
  • 현각 스님
  • 승인 2014.1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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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73.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다. 윌리윌리처럼 소란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질서를 유지한다. 자연의 위대함은 이런데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달콤한 리리시즘만 지닌 속성이 있는 듯하지만 질풍도 지니고 있다. 계절에 따라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지혜는 가히 인간세계를 훨씬 뛰어 넘는다.

만약 거센 바람이 없었다면 나뭇잎은 어찌 되었을까. 나무의 입장에서는 거센 바람이 고맙기 그지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수분이 부족한 겨울을 나는데 뿌리에서부터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까지 수분을 공급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엽수도 그렇지만 활엽수의 경우는 더욱 난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나무는 바람에 의탁하여 생존전략을 치밀하게 세운다. 가지에 붙어 있는 잎을 떨구어낸다. 그리고 다른 사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활엽수는 멀리 날아가기도 하지만 침엽수 잎들은 가까이 떨어져 소복이 쌓이기도 한다. 마치 어린아이의 강보처럼 나무 밑을 감싸주고 있다. 한때나마 푸르름을 뽐내게 했던 보은의 모습 같아 밟는다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렇게 나무들의 이타적인 삶은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에 배운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 일생동안 실천하고 사는 것이 있다. 질서이다. 신발장에 신발을 바르게 놓으라는 가르침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이야 각양각색의 기능성 신발이 범람하고 있지만 짚신이나 나막신을 신고 살았던 옛사람들에 비교해 보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정암 조광조는 평소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갖바치가 있었다. 정암을 위해 정성 들여 손수 가죽으로 태사혜(太史鞋) 한 켤레를 만들어 주었다. 태사혜는 비단이나 가죽으로 만들고, 코와 뒤축 부분에 흰 줄무늬의 태사문을 넣은 고급 신으로 주로 양반들이 신는 마른신 중의 하나였다. 운혜(雲鞋)는 여자들이 신는 마른신이다. 여기서 당혜(唐鞋)와 온혜(溫鞋)로 구분하기도 한다. 당혜는 양갓집 부녀자가 신었고, 온혜는 여염집 부녀자가 신던 갖신이다.

어느 날 양팽손은 조광조가 신고 있는 신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한쪽은 검은색이었고, 다른 한쪽은 흰색이었다.
양팽손이 입을 열었다.
“신발의 색이 한쪽은 검은색이고, 다른 한쪽은 흰색이네요.”
그러자 조광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색깔이 한쪽은 희고, 한쪽은 검다 하여서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신발이란 발에 딱 맞아 편안하면 그뿐이 아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양팽손 역시 웃음 띤 어조로 말했다.
“허기야 대감의 모습은 왼쪽에서만 보면 흰 신발만 보고 검은 신발은 보지 못할 것이요. 오른쪽에서만 보면 검은 신발만 보고 흰 신발은 보지 못할 것이니, 모두 대감이 검은 신발을 신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오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조광조의 정치철학은 한쪽에서만 보면 검게 보일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 보면 희다고 할 것이다. 신진 사림파 쪽에서 보면 개혁적이라 할 것이고, 훈구파 쪽에서 보면 과격하다 할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스스로를 개혁하는 일이다. 개혁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개혁하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도나 체제를 개선하려고 하면 강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개혁은 또 다른 부패한 제도를 낳을 수도 있다. 개혁이란 구호가 자신들 집단의 권력 독점을 위한 카르텔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혁은 공산의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간디는 ≪젊은 인도≫라는 그의 책 속에서 ‘일곱 가지 사회적인 죄’를 지적하고 있다. 한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징조를 일곱 가지로 나누어 본 것이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이 원칙을 교단에 대비한다하여 다를 것이 없다. 인격 없는 교육, 희생 없는 신앙 등이 더욱 그렇다.

지난 주 조계종 개원 종회가 열렸다. 평소 들리는 말에 무슨 무슨 계파가 있다고 한다. 최다선 의원이 임시의장으로 선임되어 신상 발언의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속한 계파의 의원이 아니어서인지 호되게 질타하는 말들이 보도되었다. 어느 의원은 “종회에 처음 와봤는데 실망스럽다. 깽판 수준이다. 깽판 치면 때려주는 법은 없느냐.”고 했다. 임시의장은 “문제점도 지적하고 우리가 그것을 귀감으로 삼아 새롭게 출발하는 종회에서 다짐을 하자는 내용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출가자는 누구나 차서(次序)의 법도를 익힌다. 본인이 초선의원이라고 하면서 최다선 의원의 발언에 인욕하지 못했다는 것이 본인의 수행력을 세상에 드러낸 꼴이 되었다. 인도종교의 기조는 아힘사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존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자비정신의 발로이다.

수행이란 거창한 말이 아니다. 범어를 보면 여실해진다. pratipatti가 수행이란 말이다. 동사는 pratipad로 ‘당도하다’, ‘얻는다’라는 뜻이다. 명사는 ‘확인’이나 ‘지식’의 뜻을 넘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이 행해졌는지를 안다’는 뜻이 명료한 표현이다. 모듬살이에서 앉을 자리, 설 자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으면 수행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을까 짐작이 간다.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말이 있다. 달팽이가 그 더듬이 위에서 싸운다는 말이다. 달팽이의 두 더듬이 가운데 한 더듬이를 촉(觸)이라 하고 옆의 더듬이를 만(蠻)이라 한다. 달팽이 자체를 놓고 보아도 미미하기 그지없는데 더듬이로 제 몸에 붙어 있는 더듬이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다. 참 우직하고 탐욕스러운 것들이라고 치부할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달팽이의 분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고, 탐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등록≫ <법화제거장>에 나오는 짤막한 법담이 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법화선사가 답했다.
“노아천슬(蘆芽穿膝)이다.”

노아천슬이란 ‘갈대가 자라 무릎을 뚫는다’는 뜻이다. 수행자의 진면목은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에게는 처절한 수행만이 있을 뿐이다. 출가자는 나의 본분사가 무엇인지 곰곰이 곱씹어 보아야 할 일이다.

나의 속살림을 챙기기도 급한데 남의 살림을 측량하고자 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남의 살림 걱정은 성인의 경지에서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범부 중생이 남의 살림을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험담이 될 수 있고 자칫하다가는 모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지속적인 그런 습성은 후일에 후회만이 엄습해 올 것이다.

수행집단에서 편 가르기는 세인의 빈축을 사기가 쉽다. 어느 도량이 수행하기에 좋으니 그 도량을 내가 수호하며 정진하겠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이런 참신한 말이 좀 들렸으면 좋으련만.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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