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손질해 주거라
의자를 손질해 주거라
  • 현각 스님
  • 승인 2014.11.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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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74.

산행을 못하는 날이면 일정한 구간을 걷곤 한다. 그러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중간에서 내린다. 산행의 맛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으나 오가는 행인의 모습이 다양하다. 걷다 보면 고주망태의 문뱃내가 코를 자극한다. 무슨 일이 있어 대낮부터 술타령이었을까.

한 참을 걷다 보니 엄마 손에 잡혀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다. 아이의 머리에 시선이 꽂혔다. 도투락댕기를 늘어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천이 검은 머리에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아마 만추의 햇살이 유별나서 만은 아닌 듯하다. 엄마가 엉너리를 부렸다면 저렇게 고울 리 없다. 오직 딸에게 정성과 사랑을 듬뿍 쏟은 손끝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든 도투락댕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 품에 안긴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에 앉아 사랑을 흠뻑 받으리라 상상해 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외면하게 되는 광경이 있다. 버스에서 하차할 때이다. 내리는 문 오른쪽에 앉은 승객이 두 발을 내밀고 있다. 이럴 경우 하차하는 승객에게 불편을 준다. 내민 신발 앞부리가 닿기 때문이다. 물건을 들었을 때에도 매 한가지다.

지하철의 풍경도 가지가지이다. 양쪽 의자에 승객이 앉고 통로에 두 줄로 서서 가는 모습이 일상이다. 어느 승객은 발을 꼬고 앉아 휴대폰을 열심히 보고 있다. 밀려오는 인파에 밀려 이동하려고 하면 운신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저런 상식이 결여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은 왜 배워야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 꼴을 누군들 좋아할 리 없다. 다만 외면할 뿐이다. 뭇방치기가 되었다가 봉변을 당할까봐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냉담한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다.

대감(大監)이란 호칭은 황희가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황희는 자신이 천거한 사람들을 특별한 애정을 갖고 보살펴 주었다. 특히 김종서는 그가 교만해졌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황희가 따끔하게 훈계한 일이 있다.
당시 김종서는 북방의 6진을 개척한 공로로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자 그의 목에 힘이 들어가고 발언도 점점 강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의정 황희가 정승과 판서들이 모여 회의하는 자리에 미리 들어와 있었다. 잠시 후 김종서가 들어왔다. 그가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 거드름을 피우자 하인에게 일렀다.
“병조판서께서 의자 한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니 얼른 나무토막을 가져다 손질해 주거라.”
김종서는 놀라서 의자를 얼른 살펴보고는 자신의 거만함을 일깨우는 충고인 줄 알고 용서를 구했다.
“병판, 앞으로 의자 다리가 짧거든 반드시 수리하시오.”
김종서는 황희의 이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어디서든 온화하고 듣기 좋은 말을 가려 하던 황희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훈계하자 가슴이 떨렸다. 그 후부터 김종서는 일생 동안 거만함을 보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충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날 미워해서 일을 지적하고 나무라는 것은 아닌지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도 있다. 피차 바쁜 세상에 할 일이 없어 상대를 붙잡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충고는 향상된 삶을 살아가라는 지침이 되는 말이다. 김종서는 황희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후일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또한 뛰어난 문신으로서 ≪고려사절요≫를 편찬하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랴. 산천도 변한다. 그러니 인심이야 조석으로 변할 만하다. 주변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 사람 완장 차더니 아주 달라졌어.” 완장은 좋게 표현하자면 신분상승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분이 상승되었다는데 누구나 부러워하고 찬사를 보낼 일이다. 완장 차기 전과 후가 달라졌다는 것은 본성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낮은 곳도 볼 줄 알았던 사람이 높은 곳만 바라보고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연발하는 일이 간간이 드러난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가 변했다고도 하고, 이상해졌다고 한다. 완장은 순간이고 본성은 영원한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는 위정자의 목소리에 순수가 깃들어 있는가. 국리민복을 내세워 정책을 수립하는 펜 끝에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국민과 집단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화려한 겉 포장만 나부끼는 것은 아닌지도 눈여겨보아야 할 일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아삭아삭 낙엽 밟는 소리가 감미롭다. 아울러 부엽토 냄새는 지친 영혼을 맑게 하는 청량제가 되기도 한다. 문뱃내와는 판이하다. 부엽토와 문뱃내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엄연한 경계를 이룬다. 자연은 헌신을 알고 있다. 낙엽이 쌓이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썩어야 만이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곳에 재생이 있고 재회가 있다는 것도 터득하고 있다. 반면에 인간은 통째로 지니려고만 한다. 그래야 흡족해 한다. 윤회는 글로 배우고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창가에 매지구름이 숨차게 달리고 있다. 아마 환생을 꿈꾸며 준령을 넘고 있는 것만 같다. 저 산맥을 넘으면 곧 비를 뿌릴 기세다. 목마른 대지에 내리는 비는 생명 있는 것들의 감로수가 될 것이다.

말 없는 가운데 원만한 행이 따르는 자연의 침묵에 겸허해 진다. 말은 공허를 동반한다. 침묵은 내면을 밝히는 마음의 등불이 된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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