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책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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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택주
  • 승인 2014.12.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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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98.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1월 13일 이명박 정부 대표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꼽히는 하베스트 정유회사 날NARL이 미국계 상업은행인 실버레인지Silver Range에 사실상 팔렸다고 밝혔다. 팔린 값은 그동안 쏟아 부은 돈 2조 원 1퍼센트 수준인 200억 원 안팎이란다.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노영민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최종 확인한 사안”이라며 “전 세계에서 본보기를 찾아볼 수 없는 치욕”라고 짚었다. 4대강을 비롯해 나라곳곳을 더럽힌 살림꾼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어가려면 끝까지 책임져야

기업 살림꾼에게 무한책임을 지워 300년이 넘는 터무니를 쌓아온 기업이 있다. 올해로 창립 346주년을 맞은 독일 머크(Merck KGa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 화학 기업이다. 1668년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주州에 있는 작은 도시 담슈타트Darmstadt에 있는 작은 약국을 하나 사들였다. ‘천사약국Engel-Apotheke’, 자손들은 이 약국 살림을 대대로 꾸려왔다. 이제 머크는 의약품부터 코팅제, 액정(liquid crystal) 따위 기능성 소재, 바이오시밀러 같은 생명과학 제품에 이르기까지 5만5000개가 넘는 제품을 만들어 2013년 66개 나라에서 111억 유로 매출을 올렸다.
 
맥킨지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기업 평균 나이는 15년이다. 그런데 346년 터무니를 지닌 머크에는 뭔가 남다름이 있다. 신뢰, 품질, 안전 이미지를 쌓은 머크는 12대를 이어오면서 남다름을 갖췄다. 오너경영과 현대식 기업경영 조화. 머크 KGaA 지분 가운데 30퍼센트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70퍼센트는 가족들이 가지고 상장을 했으면서도 가족기업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머크. 머크 가문 자손이라는 까닭으로 경영에서 배제되는 일이 생겨서는 아니 되겠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이 머크 가문이란 이름에 올라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개인 이익보다 회사 발전을 앞세운다.

머크 가문은 350년 가까운 기나긴 세월 동안 혁신하려는 기업가가 사라지고 안정을 바라는 관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가장 꺼려왔다. 그래서 소유와 경영을 떼어놓으면서도 폐단으로 짚는 대리인 문제를 넘어서려고 치열하게 고민해 나온 결과가 주식 공개 뒤에도 경영자에게 무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식합자회사다. 단기 실적에 매어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다보면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약해져 지속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1920년대부터 소유와 경영을 떼어놓으려는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0년 이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 구성원이 모두 머크 가문이 아닌 사람으로 채워졌다. 이처럼 혈연이나 혼인관계를 맺지 않은 이들을 입양가족(adopted family)이라 부른다. 무한책임 연한은 은퇴하거나 파트너 자리에서 물러난 뒤 5년까지다. 만약 리먼브라더스 으뜸 경영진들이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파트너들로 이뤄졌다면 리먼은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리라.

위기를 넘어서는 힘은 사람에게서

1816년 머크를 이어받은 젊은 약사 하인리히 엠마뉴엘 머크는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거쳐 1827년에 순수한 알카로이드alkaloid 분리 방법 개발에 성공한다. 이에 힘입어 마침내 머크 바탕을 마련하고, 품질에 역점을 둔 제약, 화학 공장을 세웠다. 엠마뉴엘 머크가 1855년 세상을 떠나자 사업을 이어받은 세 아들 칼Carl, 게오르그Georg, 빌헬름Wilhelm은 생산 시설을 늘려 1860년 800가지가 넘는 기초 의약물질을 생산한다. 40년 뒤에는 10,000가지로 늘리면서 런던, 뉴욕, 모스코바를 비롯하여 많은 해외 법인들을 운영하다가, 20세기 초반 “전문제품”으로 불리는 완제 의약품 생산을 시작한다.

사업은 롤러코스터처럼 늘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때 위기를 넘어서는 힘은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 성과도 사람이 내고, 위기도 사람이 넘어선다. 1853년 머크 고용계약서에는 20년이 넘게 일하면 소액연금을 주며. 종업원 과실이 없으면 병을 앓거나 다쳤을 때도 급여를 주는 것을 고용자 의무라고 적바림하고 있다. 연금과 의료 급여 같은 직원복지제도가 160년 전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의무로 못 박아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음을 깊이 알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알짬에 뒀던 머크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구해낸 것도 사람이었다.

머크 350년 터무니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12일 공습으로 공장 80퍼센트가 무너져 내렸다. 전쟁이 끝나고, 피난을 갔던 직원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돌아와 잿더미가 된 공장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전쟁을 막 마친 때라 원자재를 구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뜻밖에 쉽게 풀렸다. 머크 직원들은 의약품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자재를 미리 안전한 곳에 옮겨놓았던 것. 이처럼 위기를 겪을 때마다 머크는 다시 일어섰고, 그 힘은 늘 사람에게서 나왔다. 

머크 사람 사랑은 회사 안에 머물지 않는다. ‘기업과 사회는 둘이 아니다’라는 창업자와 후손들 생각은 3세기 동안 머크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단순히 기업이 지닌 사회 책임을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쓸모를 빚어나간다. 지역 공동체와 더불어 살림살이는 머크가 진출한 전 세계 67개 나라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머크 가문이 가족경영이라는 벽을 어떻게 뛰어넘어 옳은 쓸모들에 목매이면서도 놀라운 성과와 빼어난 성장을 거듭 이어올 수 있었는지는 곱씹어보면. ‘사람이 곧 회사다’라는 알짬을 놓지 않으면서, 함께할 수 없는 두 갈래를 품어 녹여 하나로 만들었다. 
 
“Was der Mensch thun kann.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엠마뉴엘 머크가 1842년 남긴 말씀으로 2002년에 나온 머크 회사 터무니이기도 하다. 이 한 문장은 회사 알짬과 가족 전통을 나타낸다. 350년 머크 터무니에서 머크 살림꾼들은 직원을 맨 앞에 뒀다. 19세기 엠마뉴엘 머크가 경영하던 때도 천사약국은 남달리 사람을 챙겨 천사약국은 일하고 싶은 곳 가운데 으뜸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머크는 단기 이익과 한결같이 회사 이어가기에 쏠림 없는 양손잡이 회사다. 겉모습은 주인이 늘 바뀌는 주식회사지만, 실제로는 창업주 가문 영향력과 책임이 절대인 가족기업 구조이다. 제약과 화학이라는 닮은 듯 서로 다른 두 갈래 사업을 조화롭게 이끌어 꽃을 피워, 양손에 들고 있는 두 쓸모를 보기 좋게 가져간다.

머크는 오늘날 의약과 화학분야에서 연구 집약 글로벌 기업 가운데 하나로 해마다 10억 유로가 넘는 돈을 혁신에 들인다. 마크 연구개발 의지와 성과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바로 액정이다. 1888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액정 현상을 발견한 뒤 1904년부터 액정 성질을 연구해왔다. 그때는 액정 응용분야가 없어 별 쓸모가 없었는데도 머크는 액정연구 개발 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활발해진 액정 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액정 생산 선두주자로 OLED, 백색LED용 형광체, 유기 TFT, 태양전지에 쓰이는 유기물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다. 가족기업이 아니었다면 당장 쓸모를 찾지 못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이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머크는 특히 사람 사이 유연성과 보수성을 조화롭게 이어왔다. 5만종이 넘는 제품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유통과 물류는 넉넉한 경험과 지식, 여러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함께하지 않으면 도저히 꾸려나갈 수 없다. 머크 지배구조가 빚은 놀라움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머크는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계속이어지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수익성 못지않게 사업 지속성을 꼽는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을 적극 수혈해 전문성이 자유로이 널뛰도록 자율권을 존중하면서도, 단기 이익에 쏠릴 수밖에 없는 전문 경영인 약점을 가족경영이란 틀로서 보완하는 균형잡힌 이중성이 머크 DNA에 깊숙이 자리매김했다.
머크 사업 전략은 ‘이어짐, 탈바꿈, 자람’이다. 머크는 1995년 기업을 공개하면서 후계자 양성 자녀교육 체계를 갖추는데 힘을 쏟았다. 자녀 세대를 15살에서 20살 묶음, 20살에서 30살 묶음 나이에 따라 갈라 회사 전반을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세대끼리 얘기바람을 일으킨다. 20살이 된 자녀들은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암 센터에서 환자들을 만나 그이들 바람을 듣는다. 가족 전용 인트라넷을 만들고 자족 잡지를 발행하고, 여름마다 휴양지에서 파티를 겨울에는 스키캠프를 운영하며 도타운 유대를 쌓았다. 가족 기업 연구를 해온 독일 프리츠 시몬 교수는 “가족 기업이 오래도록 살아남으려면 소유주 젊은 세대들이 회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머크 가문은 회사 정보제공과 가족 자본을 지키려고 감정 연대 형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머크 가문 자녀들이 회사에 들어와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다른 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쌓은 다음 엄정한 심사를 받아 지지를 얻어 입사하는 길뿐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수평문화

머크는 3세기 전인, 1668년 창업 때부터 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가 겪는 상황을 판단하여 바꿔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곧 모든 직원들이 제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갖도록 한 것이다. 그 본보기는 5만개가 넘는 제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머크는 ‘기업가 정신에서 물러섬’을 더없이 두려워한다. 기업가 정신이 없다면, 회사는 물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삶도 사그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크 직원들에게는 현재 상황을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움직이는 기업가 정신이 필수다. 5만개가 넘는 제품 하나하나는 바로 창업자와 직원들이 스스로 그러한 기업가정신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머크 구성원 모두가 소비자가 바라는 쓸모를 읽고, 썩 나서서 제품을 늘리는데 땀 흘렸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한국 머크에서는 대표이사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벌금을 낸다. 한 번 잘못 부를 때마다 천원씩 내야한다. 사장님 대신 ‘쾨닉 님’이라고 이름을 불러야 한다. 2010년 4월 한국 머크는 과장, 부장, 이사와 같은 직급을 아예 없앴다. 대신 업무를 또렷하게 꿰뚫을 수 있는 직무 중심 영문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 과장님이 아니라 IT스페셜리스트와 같이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름을 부를 때는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여 한국다운 존중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호칭 변화가 무엇이 그리 대수롭냐고 물을 수 있다. 상사나 부하직원을 어떻게 부르든 중요한 건 얼거리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머크 사람에 대한 철학이 짙게 배어 있다.

듀폰은 나일론, 바이엘은 아스피린, 엑손이나 쉐브론은 석유라는 대표 제품이 바로 떠오르지만, 머크에는 시장을 쥐락펴락할 만한 제품이 없다. 대신 머크는 5만개가 넘는 제품을 서로서로 조합하고, 발전시켜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한다. 머크가 제약과 화학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꾸준하게 이어가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또한 모자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남다른 바깥 DNA를 적극 수혈해 머무르기 쉬운 기업 문화와 전략을 늘 긴장되게 만드는 것 또한 머크 특기 가운데 하나다. 사람을 고갱이에 둬 사업을 넓히고 끊임없이 이어가려고 회사 이익을 가문 이익에 앞세운데 있다. 머크 가문은 ‘회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 신탁관리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머크를 만든 원동력이다.

또한 머크 가문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는 겸손, 근면, 검약이다. 흔히 300년이 넘는 가족기업 일원이라면 자가용비행기나 롤스로이스, 페라리 따위 승용차를 몰 것이라고 여기지만 머크에는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 대부분 사람처럼 저마다 일을 하면서 삶을 꾸려간다. 돈을 벌려면 스스로 일을 해야지 어버이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기대어 놀고먹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가문 사람임은 자랑스러워하지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뚜렷이 심어준다. 돈이 아닌 쓰임새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으뜸가는 유산이다. 지주회사 이머크(E. Merck KG)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회장이 한국경영자에게 남기는 교훈은 “떠나야할 때를 놓치지 말고 떠나라!”였다. 

나라살림꾼들만 나라 어지럽히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절집을 대표하는 조계종단과 선학원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서로 네가 더 더럽다면서 ‘너 죽고 나 살자’며 겨루는 꼴이 낯 뜨겁다. 나라 살림이든 절 살림이든 끝없이 이어가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림살이해야 한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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