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 마성 스님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14.12.0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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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마성 스님의 摩聖斷想-10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계획했던 일들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 옛 사람이 “시간은 너무나 빨라서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無常迅速, 時不待人].”고 말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황혼을 맞이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인간이 시간을 단위별로 구분한 것은 시간의 소중함을 망각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만일 인간들에게 무한정 시간이 주어진다면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一會一期] 뿐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다.

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가 어느 날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매순간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범부들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망각하고 산다. 그러다가 중환자실에 실려 오면 그때서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일도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태양을 다시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월을 보내기 위해 소일(消日)거리를 찾고 있다. 대관절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기에 소일거리를 찾는단 말인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되는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다. ‘소일(消日)’이 그것이다. 아,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1년 360일, 1일 96각을 이어대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농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애쓴다. 만일 해를 달아 맬 수만 있다면 반드시 끈으로 묶어 당기려 들 것이다.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날을 없애버리지 못해 근심 걱정을 하며 장기․바둑과 공차기 놀이 등 하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인가?”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글은 일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다산은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 18년이라는 긴 유배생활에서도 저술에 몰두했다. 그가 남긴 저술들을 총정리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는 총 154권 76책이나 된다. 그가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해의 마지막 달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밀려있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왔던 일들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다. 올해에 해야 할 일을 내년으로 미루면 영원히 못할 확률이 높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주변 환경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살다보면 주변에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여간다. 주변에 불필요한 잡동사니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의 마음도 번뇌로 가득 차게 된다. 잡동사니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단순히 잡동사니를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변할 수 있다. 자신을 괴롭혀 온 부정적인 감정들을 없애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마침내 자신이 인생에서 진심으로 원하던 것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컴퓨터의 불필요한 정보들도 한해를 마감하기 전에 비우는 것이 좋다. 그러한 흔적들도 모두 정신적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상처받았던 마음도 비우는 것이 좋다. 상처받은 마음이나 불행했던 순간들을 지우지 않고 쌓아두면 더 큰 병으로 나타나게 된다.

한때 우띠야(Uttiya)라는 존자가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붓다께서 문병을 갔다. 그때 우띠야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 병은 회복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을 넘길지 내일을 넘길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죽기 전에, 네 번째의 깨달음인 아라한과를 얻어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한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도록 수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짧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우띠야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우띠야여, 너는 시작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시작이 청정해지면, 너는 그때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시작이란 정화된 도덕적인 행위[戒]와 바른 견해[正見]를 말한다. 바른 견해란 인과의 법칙 또는 업의 법칙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띠야여, 너는 도덕적인 행위와 바른 견해를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는 정화된 도덕적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사념처관(四念處觀)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수행하면 너는 괴로움의 소멸을 얻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는 도덕적 행위의 청정, 즉 계청정(戒淸淨, sīla-visuddhi)을 강조했다. 계청정은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행위가 청정해질 때, 마음은 고요하고 맑아지며 행복해진다. 계청정을 이루어야만 비로소 마음의 청정, 즉 심청정(心淸淨, citta-visuddhi)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도덕적 행위의 청정은 수행자가 향상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선결 조건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행위의 청정에 수행환경도 포함된다. 수행환경이란 수행처 주변의 환경과 몸의 청결상태 등을 말한다. 이를테면 주변이 어수선하고 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한다면, 아무리 앉아있어도 마음의 집중을 얻기 어렵다. 이것은 수행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수행이 무르익으면 어느 곳 어느 때에나 가능하겠지만, 초보 단계에서는 외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행의 초보자에게는 주변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주변과 신변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잡다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즉 외형적인 환경이 내면의 평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자신의 주변은 물론 몸과 마음가짐부터 깨끗이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곧 수행의 출발이다. 따라서 실제의 수행보다도 수행을 위한 준비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복장에 따라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정장을 차려 입었을 때와 작업복을 입었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복장에 따라서도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지는데, 어찌 외부의 환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준비과정 없는 수행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행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변 환경은 물론 몸과 마음가짐까지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른 잡념 없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수행을 위한 이러한 모든 준비과정이 곧 삼학의 계학(戒學)에 해당된다. 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과 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한해를 마감하기 전에 섭섭했던 마음들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했던 과오들도 참회하는 것이 좋다. 참회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한 것이다. 또한 가급적이면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 사고는 나쁜 에너지를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새가 공중에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지난 흔적을 지우는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인간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불교에서는 업(業, karma)이라고 한다. 좋은 흔적이든 나쁜 흔적이든 그것이 쌓여간다는 것은 윤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해를 마감하면서 모든 흔적들을 지우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M.Phil.) 학위를 받았다. 태국 마하출라롱콘라자위댜라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현재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겸임교수 및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된 관심 분야는 불교사회사상이다. 현실을 떠난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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