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근원통은 소리를 듣는(아는) 것을 통해 참본성을 깨닫는 것에 있다.
소리를 듣고(아는) 것은 성품이다. 그러니까, 소리를 듣는 것은 내가 아니고 성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듣는다는 입장은, 성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생각으로 이해한 것이다.
성품은 소리가 있자마자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 후에 그 소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내가 이런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소리가 있고, 그 소리를 듣는 나, 즉 이원적 구조로 나뉘어서 대상인 소리를 식별하는 과정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근원통은 소리가 아닌 소리를 듣는(아는 앎) 것에 집중하여야 한다. 의식의 촛점이 소리에서 소리를 듣고아는 앎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 때, 앎(의식의 각성)만이 뚜렷하게 자각된다. 그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 앎에 집중하는 수행이 거듭됨에 따라 그 앎은 더욱 밝아지고 뚜렷해진다. 그 앎을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수행을 하면, 그 앎과 일상이 통합된다.
앎은 눈이고, 그 앎의 몸은 진여(불성)이다. 앎이 신묘한 것이다.
(2)대상을 바라볼 때, 소리를 들을 때, 생각을 할 때도 진여는 함께 한다. 때문에 언제나 있는 진여를 확인하면 된다.
진실을 말하자면, 진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다. 진여가 모든 것을 하는데 하고있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상에 관심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대상을 보고있는 것에 두면 된다. 주의할 점은, 보는 것을 대상으로 보려고 하면 안된다. 대상에 눈길을 둔 의식의 촛점을 서서히 눈앞으로 끌어와야 한다.
회광반조라는 말이 주는 오해는, 대상을 바라보는 의식의 방향을 유턴하는 것같은 표현이다. 유턴하는 것이 아니고 후진해야 한다. 앞으로 튀어나간 나의 분신을 끌어와서 합체하는 것처럼.
*이 연재는 재가자도 사부대중의 일원으로서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부처님 말씀을 증명하고자 기획됐다.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재가자 수행을 장려한다는 취지에서 독자 제위의 넓은 혜량을 바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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