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별심으로 해석하면
생각이 끊어진(넘어선) 비이원을 이원적인 생각으로 헤아리면 이원적인 생각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생각방식으로 인식되는 것들은 주관과 객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인식하는 것들은 대상일 수밖에 없다.
깨달음은, 이원적 인식방식의 틀을 벗어나서 비이원적 앎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비이원인 진여'를 생각으로 헤아리면 생각으로 전환된 진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진여를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모든 가르침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진여)도 반연심으로 헤아리면 반연한 법이 된다고 경전에서도 이르고 있다. 하지만, 반연심(분별심) 자체를 돌이켜보면 반연심이 곧 진여심임을 깨닫게 된다.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쉽기로 말하자면 세수하다가 코만지는 정도이고, 어렵기로 말하자면 태평양의 바다물을 바가지로 전부 퍼내야 한다.
(2)실상을 확인하는 곳은?
모든 것이 실상이지만,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지금! 여기!’이다.
‘지금! 여기!’는? 시간적으로는 현재라는 시간마저 벗어난 것이고, 공간이라는 장소마저 벗어난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관념이다. 찾아보면 없다. 지금! 이 순간! 의식(마음)이 만들어낸 환영 같은 것이다. 의식이 ‘지금! 이 순간!’을 잃어버리면, 미래->현재->과거라는 시간적 흐름이 생겨난다.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공간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도, 나의 몸이 있다고 여기면, 그 몸이 있는 곳이 공간이 된다. 육체라는 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몸이 위치한 공간도 함께 생겨난다.
이렇게 환영처럼 생겨난 공간관념은, 몸을 포함해서 일체가 환같고 꿈같은 것임을 깊이 실감하면, 공간관념도 허물어진다. 시간과 공간이 함께하는 관념이지만, 이해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시간과 공간이 있지만, 꿈을 깨면 꿈속의 시간과 공간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눈을 뜨고 살아가는 생시 또한 꿈과 같다. 이원적 생각이 만든 관념의 꿈속에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지금! 여기!’ 깨어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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