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를 벗어난 ‘산티데바’ ②
‘인터스텔라’를 벗어난 ‘산티데바’ ②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14.12.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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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해제 2.

기적을 보인 이후 샨띠데바는 그 길로 남인도로 향했다. 소성거사(원효)처럼 전 인도를 떠돌아 다니던 샨띠데바는 실제로는 신통력도 뛰어났었나 보다. 그는 외도(外道) 출신의 교사인 샹크라데바(Shankradeva)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 대자재천(大自在天)의 만다라를 크게 세우려 할 때 신통력으로 대결했다. 폭풍을 일으켜 대자재천의 만다라를 파괴하고 샹크라데바 역시 불교에 귀의시켰다 한다.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지만 신통력이 있을 정도로 수행을 많이했던 것 같다고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신통력에 관심을 갖는 인도인들에 대한 일깨움인데 굳이 이럴 전승까지 전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샨띠데바의 만행[입전수수]은 지금도 티베트 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웅담이 되었다고 한다.

샨띠데바의 법회에 참여한 비구 대중들이 아난존자처럼 ‘이와 같이 들었다’는 내용을 결집해 낸 책이 《입보리행론》이다. 산스크리트 원전이 전해져온 아름다운 시로 된 이 책은 후기 대승불교문학의 걸작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이 자기 나라말로도 어렵지만, 다른 나라말로 바꾸기란 더 어렵다. 들은 이도 많았고 또 해석을 다르게 하는 이도 많았다. 비록 8세기 이후 수행자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주석서만해도 130여권이 넘을 정도로 인기도 있었다. 하지만 통일된 ‘원전’은 만들어지 못한 듯하다. 애초에 ‘원전’을 바라는 것은 우리의 기대일 따름이다. 모든 ‘경전’이 그렇듯이 비록 결집이라는 필터를 통과했어도 그건 교학적인 해석일 따름이다. 아난존자가 성취한 후에 결집에 참가했듯이, 모든 경전은 눈밝은 이를 기다려 ‘새롭게’ 정리할 수 있을 따름인가 보다. 언제까지나 선지식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우리 사부대중은 조금씩 읽어가면서 스스로 체득해 가면 될 따름이다.

10세기에 천식재(天息災)가 번역한 한문본에는 용수(龍樹)가 지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산티데바는 나가르주나(Nagarjura, 용수龍樹)의 계보를 이은 인도 중관학파의 위대한 수행자 가운데 한 분이다. 까닭에 혼동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도 틀리니 내용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저하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역본에는 제2장의 내용이 축소되어 있고, 제 3~4장은 빠져 있다. 현재에도 티베트에서 애송되는 주석서만도 8종이나 된다고 한다. 최연철 박사에 의하면, 18세기 티베트어 문법의 거장 시뚜 린포체(Situ Rinpoche)가 내용 전부를 검독한 데게판(Derge Edition) 땐규르를 판본이 믿을 만한 판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 판본과 다른 여러 비교본과 북경판 등을 포함한 판본 비교를 거친 교정판(델리 교정 데게판)이 원전이 되고 있다. 달라이라마가 참고한 책도 이 책인가 보다.

이 책의 티베트본 제목은 《입보살행(入菩薩行)》 이며 한역본은 《보리행경菩提行經》 (4권)이다. 결국 보살로 들어가기 위한 행인 보살행·보리행에 대한 경전이란 뜻이다. 보리행, 즉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육바라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전은 모두 10장 971송(頌)이며, 보리심을 일으키고, 없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이후에 더욱 증장시키기 위한 내용들을 순서대로 담고 있다.

제1장은 보리심의 공덕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2장 <죄업 참회품>에서는 보시(布施) 바라밀과 함께 보리심 수행을 위해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제 3~5장은 지계(持戒) 바라밀과 관련하여 <전지품>, <불방일품>, <호계정지품품>등의 일종의 예비수행단계를 설했다고 한다. 근데 무슨 수행에 예비가 있고 본 수행이 있는지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 제6~9장은 각각 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바라밀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10장은 보리행을 하는 제불(부처)과 보살을 찬양하며 이 모든 깨달음을 ‘중생구제’ 즉 중생과 함께 나누겠다는 <회향품>이 나온다.

티베트불교의 고유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로종(Lojong), 즉 ‘마음 바꾸기’라 불리는 수련법이 있다. 그런데 그건 티베트 사람들의 억지스러운 주장일 따름이다. 부처님께서 애초에 ‘무아(無我)’나 어쩌면 ‘비아(非我)‘를 말씀했을 때,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 말자체가 ’나‘라고 할 것도 없는데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있냐는 말을 내포한다. 나와 너라고 할 것이 없으니, 서로가 애착을 버리고 ’너‘를 ’나‘처럼 서로 배려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마음바꾸기다. 그런데 굳이 로종이니 뭐니 하면서 티베트 불교가 수승하거나 고유한 것인양 선전하는 것은 그다지다.

여하튼 그런 로종 수행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누구는 ‘나와 남을 바꾸어 보는 수행’이라고 하는  내용에는 ‘하심(下心)’을 넘은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을 어머니로 보고 그 사랑에 대한 보은을 통해 진정한 ‘평등심’을 펼쳐 나가라고 말한다. 이 역시도 ‘하심’이 ‘평등심’은 아니지만 ‘하심’이 ‘평등심’보다 낮은 레벨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같은 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말도 아니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하심’이란 남에게 나를 낮추는게 아니라 내가 남보다 나을게 없다는 것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굳이 평등심과 다른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오히려 ‘하심’이니 ‘분별심’, ‘자비심’, ‘연민’, ‘보리심’ 이런 걸 구분하는 것 자체가 교학공부하고서 ‘선지식’입네 하는 이들의 사량분별일 따름이다. 《입보리행론》을 새롭게 산문으로 해설하는 이유도 ‘티베트 불교’의 수승한 장점을 배우면서 아울러 ‘티베트 불교’가 굳이 특별한 것도 없음을 알리기 위함도 있다.

2004년 달라마라마 존자가 한국인을 위한 법회에서 함께 읽으며 눈물을 흘렸을 만큼 이 책은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 존자는 이 책에 대해 “일체중생을 위해 깨닫겠다는 마음인 보리심에 대해 설한 책 중 이보다 더 뛰어난 논서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만큼 좋은 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십수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시봉하며 수행하고 있는 청전(淸典)스님과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티벳불교고등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을 지낸 밀교학자 최로덴(최연철) 박사가 번역본을 낸 듯하다.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래 『법구경』과 『숫타니파타』에 이어 가장 애독하는 불교경전을 넘어 인문교양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아름다운 책을 많은 분들이 애독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타락한 일부 비구 권승들로인해 이미지가 악화일로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이 2013년부터 승가대학원의 정식 교재로 채택했다고 하니 그건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 이 기사는 달라이라마 존자의 동영상 청전(淸典)스님과 최로덴(최연철) 박사의 책을 참조하여, 산티데바의 입장에서 운문인 입보리행론을 산문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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