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꿈꿨지만 지금 내 화두는 문화예술”
“출가 꿈꿨지만 지금 내 화두는 문화예술”
  • 사기순
  • 승인 2014.12.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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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나의 거울] 18. 문화게릴라 이윤택
“의식·호흡으로 시공간 조절 변화시켜야”

사람들은 그를 연극계의 거장으로 부른다. 맞다. 그는 거장이다. 다만 ‘연극계’라고 한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시인이요,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요,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저술가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방위예술가인 그를 시인 기형도는 ‘문화 게릴라’라고 표현했다. 그가 창설한 연희단거리패 전용극장의 이름도 게릴라 극장인 것을 보면 그 역시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은발의 그를 처음 본 순간 ‘문화 보살’, ‘문화 도사’로 다가왔다. 요즘 한창 공연 중인 ‘혜경궁 홍씨(12월 16일부터 12월 28일까지 레퍼토리 공연,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 연습장에서 배우에게 연기와 춤을 지도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전율이 일었다. 몸소 배우들의 춤사위를 일일이 지적하고 설명해 주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수 재현해 주는데, 그의 몸짓에서 그야말로 도사님 같은 대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내가 늘 ‘배우는 자신의 의식과 호흡으로 시간과 공간을 조절하고 변화시키는 주체적 존재’라고 강조하잖아. 배우의 몸짓 하나하나는 평범한 액션이 아니란 말이지. 몸짓에, 춤 동작 하나에도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고 혼을 담아야 해. 지금 보여준 자네들의 움직임과 철저하게 의식과 호흡을 담아서 이렇게 하는 것과 어때?”

그가 배우들에게 해 주는 말을 들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호흡법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마치 선사가 제자들에게 선 수행법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았다. 체험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말과 몸짓과 호흡이었다. ‘혹시나’ 하고 여쭈었는데, 역시나 그는 젊은 날 경봉 스님에게 지도 받으면서 오랫동안 선 수행을 해 왔고, 출가를 꿈꾸던 수행자였다.

“세상살이가 시답잖아서 직지사 녹원 스님께 출가의 뜻을 비치고 제자로 받아들여주기를 청했는데, ‘1년 뒤에도 딱 지금 같은 마음이면 받아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후 너무나 바빠져서 출가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스님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신 것은 그가 세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할 그릇임을 알아차리셨던 것일까? 가난한 시인이었던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문화예술가로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여 온 나라에 명성을 떨쳤다.

모태신앙, 어머니의 믿음 덕분에 꿈을 이루다

사실 내게는 오래 묵은 습이 한 가지 있다. 불교와 인연을 맺고부터,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이든 불교적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게 병통이랄 수도 있다. 특히 인연법과 수행력을 세상살이의 근원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꿰어 맞춘다. 이 거장과의 인연에서도 예의 그 버릇에서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면서 맘속으론 벌써 불교적 상상력이 가동된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 가지 분야에서만도 잘하기 힘든데, 어떻게 그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할 수 있는지요? 그 힘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사실 예상에 어긋나는 답변도 듣기 마련이다. 그럴 땐 그냥 슬그머니 넘어간다. 지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알고 보면 다 지중한 인연법의 소산일 거라고 맘속으로 중얼중얼. 그런데 너무나도 다행히 그는 “제 모든 작품의 원천은 불교와 젊은 날의 수행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와우! 그의 말에 힘 받아서 곧바로 불교와의 인연에 대해 물었다.


“모태신앙이죠. 제가 힘들어 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늘 태몽을 얘기해 주셨지요. 그 말씀을 들으면 기운이 절로 났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해 어머니가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하셨답니다. 100일 기도 후 태몽을 꾸셨는데, 붉은 장삼을 입고 커다란 쇠창을 든 눈과 귀가 엄청나게 큰 사람이 찾아와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었다고 해요. 사실 어머니 말을 들으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신장님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이 들어서 양산 통도사 사천왕문을 지나다가 사천왕상을 보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다’ 싶었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말씀에 반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말씀을 들으면 마치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머니도 제게 특별한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특별 대접을 받고 언제 어느 때나 ‘잘 될 거다, 신장님이 지켜주실 거다’라고 해 주신 제 어머니의 교육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실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사람이 스페셜한 삶을 꿈꾸고 열정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어머니의 믿음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솔직히 그동안 바쁨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다가 9개월 만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다시 글을 쓰게 된 것도 나 역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로서 지극정성으로 100일 기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식을 기른 그의 어머니에게서 큰 교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겪고 난 뒤부터 단단해졌다. 마치 목석처럼 삶의 희로애락에도 무심해졌다.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갈대와 같다. 아들이 웃으면 같이 웃고 아들이 울면 같이 울게 된다. ‘어떻게 해야 아들을 잘 도울 수 있을까?’가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주위의 인생 선배들에게 자문도 많이 구하고, 핀잔 섞인 충고도 자주 듣는다. 그네들은 한결같이 “너의 가장 큰 문제는 아들을 너무 부처님처럼 떠받드는 거야. 일찍 버릇을 들였어야 했는데.”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릴 때는 아들에게 ‘현재 부처님’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섬기듯 존중했지만, 아들이 점점 자라면서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실망하는 표정도 짓고, 일부러 무관심한 태도도 보이고, 방임한 적도 많았다. 혹시나 주위사람들이 걱정하듯 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집착이 되지나 않을까 미리 염려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기우였다.

코이의 법칙, 같은 물고기도 어항에서 기를 때와 강에서 자랄 때 크기가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처럼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믿음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자식은 부모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더 나아가 내 아들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 내 아들만 부처로 섬겨야 할 존재가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부처로 섬겨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부처’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때 내 아들의 성장도 잘 도울 수 있으리라.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듯
결핍이 성공의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연출가이기 전에 시인이다. 나는 작가 중에서도 특히 시인을 존경한다. 말씀언(言)자와 절사(寺)가 합쳐진 시(詩)는 깨닫기 전에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사춘기 문학소녀 시절부터 시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 시인으로서도 이름을 드날린 그에게서 깨달은 도사님의 풍모를 느끼게 된 것 또한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희 어머님이 문맹이었습니다. 한글도 떼지 않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머지 공부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동시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글을 동시를 쓰면서 깨우쳤습니다.”

‘철수야, 학교 가자’라는 식의 문법적으로 한글을 배우지 않고 동시를 쓰면서 감성적으로 한글을 접한 것이 그를 시인으로 키웠단다. 어머니의 문맹 때문에 낙제생이 된 것이 아니라 문맹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이 될 주춧돌을 놓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그뿐만 아니다.

“중학생 때는 문맹인 어머니를 위해 〈천수경〉과 〈천지팔양신주경(天地八陽神呪經)〉을 아마 수천 번은 읽어 드렸을 겁니다. 어머니는 제가 읽어드리는 소리를 듣고 경전을 외우셨습니다. 저 역시 위험할 때 자연스럽게 천수경의 호신진언을 외우기도 하고, 그 덕분에 불연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번뇌가 크면 깨달음도 크다고 한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결핍이 성공의 주춧돌이 된 것을 보면서 거듭 감동하게 된다. 요즘은 학업 성취에 조부모의 재력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의 삶이 더욱 크나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결핍이 과잉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까지 생긴다. 또한 문맹인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원하신다 해서 경전을 읽어주고 또 읽어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환희롭다.

이 세상에 공짜는 하나도 없다. 그는 그 효행 덕분에 천수경과 천지팔양신주경의 깊고 깊은 깨달음의 세계를 알게 모르게 체득했고, 마침내 복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오구’, 1989년 초연 이래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온 연극 ‘오구’의 첫 장면에 천수경 구절이 나온다. 그가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제작하여 전 국민에게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 오구는 그를 전방위예술가로 자리 잡게 한 그의 대표작이다.


또한 현실과 과거·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혜경궁 홍씨’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한국적 정서, 몽환적인 분위기, 거침없는 자유로움, 연극에 제의와 전통 연희, 가무를 담는 새로운 시도, 그 남다름이 어머니를 위한 경전 읽기에서 자연스레 체득된 지혜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는 그의 아버지 49재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연극 영화에 상당 부분 활용했다고 토로했다.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
불교 경전은 문화예술콘텐츠의 보물창고

2013년 12월 초연 때도 일찌감치 전석 매진, 2014년 한국연극평론가 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수상한 혜경궁 홍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2013년 최고의 연극이었다. 좋은 작품을 계속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레퍼토리 시스템 덕분에 지난 해 보지 못한 혜경궁 홍씨를 올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레퍼토리 공연에도 전석이 매진되었는데, 다행히 공연 연습 때 만났던 그에게 간청해서 겨우 볼 수 있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열기가 혜경궁 홍씨에 대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혜경궁 홍씨와 정조·영조 등 주변 인물들의 일상의 기록 속에서 되살려낸 삶의 희로애락,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뛰어넘어 그 시대 상황과 역사의 숨결까지 생생하게 살려낸 점, 게다가 간간이 위트 섞인 말투와 연출... 재미와 해학·감동을 선사한 그의 작품에 관객들은 몰입했고,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한 가족 간의 갈등과 내밀한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뜨거운 기립박수로 마음을 보냈다.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예술은 국가경쟁력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 사는 세상을 맑고 밝게 만들고자 하는 꿈을 지닌 종교계에서는 문화 예술로 진리를 승화시킬 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의 조언이 큰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풀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압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롤랑 바르트의 상상력 이론입니다. 불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 중흥을 하려면 지금 문제를 비판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계발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문화 예술 분야라고 봅니다. 문화 예술로 대중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어야 합니다. 불교 경전은 무한한 콘텐츠의 보물창고입니다. 불교적 가치관으로 불교 콘텐츠로 만들면서도 세련되게 잘 만들어서 불교를 뛰어넘는, 불교신자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설법이나 스토리가 아닌, 미장센(연출미)이 중심이 되는 시대입니다. 제가 보기에 불교 소재 가운데 목련 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지옥을 찾아가는 목련경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면 아마도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이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화두가 한 가지 더 늘었다. 불교신자의 꿈은 자리이타요, 이고득락이다. 스스로 또 남들로 하여금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이생을 살아가는 꿈일 수 있다. 불교적 콘텐츠로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일깨워주고 예술 작품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불사(佛事)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길이 있음을, 또한 문화 예술을 통해 그 뜻을 널리 전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또 하나의 화두가 생겼다. ‘목련경, 펀딩을 어떻게 조성할까?’

이윤택(63) 님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7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국립극장 예술감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연희단거리패ㆍ가마골소극장ㆍ밀양연극촌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종상 각본상, 백상예술대상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오구-죽음의 형식], ‘느낌 극락 같은’으로 서울 국제 연극제 작품상·올해의 연극 베스트 5선정 연출상·백상예술대상 연출상 등을 수상했다. 산씻김, 오구-죽음의 형식,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문제적 인간-연산, 일식, 도솔가-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손숙의 어머니, 강부자의 오구, 월드컵 기념공연-연오랑과 세오녀, 창작뮤지컬 이순신, 태양의제국-도래인 이야기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하고 극본과 시나리오[오세암<박철수 감독>, 장군의 아들 2<임권택 감독>, 바보각시, 오구,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제26회 대종상 각본상 수상]를 썼다. 논문으로 <예술가의 자리는 낮은 곳에 있다>, 저서로 여러 권의 시집 외에도 <이윤택의 연기 훈련>, <이윤택의 연기론 말과 몸> <춤꾼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민족사 주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법륜>, <현대불교>, <불광> 편집부장, 불교시대사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엮은 책으로 『행복해지는 습관-정무 스님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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