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꿈
작은 꿈
  • 현각 스님
  • 승인 2014.12.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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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79.

해돋이를 보러 떠나는 행렬을 본다. 행선지를 정동진으로 정한 사람도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거주지 주변 산을 오르기도 한다. 남산이나 북한산 혹은 인왕산에 오른다. 사실 어제 해가 다르고 오늘 해가 다르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새해의 다짐을 하고자 하는 장소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돋이를 나서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런 각오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별의별 다짐을 하기 마련이다. 그 소망은 마치 눈석임과 같아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의 옹알이 마냥 알아들을 수 없는 마임과 같다. 간헐적으로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이를테면 얽히고설킨 핏줄을 묵묵히 관통하고 있는 피의 순환과도 같다.

지난해에 못다 한 일이 많다. 그러니 금년에는 기필코 성취하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분석을 잊고 새 다짐만 하는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다. 실은 지난해의 일을 반성한다는 것은 이상을 너무 크게 잡은데 원인이 있다. 우선 가능한 일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보다 지나치게 올려 잡는 바람에 회로에 과부하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이상적인 방법은 지나친 설계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만 격이다.

이제 겨우 어섯눈을 뜬 사람이 뭐가 그리 하고 싶을까. 세상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덤벼든다. 운동선수가 준비운동도 없이 주경기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의욕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점잖게 의욕이라고 했지만 성급함이나 과욕이라고 말해야 적당한 표현이 될 듯하다. 이러한 선수의 행위는 결과가 뻔하다. 사람들은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것도 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인생은 짧다. 마치 사자에게 송곳니도 주고 뿔도 주지 않았듯이 말이다.

나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면 그 길로 가면 그만이다. 단 그 길도 쉼 없는 길이어야 하고 안주한다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쉰다거나 머뭇거림은 낙오할 소지가 많다. 왜냐하면 상대는 움직이고 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목표지점까지 자식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어머니의 두 손 모음은 성스럽다. 새해의 모습만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이 땅의 어머니들은 지나새나 자식을 위해 축수를 올린다.

새해에는 꿈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과다한 설계는 결국 연말에 가서 후회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작은 꿈은 내실이 있다. 반면에 지나친 꿈은 바람 든 무처럼 푸석하여 맛도 잃고 신선감도 떨어지기 쉽다. 작은 것은 실로 큰 것이다. 작은 옹달샘을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뽀글뽀글 포말을 일으키며 솟는 석간수가 얼마나 미력한가. 그러나 그 포말은 작은 샘의 원천이 되고 너른 강의 시원이 된다. 자연과 인간의 차이는 이런데 있다. 처음부터 뭐든 크게만 잡으려는 인간의 면면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작은데서 시작한다. 작은 것은 하찮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작은 것은 큰 것을 품을 수 있는 견고한 인자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 이웃 돕기에 성금을 보낸 사람들이 소개되기도 한다. 아무개가 얼마를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우 이웃이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방송에서 말하는 불우 이웃이라면 독거노인, 결손가정의 소년 소녀 가장을 주로 일컫는 말이다. 정작 그들만이 불우 이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질의 결핍이 불우하다는 것과 직결된다는 것은 억지 같다. 물질의 결핍보다 정신적 결핍에 찌들려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본다.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물질이 부족한 사람은 물론 사상의 빈곤자도 구원해야 훨씬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소란은 사고의 결핍자들이 저지르는 단면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변만(遍滿)한 것들이 많다. 비근한 예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 들이다. 라틴어 ubique의 어원에서 유비쿼터스(ubiquitous)가 나왔다. 이 말은 영어의 형용사로 ‘동시에 어디서나 존재되는, 편재하는(omnipresent)’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정보통신망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여과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새해에 작은 바람이 있다. 지난해와 같은 새해가 되었으면 하고 기원해본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쉼 없이 연재를 하였다는 점에 스스로 위안을 한다. 그렇게 하기에는 독자들의 성원에 큰 힘이 실려 있다. 무엇을 잘 한다기보다 중단 없이 하는 일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한다. 한 주가 지나면 독자와 만난다는 설렘을 갖고 또 한 주를 맞곤 했다.

이러한 생각이 호사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심저에는 짐이 있기 때문에 연재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세상에 대한 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숨 쉬고 있다는 공기에 대한 짐이다. 숨 쉬는 것이 무슨 짐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수 있다. 매연이 가득한 곳에 갔을 때 맑은 공기의 소중함은 더욱 크다. 그러니 순도가 높은 글을 써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쓸모없는 것을 잘 쓰는 것이 성인의 삶이듯이 세상 관심 밖의 것들에 시선을 집중하고자 한다. 강가의 돌멩이 하나에도, 눈송이 하나에도, 산새들의 푸덕이는 날갯짓에도 각각의 의미가 있다. 그곳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삶은 세상 무엇이 부러우랴. 천지가 내 것이다. 등기 없는 내 것은 더욱 좋다. 모든 세금이 감면되기 때문이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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