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술은 새 부대에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1.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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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30. 응무소주 이생기심

-충분히 발달된 선진문화는, 후진문화가 이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네. <햄릿>
 There are more things in heaven and earth, Horatio, than are dreamt of in your    philosophy. <William Shakespeare>

I. 인간의 의식과 인식력은 끝없이 진화한다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의식과 인식력이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즉 진화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인식하지 못한다. (심지어 철학자들조차 그렇다.) 인간은 600만 전이나 지금이나 의식과 인식력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 35억 년 전에 출발한 단세포 생물 아메바를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 우리의 의식과 인식력은 변했다. 무시무시하게 바뀌었다. 오늘 의식과 인식력이 어제와 다른 것처럼, 미래에도 다를 것이다. 사실은 매순간, 매일 다르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변한 세상에, 즉 새 의식과 인식력에 비추어진 세상에 맞추어 새로운 관점의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수행은 우리 뇌를 바꾼다. 뇌세포도 바꾸고 배선도 바꾼다. 즉 커넥톰(connectome 뇌신경망)을 바꾼다.

사람들은 이 순간 의식이 영원히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의식은 과거에도 지금과 똑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망상이자 환상이다. 설마하니 당신의 의식이 35억 년 전 아메바의 의식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아메바에게 무슨 의식이 있겠는가? 인식력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의식과 인식력은 지금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이 미래에 대해서 하는 예측은 빗나갈 수밖에 없다. 먼 미래일수록 그렇다. 의식과 인식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미래는 지금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는 아니다. 200년 전에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출현을 예측한 사람이 있는가? 4만 년 전, 크로마뇽인 무당들 중에서 지금 세상을 보거나 예측한 자가 있는가? 크로마뇽인들에게 지금 인간세상은 ‘봐도 믿을 수 없는 신통력이 난무하는’ 신들의 세상임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수천 킬로 떨어진 사람을 마법의 주문을 걸지 않고도 죽일 수 있다. 그것도 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3.6억 년 전 물속에 살던 인간이 뭍으로 올라오더니 하늘을 뚫고 달에 사람을 보낼 줄, 진화론을 발견할 줄,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줄, 그 옛날에 누가 알았겠는가? 화성에 탐사선을 보낼 줄은 누가 알았으며, 태양계 밖으로 연을 날릴 줄은 누가 알았는가?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겠는가?

이처럼, 의식과 인식력은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끝없이 진화한다.

그러므로 지금 생각으로, 미래의 부처도 그 몸과 마음의 모습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정확히 같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망상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II. 인간에게는 두 개의 의식이 있다: 하나는 몸안에 다른 하나는 몸밖에

▲ 복잡한 개미굴
인간에게는 하나의 의식이 아니라 두 개의 의식이 있다. 하나는 우리 몸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몸밖에 있다. 후자를 밈(meme 문화유전자)의식이라고 한다. 밈의식은 지식(과학과 학문)과 제도(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윤리·도덕·관혼상제冠婚喪祭·전통)로 나타난다. 아마존 밀림의 석기시대 원시인들은 원시문화를 유지하지만, 문명세계에 이주하면 금방 새로운 문화를 배운다. 그들의 어린이들은 완벽하게 적응한다. 개인이 성취하기 불가능한 것을 집단이 제공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개별의식 못지않게 전체의식인 밈의식이 중요하다.

밈은 집단의 힘이다. 집단의식의 힘이다. 사람들은 부인할지 모르나, 믿기 힘들겠지만, 인간에게는 집단의식이 있다. 문제는 개별의식이 집단의식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믿기 힘든 것이다. 개미집단을 보라. 개별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나, 전체의식은 존재하는 듯 보인다. 개미집단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여왕개미는 생식기관이고, 병정개미는 백혈구이고, 일개미는 손발이며, 페로몬(pheromone)은 신경전달물질이다.

당신의 뇌신경세포들은 자기들이 개별의식을 지니고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전체적으로 보면 즉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뇌신경세포 하나하나가, 개미 개체처럼, 의식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당신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시킬지 짬뽕을 시킬지는 이미 (확률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당신이 평소에 열에 아홉은 짜장면을 시킨다면, 당신이 무얼 시킬 건지 90프로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 금융계의 투자란 기본적으로 이런 (남들이 아직 의식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의) 규칙을 발견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판단은 집단의식을 감지(感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은 외계인의 눈에 집단의식을 지닌 군집생물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이래로 지금까지, 세계인구가 1,000명 정도로 유지되었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눈부신 과학문명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크게 오산했다.
지나치게 적은 인구는 인류라는 군집생명체가 왜소뇌증(矮小腦症 microencephaly)에 걸리게 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클수록 발명이 더 많이 일어나며 한 사람의 발명은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므로, 인구가 클수록 인류가 누리는 혜택이 커진다. 즉 인구증가는 산술적이지만 과학기술혜택증가는 기하급수적이다. 그리고 큰 인구는 큰 구매력을 제공해서, 발명동기를 유발하고 기업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킨다.

인류는 인구를 늘림으로써 천재들을 더 배출하여, 이들이 주도한 과학기술혁명으로 농업생산성을 수백 배나 향상시켜서 식량부족을 해결하였다. 맬서스가 걱정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과학문명은 바로 인구의 힘이며, 인구는 집단의식을 창조한다. (뇌신경세포와 뇌와의 관계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프랙털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별의식은 집단의식과 상호작용(연기 緣起)하므로, 고정된, 독립적인, 스스로 완전한 참나, 진아,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고정된’ 참나, 진아(眞我),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의 (몸과 마음의) 무한한 진화를 부인하게 되어, ‘고정된’ 인간관에 갇히고 감금(監禁)당한다. (이 점에서 참나, 진아, 영혼은 감옥이다. 새로운 의식,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감옥이다.) 이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마음이 가진 ‘한없는 자유와 무한한 능력’을 말하지만, 사실은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미개한 고정관(固定觀)에 갇혀서 신(新)인간, 신(新)의식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을 과거로 퇴행하게 만든다.

과거에 개발된 특정한 의식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착각한다. 무당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인간이 의식이 발달하지 못했을 당시의 원시의식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람 안에서 우후죽순처럼 난개발(亂開發)되어 아직 교통망이 정비되지 못한 의식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무당을 보는 것은 인류집단이 꿈을 꾸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상징과 기호와 불가사의한 사건이 일어나는 꿈. 우리는 누구나 꿈속에서는 무당이다! 진화의 어느 시점에선가, 아마 BC 3000~BC 500년경에, 농경의 정착으로 인하여 사유(思惟)할 잉여시간이 많아진 인간에게, 10만 년 전에 형성된 언어의 바다에 사고(思考)의 플랑크톤인 단어가 급증하면서, ‘단속평형’적으로 인간의식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

그 많은 다양한 신이, 특히 서양에, 나타난 것이 그 증거이다. 도깨비, 요정, 요괴, 인어, 반인반수, 귀신; 하늘, 땅, 물, 불, 비, 번개, 구름, 출산, 죽음, 농사, 목축, 전쟁, 평화, 술, 질병, 상벌을 관장하는 무수한 신들을 보라. 심지어, 신화에는, 같은 인간 어미를 둔 각각 인간과 신의 피를 받은 이란성 쌍둥이까지 등장한다. 환상(fantasy)의 향연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진화가 덜 된 의식과 인식력은 훨씬 더 진화된 의식과 인식력을 알 수 없다. 결코 알 수 없다. 마치 소, 돼지, 말, 개, 닭,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동물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III. 종교는 주형(鑄型)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특정한 종교를 믿는 것은 특정한 형태의 주형(鑄型 mould)으로 특정한 의식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불교식, 회교식, 개신교식, 가톨릭식, 신도식, 도교식 ‘의식과 지식과 고정관’이라는 주형.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는 믿음을 믿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이미 오래전에 등장한 여러 종교, 사상, 철학으로 인간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런 틀(종교적 의식儀式)에다 인간의 말랑말랑한 의식을 집어넣고, 교리·신학·철학이라는 간수를 집어넣은 다음, 반복학습과 협박으로 압력을 가해, 준비된 딱딱한 모양으로 만들어 찍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무상한지라, 미트라교, 디오니소스교, 아이시스교, 오르페우스교(Orphism), 경교(景敎 Nestorianism) 등 숱한 고대의 주형은 사라지고, 그 주형으로 찍어낸 사람들도 사라졌다. 나타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태권도, 유도, 태극권, 택견, 권투 등을 배우면, 그런 식으로, 즉 특정한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배운다. 유도를 배우면 유도식으로 몸을 놀리지, 태권도식으로 놀리지 못한다. (무술고단자들이 스라소니 같은 거리의 파이터들에게 지는 이유는, 거리의 싸움꾼들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는 반면에 이들은 싸움이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몸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 네스토리우스(386-450).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이자 경교 창시자. 그는, 마리아의 신성을 부인했으며,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신의 아들과 외적으로 하나가 된 사람이라고 주장했음. 이로 인해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서방기독교계에서 쫓겨남. 박해를 피해 동쪽으로 이동하였으며, 635년 로마인 아라본 일행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장안에 와 당나라에 전파함. 징기스칸 휘하의 케레이트족, 옹그트족 등이 믿었으며, 우리나라 경주에서 1956년에 경교십자가와 마리아관음상이 발굴된 바 있다. ‘인간인 예수 안에 신성이 공존한다’는 경교사상은 현재 대한민국 불교의 ‘참나’나 ‘주인공’ 사상과 유사한 점이 있다.
종교수행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수행을 하게 되면 불교식으로 마음을 놀리지, 기독교식으로 마음을 놀리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수행을 하면, 불교식으로 마음을 놀리지 못한다. 본시 우리 마음에는 고정된 반드시 가야하는 방향이 없으므로, 우리가 조형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생긴 마음조형법이 과거의 여러 종교 수행법이며, 인간은 이미 정신적으로 크게 진화했건만, 이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굴러다닌다. (자동차들로 북적거리는 대로에서 걸리적거리며 진행을 가로막는 소달구지이다. 세발자전거이다.) 우리가 실리콘 시대에 살지만, 아직도 어느 정도 석기와 목기를 쓰는 것과 같다. 건축자재, 가구재료, 주방도구 등으로 쓴다.

낡은 주형은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주형을 만들지 못한다. (땅은 정신세계나 물질세계나 항상 부족하다. 그러므로 낡은 것을 부수어야 새 걸 세울 수 있는 땅이 생긴다. 뇌에 생긴 주름은 정신적 평수를 늘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솔로몬 성전이 무너져야만 새로운 사상이 깃들 수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이 가르침을 거부했기에 2,000년을 유랑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홀로코스트에 의해 마음속의)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자 야훼를 버렸다. 결과론적이지만, 유대인들이 늦게라도 예수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들은 기독교가 국교인 로마제국의 주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민족을 저주하고 학살하라는 야훼 하나님보다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하나님이 다른 민족의 증오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가르치니, 유대인들은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증오심으로 자신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킨 면이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예수의 예언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완고함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다. 예수가 말한 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다. 문제는 ‘예수 자신이 이제는 헌 부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교회가 ‘텅’ 비어 가는가? 사람들이 악해진 것이 아니라 부대가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낡음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낡은 것이다! ‘모든 새 부대는 헌 부대로 변한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예수의 부대도, 성문(聖聞)의 부대도, 대승(大乘)의 부대도, 선불교의 부대도 마찬가지이다. 영원히 새 상태로 존재하는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행은 끝없이 자신을 새 부대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수행에는 끝이 없다. 우리는 쉼없이 자문(自問)해야 한다, “나는 혹시 이미 철지난 헌 부대가 아닌가?” 하고. 머무는 자는 머물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한다. (그러다 급기야 진제 종정처럼 ‘진화론과 빅뱅 우주론’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진제 스님은 “참나를 찾자”고 외치시는데, 위 진제 스님의 망상은 ‘참나’가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참나가 감옥이 된 전형적인 예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중세 기독교에서는 ‘신’이 감옥이 되었다. 놀랍게도, 종교적인 감옥은 형기가 수천 년씩이나 된다! 재세시에 혁신적인 진보좌파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인간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진제 스님 등 참나주의자들은, 수구적인 보수우파로 만들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기 때문이며, 절대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나간 자는 이미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유아원에서 대장노릇을 했어도 지금 서울역 노숙자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때 얻어맞던 사람은 지금 맞은 편 대우빌딩 사장이다. 과거가 현재를 고정시키지 못한다. 우연히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쳐 하나의 시선(視線)을 만들더라도, 두 사람은 결코 같은 시점이 아니다.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은 매순간 벌어진다. 인간의 의식과 인식은 끝없이 발전하고 진화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그러므로 머무르면 안 된다. 잠시도 아니 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起心)이다.

머무르면 선불교(禪佛敎)가 아니고 불교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인식은 시공(時空)의 흐름을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이미 변했기 때문이며, 지금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크로마뇽인에게 주는 가르침과 현대인에게 주는 가르침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한다. (심적) 고통과 의문과 번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IV. 부처는 고정된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이일체제상 즉명제불’(離一切諸相 卽名諸佛)이다. 부처를 고정관념 속에 가두지 말라. 과거에 가두지 말라. 그런 부처는 해탈의 이정표가 아니라 장애물(障碍物)이다.

부처는 번뇌가 없어서 부처가 아니라,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지혜(知慧)가 있어서 부처이다. 돌도 번뇌가 없으나, 돌을 부처라 부르거나 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영원히 식물인간이 되거나, 좀 더 고급스럽게는 영원히 멸진정에 드시라. 지혜는 단지 특정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대한 지혜로 한정되지 않는다. 시공에 펼쳐지는 무상·고·무아는 천만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파생되어 나오는 다양하고 진화된 모습의 상·락·아(常樂我)를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무상·고·무아를 인식하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는 시공간에 맞춰, 몸과 마음과 더불어, 공진화(共進化)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는 불가사량(不可思量)이다. 특정한 시공간에 위치한, 특정한 생명체의, 특정한 눈으로 삼세(三世)의 지혜를 온전히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부처는 머무르지 않는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起心)이다. 그래서 어제의 부처는 더 이상 오늘의 부처가 아니며, 오늘의 부처는 내일의 부처가 아니다.

▲ 개미굴은 잘 설계된 분업화된 도시이다. 개미가 군집생물이라는 점에서, 이 단면도는 생체해부도이다. 1. 대공방어체제: 개미들은, 최대 천적인 새가 개미굴에 접근하면, 배를 하늘로 하고 새에게 산성액체를 발사한다. 2. 온실: 이 남향 방에서 여왕벌이 낳은 알들이 큰다. 방 온도는 섭씨 38도로 유지된다. 3. 정문과 쪽문: 문지기개미들이 지킨다. 위험이 닥치면 납작한 머리로 굴 입구를 틀어막는다. 개미들이 자기들 안테나로 문지기개미의 머리를 특수한 리듬으로 두드리면, 문지기 개미들이 문을 연다. 이 암호를 잊은 개미들은 문지기 개미에게 즉시 살해당한다. 4. 오래된 굴: 오래된 굴을 재활용하는 수도 있다. 5. 곡물창고 겸 공동묘지: 소비하지 않은 곡물과 죽은 개미들을 모아놓는다. 6. 경비실: 병정개미들이 24시간 경비를 선다. 위험이 감지되면 즉시 행동에 들어간다. 7. 외부 방호층: 가지와 잔가지로 이루어진 방호층은 더위, 추위, 비로부터 굴을 보호한다. 일개미들은 방호층이 얇아지지 않았는지 상시 살펴본다. 8. 육아실: 유모개미들은 자기 복부에서 달콤한 액체를 만든다. 양육개미들은 배를 안테나로 뚫어 이 액체를 이용한다. 9. 고기창고: 곤충, 파리, 배짱이, 적(賊) 개미들 사체가 저장된다. 10. 곡물창고: 방앗간개미들이 곡물을 작은 태블릿 형태로 가져와 저장한다. 11. 유충보호실: 보모개미들은 항생제성분이 들어있는 침을 이용하여 질병으로부터 아기개미들을 보호한다. 12. 동면실: 동면하는 개미들이 이용하는 방.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동면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후 첫 번째 임무는 방을 청소하는 것이다. 13. 중앙난방실: 잎 조각과 나뭇가지 조각으로 열을 생산해서 굴을 섭씨 20~30도로 유지한다. 14. 포란실: 여왕개미의 알들이 산란순서로 저장된다. 때가 되면 온실로 옮긴다. 15. 대조전: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방. 하인개미들이 이 방에서 같이 살며, 여왕에게 먹이를 주고, 방을 청소한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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