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을 놀려라
애들을 놀려라
  • 변택주
  • 승인 2015.01.05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102. 재미있는느티나무온가족도서관장 이승희

저는 학교,
학원 안 가는 것이 평화 같아요.
잘못해도 싱글벙글 웃는 세상을
만들어 주시고 많은 것을 알려주세요.
 
내가 평화로운 누리를 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인천 석천초등학교 2학년 소연이가 크리스마스카드에 제가 생각하는 평화를 적어 보냈다. 3학년 지안이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내가 부럽다고 거듭 말했다. 인천 청라초등학교 5학년 동혁이는 공부와 평화로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해줬다.

“얘, 절집에선 우리가 사는 누리를 ‘사바세계娑婆世界’라 해. 불편을 참고 견디는 세상이래. 어려서는 참고 견딘다는 말을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어.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편치 않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이더구나. 살아가려면 귀찮더라도 견뎌야 하는 것이 적지 않아. 너, 추우면 바깥에 나가기 싫지? 그런데 그 추울 때 푸나무들은 싹 틔우고 꽃피우고 열매 맺은 준비를 해. 그러니 추위가 없으면 우리는 파란 잎도 꽃이나 열매도 누릴 수 없지. 그렇기 때문에 추위를 기꺼운 마음으로 견뎌야 하는 거야. 더위도 마찬가지야. 그 뜨거운 햇볕이 없으면 곡식이 익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가 다 굶어죽게 되지. 그러니까 춥거나 더울 때 못 견디겠다고 골 낼 것이 아니라 ‘아. 이 추위가 우리를 살리는 추위구나, 이 더위가 우리를 굶지 않게 하는 더위로구나’ 하면서 지내야 해요. 그와 같이 공부도 너와 네 식구를 살리는 아주 좋은 밑절미거든. 이렇게 생각하면 공부와 평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놀이를 게을리 하고 공부에만 빠져 산다면 잘못 사는 것인 줄 알아. 안녕~~^”
 
몇 회 전 글에 썼지만 인천에 있는 석천초등학교에 가서 1, 2학년 그리고 3, 4학년들과 얘기꽃을 피우고 온 뒤로 생긴 일이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미숙하게 태어나 하나하나 배워가며 이뤄갈 수밖에 없는 동물인데 배우는 것이 지겹고 지옥 같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구애받고 피해주지 않고 자유롭게

여기 자유로운 얼을 가진 한 엄마가 있다. 아이들을 놀게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엄마, 이승희(1966-)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 ‘시냇가’

“구애받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제가 사는 방식인데 첫 애 낳고 어린이집을 잘 골라야 했어요. 보니까 애가 놀 수 있는 곳이 어린이집 옆에 모래밭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기자를 하면서 떠돌아다니길 무척 즐겼는데, 저 아이 핏속에 내 유전자가 요만큼이라도 있다면 저기서만 놀라면 답답할 텐데 너무 안 됐다. 더 너른 데 가서 놀아야 하는데 어쩌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우연히 공동육아를 하는 데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거기서는 아이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 놀렸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이들은 집에서 나오면서 아이를 데려다 놓으면 아침 간식 주고, 아침을 먹고 비가 오면 우비 입고, 눈이 오면 모자 쓰고 나가 놀고, 자연에서만 크기 때문에 서울나들이 나가면 사람들은 얘들이 고아원에서 온 줄 알았다. 그렇게 발 디딘 공동육아 공동책임 협동조합. 고양시 행신동에 있는 ‘공동육아 공동체교육 도토리어린이집’이다.

여섯 살에 들어가서 일곱 살에 졸업을 하고 실컷 놀리면서 키웠는데, 경쟁하는 학교에 보낼 수 있냐? 설사 보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경쟁하지 말자고 다짐한 엄마들은 다시 협동조합을 세웠다. “큰 아이가 졸업하던 해에 열 명이 졸업을 했어요. 그 전에는 한 해에 서너 명이 졸업을 해서 조합을 꾸릴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한꺼번에 열 명이 나오니까 방과 후 협동조합을 만들자. 그래서 ‘정다운방과후’를 만들었어요. 저희가 약속을 했어요. 방과 후 안에서는 인지교육을 시키지 말자고. 예체능이라는 말도 없어요. 일주일 프로그램은 월요일에 어린이 자치회의, 화요일에 요리, 수요일에 시장보기, 목요일에 바느질하기, 금요일에 생태나들이, 그리고 어떤 날은 택견 이렇다보니 흔히 알고 있는 예체능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굳이 예체능을 하고 싶으면 방과 후를 마치고 집에 가서 해야 하는데, 그러면 학교생활 하랴, 방과 후 하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될 테니까 시키지 말자. 이렇게 정리하기까지 끝장 토론을 많이 벌였다. 모인 까닭이 보육 때문인지, 교육 때문인지 부모마다 뜻이 다 달라 조율이 쉽지만은 않았다. 열띤 얘기바람 끝에 보육으로 가기로 했다. “키우는 동안은 됨됨이와 사이에 힘을 몰아 쏟자.”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교육이 선행학습을 앞세운 탓에 시험을 볼 때 짝꿍은 숫자를 알고 해서 쭉쭉 풀어내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니까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방과 후에서는 고학년까지 데리고 있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싶어 3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시켰다. 
 
그런데 3학년으로 졸업을 시킨 엄마들이 이대로 경쟁으로 애들을 내몰기에는 너무 그동안 들인 공이 억울하다 그러니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놀되, 일주일에 두 번은 부모들이 바라는 수업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빚은 게 고학년 방과후였다. 대학생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을 모아 어버이들이 맡아 수업을 하기로 했다.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우고, 우리 터무니를 더듬고 다녔다. 시냇가는 거기에 덧붙여 아이들을 데리고 뻔질나게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다녔다. 동네 엄마들이 우리 애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시냇가는 선선히 “보내요” 했다. 이렇게 자연스레 고학년 방과후 담임을 맡았다. 

교실이 없으니 아이들은 자연히 시냇가 집으로 찾아들었다. 집이 좁다랗지만 그런대로 첫해는 괜찮았는데, 해를 거듭되며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침 도서대여점을 하던 분이 귀농을 한다면서 인수해달라고 했다. 시냇가는 도서대여점은 자신 없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도서관을 열고 방과후 학교도 하고 동네 이러저런 모임 할 때 쓰도록 하자. 열 가구가 모여 도서관 조합을 시작했다. 2009년 1월이니 어느 새 올해로 7년째다. 

잡지사를 다니던 시냇가는 그 사이 세 해 동안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늘 연애하는 기분이었단다. 아이들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문제를 품어주고 술을 마시고 싶다니 호프집에 데리고 가기도 한 엉뚱 발랄 천방지축 선생님. 시냇가는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 남자애들하고 바글바글 거리며 놀았다. 어느 날 교감이 불렀다. 아이들과 지나치게 격이 없다고 혼내려나보다 싶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들어갔다. 교감은 뜻밖에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안 되는데 애들이 아주 편안해 하니까 앞으로도 함께 많이 놀아주세요.”라고 했다. “깜짝 놀랐어요. 너무 반가웠죠.” 그 아이들은 시냇가와 나이가 딱 열 살 차이 나는데 여태도 오고간단다.

재미있는느티나무온가족도서관

“2009년 1월에 인수하고 고학년 방과후 애들한테 이름을 지으라고 하니까 느티나무로 하겠다는 거예요. ‘야, 용인에 느티나무가 있어’ 그랬더니 ‘우리한테 지으라고 해놓고 안 쓴다는 말이냐?’ 알았어, 느티나무는 느티나무인데 다르게 하자며 어른들이 우리는 삶이 진지한 것도 싫고 그냥 재미있게 살자는 거니까 ‘재미있는’을 붙였어요. 다른 도서관은 다 어린이도서관이라는데 우리는 가족이 다 어울려 노니까 ‘온가족도서관’이라고 하자. 그래서 ‘재미있는느티나무온가족도서관’이라고 이름이 열네 자가 됐지요.”

2010년 고양시민회에서 전화가 왔다. 고양시가 마을자치공동체를 하려고 하는데 그에 앞서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연다. 자치마을이 우리나라에는 겨우 성미산마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네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경험을 나눠줘라. 그 바람에 시냇가는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한 해 동안 들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치공동체 기획서를 전지 한 장으로 간단히 마무리해 냈다. 제목은 ‘동굴’ 인류 최초 공동체인 집이 동굴이고 벽화를 그려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 터무니를 우리가 알려야 알 길이 없다, 우리는 고양시 행신동에 ‘동굴’이라는 문화예술공간을 빚어 동네를 하나로 묶겠다는 얼거리였다. “한편으로는 푸름이들한테 은밀한 아지트가 되게 해줄 거야. 숨고 싶으면 파티션으로 가려주고, 졸리다 하면 재워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컵라면 사주고, 엄마가 오면 가려주는 곳을 애들한테 누리도록 해 줄 거야.” 거기에 동네가 이끼 끼지 않고 굴러가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대상을 받았다. 꿈에 부풀어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처음 말과는 달리 겨우 다음해 자치공동체 사업을 하게 되면 가산점만 더 준다고 했다. 뭐야? 이리 허무하게. 치사하다. 이러고 말았다. 다음해에 제안서 쓰라고 해서 ‘동굴’ 제안서를 보다 세밀하게 해서 냈는데 덜컥 1등을 해 한 팀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5천만 원을 받았다. 그때 고양시가 공동체 사업을 17개 단체에게 줬는데, 동굴은 돈을 6월에 받아 11월까지 혼자서 간이 사업을 19개나 했다.

“저도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겠어요. 두 번째에는 인문학 교실 세 번째엔 작가와 만남, 그냥 강의가 아니라 작가 모셔다가 그림책을 가지고 재미있는 놀이로 바꿔서 같이 노는 게 저희 프로그램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집에 들어갈 겨를도 없었어요.”

동굴 사업안을 낼 때부터 이제껏 하고 있는 사업은 금요일마다 하는 ‘수상한 수학’이다. 콩나물 값도 못 깎는 수업인데, 수학을 철학으로 바라보고 같이 책을 읽어나간다. 누가 읽다가 숨이 차면 거기까지 읽고, 다음 사람이 또 읽고 읽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면 “잠깐만 나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이어간다. 

▲ 평화우산만들기 가운데가 시냇가

그러는 사이사이 시냇가는 여러 가지 일을 벌인다. 인제군 서화 마을에 평화도서관이 있는데 프로그램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우린 프로그램이 넘치니까 서로 만나서 좋은 효과를 서로 누려야 하겠다싶어 당장 달려갔다. “자매결연 맺어서 여름마다 겨울마다 애들을 데리고 갔어요. 그렇게 친구 마을 만들기를 부단히 했어요.” 그와 더불어 엮은 것이 청소년창의센터준비모임이다. 서울 하자센터처럼 청소년 놀이터, 배움터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해 5천만 원을 받아 청소년이 화두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청소년 진로와 교육문제를 모여서 사업을 시작한 게 2011년이었으니 햇수로 5년째 접어든다. 10여 개 단체가 힘을 모아 고양시에 청소년창의센터를 만들려고 꾸준히 땀을 흘리고 있으니 머잖아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세 해 연이어 고양시 지원을 받아 사업을 펼쳤으나, 2014년에는 조합 스스로 힘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사업을 늘리기만 할 게 아니라 숨을 고르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사업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그래도 새 사업으로 다달이 셋째 주 금요일이면 오후 8시면 떡볶이나 어묵, 빵과 잼을 들고 엄마들이 대여섯 사람 또는 일고여덟 사람이 거리로 나가, 길거리에 있는 푸름이를 보듬는 길거리 상담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예요. 그냥,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돈을 뜯겼다’ 그러면 청소년 아르바이트센터 같은데 연결해주고, 아이들이 시답지 않은 얘기도 다 털어놓고 가도록 하는 일이에요.”

동굴활동은 세시풍속으로 방점을 찍었다. 빼빼로 데이나 화이트 데이를 세시풍속으로 물리치자. 단오, 칠석, 복날, 추석, 동지 다섯 세시풍속을 동네에서 도서관을 시작으로 꾸물꾸물 꿈을 펼치자. 그리고는 단오에는 단오부채를 만들어 돌렸다. 수리치떡처럼 단오음식을 해서 먹고. 2014년 단오는 세월호 참사와 겹쳐 부채를 돌리는데, 보수 빛깔 짙은 동네어르신들한테도 드려야 하니까, 노란 빛깔을 어떻게 퍼뜨릴까? 하다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그림과 민들레가 피어 솜털 씨앗이 날아가게 그려 넣고 “바람이 붑니다, 당신이 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써서 돌렸다. 시냇가는 요즘도 아이들과 평화우산 만들기를 하는데, 그 우산살 사이사이 노란 개나리와 민들레가 결고이 피어오른다.

재미있는느티나무온가족도서관에서는 해마다 동네 해넘이 잔치로 ‘하소연콘서트’를 연다. 마을 사람들은 한 해 묵은 하소연을 모여서 함께 나누면서 네 설움, 내 기쁨을 나누며 어우렁더우렁 춤추고 노래하며 해 마무리를 한다.

맥주에 겨우 5에서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거품이 꽃이듯이, 시냇가에게 모듬살이는 한 잔 가운데 거품만큼만 즐겁고 나머지는 밑에서 기포들이 끊임없이 을러대기란다. 그러나 그 5에서 10이 아주 진하고 깊이 감동시키더라고 말하는 시냇가, 당신은 겉으로 솟은 빙산 일각일 뿐 두루 어울린 조합원들이 흘린 구슬땀 덕분에 한결을 이뤘다며 저만큼 물러선다. 모듬살이, 모여 살면서 일구는 평화란 이리저리 부대끼면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해, 어울려 놀지 않으면 안 돼!” 하며 서로 엉켜 뒹구는 것이 아닐까.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기사제보 cetana@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