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
기대치
  • 현각 스님
  • 승인 2015.01.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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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0.

북한산을 본다. 문수봉, 보현봉, 비봉, 향로봉, 사모바위 온통 흰 눈이다. 마치 속계와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신의 눈금인지 확연히 둘로 나누어져 있다. 저기는 자연계이고 이곳은 화식하는 인간계이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치장하고 나서는 자연 앞에 감탄이 연발된다.

어느 화공이 대작을 그린다 한들 저렇게 멋들어진 작품을 낼 수 있을까.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하더라도 자연의 모방일 수뿐이 없다. 아차! 예외가 있네.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거장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는 현실경과 이상경이 공존하는 꿈속의 낙원이다.

새해가 되면 설렘도 있지만 부푼 마음에 한 해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 기대치는 대부분 원대하고 부풀려 있다. 마치 운동회 때 운동장을 연상시킨다. 곳곳에 장식으로 달아 놓은 부푼 고무풍선과 같이 하나같이 팽팽하다.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풍선은 터지고 만다. 아니면 허술하게 매어 놓았던 실이 풀리거나 끊어져 하늘 높이 날아가고 만다.

한 해의 기대치도 높게 잡는 것 보다 낮게 잡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괜스레 높게 잡았다가 성취되지 못하는 좌절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일이 궁인모사(窮人謀事)로 결말이 나면 얼마나 허탈한지. 그럴 바에야 낮게 잡아 하나 씩 이루어가는 소소한 만족감이 더 낫다. 마침내 가속도가 붙어 기대치를 높여간다면 일의 성취감은 곱절이 될 것이다.

기대치를 말하자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어느 겨울방학이었다. 알찬 방학을 보내려고 치밀하게 시간표를 작성하였다. 꼭 실천하려니 하고 책상 앞 벽에 붙여 놓았다. 하루 정도는 시간표대로 실천했던 것 같다. 다음 날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 시간표를 보고 지금 무슨 무슨 시간인데 왜 이러고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아니다. 못 지킬 시간표라면 떼어야겠다. 자칫하면 남우세를 받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 후 여태껏 서재에는 개인 시간표를 작성하여 붙인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시간표가 없다보니 여유가 생겼다. 방학숙제를 마치고 할 일이 없었다. 지금 같으면 선행학습이라도 했을 법하다. 마분지(馬糞紙)를 사다 팔절지로 만들어 칸을 친다. 공책으로 엮어 붓글씨로 천자문을 익히며 썼다. 그때의 겨울방학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 그때 글씨를 본다면 웃음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그야말로 무사독학의 글씨이니 더욱 그러할 것이 분명하다. 한 칸 속에 들어가게 쓰기에는 획수가 많았던 배울 학(學), 용 룡(龍) 글자들은 항상 옆 칸을 침범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였다. 말이 났으니 한 글자 더 소개하고 싶다. 갈마들 체(遞)도 예외는 아니다. ‘갈마들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을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로 번갈아 들다’라는 말이다. 일벌이 꽃가루를 따다가 벌통을 드나들며 꿀을 저장하느라 들고 날고 하는 모습을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낮은 것이란 얼핏 보기에 미력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낮기 때문에 더 이상 후퇴한다거나 물러 설 곳이 없어 안전하다고 할 만하다. 높은 것은 물러설 여백이 많기 때문에 불안 요소도 많다. 그러니 성취도가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량한 옐로우칩(yellow chips)이 두터울 때만이 대형우량주(blue chips)가 견고해 질 수 있다. 독불장군과 같이 대형우량주가 중소형주를 모두 안고 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원리는 강물의 흐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앞물이 뒤에 오는 물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뒷물이 앞물을 밀고 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기초를 튼튼하게 한다는 것이 매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할 것 같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은 등관작루(登鸛雀樓)에서

천리 밖 먼 곳까지 더 보려거든     欲窮千里目
다시 한 층을 더 올라서게나        更上一層樓

시사하는 바가 큰 싯귀이다. 천리 밖 먼 곳을 보려고 오르기만 한다면 오르다 지쳐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층 한 층 오르다 보면 시계는 광활해지고 마침내 보고 싶은 경관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서 보는 경관이 으뜸이라고 치지만 각 층이 안겨주는 진미도 쏠쏠하다. 산행에서 오를 때 못지않게 내려 올 때 경관도 절경이다. 뜨는 모습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지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붉게 물든 석양의 모습이 그렇다. 하루 일을 마치고 휴식에 드는 태양은 거룩하다. 그리고 내일을 기약하며 서산마루에 자취를 감춘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지천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하고 남을 지배하는데 상당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두가 순간의 일이건만. 영겁을 말하는 사람이 찰나에 빠져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찰나에서 영겁을 노래하는 사람이 진정한 장부이다.

대장부는 자신을 점검하는데 몰두한다. 외경에 자신을 빼앗기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문인 신흠(申欽)은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했다. 문을 닫고 좋은 글을 읽는 즐거움, 문을 열고는 좋은 벗을 맞이하는 즐거움, 문을 나서서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찾아보는 즐거움이라 하였다.

기대치를 낮추고 이러한 즐거움에 빠져본다면 새해도 더욱 풍요로워지겠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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