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남자인가
예수는 남자인가
  •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2.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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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연재칼럼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34.

종교는 인류 전체적인 현상이다 
남의 종교를 통해서 자기 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I. 지신유성부 至神有性不: 최고 신도 성이 있나?

예수는 남자인가?

관세음보살은 남자인가? 중성(中性, 無性)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 여자로 변할 수 없다. 그의 마음은 비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동남·동녀, 왕·왕후 등 32가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없다.

세익스피어 시대에 남자배우들은 모두 수염을 밀었다. 당시에는 여자들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어,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여자 역을 했다. 그래서 수염을 민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도 수염이 없는 중성이어야 한다.

예수는 남자인가? 여자 중에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예수는 분명히 남자이다! 인류역사상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한 사람은 수백만에 이르지만 그 중에 여자는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남자인가? 왜 기독교 신들은 남자가 둘이나 되고 여자는 없는가? 성부(聖父)·성자(聖子)·성신(聖神 Holy Ghost) 삼위(三位) 중, 어머니는 어디 있는가? 혹시 성신이 여자인가? 차라리 성부, 성자, 성모가 완벽한 세 쌍으로 보이지 않는가?

(육두문자에도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란 말은 있어도, 어미 없는 호로 자식이란 말은 없다! 누구나, 양모이건 친모이건, 어미가 있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굶어죽는다. 그래서 인류역사상 아비없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영웅들은 있어도, 어미없이 태어난 영웅들은 없다. 같은 이유로, 어미없는 갓난아이를 대리고 나타나는 아비는 없어도, 아비없는 갓난아이를 대리고 나타나는 어미는 있다. 전능(全能 omnipotent)한 신이라서 인간아비 없이 사람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어미 없이도 사람을 만들 수 있어야 하건만, 고대에 이런 일이 안 일어난 이유는 바로 유일한 유아용식량인 모유 때문이다. 혹시 요즘이라면 분유가 있기에 가능할지 모르나 DNA테스트라는 무서운 조사방법이 있어서 허투루 주장을 하다가는 금방 탄로가 난다. 가끔 후백제 견훤처럼 자기 아버지가 달빛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비 없이 태어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생산한다. 은빛 달빛을 타고 긴 꼬리를 흔들흔들 거리며 헤엄쳐 내려오는 금빛 달님정자(lunar sperm)들을 상상해 보라! 선불교 기록에 의하면 사조四祖 도신道信 스님도 아비없이 처녀잉태로 태어났다.)

▲ 쿠스타프 클림트. 처녀잉태. 그림의 좌상에서 좌하까지의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작은 물방울 모양들은 정자의 상징이고, 우하 어두운 천 위의 둥근 모양들은 난자의 상징이다.
▲ 클림트. 성모자. 성화는 모자성화만 있지 부자성화는 없다. 아버지는 대체 어디 있을까?

이 점에서 전(前) 가톨릭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리아 신앙’이 의미가 있다. 그가 신봉한 마리아학(Mariatology)에 의하면, 그녀는 예수와 동격인 대속자(代贖者)이자 중계자(mediator)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신(新) 삼위일체이다. 성부, 성자, 성모! 성신(聖神 Holy Ghost)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세상에 영혼이 없는 신이 있는가. 인간도 영혼이 있다는데. 그러므로 성신은 성부, 성자, 성모가 모두 갖춘 기본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성녀(聖女) 즉 성부와 성모 사이에 딸은 없는가? 예수에게 남성이라는 성이 있다면, 어떻게 여자들의 은밀한 몸과 내밀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달이 차고 일그러짐에 따라 여자들 몸 안에 밀려오고 밀려가는 대자연의 본능의 격류와, 약육강식 생멸의 춤판에서 ’어느 수컷이 이길지’ 숨죽이고 승부를 점쳐야하는 관객 여자의 운명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상한 연극에서는, 주역이 아닌 조역은 무대에서 할 대사가 없다. 모두 내적 독백일 뿐이다. 그래서 회중에서 여자는 입을 닥치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린도 전서>. 여자는 (남자에게) 일체 순종함으로(써) 조용히 배워야한다<디모데 전서>. 이런 일을 남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여자가 말이 많다는 것은 남자들의 편견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소위 풍선효과이다. 세상의 어지럽고 시끄러운 정치판(political arena)에서 술자리에서,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무수히 말을 뱉어내는 것은 남자들이다. 언론이란 이름으로 신문·텔레비전·인터넷에 등장해 사설·칼럼·평론·논단·대담·토론·논쟁을 통해 말을 뱉어내는 것도 역시 남자들이다. 그 현란한 용어와 풍부한 전거(典據)와 치밀한 논리는, 서로 논쟁하는 어느 쪽 의견을 들어도 설득력이 넘친다. 세상의 도서관과 서점을 범람(氾濫)하는 책들은 모두 남자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다. 남자들은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기록으로 남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말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천하의 웅변가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여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결과이다. 예수는 재치가 번득이는 기가 막힌 웅변가였다.

분명 그의 피에는 남성호르몬이 흐르고, 나야할 곳에는 반드시 검은 풀이 자랐을 것이다. 젊은 얼굴에 돋아난 멋진 수염이 그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외경(外經) ‘빌립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의 입술에 키스하곤 하였다. (고대 중동의 남자들에게 여자의 입이란 키스용이지 말을 하는 기관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무척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60 넘은 노인네가 10살도 안 된 소녀를 부인으로 맞을 수 있는가?) 이 일로 제자들이 예수가 그녀를 편애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보아도 최고신이 남자라는 것은 어거지이다. 남자들은 씨만 뿌리고 도망가는 자이다. 호르몬이 용솟음치면, 마르지 않은 깊은 우물을 찾아 쏟아놓고 가버린다. 나오자 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호르몬을 타고 탈출하는 정자들이다. 즉 유전자이다. 그러니 남자는 책임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싶으리라. “우린들 그리하고 싶어서 그리하는 줄 아세요?” 자식(피창조물)을 낳은(창조한) 것은 남자(신)이고 일이 잘못되면 자식(피창조물)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정자는 꼭 남자인 것도 아니다. 남자(Y 염색체 담지자)도 있고 여자(X 염색체 담지자)도 있다.

기르는 것은 여자이다. 새 생명이 몸속에 있을 때도 자기 피와 살을 주어 키웠고, 몸 밖으로 내보내고도 자기 피와 살로 키운다.

이런 여자를 어떻게 남자 예수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장엄하고 화려한 솔로몬 성전에서, 홀로 비둘기상과 환전상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고 판매대를 뒤엎던 폭력은 고환에서 생산되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힘이 분명하다. 아니면 35억년 진화의 과정에서 학습되고 축적된 남성적인 문화유전자(masculine meme)의 힘이다. 성모 마리아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은 말이지, 말을 떠난 가슴의 사랑이 아니다. 음산한 구름위에 서서 천군(天軍)을 거느리고 악마를 향해 진군하는 무왕(武王)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거칠고 사나운 호령소리가, 어떻게 ‘우리를 푸른 초장(草場)에 눕게 하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는’ 포근한 어머니의 목소리와 겹칠 수 있겠는가? 시장한 예수가 퍼부은, 아직 철이 일러 열매를 맺지 못한 불쌍한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한, “앞으로 영원히 열매를 맺지 말라”는 저주는 입에서 나온 것인가, 가슴에서 나온 것인가?

남자들의 사랑은 입을 통해 나오지 가슴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II.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꼭 남자일 필요가 없다 
     이슬람 이전의 중동 최고신은 달님이고 그 세 딸들이 중재자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생명의 두 줄기 젖줄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 메소포타미아의 주신(主神)은 초승달 모양의 달이었다. 달신(月神 太陰神)은 남신이었고 그의 부인은 해신(태양신 太陽神)이었다. 둘 사이의 세 딸(별 star)은 인간과 신을 중재하는 존재였다. 기독교와 정반대이다: 기독교에서 중재자는 신의 아들인 예수이다.

아랍인들은 이슬람이 생기기 수천 년 전부터 달신을 섬겼다. 메카의 카바 신전은 이 달신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으며, 그곳에 모셔진 360명이나 되는 신들 중 최고의 신이었다. 이 달신은 알일라(al-ilah, al은 명사 앞에 붙는 정관사이며 ilah는 신이라는 뜻의 명사)로 불렸으며, 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알라(allah)로 축약되었다. 마호메트가 태어난 가문(家門)은 달을 섬기는 가문이었다. 아랍인들은 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메카를 향해 하루에 여러 번 기도를 했으며, 메카로 순례를 떠났으며, 초승달로 시작해서 초승달로 끝나는 달에 단식을 했으며, 달신에게 봉헌된 카바 신전을 돌았으며, 카바의 흑석(黑石, 검은 돌, 운석으로 추정됨)에 입을 맞추었으며, 달신에게 동물희생을 바쳤다. 마호메트 당시에도 아랍인들은 여전히 달신을 섬겼다.

마호메트는 “알라가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Allah is the greatest)이며 아랍인들이 해야 할 일은 그의 부인 태양신과 세 딸을 버리면 된다”고 했다. 전통신앙에서 최고신만 남겨두고 다른 신들은 다 버림으로써 이슬람교라는 유일신교가 탄생하였다.

이슬람은 기독교신을 인정하는데, 그들의 최고신인 알라가 유대인들에게는 야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근래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과 유사하다. 그 이유는 같은 하나님이 다른 종교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조에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은 의도적으로 야훼를 ‘하느님’으로 번역했다. 그 결과 수천 년 동안 하느님을 믿어오던 한국인들은 기독교신 야훼를 쉽게 받아들였다. 마호메트 역시 아랍인들의 최고신 달신月神의 이름 알라를 이슬람 유일신의 이름으로 차용함으로써, 다신교 아랍인들을 유일신교 이슬람으로 쉽게 개종시켰다.)

이슬람 이전시대의 고대유적발굴을 통해서 초승달 모양의 문양을 새긴 신상 등이 발굴된다. 이슬람 사원 꼭대기와 첨탑 미나레트 꼭대기에는 초승달 모양의 조형물이 있으며, 현대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나타난다. 다신(多神)을 섬긴 고대 중동에서의 최고신인 달 숭배의 흔적이다. 가나안 지방에도 월신(月神) 숭배신앙이 있었으며, 기독교 구약에서 야훼를 분노하게 만든 유대인들의 우상숭배는 종종 달 숭배였다. 예를 들어, 신명기 4장19절에서 야훼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 sun moon stars)을 섬길까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입장에서는 알라를 숭배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느부가넷살 왕에게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론은 점성술의 고향이며 바빌론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BC555~539)는 깊은 신심으로 달신전과 해신전을 복원하였다.

아무튼 (최고)신은 꼭 남자일 필요가 없다. 최고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면 이슬람 이전의 중동처럼 여신이 더 나을지 모른다. 동양에서는 여성의 상징인 달(陰)이 고대 아랍에서는 남자 신이고, 남성의 상징인 해(陽)가 여자 신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고대 중국에서 신과 인간의 중재자는 남자인 천자(天子 하느님의 아들)인데, 고대 아랍에서는 달님과 해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들이라는 점 역시 놀랍다.

버트란트 러셀, 아놀드 토인비, 아인슈타인, 존 코우츠 등 위대한 학자들이 인정하였듯이, 다른 종교를 공부할수록 석가모니 부처님이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더욱,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위대한 스승님을 도박, 폭력, 횡령, 뇌물, 축재, 음주, 식육, 사치, 소송, 무고, 폭로, 궤변, 막말, 거짓말, 도둑질, 정치질, 참회거부, 부정선거, 멱살잡이, 주먹다짐, 욕지거리, 승자독식, 패거리 짓기, 사회 다윈주의, 후안무치 육성, (보살)신도 하대하기, 빈자일등 멸시하기, 노장스님 찬밥만들기, 뉘우치기 절대거부 운동으로 처참하게 욕보이고 있는 일부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대한민국 승려들은, 특히 권력을 틀어쥔 승려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승려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며, 깊이 참회해야한다. 오계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범하고 있지 않은가! 평범한 외도들조차도 삼가 두려워 감히 어기지 않는 나쁜 짓들을 거침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음이 흐려져 지혜가 생기지 않고, 그 결과 전근대적인 미신에 빠져 앞장서서 중생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이들은 인과법과 윤회를 믿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막된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III. 심즉시공 心卽是空: 마음은 공이다

우리 마음은 본시 비어있다. 흰 도화지처럼 아무 색깔도 없다. 색깔 없는 화폭(畫幅 canvas)에 가지가지 색깔로 사물이 탄생하는 것처럼, 비어있는 우리 마음에는 선악(善惡), 고저(高低), 장단(長短), 미추(美醜), 부귀빈천(富貴貧賤), 남녀(男女), 노소(老少)의 상대세계가 아무 제약없이 생멸한다.

상대세계가 펼쳐지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세계를 우리라고 믿고,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한다. 그 세계의 일어남과 스러짐을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인다. 본시 비어있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 짙은 유성 물감 밑에 숨어있는 무색의 화폭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텅 비어있는 무색의 화폭이 우리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화폭과 물감의 상호연기작용相互緣起作用일 뿐이다. 그리고 물감은 35억년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설치되고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소프트웨어들이다. 이 점을 놓치면 메마른 단멸론斷滅論이나 완고한 유아론有我論으로 흐르게 된다.)

한 번도 동굴 밖을 본 적도 나가본 적도 없는 사람은, 눈부신 빛과 광활한 자유를 두려워한다. 감옥을 자기 집으로 여겨, 폭력, 증오, 탐욕과 더불어 환희하고 절망하며 생멸한다.

고성제(苦聖諦, 一切皆苦 모든 것이 ‘고’라는 진리)란, '구도의 여정은 세상이 감옥임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선언이다. 까뮈가 말한 대로 감옥을 탈출하려면, 먼저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음을 모른다.

가까스로 감옥 담을 넘더라도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문화적인 충격'(cultural shock)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배우는 연기를 할 때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그 빈 마음을 극중 인물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만 극중 인물의 역할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완벽하게 몰두해서 연기를 한 배우는 극이 끝나면 허탈해진다. 극 중 마음이 떠나고 옛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의 일시적인 공백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빈 마음의 출현은, 마음의 본성 즉 공성(空性)을 깨달은 자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아직 공(空)을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허무이고 공포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인 충격이다. 옛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새 마음!

IV. 지신무성 至神無性: 지극한 신은 성이 없다

모든 창조물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예수가 존재한다면, 그런 예수는 남자가 아니다.

(어떤 형태로건 간에, 주는 자가 남아있는 사랑은 한계가 있다. 많이 남아있을수록 한계도 많다. 주는 자가 사라진 사랑은 한계도 사라진다. 자기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일체중생을 무여열반으로 인도할 수 없다<금강경 대승종정분大乘正宗分>.)

실제로 이런 사상을 가진 가톨릭 교황이 있었다. 1978년에 즉위한 요한 바오로 1세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은 성(性)이 없으므로 여자로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은 어머니이며 아버지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버지이기보다는 어머니이다“라고 발언하였다.

그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관식(교황 취임식)을 소박한 미사로 대체하였으며, 자신을 ‘짐(朕)’이라 호칭하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나’라고 호칭한 개혁적인 교황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즉위 한 달 만에 심근경색으로 서거했다. 진실로 소중하고 귀하고 좋은 것은 세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런 일은 절대로 흔하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고해(苦海)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결코 무여열반에 들지 않았고 지금도 색신(色身 피와 살을 지닌 육신)을 나타내 중생을 교화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부처님이 단 80년만 이 세상에 머무셨기에 세상이 고해인 것이다.

만물을 담는 우리의 마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우리의 마음의 바탕은 일체가 비어있는 빈 마음이다. 마음이 화공(畵工 화가)이 되려면 그 바탕은 빈 화폭이다. 우리 마음속의 삼천대천세계는 빈 도화지위의 그림이다.

바탕의식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느냐 하는 것은 비치된 소프트웨어들에 달렸다. 그리고 이 소프트웨어들은 시공의 흐름을 타고 진화를 통해 발전한다. 도화지는 본래 비어있고 그림도구는 진화를 통해 변한다. 그러므로 일체가 무아(無我)이다.

그대는 남자인가?

부록: 금강경 중 대승의 바른 진리(대승정종분)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자기 마음을 다루어야 한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중생을, 즉 알(卵)에서 태어나는 것이나, 태(胎)에서 태어나는 것이나, 습기(濕氣)로 생겨나는 것이나, 화(化)하여 나타나는 것이나, 형태가 있는 것이나 형태가 없는 것이나, 생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이나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 수 있도록 제도한다. 하지만 내가 이와 같이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제도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 어느 중생도 멸도(滅度)를 얻은 바가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金剛經 大乘正宗分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則非菩薩.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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