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봉
토끼봉
  • 현각 스님
  • 승인 2015.02.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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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4.

북한산에 오른다. 그곳에는 진흥왕 순수비가 서 있던 비봉이 있다. 그 옆에 사모(紗帽)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사모바위 아래 승가사가 가람의 운치를 더한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봉을 나만은 달리 부르기도 한다. 토끼봉이라고 말이다. 토끼 몸통에 해당하는 바위 위에 귀가 쫑긋한 모양의 바위가 앉아 있으니 토끼봉이라 부를만하다. 내방객들에게 토끼봉이라고 말을 건네면 쉽게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문수봉과 보현봉을 향해 쉬지 않고 발을 내딛는 모습에서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을 실천하려는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저 평화주의자 토끼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중생의 희노애락의 온갖 소리를 듣고 있는 관세음보살님 같이 큼지막한 귀를 가지고 있는 토끼는 여러 생을 닦은 모양이다. 그래서 저 승가사에서 소원성취를 발원하는 중생의 시름을 경청하고 있는 듯도 하다. 하여간 매일 토끼봉을 바라보는 일상에서 평안과 고요를 얻는다.

토끼를 생각하면 추억이 새롭다.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이면 매번 있었던 일이다. 방학 중 행사 가운데 토끼몰이를 하는 날이 있다. 학년 별로 모여 행하는 겨울방학의 통과의례쯤이었다. 산토끼를 잡기 위하여 목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학생간의 간격을 좁힌다. 거리는 거의 손을 맞잡을 정도의 간격이 된다. 혹시 다리사이로 빠져나갈까봐 조심스레 포위망을 좁혀간다.

겨울산의 흰토끼는 유난히 눈에 띈다. ‘와―’ 하는 군중 소리에 놀란 토끼는 날쌔게 달아난다. 뒷발이 긴 토끼가 산을 타면 좀체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 토끼도 우왕좌왕 하다가 탈출구를 찾기도 하지만 아니면 딱 걸리고 만다. 어느 때는 그가 누렸던 안식처에서 잡히게 된다. 그때의 토끼는 숨이 헐떡거리고 몸은 노그라져 있다.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이다.

선생님들은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위험스러운 토끼몰이를 왜 했을까. 아마 협동심을 기르기 위한 단체훈련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극기 훈련의 깊은 뜻도 있었음직하다. 협동과 극기란 모듬살이에 필수조건이다. 협동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면 극기는 자신을 이기고 감내하는 마음이다. 실로 세상살이의 기본요건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던 선생님들의 속내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몇 마리를 잡았다 하여 누구 하나 노느몫을 바라는 학생은 없다. 우리 반이 몇 마리 잡았다는 승전고로 만족할 뿐이다.

헤르만 헷세(Hermann Hesse)는 모든 것이 좋았고 완전했던 청춘의 시기와 고향의 풍경을 기억하며 ≪Schön ist die Jugend(청춘은 아름다워라)≫라는 작품을 썼다.

가장 뜨겁게 아름다운 청춘이길
조그만 감정에도 가슴 뛰는 청춘이길
커다란 감정에도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길

고단한 길을 걸었던 작가는 젊은 날의 회상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주로 영양식을 했던 임금들은 무슨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했을까 궁금해진다. 주로 사냥을 하여 몸을 단련하고 건강유지를 하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일반적으로 사냥철을 정하여 수렵을 했을 법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조선의 정종은 신하들이 사냥을 만류하자, “내가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한 탓으로 병이 났다. 한 번 나가서 울울하게 맺힌 기운을 풀려고 한다”며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친다.

봄에 나가는 사냥을 봄사냥 수(蒐)라고 했으며, 여름에 나가는 사냥은 여름사냥 묘(苗)라 했다. 가을에 나가는 사냥을 가을사냥 선(獮)이라 했고, 겨울에 나가는 사냥을 겨울사냥 수(狩)라 했다. ≪세조실록≫에 봄사냥ㆍ여름사냥ㆍ가을사냥ㆍ겨울사냥(蒐苗獮狩)은 나라의 큰일이니(國之大事也)라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냥은 단순히 심신단련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였음을 엿볼 수 있다.

에메랄드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바닷가에 사는 노햇사람의 삶은 어떨까. 보이는 것은 바다이고, 하늘이고, 포말을 일으키며 물이랑을 만드는 돛단배를 보는 것이다. 아니면 해안가를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만하다. 솜병아리 같이 부드러운 모래알을 밟는 기분은 어떨까. 아마 햇솜을 틀어다 이불을 만들기 위해 죽 펴놓은 솜이불 감 위에 발을 디딘 푹신함과 같을 것 같다.

노햇사람은 수평선 넘어 세계를 동경하며 살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티뷰론(Tiburon) 해안에 인접한 햇살 가득한 집이 수면을 수놓는다. 인도의 항구도시 비자그(Vizag) 연안에 살고 있는 주민의 저택에서 찌든 인도인의 가난을 찾아 볼 수 없다. 감미롭고 잔잔하게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소리에 고요의 정취를 느끼기에 흡족하다.

저 바다는 낭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에 나간 어부는 90일 동안 고기를 낚지 못한 시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모노레일이 있기도 하지만 인생은 기차 레일과 같이 쌍으로 놓인 듯하다. 희노애락이 혼재된 양상을 띈 것이 인생이다.

이러한 면면을 습득하기 위하여 학습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비유컨대 열 손가락과 발가락이 제 각각 크기와 굵기 길이가 다른 것을 인정하며 성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지났음에도 현실에서 다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름의 공존은 흡사 날줄과 씨줄의 조합과 같다.

낯선 곳에서 호기심 보다 여심(旅心)이 몰려오는 시간이 있다. 이럴 때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바다를 바라보며  달래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다. 예상치도 않았던 일이 닥치면 당혹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시절에 익힌 협동과 극기는 흔들리는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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