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경계
삶과 죽음 경계
  • 변택주
  • 승인 2015.02.0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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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변택주의 <섬기는 리더가 여는 보살피아드>-105. 난도 파라도

어버이가 세상 떠나실 때도 몰랐던 ‘삶과 죽음’ 한창 나이인 가까운 살붙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겨우 와 닿는다. 아주 오래전 법정 스님이 백련암으로 종정으로 계시던 성철 스님을 뵈러 갔다. 성철 스님은 당신이 행각하던 시절 얘기를 해주셨는데 만공 스님에게 스승인 경허 스님을 어느 만큼이나 믿느냐고 물으셨단다. 만공 스님은 만약 둘이서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허기가 져서 마침내 죽게 된다면 “스님은 더 사시면서 많은 중생을 제도해야 할 것이니 저를 잡아 잡숫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하고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겠다고 했다. 스승에게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말을 듣고 더 할 말이 없더라는 성철 스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단다. ‘그 스승은 기꺼이 잡아먹을 사람이고, 그 제자는 기꺼이 잡아먹힐 사람’이라고.

그런데 실제 1972년 안데스 산맥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1972년 10월 13일 오후 3시 30분쯤, 우루과이 공군기 571기가 안데스 산맥 꼭대기에서 떨어졌다. 두주일 찾아보고 나서 없으니 눈 덮인 산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찾기를 그만둔다. 그런데 뜻밖에 72일 뒤 죽었다고 여겼던 럭비 선수 두 사람이 산을 내려온다. 승객 마흔다섯 사람 가운데 열여섯 사람이 살아남아 부서진 비행기 몸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Montevideo 카라스코Carrasco 공항에서 이륙한 우루과이 공군 소속 쌍발 프로펠러기 페어차일드 FH-227D는 안데스 산맥 상공 기상이 나빠, 아르헨티나에 비상착륙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시합하러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가던 스텔라 매리스 학원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Old Christians team’과  그밖에, 친척을 만나러 칠레로 가는 승객과 공군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 6명과 승객 40명해서 모두 45명이었다.   
10월13일 공항을 떠난 이 비행기는 상승할 수 있는 고도가 9,000미터로 안데스 산맥을 바로 넘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안데스 산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면서 돌고 나서, 다시 북으로 가는 항로를 골랐다. 구름이 앞을 가려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비행했으나, 이름을 알 수 없는 산 중턱에 부딪쳤다. 공군 조종사 두 사람은 손꼽는 베테랑이었으나, 기류가 큰 에어포켓 탓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비행기가 몸체로 착륙하면서, 조종사 두 사람과 기체 뒷부분에서 젊은이 세 사람이 밖으로 튕겨 나가면서 아홉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고, 나머지 세 사람도 같은 날 숨졌다. 비행기는 양 날개와 꼬리를 잃고, 떨어진 곳은 항로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고 아주 높은 산악지대에 갇히고 말았다. 이 고도에서는 식물은 자랄 수 없으며, 눈에 들어오는 것은, 15미터 높이로 쌓인 눈 위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마추어 럭비팀 ‘올드 크리스천’ 주장인 마르세로 페레스는, 다리 골절을 입거나 다쳐 기내에 갇힌 부상자를 구하려고 구조팀을 짰다. 의학생 출신 로베르토 카넷사와 구스타보 세르비노는 부상자 응급처치를 했다. 모두 마흔다섯 사람 가운데 비행기가 산과 부딪칠 때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사람은 스물여덟 사람이었다. 날이 지나가면서 죽어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깊은 눈 속에서 식량도 의약품도 없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막다른 길에 몰렸다. 크게 다친 사람들을 도와주지도 못 한 채, 한 사람, 한 사람 숨을 거둘 때마다,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주검을 기내 밖으로 운반해 눈에 묻어 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사람들은 몸만 덩그마니 남은 비행기 잔해 속에서 몸과 몸을 바짝 붙이고, 귀중한 초콜릿 나누어 먹으며, 눈으로 물을 채우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구조 비행기가 가까이 다가왔다 하더라도, 흰색으로 칠해진 기체가 하얀 눈 속에서 쉽게 눈에 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구조요청을 하려고 조종석에 있는 무전기를 쓰려했으나, 건전지가 없었다.  

10월15일, 피토는 와인 빈병에 눈을 채워 금속 막대기고 쑤시면서 눈을 녹여 물을 만들었다. 의식을 찾은 난도 파라도Nando Parrado(22살)는 위독한 여동생 수산나를 보살폈다. 정오가 지나 항공기 세 대가 머리 위를 지나는 것을 봤다. 가장 나중에 지나친 비행기 한 대는 기체 잔해 가까운 데를 지나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10월21일, 수산나 파라도는 기어이 오빠 난도 파라도 팔에 안겨 죽어갔다.

10월22일, 배급된 얼마 되지 않은 식량이 바닥나자, 사람들은 먹을 것이 모자라 극도로 쇠약해져, 죽음이 코앞에 있었다. 이때 의대생 가넷사(19살)는 “살아남으려면 단백질이 있어야 한다.”며 “여기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단백질은 밖에 묻은 주검뿐이다. 더구나 눈에 덮여 냉동되어 있다.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다 같이 쇠약해져, 주검에서 고기를 떼어낼 힘조차 없어지고 만다.”며 주검을 먹자고 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거칠게 반대했으나, 19살에 지나지 않은 가넷사는 침착하게 윤리 논리를 펴며,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 있다.”라고 했다. “주검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고기라고 여기자.” 라고 했다. 대부분이 친구들이었으므로 가볍지 않았다. 

10월23일, 이 이들 소식이 끊기고부터,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우루과이 각 나라는 비행기 수색활동을 거듭했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추락하고 2주일 뒤에 수색활동을 단념했다. 안데스 산속에 갇혀서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은, 라디오로 수색활동을 듣다가 수색을 그만 뒀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절망에 빠져 앞이 캄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수색대는 더는 오지 않고, 믿을 것은 오직 우리 말고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힌다. 
 
10월27일, 주검을 잘라 내어, 기체 잔해에 올려놓고 죽은 넋을 기리는 기도했다. 가넷사가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린 다음, 고기조각을 입에 넣고 삼켰다. 다른 이들도 뒤를 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람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겠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종교 신념에 따라 사람 고기 먹기를 손사래 친 사람일수록 눈에 띄게 야위어갔다. 동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먹이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고기와 피를 먹는다고 생각하라.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식량으로, 신은 우리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려는 증거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그 이들은 사람 고기를 입에 대지 않은 채 죽어갔다. 
사람 고기를 먹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주검에서 고기를 떼는 일은 지극히 마땅한 일로 되어, 잘라내어 저장하여 둔 데서 훔쳐 먹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이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스물일곱이나 됐다.  

10월29일, 엄청난 눈보라가 덮쳐 여덟이나 죽었다. 남은 열아홉 사람도 한계에 이르러 최악이었다. 다음 눈보라가 덮치면 죽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다 죽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꼼작 않고 있어도 나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한 이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바깥에 알리려고 머리를 짜낸다. 그리고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사람이, 혼자 산을 내려가 구조를 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실행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죽어, 살아남은 사람은 열여덟 사람으로 줄었다. 
 
11월17일, 구조를 청하려고 가넷사와 비진틴 그리고 파라도가 길을 나섰다. 럭비 슈즈를 신고, 껴입을 수 있는 모든 옷을 입고, 주머니에 사람 고기를 넣을 수 있는 만큼 넣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뒤에 자신들이 산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맥이 빠졌다. 비행기 잔해로 되돌아갔으나, 이 사이에 또 한 사람이 죽어갔다. 가넷사가 “뇌에는 미네랄이 넉넉하다.”고 말해 뇌를 꺼내도록 지시했다. 또 한 사람이 죽어 갔다. 파라도는 동료에게 “목숨을 건지려면, 내 부모, 동생 주검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11월18일, 가넷사와, 파라도 그리고 비진틴 세 사람은 구조를 요청하려고 다시 떠났다. 도중에 여행가방 몇 개를 봤다. 그 안에는 담배, 먹다 남은 음식물 그리고 옷가지 상자였다.  이 날 비행기 동체에 남아 있던 사람 가운데 에챠바렌(22살)이 죽었다. 

탐험에 나선 세 사람은 산봉우리 몇 개를 넘고 넘었으나, 보이는 것은 또 산이었다. 도중에 식량이 걱정되어, 비진텐이 자기 식량을 두 사람에게 건네고 비행기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라디오로 우루과이 공군 C-47이 수색을 재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2월13일, 일행은 산을 넘어 행군을 계속했다. 너무 힘든 행군으로 도중에 되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뜻을 모으지 못한 채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2월15일, 계속 산에 올라 어느 산 정상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시 절망해야 했다. 산맥을 넘으면 틀림없이 뭔가 가망이 있으려니 생각했었으나. 앞에 보이는 것은 산봉우리 그리고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넷사, 파라도 두 사람은 낮에 쉬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걸었다. 12월18일, 어느 계곡에 닿았을 때 눈은 점점 적어졌고, 눈길 종착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은 없었다. 식물이 조금씩 보였다. 앞으로 나가감에 따라 식물이 무성히 자라있는 곳에 이르렀다. 12월19일, 가넷사와 파라도가 다시 산 하나를 넘어, 반대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계곡에 목초지와 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이어서 빈 깡통과 말발굽 파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소떼와 푸나무를 발견했을 때는 이제야 문명세계에 와 닿았음을 실감하며 뛸 듯이 기뻤다. 12월20일, 쓰러질 듯한 두 사람 눈에, 강 건너에서 앉아있는 농부 Sergio Catalan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농부에게 펜과 종이를 던져 달라고 외쳤다. 
 
농부가 던져 준 종이에 파라도는 “우리들은 산에 떨어진 비행기에서 걸어왔습니다. 나는 우루과이 출신입니다. 우리는 열흘이나 걸어서 왔습니다. 부상한 동료 열네 사람을 비행기에 남기고 왔습니다. 여기서 어서 빼내 와야 합니다. 식량이 떨어진지 오래며, 몹시 지쳐 있습니다. 우리는 더는 걸을 수 없어. 우리 비행기가 어디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SOS”라고 썼다. 뭔 말인지 알아챈 칠레 농부는 먹을 것을 던져주고 서둘러 그 곳을 떠났다.   
 
세 시간 뒤 말을 타고 돌아온 농부는 두 사람을 가까운 마을까지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이 마을에 닿은 것은, 산속을 헤맨 지 열흘째, 비행기가 떨어진지 72일째 되는 날이었다. 농부는 이 편지를 관세 검사관에게 보여 주었다. 이때 기체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라디오로 원정대 두 사람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두 사람이 무사히 구출된 사실을 알았다. 

12월22일, 10월13일 일어난 추락 사고에서 혹한을 뛰어넘어 살아 돌아왔다는 뉴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눈 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당국은 서둘러 구조 헬리콥터를 띄웠다. 파라도가 함께 올라 길 안내를 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열여섯 사람은 샌디에이고 중앙병원에 운송됐다.  

매스컴이 밀려 왔을 때, 사람들은 이제까지 겪은 무서운 일을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떨었다. 기적처럼 살아오고 나서 닷새 뒤인 12월 26일 어느 신문사가, 추락현장 둘레 눈 속에서 먹다 남은 사람 다리를 찾아내 신문에 실었다. 모든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살아남으려고 한 짓을 꾸밈없이 털어놨다. 몬테비테오 가톨릭 대사교는, “나는 도덕에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로, 그 일이 기꺼울 수 없이 싫었다 하더라도, 손댈 수 있는 무엇이든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저이들이 맞닥뜨린 삶을 떠올리면, 더구나 나이 어린 가넷사가 시릴 만큼 차가운 결단을 떠올리면, 섬뜩하지만 가슴을 울린다. 이 기적은 사람고기를 먹지 않았더라면 이룰 수 없었다. 여러 번 주저하고 많은 번뇌 끝에 나온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이 일을 평생 짊어지고 가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이들 몸을 먹고 목숨을 이어온 이 사람들은 죽은 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가슴에 새기고 하루하루 고마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난도 파라도는 전문산악인도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넉넉한 집안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인생을 즐기던 스물두 살 난 젊은이였다. 그저 그런 젊은이가 너무나 크나큰 시련 앞에 보여준 힘은 깊은 경외심마저 든다. 야트막한 나라 우루과이에서 태어난 난도는 제대로 된 산을 타본 적도 없었다. 예순 날이라는 긴 시간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맥이 빠질 대로 빠져있었다. 크램폰, 쇠 피톤, 얼음도끼 같은 눈 덮인 산을 탈 수 있는 장비 하나 없이 여름옷 몇 벌을 겹쳐 입고 럭비화를 신은 채 안데스를 넘어 칠레 로스 마이테네스까지 100킬로미터를 걸어 구조해달라고 했다. 2006년 2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전문산악인들로 팀을 만들어 난도 파라도가 걸은 여정을 살려냈는데 이 전문산악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이는 거룩한 사람 뜻으로 빚어낸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다같이.

   
인문학 강의를 하는 경영코치, ‘연구소통’ 소장으로 소통을 연구하며, 지금즉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스님 숨결>과 <법정, 나를 물들이다>, <가슴이 부르는 만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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