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
도도새
  • 현각 스님
  • 승인 2015.02.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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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5.

무엇을 잘 하려면 반복을 해야 한다. 아마 구구단을 외우던 어린 시절을 상기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2단부터 9단까지 반복의 연속이다. 그 절정은 환경미화시간이 제격이었던 것 같다. 우선 교실 바닥을 물걸레질하여 깨끗하게 묵은 때를 닦는다. 이튿날이면 바닥이 말랐는가 확인하고 치자 물을 들인다. 그 다음 날은 준비해 온 살구씨를 짓이겨 바닥에 문지른 후 마른 걸레로 문지르기를 반복한다. 이때 모습이 또 장관이다. 삼삼오오 짝이 되어 앞뒤에서 문지르면 반질반질 윤이 난다.

교실 바닥이 반짝거릴 때까지 손놀림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구구단을 습송(習誦)하다보면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던 구절도 옆 친구의 암송 소리에 귀가 열리기도 한다. 반복은 사유를 능가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익힐 습(習)자를 보면 깃 우(羽)와 흰 백(白)을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백은 자(自)이고, 자는 코 비(鼻)가 된다.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본받아 반복하여 날면, 숨결이 입과 코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羽와 白을 합하여 새끼 새가 나는 법을 익힌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미 만들어진 두 개 이상의 글자를 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 그 글자들이 지닌 뜻을 합쳐서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문자를 회의문자(會意文字)라고 한다. 믿을 신(信)은 사람[人]의 입에서 나오는 말[言]은 진실해야 한다는 데서 ‘믿다’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며칠 전 일이다. 이따금 짧은 시간을 활용하여 남산 한옥마을을 걷는다. 딸깍발이 일석 이희승선생 학덕추모비에 당도하기 전이었다. 난데없이 비둘기 떼와 참새 떼들이 허공에서 군무를 이루다가 옷깃차례도 없이 덥석 내 발길 주변에 내려앉았다. 내 눈에는 덥석 내려앉은 듯이 보이지만 저 새들은 얼마나 많은 날갯짓을 하였을까 생각이 든다.

내딛는 발길에 물러설 뜻은 없었다. 달아나지 않고 바라보는 새들의 눈망울과 마주쳤다. 참 무기력한 순간이었다. 저들의 허기를 달랠만한 무엇도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좁쌀 한 움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보리마음 모두내어 윤회고를 벗어나기’를 발원했던 이산혜연선사의 발원을 낮은 목소리로 외우며 서 있었다. 미봉책의 법보시가 되었는지 곧 자리를 떠난다. 마음에 작은 안도감이 들어 다행이었다. 한 바퀴 경내를 돌아 공연장 가까이에서도 새떼를 만나게 되었다. 단순히 신기하다고만 여기기에는 미흡한 듯하다. 경이로움으로 소름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걸음 한 발짝도 생각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임을 깊이 느꼈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가 있다. 도도새라고 한다. 도도(Do Do)는 포르투칼어로 ‘바보, 멍청이’라는 의미이다. 이 새는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Mauritius)에서 서식했던 새이다. 이곳에서 새는 매우 오랫동안 아무 방해 없이 살았기 때문에 하늘을 날아야 할 필요가 없어 땅에 둥지를 틀고 나무에서 떨어진 풍부한 과일을 먹고 살 수 있었다. 또한 천적도 없어 그날그날 그저 배불리 먹고 타성에 젖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살만 찌고 날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도도새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양을 항해하던 포르투칼 탐험가들이 모리셔스섬에 당도하여 이 우스꽝스런 새를 보고는 도도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물론 가뭄이나 지진 등의 천재지변이라는 설도 있으나, 토인비(A. Toynbee)는 마야 문명도 도도새 법칙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주장했다. 현실에 안주하여 자기계발을 게을리한다거나 도전을 두려워하고 개척정신이 없이 현실에 안주하다보면 마침내 파멸을 맞고 만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법칙이다. 이 문제는 비단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집단, 문명, 사조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미치는 것이다.

문명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한때는 마마보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성년이 되어서도 무엇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에 의지하여 부모가 결정해 주기를 기대하는 의타적인 나약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대학가에서는 수강신청도 손수 어머니가 나서 해주는 일도 있다고 하니 마마보이의 극치가 아닐까 한다. 자기 주도적인 결정을 스스로 못하게 되면 앞날이 막막해질 수 있다. 부모는 자신 곁에 늘 있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지식, 기술,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개발하는 것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집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능력을 개인이나 단체가 지니고 있는 저력을 발휘할 때 국가는 강한 나라가 될 것이고 개인은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종단은 어떠한 형태가 되어야 이상적일까 생각해 본다. 이상적이란 말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피안의 구호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균형이다. 균형은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다. 물질의 분배가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불만이 만연되고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불협화음의 연속이 된다.

많이 가진 자는 누릴 수 있는 폭이 넓다. 반면에 없는 자는 상대적인 박탈감 내지 상실감만 늘어가기 마련이다. 누리는 폭이 많으면 업의 폭도 비례할 밖에 없다. 삼업의 청정은 뒷전의 일이 되고 악업만 늘어 갈 것이 뻔하다. 마치 도도새가 현실에 안주하다보니 소중한 날개를 잃고 말 듯이 별난 집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성찰이야말로 자성의 반딧불이가 된다. 그 반딧불이가 모여 세상을 밝히는 일월이 될 것이고.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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