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시민칼럼] 화쟁, 평화롭게 싸우기
[화쟁시민칼럼] 화쟁, 평화롭게 싸우기
  • 조성택
  • 승인 2015.02.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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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택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화쟁’은 한국사회에서 분쟁과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고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그런데 이 화쟁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화쟁은 갈등과 다툼이 없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쟁은 평화롭게 싸우는 법이다.

잘 알려진 대로 화쟁은 원효(617-686) 고유의 용어다. 원효는 화쟁론을 통해 서로 다른 주장들이 결코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원효가 들고 있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예화에서 잘 드러난다. 코끼리 전모를 다 볼 수 없는 장님들은 각자가 만지고 있는 부분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코끼리가 “벽과 같다”고 하며 또 다른 이는 “기둥과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백가의 쟁론’이지만 각각의 장님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코끼리를 만진 직접경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원효는 자신 또한 장님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모두 옳다”(개시, 皆是)고 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주장이 모두 코끼리가 아닌 다른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효는 또한 “모두 틀렸다”(개비, 皆非)고 한다. 어느 한 주장도 코끼리의 전모를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皆)라고 하는 동시적 상황이다. ‘나의 옮음’이 ‘저들의 틀림’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고 저들이 옳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나의 옳음과 저들의 옳음이 다를 뿐이다.

이제 코끼리의 전모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주장도 제한되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코끼리 아닌 것을 만지고 코끼리라 주장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되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평화로운 다툼’의 과정을 통해 점차 코끼리의 전모를 완성해 갈 수 있다.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는 주장들이 한 자리에 펼쳐지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겠지만 이 ‘평화로운 다툼’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조금씩 코끼리의 전모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옮음’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저들의 옮음’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진리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 이견과 갈등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진리를 드러내는 기회이자 에너지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한 ‘화쟁의 정치학’이다.

조성택 ㅣ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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