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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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각 스님
  • 승인 2015.02.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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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7.

예전에 흔히 듣던 말이 생각난다. ‘무릎에 바람 들어온다’는 어른들의 말씀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릎에 웬 바람일까하고 의심을 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하필이면 노인네 무릎에 파고들까 더욱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기도 했다.

근래 몇 년간 경험한 사실이다. 앉아 있으면 무릎에 냉기를 느껴 손바닥으로 무릎마디에서 무릎도리까지 문질러 보기도 한다. 이도 신통치 않으면 덮개를 덮어 한기를 이겨내기도 한다. 외출할 때가 문제이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에는 내복과 솜바지면 그만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 구절이 떠오른다. 이 노래 가사는 나이가 들었어도 매사에 당당함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그와는 달리 무릎 단속을 해야만 하는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생각하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세월은 무심히 젊음을 앗아가고 발랄한 청춘도 시들게 하다니 도시 알 수 없는 것이 세월의 속성인 듯하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월이라면 순응해야 한다. 초침의 재깍거리는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 질서의 기본 단위이다.

방한(防寒)의 제구로 토시와 슬갑이 으뜸이다. 토시는 팔에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낀다. 또한 일할 때 옷소매가 해지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매 위에 덧끼는 물건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고, 한복을 주로 입고 살았던 시대에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따금 서예실에서 토시를 끼고 붓글씨를 쓰는데 소매에 먹물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슬갑(膝甲) 또한 토시 못지않게 노인들에게 필요한 제구이다. 슬갑의 용도는 무릎 가리개이다. 물론 무릎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마 바람도 심보가 좀 있는 모양이다. 아니, 콧구멍으로나 들고 나면 되었지 무슨 생각이 있어 무릎까지 파고드는지 모르겠다. 어디 무릎뿐인가. 전신에 오한이 들 때는 어떠한가. 바람의 영토는 국한된 것이 아니고, 무한정, 무한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바람의 실체는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국토의 경계도 무시하고 넘나들고 있다. 속절없는 바람이여. 너의 신통묘용은 가늠할 길이 없구나. 인간과 바람의 가댁질은 끝이 없는 듯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내 인생 가풀막에 이르렀나 보다 여기면 숨이 고르게 될 듯도 한 것이다.

홍만종(洪萬宗)은 1687년(숙종 4)에 <순오지(筍五志)>라는 수상록을 썼다. 책을 보름 만에 완성했기 때문에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한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이 병으로 누워지내다가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이나 <순오지>에 슬갑을 훔친 도둑 이야기가 나온다. 슬갑도둑은 남의 글이나 시문을 따다가 제 것인 양 쓰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슬갑을 훔친 도둑은 이것을 어디다 쓰는지를 몰라 이마에 붙이고 밖에 나다녔다. 아뿔싸, 이런 낭패가 있나. 온 동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해를 넘기며 동국대학교 내외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다. 표절문제이다. 당사자는 아니라 하고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몇 편의 논문이 표절이라고까지 제시한 것이다. 세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말이야 물론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장관을 비롯하여 공직에 나아가 공인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모두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다. 꼭 거쳐야 하는 검증 절차이기도 하다. 당사자는 신상털기가 가혹하다고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상대의 냉혹함을 논하기에 앞서 자신의 행위가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히 밝히는 태도가 현명하다고 본다. 진실은 간단하다는 속성이 있다. 그러기에 미사여구나 사족을 동반하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꼴이 된다면 지혜 있는 처사는 아니다.

게의 거동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릇에 한 마리를 두면 뚜껑을 덮어 놓아야 한다. 그러나 두세 마리를 넣어 놓으면 덮개가 없어도 무방하다. 혼자 있을 때는 빠져나오기가 쉽지만 두 마리가 있을 때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출하려는 상대를 끌어내리고 자신만 빠져나가려고 온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찌되었든 간에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이기심의 극치가 아닐까 한다. 이기심은 공생의 길은 아니다. 어찌 보면 공멸의 길이 될 수도 있다.

하눌타리라는 다년생 넝쿨성 식물이 있다. 참외보다 좀 작은 타원형 열매가 황금빛으로 익어 줄기에 달린다. 뿌리는 고구마처럼 굵고 줄기는 가늘다. ‘천원자를 어디에 쓰랴(天圓子將焉用哉)’라는 말이 있다. 천원자는 하눌타리의 이명이다. 천원자는 한방에서 담(膽)을 치료하는 약제로 쓰인다.

천원자를 얻었으나 쓰는 용도를 몰라 벽에 걸어두기만 한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그 집에 놀러왔던 사람이 이것을 보고
“자네는 담을 앓으면서도 저 천원자를 그대로 매달아 두고만 있으니 웬일인가?”
그러자 주인은 의아한 눈초리로 묻는 것이었다.
“이 약초는 어떨 적에 쓰는 것인가?”

어떤 물건이 마땅히 소용되어야 할 곳에 알맞게 쓰여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찌 물건에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태산의 맹호도 쥐를 잡는 데는 고양이만 못하다(泰山猛虎捕鼠不如群猫)라고 하였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평소 자신에게 시근담을 쌓아야 한다. 담이 낮다 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는 분명히 구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실에 앞서 사람을 등용할 때 적합한 지 여부도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방비책은 구성원들을 편안하게 하고 건실한 집단이 될 수 있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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