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겨운 당신, 다산유배길을 걸으시라
삶이 힘겨운 당신, 다산유배길을 걸으시라
  • 고원영
  • 승인 2015.03.0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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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고원영의 ‘저절로 가는 길’-1. 유배길 걸어 백련사 가는 길

“지구는 둥글고 사방의 땅은 평평하다. 그러니 내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은 세상에 없다.”

다산의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내 관자놀이는 짜릿했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다산수련원 앞에서였다. 팻말에 쓰인 다산의 글에서 유배지에서의 비탄이나 적막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찾을 길 없이 당당했다.

▲ 정석. ⓒ고원영

이것이 실학이구나! 다산 정약용에 꽤 심취한 편이지만 이것만큼 실사구시를 제대로 응축한 문장은 읽지 못했다. 한참을 읽고 또 읽으니 불교에 관한 다산의 알음알이도 범상한 단계를 훨씬 넘어선 듯했다. 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라는 임제선사의 문장이 다산을 통해 다시 변주되고 있었다.

아니, 다산의 글은 외려 선어禪語의 모호함을 뛰어넘어 자연과학에 버금가는 명징성에 모던한 감각까지 획득하고 있었다. 간단한 그림 하나 그려 보겠다. 지구는 둥그니까 둥글게 원을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을 그려 놓는다. 내가 서 있는 땅이 비록 평평하지만 지구는 본래 둥글어, 어디에 있든 높은 곳에 있는 셈이란 것이 다산의 도형적 생각이다. 동화에 가까운 상상력이지만 놀랍게도 진리가 아닌가.

▲ 동트는 강진 땅. ⓒ고원영

다산이 당신 사상을 꽃피운 건 유배지 강진에서였다. 1801년 음력 11월 신유사옥에 연루된 다산에게 내려진 형벌은 유배였다.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인 셋째 형 정약종은 서울에서 참수됐고, 서울에서 나주까지 아우 정약용과 함께 걸어온 둘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헤어졌다. 그의 나이 마흔 살 겨울이었으니, 유배지에서 풀려난 쉰일곱 살 가을까지 강진에서 정확히 16년 9개월을 울분과 치욕으로 보냈다. 이 시기 놀랍게도 그의 학문은 일생에서 가장 불타오른다. 저 유명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동백꽃이 나락의 땅에서도 훨훨 피어났으니 말이다.

동백꽃은 봄이 올 때 진다. 아니, 꽃이 지니까 봄이 온다. 동백꽃은 봉오리째 땅에 져서도 붉게 타오른다. 유배의 겨울에 피어난 실학의 꽃은 마치 불멸인 양 차가운 땅을 버텨낸다. 겨우내 머뭇거리던 봄도 그제야 비로소 완연해지니, 꽃이 진다고 계절을 탓할 일도 아니다.

▲ 구강포. ⓒ고원영

다산수련원 뜨락에서부터 동백나무가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동백나무를 피워 올린 땅도 붉은빛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을 알리느라 ‘정약용 남도유배길’이라 적힌 노란리본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지만, 굳이 그걸 보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따라가면 될 성싶었다.

다산수련원을 나서자 자작나무의 수피처럼 희고 창백한 두충나무 숲이 길을 열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 언덕길부터는 정호승 시인이 시를 지어 찬탄한 ‘뿌리의 길’이었다. 땅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를 밟아야 오를 수 있는 길이었는데, 절묘했다. 세상에서 내팽개쳐진 정약용이란 사람의 인생을 바닥부터 생각해보란 뜻은 아닐까.

▲ 다산초당. ⓒ고원영

돌계단에 올라서니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와 편백나무 가지 사이로 다산초당이 보였다. 사람들이, 발길이 잦은 관광명소지만 한때는 다산의 고단한 삶이 배어있는 거처였다. 옛날 이 집은 지붕이랍시고 다 말라붙은 풀더미였으며 흙벽은 허물어져 구멍이 나서 비바람이 들이쳤으리라. 강진에 온 다산은 강진 동문밖에 있는 밥집 쪽방에서 4년을 버텼다가 강진 선비 이학래의 집에 거처를 옮겼다. 그 3년 후인 1808년 봄 만덕산 기슭의 초가에 자리 잡았는데, 바로 유배가 끝날 때까지 머무른 다산초당이다.

다산은 초당 동쪽에 동암을 지어 기거했다. 물을 끌어다 인공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길렀으며, 텃밭을 일궈 남새도 길렀다. 앞마당의 평평한 바윗돌은 숯불을 피워 초당 뒤편의 약천에서 길어온 물로 차를 달이던 부뚜막이다. 곳곳에서 생활의 냄새가 난다. 동암 오른편에 천일각이 있다. 다산 시절에는 없던 것이지만, 다산은 이 자리에서 이 즈음이면 봄빛이 자글자글 끓는 구강포를 내려다봤으리라. 초당 뒤쪽 바위벽에 새긴 정석正石이라는 글씨는 비록 몸은 유배지에 있지만 사대부로서의 결기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담았다.

▲ 동백 숲. ⓒ고원영

다산초당에서 백련사白蓮寺 가는, 이른바 ‘다산오솔길’은 다산과 혜장선사가 길을 오가며 교분을 나눴던 길이다. 다산은 열 살 아래인 백련사 혜장선사와 스승이자 제자, 벗으로서 우정을 쌓았다. 그 우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컴컴한 밤에 횃불을 켜들고 두 사람이 오고 갈 정도였단다. 비로소 나는 알았다. 다산의 글에서 임제의 촌철살인이 풍겨온 까닭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개혁가로서 선의 검객 임제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음이 틀림없다. 다산오솔길은 결국 유교와 불교가 드높은 경지에서 만나는 길이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에도 동백꽃이 지천이었다. 땅에 흩뿌려진 꽃들이 워낙 많아 가려서 발을 놓아야 했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또 있었다. 동백이 툭툭, 땅에 자진하듯 지는 소리가 들리면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멈춰야 할 것 같았다.

▲ 다산오솔길의 동백꽃. ⓒ고원영

다산오솔길은 해월루에 올라 아침 햇살이 그득한 강진만을 보고 내려와서는 탁 트인 차밭을 만났다. 차밭의 짙푸른 색은 오른쪽, 푸르기는 하되 붉은 꽃송이가 수없이 매달린 동백숲은 만덕산 쪽으로 기울어져 왼쪽, 그 사잇길로 걸어가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다. 보호구역이라 출입금지 표지가 붙은 동백숲에는 천연기념물 151호로 등재된 약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들어찼다.

동백숲 그늘을 지나고 한 기의 부도를 지나면 배롱나무와 비자나무 사이로 백련사가 보인다. 절집에 들어서면 대웅전부터 찾아보는 것이 내 습관인데 절집 뜨락, 붉디붉은 명자나무에 먼저 눈길을 뺏겼다. 봄날의 백련사에는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었지만, 동백꽃 길을 걸어 백련사까지 오느라고 취할 만큼 취했으므로 눈앞이 몽롱했다.

▲ 백련사 대웅보전. ⓒ고원영

단청이 벗겨진 대웅전은 수수하지만, 이 절은 고려 때 백성이 주인이 되는 불교로 거듭나자고 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백련결사의 현장이다. 대웅전 기단을 쌓은 돌들에 특이하게도 철이 산화돼 주홍빛을 띠고 있었다. 어쩐지 그 기단 위에서 백련사를 찾아온 다산을 맞으러 혜장 스님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정말로 고통스러워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유배지에서보다 유배를 떠나기 전 천주교를 배교하고 셋째 형 정약종과 천주교 신자를 밀고한 일이었으리란 이야기에 어쩐지 나는 더 수긍이 간다.

단군 이래 최고로 잘사는 시대라면서도 이상하게도 삶이 힘들다. 최고의 이혼율, 최고의 자살률, 최고의 실업률……. 혹시 당신도 이 최고 앞에서 사는 것이 힘들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보다 훨씬 삶이 힘들었지만 죽을힘을 다해 살았던 200년 전의 사람 다산, 그가 걸었던 유배길을 걸어보라. 그 길에서 어쩌면 희망이 보일지도 모르니.

걷는길 : 다산수련원 – 뿌리의 길 – 다산초당 – 해월루 – 백련사 - 백련사 입구(큰길) 
걷는시간 : 3km정도, 2시간 예상

▲ 뿌리의 길. 대나무 숲을 지나 언덕길부터는 정호승 시인이 시를 지어 찬탄한 ‘뿌리의 길’이었다. 땅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를 밟아야 오를 수 있는 길이었는데, 절묘했다. 세상에서 내팽개쳐진 정약용이란 사람의 인생을 바닥부터 생각해보란 의미는 아닐까. ⓒ고원영

▲ 다산오솔길의 동백꽃. 동백꽃이 신호등인 양 내 머리 위에서 깜빡였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에도 동백꽃이 지천이었다. 땅에 흩뿌려진 꽃들이 워낙 많아 가려서 발을 놓아야 했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또 있었다. 동백이 툭툭, 땅에 자진하듯 지는 소리가 들리면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고원영

고원영 산악인이며 여행가. 스페인의 산티아고길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가 성지순례길임을 통찰하여 108개의 불교 성지순례길을 개척하고자 답사 중이며, 36개의 길을 완료하고 ‘저절로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집필. ‘걸어서 절에 가면 몸뿐 아니라 정신이 운동한다’고 주장하며 때때로 대중을 규합한다. 현재 조계종산악회와 서울불교산악회를 이끌고 있으며, 2010년 ‘나뭇잎 병사’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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