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 승인 2015.03.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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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39.

화는 증오를 연료로 삼아 삼천대천세계를 태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火)를 안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처님은 진(瞋)을 번뇌의 근원인 삼독심(三毒心)의 하나로 치고 화를 금기시하셨지만, 우리는 화를 안 내고 살 수 없읍니다. 그게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화를 전혀 내지 않으려 하다가 실패를 거듭한 나머지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그래서 화를 자기 멋대로 나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화를 적당히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부처의 속성은 화를 안 내는 것이며, 중생의 속성은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 주제에, 화를 내는 자신을 너무 자책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화는 의사소통 기능을 합니다.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경고’의 기능을 합니다. 개나 늑대가 정작 물지는 않으면서도, 마치 당장 물 것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것이 바로 화에 해당합니다. 화는 상대방이 지나치게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에는 선심(善心)과 더불어 악심(惡心)이 있는지라, 경고를 받지 않고도 상대방을 배려하기는 힘이 듭니다. 중생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신통력이 없는데다가 탐심으로 마음거울이 흐려져 더욱 타인의 마음을 읽기 힘들어서, 중생들에게는 경고를 보내줄 필요가 있습니다.

미리 경고함으로써 싸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싸우면 서로 손해입니다. 승자도 부상을 당할 수 있으며, 특히 의료시설이 없는 원시시대에는 작은 부상이 종종 치명적인 상태로 진전될 수 있읍니다.

자연계의 동물들은 적당한 선에서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는 것도 경제행위에 해당합니다. (화를 내는 부정적인) 비용이 (화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결과라는) 산출을 넘어서면 안 됩니다. 지나치면 손해입니다. 특히 자기 종(種)에게 그리하면, 즉 같은 종들 사이에서 지나치게 화를 내는 일이 보편적으로 일어나면, 그 종은 융성할 수 없습니다. 심하면 멸종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조, 유비, 손권도 달성하지 못한 삼국통일을 이룩한 진나라는 사마중달의 후손들이 8왕의 난을 일으키며 서로 잡아먹을 듯이 화를 내다가 국력이 소진(消盡)돼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는, 수양제와 당태종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준 동북아시아의 최강자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에 그 아들들이 서로 불같이 화를 내다가 700년 역사가 한 줌 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경호실장 차지철에 대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주군을 시해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살아남아 있는 종은 구성원들 사이의 극단적인 화를 피한 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가 날 때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내고 있는 화가 그 정도에 있어서, 즉 크기와 강도와 범위에 있어서, 상황에 적절하고 적당한가 하구요. 누가 내 걸 훔쳐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손을 자르거나 목을 자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적당한 한계가 필요합니다.

BC 1760년 하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은 놀랍게도,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합니다. 이(齒)를 상하게 한 자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벌은 이를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걸 넘어서, 손목을 자르거나 목숨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근대법은 죄의 종류와 형벌을 법으로 정합니다. 분기탱천(憤氣撐天), 지나치기 쉬운 개인을 대신해서 국가가 가해자에게 화를 내줍니다. 적절한 선에서 말이죠. 이 죄형법정주의의 도입으로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공인된 사적인 복수인 결투가 있었고, 그 결과 종종 죽거나 불구가 되었습니다. 불세출의 수학천재 갈루아도 결투 중 입은 부상으로 죽었습니다. 하지만 법의 영역 밖에서는, 화는 그 대상과 정도를 지금도 여전히 개인이 정해야 합니다.

물건을 살 때 적당한 가격을 산정하는 것처럼, 누가 화를 돋울 때는 내가 지불해야 하는 화가 어느 정도가 합당한지 계산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일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일에도, 세상 모든 일에는 합당한 가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화가 지나친 나머지, 이성을 잃고, 지나치게 상대방을 몰아치고 지나치게 응징합니다. 그러면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상대방이, 자기는 그 정도 잘못한 것은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신적인 경제활동에 해당합니다.) 어차피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더라도, 보복의 강도를 약화시키면 서로 피해가 축소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인 독일에 지나치게 배상금액을 물린 결과로, 20여 년 만에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세계문명이 파괴되고 수천만 명이 도살당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들은 패전국들에게 과거와 같은 혹독한 책임과 벌을 묻고 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일본과 독일이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배경이며, 세계의 화약고인 유럽이 평안한 이유입니다.

보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제거하면 보복이 일어날 일이 없지만, 그리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노동력과 생산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소에 받히는 것과 유사한 현상입니다. 농부는 절대로 그 소를 죽이지 못합니다. 소가 없이는 농부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아남은 그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렇듯 반란과 보복은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물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다 없앨 수도 있습니다. 징기스칸의 후계자 오고타이칸이, 양자강 이북에 있던 금(金)을 정복하고는, 거기 살던 중국인들을 몰살시키려 했습니다. 땅을 더럽히는 벌레 같은 농민들을 없애고, 그 땅에 풀이 자라는 목초지를 조성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요나라 출신의 거란인 명재상 야율초재가 건의했습니다. “살려두고 세금을 받는 것이 목초지를 만들어 목축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익입니다.” 중국인들이 멸종당하지 않은 사연입니다.     

비교적 근래에는 히틀러가 박멸하려했던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게는 물론이고 마틴 루터로 대변되는 독일인들에게도 바퀴벌레처럼 혐오스러운, 전혀 필요 없는 종족이었습니다. 600만 명이나 학살당했지만, 다행히 히틀러가 패배함으로써, 멸종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중동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팔레스타인들과 유대인들이 서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큰 경제적 혜택을 주어 장려하면 몇 세대만 지나면 민족적·인종적 문제가 대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다르게 생긴 것은 많은 경우에 저주입니다. 다르게 생겼기에 잡아먹고 노예로 삼습니다. 다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혼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몸과 마음으로부터 생겨난 화를 삭이는 방법입니다.

백인 노예상들과 노예주들은 흑인노예를 강간해 태어난 자기 자식들을 자기와 다르게 생겼다고 즉 흑인모습이라고 노예로 팔아먹었습니다. 노예 수를 늘이려고 일부러 그리 한 천인공노할 자들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과연 불성을 지녔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례입니다. 미국은 ‘한 방울 규정(one-drop rule)’이라고 한 방물만 흑인 피가 섞여도 즉 조금이라도 흑인 피가 섞이면 흑인으로 간주했지만, 만약 백인 모습을 하였다면 노예로 팔아먹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흑인 피가 16분의 1은 되어야 흑인으로 분류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아마 흑인 피 비율이 16분의 1보다 작으면 외관상 흑인모습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라질 것입니다.

상황을 넘쳐흐를 정도로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몹시 해롭읍니다. 이미 실상을 왜곡했기 때문이며, 이 왜곡은 우리 정보유기체인 뇌와 마음을 뒤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뇌와 마음을 화로 범람을 시킵니다. 화라는 선글라스를 통해서 세계를 붉은 색으로 물들여 결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화가 날 때마다 자문(自問)해야 합니다. 꼭 화를 내야 하는가? 내야 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그 방식은 옳은가?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닌가? 지금이 화를 내야하는 적절한 시점인가? 화를 냄으로써 소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지금 내가 내는 화는 적당한 양인가?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화는 점차 줄어들고, 여기에 삼법인(三法印)에 대한 사유와 수행을 가미하면, 화를 내는 주체도 화를 받는 객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궁극적으로 화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소위 분해탈(忿海脫)입니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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