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잃은 것
전부를 잃은 것
  • 현각 스님
  • 승인 2015.03.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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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각 스님의 <클릭! 마음의 두드림>- 89.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상에서 매번 느끼는 편견이 다르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정상화 편견이 앞선다. 어제도 그랬고 앞 차도 그렇듯이 안전하겠지 하는 안도감이 든다. 소위 ‘나는 괜찮겠지’하는 마음에 대피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불안하여 한시도 살 수 없을 것 같다. 공포와 불안이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무심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게 되는 다수 동조 편견이 있다. 다수가 어느 방향으로 가면 그 방향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다수가 간다는 이유만으로 행렬에 끼어 발을 내딛게 된다. 자신이 타고자 하는 버스가 당도하자 우르르 몰려 버스에 오른다. 그 버스가 얼마쯤 달리다가 펑크가 날 수 있다는 개연성은 망각한 채 몸을 맡긴다. 펑크가 났을 때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불안쯤은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 바가 아니다. 혹시 자리를 보장 받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장사진이 화창한 봄날의 아지랑이 같이 허공을 맴돈다. 피난길 행렬이다. 남부여대하여 피난을 떠났다. 아이들은 걷는 것이 힘들다고 그 와중에도 생떼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도 잠시다. B29기는 저공비행을 하다가 폭탄을 던지고 하늘로 치솟곤 했다. ‘저 봐라, 무섭지. 어서 따라와’라고 겁을 주며 발길을 재촉하는 채근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날이 새롭다. 어느 편견이라고 명명할 일은 아니고 그저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면 살 것만 같았던 편견은 한낱 물거품으로 끝나고 마는 일도 많았다. 곧 다수가 답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일생 교단생활을 하며 풀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다. ‘다수는 정의인가’라는 자문에 그 해답을 내릴 수 없어 끙끙거렸던 일이다. 비단 교단에 서지 않았다 해도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문제이다. 서로 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때마다 다수결로 해결하자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 좋다고 주장하는 다수결에 결점은 없는지 한 번쯤 반문해 보아야 한다.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선을 공동선(共同善)이라고 한다.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공익의 추구는 사회를 원활히 운영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원리가 된다. 만일 공익 보다 사익을 앞세우면 그 사회나 집단은 곧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공동선이란 개인을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는 것이고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and yet it does move)’라고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신념에 찬 말은 어쩌면 마음속에 울려 퍼졌던 말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라이유(A.S.Irailh, 1717~1794)가 1761년에 전4권으로 출간한 󰡔문학논쟁󰡕에 나오는 말인데 이 책은 부정확하기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경위야 어찌되었던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한 과학자의 메아리 없는 외침은 후일 역사의 장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평소 내가 고심하는 다수가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이다. 소수가 답이고, 연약한 자의 작은 몸짓이 답일 수 있다. 그 몸짓은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되기도 하고 역사의 제전에 성화로 활활 타오르기도 한다. 작은 것은 연약한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서양을 배척하고, 일본을 배척한다는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의 기치를 걸고 봉기한 사건이 있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을 필두로 한 1894년 동학혁명이다. 매관매직에 눈이 어두웠던 관료들의 토색질에 항거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결집하였다. 민중의 힘은 소리 없이도 결집하는 힘이 있다. 그 지향하는 곳이 공동선일 때 더욱 그렇다.

4ㆍ19 의거는 어떠했는가. 학생들이 중심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한다. 이승만의 지나친 정권욕과 독재에 항거하였고 자유당의 부패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학생들은 맨손으로 부정에 항거하였고 반정부 항쟁에 절규로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해마다 4월의 그날이 오면 동국대 교정에 있는 동우탑을 찾는다. 그리고 짧지만 값진 삶을 살다 간 선배들의 영전에 향을 올린다. 탑을 몇 바퀴 돌다가 무거운 발길을 옮긴다.

만일 당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있는 인간의 3대 액체를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 피와 땀과 눈물을 3대 액체라고 주장한 정치인이 있다.

‘돈을 잃은 것은 적게 잃은 것이다. 그러나 명예를 잃은 것은 크게 잃은 것이다. 더더욱 용기를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고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긴 용기를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 있을까. 돈도 잃지 않았고, 명예도 잃지 않았지만 말이다. 돈은 형상이 있지만 명예나 용기는 형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행동이 용기의 범주에 속하는지 아닌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작금의 동국대학교 사태를 보며 누구나 걱정이 많다. 걱정 정도야 지나가는 과객도 할 수 있다. 구성원의 경우는 달라야 한다. 별의별 걱정보다 행동이 값지다. 동학농민 혁명이나 4ㆍ19 의거를 누가 지탄하는가. 방관자의 안일함에 역사는 준엄한 심판이 따를 뿐이다. 우리 모두는 선각자들의 희생과 봉기가 한 시대의 경종을 울렸고 역사를 바꾸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안일과 이기주의가 역사의 물꼬를 더디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쯤은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의 행동이 후학들에게 굴절되어 보이지 않기 위하여 어찌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할 시간이다.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 대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조선의 당쟁을 지탄하듯이 나의 행동이 당쟁의 한 축과 같지나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불의 앞에 용기를 잃었기에 전부를 잃은 것은 아닌지 말이다.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 수행정진했고, 동국대학교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 초청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장, 정각원장, 한국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으로 불교학계 발전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선학의 이해』, 『선어록 산책』, 『선문선답』, 『선문보장록』, 『선 사상론』, 『선 수행론』, 『한국선론』, 『벽암록의 세계』, 『한국을 빛 낸 선사들』, 『선심으로 보는 세상』 연보로 구성된 『최현각 선학전집』(전11권), 『내 사유의 속살들』, 『현각스님의 마음 두드림』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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