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하지 말아야 한다(하)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하)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4.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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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10

지극히 얻기 어려운 인간의 몸을 받아 운좋게도 이 복스러운 땅에 태어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음을 스스로 잘 압니다. 그런데도 또다시 지옥으로 자신을 이끌고만 있습니다. 주술에 걸려 혼미해져 정신을 못차리면서도 무엇이 나를 이토록 어지럽혔는지도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 안에 있는] 애증과 분노 그리고 탐욕 등의 원수들은 손[팔]도 없고 발[다리]도 없으며 지혜도 용기도 없는데도 저를 종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원수들은 제 마음 속에 자리 잡고 희희낙락하면서 저를 해하고 있는데도 저는 그들에게 성낼 줄도 모릅니다.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이유없이 참기만 하고 있으니 매우 부끄러운 치욕일 따름입니다. 만일 신이나 아수라와 같은 비신 모두가 제 원수가 되어 달려든다고 해도 저를 무간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뜨리진 못합니다. 하지만, 번뇌라는 이 막강한 원수들은 무엇을 만나건 심지어 수미산(須彌山)조차도 재(災)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워버릴 수 잇는 불구덩이에 저를 밀어넣어 순식간에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번뇌라는 이 원수는 시작도 끝도 없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우리 중생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그 어떤 원수도 이보다 더 긴 시간 제게 해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른 밖 적이라도 누군가를 공경하며 따뜻하게 받든다면 그들 모두는 제게 이로움과 행복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 안의 번뇌들은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훗날 제게 더 큰 불행과 고통의 피해를 줄 뿐입니다. 이와 같이 끝없이 긴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주는 원인인 번뇌라는 이 원수는 이미 제 마음 가운데 겁도없이 오만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제가 어찌 전혀 상관하지 않고 이 윤회 세계를 탐닉할 수 있겠습니까? 감옥같은 ‘윤회’세계의 간수[망상:妄想]와 같은 번뇌는 결국 지옥의 옥졸[고문관]이나 염라왕과 망나니 등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제 의식 깊은 마음속에서 탐욕과 집착들이 그물에 펼치고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제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하여 순간의 작은 해가 되는 일[고통]에도 크게 화를 냅니다. 때로는 분노가 사그라지기 전까지는 잠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이렇게 큰 해악을 끼치는 원수들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 없앨 때까지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온갖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병사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르게 될 줄 알면서도 적들을 무너뜨리고 싶어합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창과 활에 꿰뚫리는 등 온갖 부상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기 전에는 전혀 물러서지 않습니다. 하물며 언제나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 원수같은 번뇌들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수 백 가지 온갖 고통이나 어려움에 봉착해도 걱정하고 힘겨워하거나 게을러지거나 용기마저 잃는 등 절망하지 말고 다시 싸울 것입니다.

병사들은 적들이 입힌 하찮은 상처까지도 몸에 훈장[장신구]처럼 달고 다니며 과시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는 그런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제가 이 고통을 어찌 부끄러워 하거나 고통을 참고 극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부와 백정 그리고 농부들도 오로지 자신의 생업[생계]를 위해 더위와 추위의 고통을 견뎌냅니다. 그런데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하겠다는 제가 어찌 그만한 고통도 견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방의 허공 가운데 가득한 수많은 중생들을 번뇌에서 해탈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게 언제인데 아직 제 자신조차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 주제[능력이나 한계]도 모르면서 그와 같이 서원을 말한 것을 보니 그땐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제부터라도 번뇌를 쳐부수기 위해 저는 영원히 물러서지 않겠다는 불퇴전(不退轉)의 마음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이런 강한 의지로 저는 최선을 다해 어떤 번뇌와도 원한을 품은 듯이 원수처럼 대하며 맞서 끈질기게 싸우겠습니다. 이 번뇌처럼 보이는 원한은 다른 원한을 없애는 데 필요한 것으로 번뇌가 아닙니다. 이를 제외하고는 디른 온갖 번뇌를 다 끊어 버리고 없앨 때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제가 불에 타 죽는다고 해도 제 머리가 잘려나간다 해도 결코 번뇌라는 원수들에게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하찮은 세간의 원수들은 물리치면 잠시 다른 곳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똘똘 뭉쳐 힘을 키운 후에 다시 쳐들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안의 번뇌라는 원수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입니다. 번뇌! 번뇌란 지혜의 눈으로 봐야면 바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서 사라진 다음에 어디로 가 있는건가요? 아니 어찌 다시 저를 해치러 되돌아 올까요? 이와같이 마음을 졸이는 제겐 더 이상 원수들에게 대항할 여력마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번뇌란 원수는 감각대상[육경:六境]에 있는 것도 아니며, 감각기관[육근:六根]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사이인 중간이나, 그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머물러 있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중생에게 고통과 해를 끼칠 수 있단 말입니까? 번뇌는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직 지혜를 위해 정진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도 쓸데없이 저는 스스로 왜 여러 지옥을 비롯한 윤회계에 빠져서 아무이유없이 그렇게 수많은 고통과 해를 당하려고 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많은 가르침대로 행하도록 최선을 다해 애쓰겠습니다.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근거도 없이 좋다는 약에만 의존하는 환자를 어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 이 글은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강론, 청전(淸典)스님과 최로덴(최연철)박사 그리고 김영로선생의 우리말 번역본을 참조하여, 산티데바의 안목으로 운문인 입보리행론을 산문으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이는 필자 일개인의 견해일 뿐 다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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