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하라 (2)
인욕하라 (2)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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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17

근본물질원리인 원질(原質 Parkriti)과 근본정신원리인 참나(眞我 Atman) 역시 ‘스스로 생기겠다’는 의지를 가져서 의도적으로 생기게 된 것은 아닙니다. 원질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생기기[미생(未生)] 전부터 독립적으로 혼자 존재했다고 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그때 도대체 뭘로 (원질이나 세상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참나 역시 영원(히 대상에 관여)하다면 어떤 것도 바뀌거나 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나가 영원하다면 그것은 허공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나가 다른 외연(外緣)들과 만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일 뿐인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대상과 만나도 이전과 다름없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면 대체 무엇이 그것을 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외연이 원질이나 진아에 작용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작용했다’는 원질과 진아라는 그 둘은 무엇이고 또 무슨 관계가 되나요?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해 생깁니다. 아무것도 혼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못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환영에 불과하니 그것에 화내며 분노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어느 분은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하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의 분노를 억제하고 없앨 수 있냐며 모순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연기에 따라 생멸하므로 고통의 원인을 없애면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적이든 친구든 누구든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이 인연따라 생긴 것임을 알아 미워하지 않고 연민하며 편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만일 원하는 대로 다 할 수만 있다면,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이 세상에 누구도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심성 없이 스스로 가시덩굴에 앉아 상처를 입거나 여인을 얻지 못했다고 단식(斷食)까지 어리석은 행동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 목을 매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독약이나 해로운 음식을 먹는 등 박복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해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번뇌에 사로잡혀 그토록 소중한 자신을 해치기도 하는데 하물며 남을 해치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번뇌로 인해 이성을 잃어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에게 자비심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화를 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어리석은 자의 본성이라면 거기에 분노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다 타버렸다고 해서 다름아닌 불만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의 성품은 본래 선합니다. 중생의 허물은 드물고 일시적이니, 중생에게 화를 내는 것은 마치 하늘에 구름이 꼈다고 하늘을 나무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몽둥이에 맞았더라도 (몽둥이가 아닌) 때린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분노에 휘둘린 것이니 분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습니다. 제가 이걸 모르고 과거에 중생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들이 제게 해를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적의 몽둥이와 저의 몸, 이 두 가지 모두 고통의 원인입니다. 적이 몽둥이로 제 몸을 해친다면 제가 어느 쪽에 화를 내야 합니까? 욕망과 애착에 눈이 멀어 종기가 나면 건드리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인간의 몸을 받았는데 해를 입으면 대체 누구에게 화 내야 합니까?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실제로는 스스로가 아닌 다른 고통의 원인에만 집착합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비롯된 해악이거늘 왜 남을 원망합니까? 비유하건대 지옥의 옥졸과 날카로운 칼로 된 숲은 모두 살아 생전 자신의 업으로 만든 인과인데 어느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합니까?

저를 해치는 이들은 제가 지은 업에 의해 그런 것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옥으로 간다면 제가 그들을 해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수에게 인내하면 제 악업은 많이 정화되겠지만 저로 인해 그들은 기나긴 고통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가해자가 되며 그들은 제게 은인이 됩니다. 그런데 어찌 거꾸로 남탓만을 합니까? 흉악한 스스로의 마음에 화를 내야 합니다. 만약 원수가 주는 고통에 인욕한다면 저는 스스로를 지켜 지옥에 까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에게 보복까지 한다면 그들을 구제받지도 못하고 제 선행마저 무너져 결국 인욕의 고행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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