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구한 성자 이야기
죽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구한 성자 이야기
  • 조현성
  • 승인 2015.12.24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주자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가난한지 묻자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죽음으로 라틴아메리카를 구원한 기적 같은 이야기. 가장 낮은 이들의 대변자였던 로메로 대주교 평전이 출간됐다.

오스카 로메로 엘살바도르 대주교(1917~1980)는 가난한 자들 편에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다 미사 도중 암살 당했다. 

책은 로메로의 유년기와 사제가 된 과정,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직자로서 살았던 25년, 친구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죽음을 계기로 가장 낮은 이들의 아픔에 눈 뜨고 그들의 편에 서기까지, 주교가 되어 처음으로 서품을 내린 신부의 죽음과 정권의 총칼에 의해 민중들이 학살될 때 “불의한 명령이 아닌 양심에 따르라”고 호소하던 모습,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압박 속에서 지켜낸 신념, 그리고 죽음…. 오스카 로메로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야말로 교회가 있어야 할 영광의 장소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오스카 로메로의 삶은 여러 면에서 예수의 삶과 닮았다. 보잘것없는 나라의 작은 시골,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 두 사람 모두 목수가 되는 훈련을 받았으며,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섰다는 점. 그리고 불평등과 부패를 강하게 비판하다 사회지배층으로부터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인물로 고발당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엘살바도르의 가난한 사람들은 로메로 대주교를 예수에 비교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행동하는 그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강력히 거론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성인 추대는 그가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지지부진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자마자 시성 절차가 재개되었다.

2015년 2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선포함에 따라 시복시성에 가속도가 붙었고, 마침내 동년 5월 23일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처럼 스스로 가난했으며 가난한 이들 편에 서고자 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스카 로메로의 삶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로메로 대주교는 하느님의 종이었으며, 지금도 계속 순교 중입니다.”

그의 숨 가쁜 삶의 여정이 저자 스콧 라이트의 세밀하고도 명징한 문체로 펼쳐진다. 로메로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더욱 반갑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로메로 대주교의 생애는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진정한 성인의 면모를 제시할 것이다.

옮긴 이 김근수는 <가톨릭 프레스> 편집인이자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2학년 때 독일 마인츠대학교에 8년간 신약성서를 공부했다. 로메로의 땅 남미 엘살바도르에 있는 UCA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소브리노의 유일한 아이사인 제자다. 해방신학의 눈으로 역사의 예수를 계속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슬픈 예수』 『행동하는 예수』 『교황과 나』, 공저로 『교황과 98시간』, 옮긴 책으로 『해방자 예수』가 있다.

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스콧 라이트 지음 | 김근수 옮김|아르테|1만5000원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newsrep21@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