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사진으로 만나는 설악의 기운
작품사진으로 만나는 설악의 기운
  • 조현성
  • 승인 2016.01.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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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의 ‘설악산’...아라아트센터 무료 전시

높이 1708미터인 설악산은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강원도 인제군, 양양군, 고성군에 걸쳐 있는 설악산은 장엄한 기암괴석과 폭포, 크고 작은 소(沼)와 담(潭)이 어우러져 펼치는 경관미와 더불어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사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일찍이 1965년에 천연보호구역,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설악은 백두, 금강, 지리, 한라 등에 비해 그 역사적, 상징적, 자연생태계적 의미와 가치는 잊힌 채 가을 단풍철에 눈을 즐겁게 하는 유원지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제 화려한 겉모습의 내면,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품어낸 깊은 속내, 한국인의 영혼을 고양시킨 설악의 신성한 기운을 다시금 되새겨봐야 할 때다.

임채욱의 작품집 <설악산>에는 설악의 본질이 담겨 있다. 작품집에 수록된 사진들은 찬란한 외관에 눈을 빼앗겨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는 설악의 기운을 전한다. 사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설악의 ‘무한’을 체험하게 한다.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기어올라 간절히 기원하며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작가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설악이기 때문이다. 화창하고 맑은 날 산에 들어 아름다움을 즐기고 산책하며 찍어낸 사진들이 아니라 비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올라 산이 스스로를 내보이며 말 걸어오기를 기다려 찍은 설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산행에서 만나거나 본 적이 없는 설악이 여기 있다. 산과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며 교감하는 순간, 무한한 존재와 일체가 되는 찰나가 여기 있다. 그의 카메라 시선에 얹혀 설악 속으로 들어가며 실존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설악의 개성 전체, 설악의 절대미(美)를 느낄 수 있다.

무한으로 이어지는 설악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은 봉정암이다. 해발 약 1,200미터에 위치한 이 작은 암자는 7세기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실 장소로 정한 곳은 온갖 번뇌를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어 네 발로 기어야만 오를 수 있는 절벽 끝, 설악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설악의 영기로 충만한, 설악의 영혼 그 자체다. 그러하기에 자연 또한 부처를 닮은 바위를 만들어 산의 영혼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리게 해놓은 것이리라. 그리고 작가는, 산의 영혼은 곧 그 앞에 선 우리 자신의 영혼임을, 그래서 어떠한 방해나 훼손으로부터 지켜져야 함을 깨닫게 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임채욱은 2006년부터 붓 대신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산수화를 즐겨 그리던 그였기에 도구가 달라졌어도 산수 풍경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2011년에 선보이기 시작한 그의 산 작품을 보며 첫눈에 ‘사진’이라고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사실적인 재현, 세밀한 표현과 함께 먹의 번짐 같은 효과, 생생한 농담의 변화가 동양화를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의 비밀은 ‘한지’에 있다. 한국인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친 우리 산의 모습은 물론 그 기운까지 가득 담아내기 위해선 일반적인 프린트 용지가 아닌 한지에 프린트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 작가는 프린트용 한지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열정을 쏟았다. 한지를 만난 그의 사진은 붓끝으로 그린 듯한 세밀한 부분부터 그윽하게 번지며 변화하는 농담까지 효과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더해 눈과 구름, 안개로 가득한 여백에서는 한지의 결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다운 사진이 아닌, 동양화 그 자체인 사진, 현대적인 진경산수화다.

안셀 아담스의 사진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담긴 자연유산의 의미를 밝히고 그 지킴이 역할을 했듯이, 임채욱의 설악산 사진은 이 땅에서 솟아오른 설악의 존재 의미와 위대한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생겨난 그대로 제 논리에 따라 변화하도록 지켜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상기시켜줄 것이다. 천년만년 이어져온 자연 앞에서 한낱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겸허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 임채욱은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6년부터 카메라를 이용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실적인 풍경에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는 컬러를 결합해 ‘마음으로 느끼는 이상적인 풍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난 2011년부터는 한국의 산을 주제로 한 사진을 한지에 프린트하여 선보이고 있다. 설악산을 비롯해 북한산, 지리산, 덕유산 등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한국인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산의 모습과 기운을 담아낸 그의 작품은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린 현대적 진경산수화다.

작품집에 수록된 사진 전시는 3월 22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설악산┃사진 임채욱┃도서출판 다빈치┃5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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