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기다리는 일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희미해져 가는 ‘기다림’의 행위를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저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미야모토 무사시,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를 비롯해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과정, 문학작품에 묘사된 기다림의 양상을 두루 살핌으로써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서고자 한다. 언어적 정의를 넘어 실제 삶에서 기다림이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밝힌다.
책 <기다린다는 것>의 첫 장은 휴대전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면서 기다리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시공간상의 거리를 뛰어넘어 언제든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다. 최단의 시간을 계산해 마치 연인이 편지를 통째로 꿀꺽 삼키듯 읽어버리는 정경을 상상한다. 상상으로 인해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 가슴 설레는 상상은 시간과 더불어 부풀어 오른다. 겨우 설렘을 가라앉히고 잠자리에 든다 해도 날이 밝자마자 쏜살같이 우체통으로 달려간다. 우편배달 시간은 아직도 멀었건만, 어쩌면 지난밤 사이 답장을 직접 우체통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는 이런 시간의 감촉과 꽤 멀어졌다.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더 이상 마음을 졸이며 상처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상대를 마음에 새기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일,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부단히 열어두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다림은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때론 기대와 희망이 부풀고, 때론 불안과 초조함에 떨면서 버텨내는 시간이다. 그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리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 불확정성으로부터 기다리는 사람은 한 줄기 가능성을 움켜쥐게 된다. 훗날 시간이 해결해주었다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 아무런 예고나 징조 없이 찾아올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을 말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처럼 기다림에는 우연의 작용을 기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먼저 가두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라면, 우연처럼 무언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항시 내 안에 공간을 비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다린다는 것┃지은이 와시다 기요카즈┃옮긴이 김경원┃불광출판사┃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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