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으러 갔다가 멱살 잡혀 45년
멱살 잡으러 갔다가 멱살 잡혀 45년
  • 휴심정 이길우
  • 승인 2016.03.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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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사전·사후 시봉 원택 스님

   

▲ 경남 산청 성철 스님 생가에 겁외사를 만든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기념물 앞에서 생전의 성철 스님을 이야기 하고 있다. ⓒ휴심정
 
 대학 졸업하고 외무고시 준비하며
 가끔씩 절에 들러 머리를 식혔다
 
 어쩌다 우여곡절 끝에 
 참선하라며 준 화두가 ‘마삼근’
 
 끙끙대다 아무래도 사기꾼 같아
 달려가 대드니 중이 되란다
 
 벼룩 간만큼도 그럴 생각 없었는데
 이틀 만에 흔들려 결정하고 삭발
 
 워낙 성격 불같아 ‘24시간 대기조’
 속이 너무 아파 병원 가니 “스트레스”
 
 생가에 겁외사 짓고 기념관도
 최근 성철-법정 스님 대화록 펴내

 

 
 
성냥개비 10개와 108염주를 받았다. 절 한 번 할 때마다 염주를 한 개씩 돌리고, 한 바퀴 돌려 108배를 하면 왼쪽에 있는 성냥개비 한 개를 오른쪽으로 옮긴다. 24시간 안에 만 배를 해야 했다. 오후 1시에 시작해 4시간 동안 천 배를 했다. 저녁 공양시간이 돼 몸을 움직이니 발이 제대로 안 움직인다. 뒤뚱뒤뚱 걷다가 만 배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일었다. “만 배 안 하련다.” 그 말을 들은 친구 스님이 화를 낸다.
 
q11.jpg » 젊은 원택 스님이 해인사 근처 남산의 매화봉에서 성철 스님과 사진을 찍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큰스님과 약속했으니 해야 해. 네가 포기하면 나는 절에 더 있을 수 없어.” 이미 출가한 친구가 울상이다. “그래, 너 때문에 계속 한다.” 불도 안 들어오는 깜깜한 법당에서 절을 계속 했다. 지루하고 무서웠다.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나 보다. 갑자기 엉덩이가 불이 날 만큼 아프다. 아침에 절을 잘 하고 있는지 보러 온 친구는 쓰러져 자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인마, 절도 안 하고 자고 있냐?”고 소리친다. 간신히 일어나 아침 공양을 하고 절을 계속 하려 했으나 몸이 도저히 따라주지 않는다. 앉아서 허리만 구부리고 염주를 돌렸다. 두 시간 하니 그마저도 허리 통증이 심해 포기했다. “에잇, 무슨 만 배야. 그냥 내려가자.” 한시라도 빨리 절을 벗어나고 싶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마당에 나서니 큰스님이 포행 수행을 하다가 묻는다. “이 자식, 만 배 다 못 했지?” “아뇨. 다 한 것 같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하다가 그만둔 거 다 안다.”
 
좌우명이 고작 ‘속이지 마라’라니…

 “큰스님, 만 배 했으니까 약속대로 좌우명 하나 주세요.” “네 낯짝을 보니 내 말을 잘 들을 놈이 아니구나. 이제 그만 가라. 내가 너에게 줄 좌우명은 ‘속이지 마라’다.” 절뚝거리며 절간을 나서는데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멋진 좌우명을 기대했는데, 고작 ‘속이지 마라’라니….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전날 큰스님을 만나 평생을 지닐 좌우명을 달라고 하니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절 돈 3천원을 내”라고 하셨다.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세 장을 드렸다. 그러자 큰스님은 “인마, 그런 돈 말고. 절값 만원으로 올렸다”고 하며 자리를 떴고, 친구가 “절값 만원이면 절을 만 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러준 터였다. 큰스님을 처음 보는 순간, 눈에서 나오는 빛이 번쩍번쩍해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안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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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이 지난 뒤 문득 큰스님이 준 좌우명이 떠올랐다. “아! 큰스님은 ‘남을 속이지 마라’고 한 것이 아니고, ‘나를 속이지 마라’고 한 것이구나. 과연 큰스님이시구나.”
 
 그길로 다시 큰스님께 달려갔다. 마침 큰스님은 절 뜰에서 산책하고 계셨다. “큰스님, 저 왔습니다.” “네가 누군데?” “몇 달 전 좌우명 달라고 만 배 하다가 내려간…, 기억 안 나시나요?” 큰스님은 기억이 안 나는 듯 외면하고 산책을 계속 하셨다. “큰스님, 불교를 알고 싶어요.” “난 불교 몰라. 다른 스님께 여쭈어라.” “큰스님, 전 참선을 배우고 싶어요.” 순간 큰스님은 “인마, 진작 그렇에 이야기하지. 따라 들어와”라고 하셨다. 큰스님은 30분 넘게 참선과 화두 공부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오늘부터 이 화두를 잡고 참선해봐”라며 “네가 잡을 화두는 마삼근(麻三斤)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중국 운문종의 창시자인 운문문언 선사의 제자인 동산수초(910~990) 선사는 “어떤 것이 부처냐”는 제자의 질문에 “삼베 세 근”이라고 답했다. 중국 당나라 당시에는 삼베로 승복을 만들었는데, 삼베 세 근이면 승복 한 벌을 만들 수 있었다. 삼베 세 근은 수행자를 수행자이게 해주는 조건이고, 오직 자기만이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였다. ‘뜰 앞의 잣나무’, ‘이 뭐꼬’, ‘무’와 함께 간화선 수행을 하는 불자들이 많이 공부하는 화두다.

통곡하는 어머니에게도 “머리 깎아라”

 당시 젊은이는 경북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장래 희망은 외교관. 고시공부를 하며, 고교 시절부터 관심이 있던 불교이기에 가끔 절에 가서 머리를 식히곤 했다. 다시 반 년이 흘렀다. 젊은이는 화가 치솟았다. 큰스님이 사기꾼 같았다. 화두를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고시공부도 더 안 됐다. 당장 가서 큰스님 멱살이라도 잡아야 화가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또 큰스님 계시는 절로 달려갔다. 마침 법당 안에 계셨다. 멱살을 잡을 결심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문을 확 열었다. 순간 큰스님이 외쳤다. “아냐, 인마.” 마치 자신의 멱살을 잡으려고 뛰어들어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셨는지, 큰스님은 젊은이를 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순간 젊은이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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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이 물었다. “뭐하러 왔어?” “스님 멱살 잡으려고 왔어요.” “푸하하, 그건 참선이 아니지.” 큰스님은 인자하게 말씀을 건네며 하루 자고 가라고 권했다. 저녁 공양 뒤 젊은이를 부른 큰스님은 “너 지금 몇 살이냐”고 물었다. 29살이라고 대답한 그에게 큰스님은 “그럼 세상 많이 살았네. 얼마나 큰 출세를 하겠냐? 이제 중이 돼서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아보지”라고 했다. “스님, 중이 되고 싶은 생각은 벼룩의 간만큼도 없어요.” “잘 생각해봐라.”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큰스님이 잡는다. “하루 더 있다가 가라.” 젊은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도인으로 소문난 큰스님인데…, 뭐가 보이시나? 고시공부 그만하고 출가할까? 출가해서 고승이 되면 그 또한 사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다음날 아침 큰스님은 또 묻는다. “결정했나?” 순간 젊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대답했다. “네, 결정했습니다.”

 젊은이는 집에 가서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다. “고시공부 하러 절간에 가서 1~2년 있다 오겠습니다.” 그길로 젊은이는 삭발하고 출가했다. 1년 뒤 어머니가 절로 찾아왔다. 그런데 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이 중이 돼 있었다. 어머니는 주저앉아 통곡했다. 마침 지나가던 큰스님이 소리친다. “아들이 중이 됐으면 큰중이 되라고 절을 못할망정 왜 울어. 너도 머리 깎아라.”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울음을 그쳤다. 그 후 10년 동안 절을 찾아온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너 언제 장가가냐?”고 물었다고 한다.
 
세 숟갈 분량 한 끼 20분 동안 꼭꼭

 출가한 젊은이는 23년 동안 큰스님을 모셨다. 남들은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두는 시봉 자리였지만 젊은이는 22년간 큰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번도 하안거, 동안거 못 들어갔다. 큰스님이 열반한 1993년 이후 23년 동안 큰스님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큰스님 모시는 동안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워낙 큰스님의 성격이 불같고 야단을 많이 쳐 ‘24시간 대기조’였다. 하루는 속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진찰을 한 의사는 “스님이 어떤 일 하는지 모르지만 스트레스가 심해서 생긴 병입니다. 좀 쉬면 좋아질 것입니다.” 치료할 약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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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스님은 바로 성철(1912~1993) 스님이고, 출가한 젊은이는 원택(73)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원택 스님은 2001년 성철 스님의 경남 산청 생가에 겁외사를 창건했고, 지난해에는 ‘성철 스님 기념관’도 지었다. 한 해 10만명이 기념관을 찾는다. 최근에는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록인 <설전>(雪戰)이란 책을 출간했다.
 
 지난 10일 겁외사에서 만난 원택 스님은 “큰스님은 세 숟갈 분량의 한 끼 식사를 20분 동안 꼭꼭 씹어서 식사를 했어요.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방 안에서 혼자 선체조도 하시고 물구나무도 서시고 했어요. 그런 건강법을 알려주시지 않고 열반하셔서 서운하기도 했어요”라고 말한다.

 성철 스님이 준 첫 번째 화두인 ‘마삼근’은 아직도 뚫지 못했다. 큰스님은 법거량(제자가 화두를 푼 것을 대답하면 이를 스승이 평가하는 것)을 하면서 원택 스님이 풀어낸 답을 듣고 혼내기만 했다.
 “이제는 망상이 없어요. 남은 생애 동안 큰스님의 큰 사상을 많은 대중이 알도록 노력할 겁니다.”

출가해서 평생 성철 스님에게 묶여 있는 원택 스님은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화두 하나를 풀지 못했어도….

*이 기사는 휴심정과의 제휴에 의해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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